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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4일 부산 민주공원에서 묵념을 올리는 노무현 후보 부부. ⓒ 오마이뉴스 이종호

5월27일이면 노무현 씨가 민주당의 '공식적인 대선후보'로 확정된 지 딱 한 달이다. 4월의 '노풍'은 화려했다. 하지만 5월은? 바람은 빠지고 현실이 남았다. 노 후보에게 5월은 '화려하게 시작했지만 답답하게 저물어가는' 달로 기록될 것이다.

대선후보가 된 이후 한달간의 노 후보 행보를 보면 주된 포인트는 두가지다. 첫째는 부산 등 영남권 중점 공략. 그는 4월30일 YS를 전격 방문하는 것으로 부산공략의 시동을 걸었다. 이후 5월 3∼4일 후보가 된 이후 첫 지방 방문지로 고향이 있는 경남 김해와 정치적 고향인 부산을 선택했다. 노 후보는 15∼16일 또 한 차례 부산을 방문했다. 다른 지역은 제주도와 강원도만 지방선거 필승 결의대회 참석차 짧게 방문했을 뿐이다.

둘째는 당에 착근하기. 8일 의원총회에서 노 후보는 "내가 사실 그 동안 빈약한 조직으로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겨우 왔지만, 앞으로 가는 데는 당의 도움 없이는 결코 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나의 모든 개인적 조직을 당으로 합칠 것은 합치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겠다. 잘 이끌어주십쇼"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선 캠프는 몇 명만 당의 비서실로 들어갔고 나머지는 해체됐다. 이후 노 후보는 주로 당내 일정을 소화했다. 며칠에 걸쳐 각 상임위별 소속 의원들과 조찬 또는 만찬을 함께 했고 정책위원회와 정책을 조율했다. 후보가 되자마자 '서민속으로'로 대표되는 대국민 행보를 시작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대비되는 부분이다.

ⓒ 오마이뉴스 고정미 / 자료제공 TNS


노무현의 한 달 행보, 부산공략과 당에 착근하기

이런 한 달간 소득은 어땠을까. 정치와 정치인에게 있어서 소득이란,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것'처럼, 종종 특정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적어도 여론조사만으로 봤을 때는 소득이 별로 없다. 오히려 지난 소득을 까먹고 있는 형국이다.

여론조사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자. 이 수치는 모두 여론조사기관인 테일러 넬슨 소프레스(TNS) 조사 결과(2월16일, 3월12일, 4월9일, 4월16일, 4월22일, 5월15일)로서 노 후보를 중심으로 분석한 일종의 '여론조사로 본 노무현의 5월 손익계산서'다.

먼저 한때 26.7%까지 벌어졌던 노무현-이회창 지지도 격차가 오차범위 내인 2.2%까지 좁혀졌다. TNS는 지난 광주경선 직전인 3월13일 가장 먼저 노 후보가 이 후보를 1.1%라는 오차범위 내에서 리드하기 시작했음을 알렸고, 약 두 달 후인 5월13일에는 다시 3.2%라는 오차범위로 좁혀졌음을 알렸다. 노 후보측은 같은 기관의 조사에 의해 웃고 울게 된 셈이다.

공식적으로 후보가 확정되기 직전인 4월22일(14.8% 차이)과 비교할 때 5월15일(2.2% 차이) 노 후보는 7.6% 떨어졌고 이 후보는 5% 상승했다. 그 동안 무응답 층은 12.8%에서 15.4%까지 2.6% 상승했을 뿐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노 후보 지지에서 이 후보 지지로 옮겨갔다는 뜻이다.

누가 돌아섰을까. 연령별, 직종별, 학력별 분석 결과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일단을 보여준다. 우선 모든 부분에서 전부 낮아졌다. 이는 국민경선이 끝난 이후의 조정국면, 구속까지 이어진 '대통령 아들 게이트' 등 외부적 요인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외부적인 여러 악재는 지지도 하락의 최상위 요인이다.

주목할 부분은 50대, 고졸이하, 농임어업과 블루칼라 직종이다. 가장 최근 조사가 직전 조사에 비해 가장 많이 떨어진 연령은 30대(-10%)와 50대(-9%)다. 마찬가지로 학력별로는 고졸(-12%)과 중졸이하(-7%), 직종별로는 농임어업(-21%), 블루칼라(-10%), 화이트칼라(-10%) 순이다. 이중 30대와 화이트칼라를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전통적인 구 여권, 즉 한나라당 지지층이다.



ⓒ 오마이뉴스 고정미 / 자료제공 TNS


계층 정서에서 다시 지역 정서로

'노풍'의 주역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노 후보가 국민경선 국면에서 그렇게 폭발적인 지지율을 획득했던 데에는 이들 구 여권층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이회창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이들은 무응답 층의 이동보다 폭발력이 컸다. 이 후보 지지자 한 명이 노 후보 지지자로 돌아섰다는 것은 전체적으로 보면 ±1이 아니라 ±2의 효과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들 구 여권층의 이동을 두고 '계층 정서에 의한 정치적 지지의 시작'이라는 해석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하지만 이들이 다시 돌아가고 있다. 잠시 '계층정서'를 보이던 사람들이 '지역 등 전통적인 정서'로 다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영남권은 오히려 덜 빠졌다는 점이다. 거주지별 지지도 추이를 보면 직전 여론조사에 비해 가장 많이 빠진 지역은 서울(-9%)과 대전·충청(-9%), 대구·경북(-8%) 순이다. 같은 기간 민주당의 취약지역인 부산·경남은 강세지역인 광주·전라권과 같은 -6%가 빠졌다. 이 부분은 출신지역별 지지도 추이를 살펴보면 좀더 명확해진다. 출신지가 서울·경기인 층은 무려 19%의 지지도 하락을 보였으며, 충청권이 -9%로 그 뒤를 이었다. 영남권은 -6%였다.

이런 현상을 두고 TNS 김헌태 본부장은 '역(逆) 지역주의'와 '정체성에 대한 실망'으로 해석했다. 노 후보가 YS를 찾아가 시계를 보이며 저자세를 취하고, 부산시장 후보 선택을 위임하고, 다른 지역과 달리 부산·경남을 두 번이나 방문하는 등의 행보가 충청과 경북 지역에 소외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또한 노 후보의 정체성은 '변화' '지역구도 타파' '3김 정치 극복' '미래지향' 등으로 특징되는데, 그것과 쉽게 합치되지 않는 최근 행보는 정체성의 실망을 일으켜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지지도 하락으로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 오마이뉴스 고정미 / 자료제공 TNS


'손익계산서'로 보는 올 대선의 특징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의 한 달 소회
"과거를 부정하라는 고통스러운 여론"

자신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노 후보도 잘 알고 있다. 그는 23일 지도부·의원 워크숍에서 조금 길게 '한달 소회'를 밝혔다. 그는 YS를 찾아갔던 부분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제가 처해 있는 처지가 과거를 부정하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여론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이 정치적 환경에 대해서 굉장히 고통스럽게 생각합니다. 과거를 단절하고 뛰어넘어야 한다는 요구, 과거를 부정해야 한다는 요구, 과거의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나누어서 대응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는 지금의 여론 분위기에 대해서 정말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우리 민주세력이 가지고 있는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처럼 과거와의 단절의 요구에 몰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그 동안 독재정권이 파놓았던 분열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빠져들었던 것이 원인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독재구조 속에서 구조화된 부패의 문화에서 우리 스스로가 벗어나는, 단절하는데 성공하지 못한 대가를 국민들로부터 치르고 질책을 받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이 두 가지 함정과 질곡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분열의 함정'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탈출시켜야하고, '부패의 문화'로부터 과감하게 단절해야합니다."
시각을 좀더 넓혀보자.

12월 대선까지는 아직 7개월이 남았다. '노무현 손익계산서'로 엿볼 수 있는 올해 대선의 큰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3김 시대의 지지층과 달라지기 시작했다.

3김은 각각 영호남과 충청의 지역적 맹주로 탄탄한 자신의 고정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충성도는 매우 커서 3김이 어떤 행보를 취하는가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3김이 하루아침에 A를 C라고 하면, 이들은 자신의 지지를 철회하기보다 자신의 인식을 바꿨다. "그래, A가 아니라 C가 맞아.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아직 지역정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자신의 생각과 기대에 어긋나면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2) 일명 '중도화 전략(go to the center)'이 쉽지 않을 것이다.

대선에서 중도화 전략은 민주-공화 양당 체제인 미국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각 당의 지지층이 확고한 상황에서 서로 상대당의 정책과 비슷한 것을 내놓아 상대당의 표를 뺏어와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노 후보의 지지층은 확고하지 않다. 누가 자신의 지지층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신만의 색깔을 명확히 해서 지지표를 다질 필요가 있다. 이는 몇 차례 급격한 지지층 이탈을 경험한 이회창 후보도 마찬가지다.

(3) 앞으로 어느 때보다 이렇게 엎치락 뒷치락하는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사소한 등락은 흔히 발생하는 일. 문제는 대선 직전이다.

투표일인 12월 18일로부터 한두 달 전에 상승세를 잡는 사람. 그자가 최종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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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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