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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광주 북성중학교에 수능시험 감독관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작년처럼 여자 수험생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게(?) 된 것입니다. 작년에는 1교시 언어영역이 지나치게 어려워 1교시 종료령이 내려지자마자 가방을 챙겨 시험실을 뛰쳐나가는 수험생들이 몇 있었는데, 올해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수능시험이 비교적 쉽게 출제되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교시인 수리영역 시간을 지내고 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100분이라는 시간 중에 채 20분도 지나지 않아서 대부분의 수험생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통로를 지나면서 슬쩍 본 대부분 수험생의 문제지에는 별다른 펜 자국이 남아 있지 않았으나, 이미 답안지는 다 채워져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문제지의 문항들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 마킹한 것입니다.

최소한 그들에게는 수능시험의 존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수능 점수를 따져보는 것은 그 동안 갈고 닦아온 자신의 학력 수준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그 날의 운수를 평가(?)하는 의미를 넘지 못합니다.

모르긴 해도 그들의 수능 점수는 확률상(?) 절반을 넘기기란 어려웠을 겁니다.

수능 점수가 수험생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지고지선의 가치인 우리 현실에서 그들은 '잠재적 열등 시민'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노라니 이유 모를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남들보다 우월한 '달란트'가 분명 있을 터인데 말입니다.

오후 5시. 수능시험은 끝났습니다. 시험장을 빠져나가 총총걸음으로 어디론가 바쁘게 빠져나가는 그들을 지켜보면서, 시험장 교문 밖이 그들에게는 또 다른 수능시험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능시험이 끝나기가 무섭게 각 입시전문기관에서 올 수능문제에 대한 평가와 함께 예상점수를 약속한 듯이 서둘러 공고하였습니다. 각 기관마다 약간의 오차는 있었지만 큰 테두리 안에서 보자면 대동소이하였습니다. '작년보다는 쉬웠다는' 평가 말입니다.

신문마다 도배된 수능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 있습니다.

'왜 수능시험의 난이도를 해마다 조정해야만 하는 것일까?'하는 것 말입니다. 생각건대, 모든 수험생을 오로지 수능시험'만'으로 중복됨이 적게 변별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말 그대로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수준을 꼼꼼히 연구하여 문항으로 만들어 제시하면 될 것을 전 사회적으로 괜한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수능 문제에 대한 평가와 예상 점수가 모든 언론을 통해 공고된 후, 수험생 한 명이 수능 성적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그것도 시험과 점수에 관한 한 '산전수전' 다 겪었을 재수생이 말입니다. 물론, 정확한 정보와 꼼꼼한 분석 없이 '빨리' 발표하고 보려는 입시 전문 기관과 교육과정평가원의 그릇된 발표로 인해 상대적으로 낮아진 자신의 점수를 비관하였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이유일 수는 없습니다.

단 한 번만의 지필 시험으로 천차만별의 다양한 수험생의 '달란트'를 평가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수능시험이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만'을 테스트하는 의미의 시험이지만, 우리 교육 현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죽음'을 부를 수도 있을 만한 가공할 힘이 있습니다.

제가 감독한 수능시험장의 그들은 분명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그들 눈빛만은 여느 수험생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꿈이 있을 것이고, 그 꿈에 따라 자신의 미래 정도는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꿈이, 미래가 수능시험이라는 틀로 단 한 번에 규정되어버린다는 현실을 생각할 때 전국을 들썩거리게 하는 수능시험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가를 느낍니다.

지필 시험에 능한(?) 수험생들, '그들만의 리그'라고 볼 수도 있는 수능시험을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수능시험이 대학에서 '어려운' 공부를 하기 위해 필요한 필수 수준을 테스트한다는 자격시험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큰 배움터라는 대학에서 수학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또 굳이 대학엘 가야만 배울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한다면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제한할 수도 있어야만 합니다. 개인과 가정의 경제적인 낭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국가적인 손해일 수 있습니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는 식으로 '대학 간판'으로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하는 국민 의식과 왜곡된 사회 구조를 먼저 고쳐야 한다는 정서적 측면의 충고를 한다면, 심각한 문제점은 공감하고 인정하되 결국 문제점에 관해서 아무 것도 손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평상시 같으면 책장 넘기는 소리와 공부하는 열기로 가득했을 3학년 교실에는 텅 빈 채로 을씨년스러운 적막감만 남아 있습니다. 이미 수 년간 노력한 대가를 보상받으려는 '예비 성인'들이 교실을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수능시험을 실질적인 '졸업식'으로 여기는 요즘의 현실 속에서 과연 수능시험의 역할과 의무는 다하고 있는가를 고민하는 사람은 비단 저만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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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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