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7월 8일 이재준 일병(21)의 어머니 윤 아무개씨는 부대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아들이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했다는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서둘러 찾아간 현장에서 본 아들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윤씨를 더욱 분노케 한 것은 아들이 자살한 이유였다. 사단 헌병대의 조사 결과, 아들은 고참 사병으로부터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취침시간에 여러 차례 이일병의 가슴과 성기를 만지며 괴롭혀온 것으로 밝혀졌다. 아들이 자살을, 그것도 성추행을 당했기 때문에 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윤씨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이재준 일병 사건은 이제 군대 내 성추행이 쉬쉬하며 덮어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추행이 자살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군도 파문에 휩싸였다. 성추행 사실을 밝힌 군 관계자가 심하게 질책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이번이 결코 처음은 아니었다.

"신병을 끼고 자는 것은 고참의 당연한 권리였다."

박현우 일병(사망 당시 20세)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그의 어머니 이혜숙씨(전국 군폭력 희생자 유가족 협회 회장)는 지난 98년 7월 20일 부대로부터 아들이 전기 배전반에 감전되어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씨가 사고 현장에 도착하자 조사를 맡은 수사관은 아들이 실수로 배전반을 건드렸다며 김아무개 상병을 목격자로 불러왔다.

이씨는 김상병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사병은 평소 아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고참이라고 지목했던 사람이었다. 김상병은 "박일병이 실수로 배전반에 감전되었다. 나는 박 일병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라고 말했지만 이씨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씨는 김 상병에게 현장 상황을 재현해보라고 요구한 뒤, 그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리고 계속 추궁한 끝에 그가 감전 위험이 큰 전기 배전반 앞에 아들을 세워놓고 성추행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아들은 그것을 피하려다가 변을 당한 것이었다.

이일병과 박일병의 사례는 성추행이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취재 결과 이일병과 박일병은 예외적으로 심하게 추행을 당한 것은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이러한 성추행은 심각할 정도로 군대 내에 만연되어 있었다.

예비역들에게서 이러한 성희롱,성추행,성폭력에 관한 얘기를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이재준 일병과 같은 연대에서 군 복무를 마친 박아무개씨(27.)도 "신병을 한 명씩 끼고 자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아는 고참들도 있었다"라며 그런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예비역 중에는 좀 부족해 보이고 행동이 굼떠서 '고문관'으로 불렸던 사람만큼이나, 예쁘장하고 유약해서 '이쁜이'로 불리며 고참 사병들로부터 시달림을 당했던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직접 당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동료가 성추행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도 부지기수이다.

"같이 입대한 한 동기는 여자 같은 용모를 가졌는데, 남모를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한 고참이 유독 그를 좋아하여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고참은 내 동기를 껴안고 성기를 만지작거리며 이상한 행동을 했다. 가련한 내 동기는 반항하려고 하였지만 계급 때문에 고참에게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의 문화] 제8호, '새로 쓰는 성 이야기' 중에서>

"통신병 사수 ○○○, 예쁘장하게 생겨서 맨날 노리개가 되었음"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군대 친구에 대한 글>

남자도 성폭력 당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소장 최영애)의 최근 피해상담 사례를 보면 '남성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성폭력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남성의 성폭력 피해 접수 결과는 97년 60건, 98년 69건, 99년 99건 등 꾸준히 증가해왔다.

상담소는 남성에 대한 성폭력은 주로 남성에 의해서 저질러진다며 성폭력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군대나 감옥을 지목했다. 엄격한 권력 관계가 형성되는 곳이기 때문에 성희롱·성추행·성폭력 등의 피해가 빈발한다는 것이다.

군대 내에서 이뤄지는 성희롱은 대부분 예쁘장한 용모를 가진 사병들을 대상으로 벌어진다. 강아무개씨(28. 회사원)는 "고참 사병들은 신병 중 곱상한 용모를 지닌 사병이 있으면 '내 애인이니까 건드리지마'라고 말하며 마치 자기 여자 취급했다. 고참들이 그 사병에게 '너 여자 아니냐? 한 번 확인해 봐야겠다'며 옷을 벗겨 그 사병이 심한 수치심에 시달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성추행이 주로 이뤄지는 장소는 내무반이나 초소, 창고 등이다. 이 일병의 경우 남 아무개 병장으로부터 취침 시에 주로 내무반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박 일병을 성추행한 김 상병도 평소 내무반에서 박 일병과 다른 사병을 성추행 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초소나 창고처럼 고참과 졸병이 둘만 있게 되는 경우 더 심한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자행된다. 강아무개씨(28. 컴퓨터 전문가)는 고참 사병과 초소 근무를 서던 중 그의 강요에 의해 자위행위를 하고 정액을 보여준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외모가 예쁘장하고 유약하게 생긴 사병들만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박 일병의 어머니 이혜숙씨는 "군대에서 성적으로 놀림 당하는데 있어서, 신체 조건이나 외모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군대는 철저하게 계급 사회이기 때문에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박 일병은 건장한 체격이었으며, 이 일병도 키가 180 cm가 넘는 당당한 체격이었다.

고참 사병들은 졸병들의 군기를 잡기 위한 수단으로 성폭력을 활용하기도 한다. 박아무개씨(27.)는 "고참들이 이병들을 일렬로 세워 놓고 자위행위를 시켰다"라고 말하며 이런 행위들은 모욕감을 주는 동시에 고참들과 신병간의 힘의 우열관계를 분명히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아무개씨(28. 컴퓨터 전문가)도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방법은 신병의 자존심을 꺾어 군기를 잡는데 유용해 자신도 해본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군대 내의 성폭력 문제는 적절한 처벌이나 교육이 없이 대물림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이 일병과 박 일병의 가해자들도 모두 신병 시절에는 그들 자신이 바로 성추행의 피해자였다. 그러나 자신을 괴롭힌 고참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교육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고참의 잘못을 답습하게 되었다. 군대 내 성추행 문제에 대해서 적절한 교육과 처벌을 하지 않고 방치만 한다면 문제가 끊임없이 반복될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육군본부 공보과장 이성옥 대령에 의하면 1년에 처벌되는 군대 내의 성폭력, 성추행 사범은 고작 10건 이내라고 한다. 군 당국이 실태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군이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해결 노력을 보이지 않을 경우 군대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시사저널> 559호 기사입니다.

군대내 성폭력 문제가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무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사화 하지는 않았지만 
성폭력 후유증으로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은 사례도
여러 건 있었습니다.
다음 기사로 준비 중인데, 이와 관련한 제보 부탁드립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어른의 여행을 디자인하는 여행감독, 재미로재미연구소 소장, 여행자플랫폼/트래블러스랩 대표 여행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