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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노동자의 사용자는 누구일까?

위험성평가가 노동자 안전으로 이어지려면 ① 고용관계를 넘어서는 위험성평가가 필요하다

등록 2024.05.10 10:00수정 2024.05.1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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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산재 예방을 위한 자율안전보건체계를 강조하면서, 그 방법으로 노사가 자율로 시행하는 위험성평가를 들고 있다. 하지만 위험성평가가 전통적인 노사관계 외의 현장, 소규모사업장 등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세심한 준비가 없다면, 위험성평가를 강조한다고 바로 노동자 안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위험성평가가 정말로 노동자 안전으로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짚어보았다.[기자말]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아래 산안법)에서 위험성평가는 일정한 공간에서 시설과 장비를 공유하면서 이루어지는 사업을 중심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배달 라이더의 노동은 노동자와 사용자 경계가 모호하고, 이동 노동을 기반으로 해 일터의 경계 역시 모호하다. 배달 라이더들의 노동과정에서의 위험은 심각하고 다양하지만, 기존의 고용관계, 일정한 공간 내에서의 사업을 중심으로만 생각하면 위험성평가를 포함하여 안전보건에 대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는 어려워지게 된다.

배달 라이더들의 노동과정에서 수반되는 유해·위험 요인은 불안전 행동에 기반한 인적 요인, 불안전 행동을 초래하게 되는 플랫폼 알고리즘이나 프로모션 전략 등의 관리적 요인, 배달업무를 아웃소싱한 식당 등 가맹점주 및 소비자와의 관계적 측면과 여기서 발생되는 민원의 해결 방식과 체계, 도로 유지 보수 및 도로 교통 체계 등 매우 복합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위험성평가 제도가 단순히 위험을 파악하는 것을 넘어서 개선까지 전망하는 일련의 체계적 활동이라는 관점에서 배달 라이더들을 위한 실효성 있는 안전·보건 관리전략으로 진전하기 위해서는 평가 대상 항목이나 체크리스트 제시를 넘어서 평가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수행하고 개선은 또 어떤 방식으로 도모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핵심이다. 이것이 2023년 말부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 일환경건강센터가 함께 "플랫폼 배달 라이더의 위험성평가 체계 개발 연구"를 진행하게 된 배경이다.

위험성평가의 주체 : 고용관계를 넘어서야 한다

산안법은 그 보호대상을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확장하고 있다. 산안법상 위험성평가실시 조항(제36조)은 예외 없어 모든 사업에서 '사업주'는 위험성평가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배달 라이더의 위험성평가에 있어 '사업주'는 과연 누구인가의 문제가 있다. 산안법 제2조에 정의하는 '근로자를 사용하여 사업을 하는 자'로서 사업주인지 혹은 법 제5조(사업주 등의 의무)에서 규정하고 있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부터 노무를 제공받는 자'와 '물건의 수거·배달 등을 중개하는 자'를 포함하는 사업주인지부터 모호하다. 도급인과 수급인이 각각 실시한 위험성평가에 대해 도급사업주는 개선의무가 있지만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산안법 제63조)'에 한정된다. 위험성평가라는 포괄적인 안전보건관리의 방법론적 접근이 결국 특수형태근로종사자(노무종사자) 적용에 있어 한계가 존재한다.

영국은 '일터에서의 건강과 안전 관리에 대한 법률'을 통해 고용관계를 넘어 위험성평가를 확장하고 있다. 모든 고용주는 직원이 근무하는 동안 노출되는 위험뿐 아니라, 고용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사업 수행 자체 혹은 그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건강과 안전 위험에 대해서 적절하고 충분한 평가를 하도록 하고 있다. 자영업자에게도 '자신'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위험을 포함한 위험성평가를 하도록 하고 있다. 위험성평가는 고용관계를 넘어서서 사업을 통해 발생시킬 수 있는 위험에 영향을 받는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용관계나 노동자성 판단에 대한 논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당면한 라이더의 안전보건 상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각 이해관계당사자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해야 한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대상 안전조치 이행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도출과 효과적인 감독 방안 검토(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22)' 연구에서는 이해관계자, 사업유형, 장소적 관계를 바탕으로 직종별 안전조치 이행 주체를 유형화하고 그 책임과 역할의 범위를 정의하고 있다.

2017년 안전보건공단에서 발간한 '이륜차 음식배달 종사자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에서도 이륜차 배달종사자 재해 예방을 위해서 배달종사자, 음식점 사업주, 배달 프로그램(앱)사, 배달대행사 각 주체별 안전점검표를 제시하고 점검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이들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위험성평가와 이후 개선 과정에서 주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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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3일 플랫폼 라이더 위험성평가 연구 발표 및 대책마련을 위한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 공공운수노조

 
위험성평가로 도출된 위험의 개선 비용은 누가?

이런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수용가능한 위험의 수준, 개선 우선 순위와 내용, 수행 조직과 기관 등에 대해 협의할 수 있어야 한다. 구조적 위험성평가 비용, 개선 비용 등의 재원에 대한 논의 역시 필수적이다.

개선 재원으로 플랫폼 위험부담금(산업안전보건관리비)을 고민할 수 있다. 산안법 상 건설공사발주자가 산재 예방을 위하여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계상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건설업의 특성을 고려하여 건설사 외에 발주자에게도 안전보건관리에 대한 비용을 부담시켜 사회적 책임을 분담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라이더들과 직접 고용관계에 있지 않더라도 라이더들의 배달 노동을 이윤 기반으로 한다. 건설업 사례와 마찬가지로 플랫폼 기반 산업에서도 플랫폼 기업들에게 일정한 안전보건관리비용을 부담하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나눠지도록 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위험성평가 수반 비용, 안전보건장비 제공을 넘어서는 다양한 사회적 안전·보건·복지 비용의 재원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의 개념을 넘어서는 것도 필요하다. 위험이나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원인자에게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는 '교통유발 부담금'제도나 '환경개선부담금'제도 등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플랫폼 기업들에게 위험유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부담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 위험부담금' 등의 폭넓고 다양한 제도적 상상력을 발휘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노무제공자로서 절반의 산재보험료 부담을 전제로 제도로 편입된 배달 라이더들은 산재보험법상 노무제공자이면서 동시에 산재보험 가입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산재보험료를 기반으로 조성되어 노동부가 운용하고 있는 산재예방 기금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위험성평가 대상 위험요인으로서의 알고리즘과 환경

라이더 위험성평가 사례를 보면 위험성평가의 대상 요인도 훨씬 넓게 사고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노동을 할당하는 플랫폼 알고리즘의 구조가 위험을 감수하는 불안전 행동을 조장하여 사고나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 날씨, 기온 등 기후와 계절적 요인 역시 주요한 유해인자가 될 것이다. 도로 교통의 체계나 배달 경로상의 도로의 상황이나 여건 역시 안전에 중요한 고려 상황이다. 개인의 불안전 행동이나 단순 기계적 위험요인 외에 알고리즘, 기상여건, 교통체계, 도로 관리 등이 모두 위험성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위험요인으로서의 알고리즘에 대한 관리는 플랫폼 기업들이 주된 책임을 가지더라도 라이더들의 참여과 감독기관의 역할도 필요하다. 인위적 개입이 어려운 기상 상황에 따라서는 배달 노동 자체에 대한 일정한 제약과 중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 소비자, 가맹사업주, 중개업체, 플랫폼사, 라이더 모두가 일정한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위험요인으로서 도로교통 체계나 노면의 상태, 사고를 유발하는 위험 지역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국토교통부, 지자체 등이 역할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위험을 평가하는만큼, 다양한 방식도 동원돼야 한다. 라이더들의 인식과 경험에 대해 온라인 설문 평가, 스마트폰으로 위치기반 위험 상황(아차사고) 보고, 신고 등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여 '수시로' 위험요인 수집, 작업현장 순회 방식처럼 샘플링을 통해서 실제 운행과정에서 위치기반 장비나 액션 캠 등을 활용 분석하고 위험 요인을 도출하는 방식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라이더들의 사고 및 질병에 대한 사례를 수집하고, 정리한 대규모 정보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교통안전공단의 사고 관련 데이터, 보험사 보상자료, 근로복지공단 산재 자료 등을 수집하여 빅데이터로 분석하고 위험을 평가할 수 있다.

사전 위험성평가도 생각해볼 수 있다. 플랫폼 기업들이 알고리즘을 개편할 때 빅데이터를 활용한 시뮬레이션으로 사전 위험성 평가를 하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문 및 운행 데이터와 사고 관련자료를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석 기법 등과 결부하면 알고리즘 개편 전 가상 사전 위험성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라이더 위험성평가를 넘어, 새로운 고용 관계의 안전보건체계 수립을 위하여

이번 연구는 플랫폼 라이더의 위험성평가 체계 마련 연구였지만, 이 연구를 통해 얻은 시사점은 라이더에게만 제한되지 않는다. 기존의 고용관계를 빠져나간 다양한 노동의 위험, 단일한 사업장에서 일하지 않는 다양한 노동의 위험을 누가 어떻게 평가하고 개선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고용노동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2020년 경사노위 산안위 노사정 합의에서 '정부는 서비스업에 확산하는 플랫폼 노동 등 새로운 고용구조 형태와 서비스업 특성에 기인하는 새로운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실태조사를 조속히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하며, 법·제도 개선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합의에 따라 '정부는 서비스종사자 안전보건 강화를 위한 정책과 법·제도 개선을 위해 노·사·정·전문가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운영하고, 책임있는 행정집행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당사자들이 함께하는 배달 라이더들의 위험성평가가 플랫폼 노동에 대한 실효성 있는 안전보건 정책과 행정집행체계 마련을 위한 첫발이 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류현철 님은 (재)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으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5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위험성평가 #자율안전보건체계 #라이더 #특수고용노동자 #산업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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