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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도 페트병에 마시는 플라스틱 세계 4강 대한민국

오는 11월 플라스틱 국제회의 부산에서 개최... 의장국 한국 플라스틱 감축 실천 미미

등록 2024.05.09 20:49수정 2024.05.09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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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4강은 다시 생각해도 꿈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플라스틱 배출량에도 세계 4강이 있다. 지난 2021년 미국의 국립과학공학의학원(NASEM)이 통계를 내봤더니 국민 1인당 플라스틱 배출량이 가장 많은 1위는 미국이었고, 2위는 영국이었다. 3위는 '이 나라'였고 4위는 독일이었다. 세계 3위 이 나라는 어디일까? 참고로 이 나라는 플라스틱 생산량 면에서도 세계 4위권 수준이다.
 
1인당 연간 플라스틱 배출량 (2016년 기준)

1위 미국 (130kg)
2위 영국 (99kg)
3위 한국 (88kg)
4위 독일 (81kg)

(출처: 미 국립과학공학의학원 NASEM 보고서)

지난 2016년 통계였으니 지금은 조금 나아졌을까 살펴볼 찰나 이런 기사가 눈에 띈다.

'소주도 페트병이 대세? 플라스틱 감축은 언제'

이제는 파란 유리병에 담아 마시던 소주조차 페트병이 대세라는 지난 2일 MBC 보도 제목이었다. 편의점에서는 이미 페트병 소주가 대부분이고 대형마트에서도 절반가량 매출이 페트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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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이 아닌 플라스틱 페트병 소주가 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소주 판매대. 2022.2.20 ⓒ 연합뉴스



주변에 물어봤더니 지난 코로나19 시기 '혼술' 문화가 페트병 소주 '창궐'의 원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집에서 혼자 가볍게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무겁고 깨지기 쉬운 유리병보다는 가볍고 재활용도 쉬워 보이는(?) 페트병 소주가 인기를 끌었다는...

이처럼 기존에 쓰던 유리병까지 플라스틱으로 대체하는 우리 현실과는 달리, 지금 국제 사회에서는 플라스틱 생산량 자체를 줄이고 다회용기나 재사용 비율, 재활용 플라스틱 비율을 늘리려는 구속력 있는 플라스틱 협약이 진행되고 있다. '플라스틱 오염 종식 국제협약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가 그것이다.


문제는 올해 협약 체결 전 마지막 회의가 다름 아닌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는 점이다. 오는 11월 우리나라 부산에서 열리는 최종 협상. 벌써 외국에서는 '부산으로 가는 다리'라는 제목의 협약 자료를 발간하기도 한다는데, 과연 구속력 있는 플라스틱 협약의 의장국으로서 대한민국의 플라스틱 정책은 어디로 가는 걸까?

7일 <오늘의 기후>에서는 김은정 소비자기후행동대표와 플라스틱 재활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페트병 수거율 85%인데 재활용률 10%에 불과"

- 플라스틱 페트병도 라벨 떼고 잘 씻어서 버리면 다 재활용되는 것 아닌가?
"현재 페트병의 분류 배출 방법은 잘 알다시피 씻고 말리고 라벨을 떼서 투명한 것과 색깔 있는 것을 따로 분류 배출해야 해요. 방송 듣는 청취자들께서는 플라스틱을 배출할 때 투명 패트병을 따로 잘 분류 배출하고 있으실 것 같은데요.

원래 분리 배출된 투명 페트병만 식품 용기 재활용이 가능해요. 투명 페트병을 페트병 등 식품 용기로 재활용하는 '보틀 투 보틀'(Bottle to Bottle)은 '가장 바람직한 재활용'으로 꼽히죠. 하지만 우리나라 아파트 등에서 분리 배출돼 별도로 수거된 투명 페트병이 전체 투명 페트병 출고량의 7.5%에 그쳐서 투명 페트병을 재활용해 식품 용기를 만들고 싶어도 여건이 안 된다는 업체들 불만이 많았어요.

2023년 환경단체 그린피스 조사에 따르면 국내 페트병 수거율은 85%에 달하지만, 실제 재활용률은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이는 적절한 방식으로 공병 수거가 이루어지지 못해, 분류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죠. '투명 페트병 별도 분리배출제'가 의무가 된 이후로도 수거함이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거나, 플라스틱 수거에 대한 정확한 방법을 모른다는 시민 의견이 있었어요.

매년 폐페트병이 30만 톤씩 쏟아져 나오는데도 대량 생산을 할 수 없는 것도 문제예요. 정부 인증을 받은 생산 시설이 국내에 달랑 1곳에 불과하다 보니 재생 원료인 펠릿의 가격은 1kg당 1880~2000원에 이릅니다. 신재 페트 레진이 1kg당 1450~1550원 하는 것과 비교하면 너무 비싸요. 친환경 이니셔티브를 내세운 극소수의 기업만 재생 원료 펠릿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국내 재활용 시장은 거의 불모지라는 지적입니다."

- 청취자 질문이 들어왔다. '소주병을 공병으로 갖다주면 돈 주는 것처럼 페트병도 그렇게 재사용 촉진하면 안되나요?'
"독일에선 실제로 페트병도 재사용이 가능한 형태로 회수하면 공병처럼 돈을 준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 유럽에서는 내년부터 페트병 원료의 25%를 재활용 소재로 의무화 한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각국은 플라스틱 식품 용기 제조 시 재생 원료 사용률을 늘려가는 추세예요.
유럽연합(EU)은 페트병에 대해선 2025년까지 25% 이상, 모든 플라스틱 용기에 대해선 2030년까지 30% 이상 재생 원료를 사용해 생산하도록 의무화하기로 했습니다. 캐나다는 2030년까지 모든 플라스틱 포장의 50% 이상을 재생 원료로 만들도록 한다는 목표를 수립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재작년부터 음료병을 만들 때 재생 원료를 반드시 쓰게 했으며 2030년까지 재생 원료 사용률 50%를 달성하도록 했어요.

우리도 플라스틱 페트(PET) 생산 시 재생 원료 사용률이 2030년까지 30% 이상 되도록 사용 목표를 부여할 계획이에요. 그러나 계획과 달리 일단 투명 페트병의 수거율이 낮고 다른 플라스틱과 함께 버려진 페트는 보틀 투 보틀로 활용되지 않아서 다시 재활용할 수가 없어요.

환경부의 '재활용 지침'에 따르면 현재 국내 플라스틱 재생 원료 목표 비중은 3%예요. 이마저도 페트 1만 톤 이상을 생산하는 원료기업 2곳에만 부과되는 권고일 뿐 제제가 없어요.

2022년 기준 수거된 폐페트병의 70%는 노끈이나 솜 등 중저급 단섬유로 재활용됐고 26%는 과일을 담는 시트류나 의류에 쓰이는 고급 장섬유로 재활용됐어요. 문제는 이렇게 재활용된 폐페트병은 1회 이상 재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순환 경제로 볼 수 없다는 거죠. 투명 페트병 분리 배출 제도가 시행된 이유는 순환 경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인데 기껏 분리 수거한 페트병이 고품질 재생 원료가 아닌 다운그레이드된 원료로 사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에요. 환경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행령을 개정한다고 하는데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의장국인 한국 정부의 '조용한 입장' 아쉽다"

- 올해 11월에 열린다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최종회의(부산 회의)는 구체적으로 어떤 성격의 회의인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플라스틱 오염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 사회가 구속력 있게 체결하려고 하는 협약이에요. 유엔환경계획(UNEP)이 이번 협상 회의에 제출한 '플라스틱 오염 과학' 최신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00년 2억3400만t에서 10년 만인 2019년 4억 6000만t으로 두 배 증가했대요. 이에 따라 2019년 한 해에만 3억 6000만 톤가량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생했지만 이 가운데 재활용된 것은 9%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나머지 90% 이상이 환경 중에 버려지거나 매립 또는 소각 처리되며 토양과 대기를 오염시킨다는 거죠.

이렇게 버려진 플라스틱이 남극의 얼음 속과 심해저까지 없는 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지구를 뒤덮으며 생물의 생명은 물론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한다는 과학적 증거들이 쌓여 가고 있어요. 게다가 플라스틱 생산과 폐기 등의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는 것도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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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하게 폐기된 플라스틱 페트병 ⓒ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그래서 플라스틱 오염 종식 국제협약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 간 협상위원회는 2022년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 5.2)에서 국제협약 성안(成案) 추진 결의로 총 5차례의 회의를 통해 2024년(올해)까지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 성안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국제 사회는 재작년 2월에 160여 나라가 플라스틱 협약을 만들기로 합의했고, 이를 위해 올해까지 5차례 정부 간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어요. 마지막 정부 간 협상이 11월 부산에서 열릴 예정으로 이때 협약안이 마련되도록 개최국으로서 노력을 다한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방침이에요.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2040년에는 플라스틱 생산량이 7억 톤을 넘어서고, 2060년에는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이 10억 톤을 돌파해 플라스틱에 의한 위협이 더욱 가중될 우려가 크죠. 2022년 3월 제5차 유엔환경총회에 참석한 160여 나라가 플라스틱의 전체 수명 주기를 포괄하는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2024년까지 협약문을 마련하기로 결의한 것은 바로 이런 상황 인식을 공유한 결과로 볼 수 있어요."

- 협상이 지지부진하다던데 쟁점은?
"대다수 국가가 플라스틱 오염 종식이라는 공동 목표에는 공감했지만, 오타와 협상회의 이전까지 세 차례 협상 회의에서 구체적인 목표 연도 설정을 비롯해 기술·제도적 쟁점 모두에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어요.

참여국들은 ▲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인 1차 플라스틱 폴리머의 생산 감축 ▲ 규제 대상 플라스틱과 규제 수준 ▲ 재활용 기법을 포함한 폐기물 관리 등을 어떻게 할지를 비롯해 ▲ 각 국가의 협약 이행에 대한 평가 형식과 구속력 ▲ 협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 조달 문제 등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어요. 특히 1차 플라스틱인 폴리머 생산량 감축을 두고도 원료를 공급하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의 산유국과 주요 생산국인 중국 등은 반대가 완강하죠. 생산을 감축하지 않고 생산된 이후 관리를 통해서도 오염 종식이 가능하다는 주장이에요.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제4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가 지난달 30일 유의미한 진전 없이 종료됐어요. 170여 국가들이 당초 예정된 폐막일(29일)을 하루 넘겨 마라톤 회의를 했지만 이견만을 확인한 채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죠."

- 그러면 5차 부산 협상에 더 큰 부담이 실리는데 우리 정부 역할이 큰 거 아닌가?
"실제로 이 협상이 우리 경제에도 영향을 미쳐요. 한국은 중국, EU, 미국, 독일에 이어 4위의 플라스틱 생산 대국이에요.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의 4.1%를 담당하고 있죠. 이번 협약에 따라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플라스틱 협약 우호국으로 가입하면서 진행되었던 1회용품, 플라스틱 빨대 규제 등의 환경 정책들을 폐지하거나 유예하는 등 우호국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요. 그동안 우리나라는 선진국 그룹에 속하면서도 석유화학 강국으로서 플라스틱 제품을 많이 생산, 소비하는 이중적인 처지에 놓여있었죠. 이 때문에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 억제와 관련해 별다른 찬반 의견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어요.

환경부 관계자는 '회기 간 작업을 통해 플라스틱이 인체나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국제적 차원의 금지 물질 목록을 만들고 강제할 수 있을지도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지만, 막상 회의가 진행되면서 한국이 어떤 발언을 하고, 어떤 주장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죠. 마지막 5차 회의가 부산에서 진행되는 만큼 의장국인 한국 정부의 '조용한 입장'이 아쉽습니다."

끝으로 김은정 대표는 분류 배출을 잘하고 계실 기후 프로그램 청취자들께 어려운 말을 했다.

"소비자들이 분류 배출을 잘한다고 해서 재활용이 잘되고 고품질의 재생 원료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우선은 플라스틱의 생산량을 줄이는 것이고 만들 때부터 재활용이 잘 되도록 플라스틱의 종류를 규제하고 단순하게 만들어야 해요.

식품 용기에 쓸 수 있는 폐페트병의 제조 시설과 품질 기준을 통과한 재생 원료 생산 공장은 단 1곳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제로웨이스트 같은 자발적 시민운동만으로는 막을 수 없죠. 시민들의 실천 행동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제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재 또한 만들어 놓고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죠. 선거 때 많은 후보들이 환경 문제에 대한 정책을 내놓았지만 그때 사용한 현수막이 1700톤, 선거운동복이 1만 3000벌이었다고 해요. 사실 그들 대부분은 환경에 관심이 없어요.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면 법과 정책을 쏟아내고 관심이 사그라들면 슬쩍 없던 일로 만들기 일쑤죠. 우리가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바꾸고 지킬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 신유리, '한국인 1인당 플라스틱 배출량 세계 3위…연간 88㎏' (연합뉴스, 2021.12.2)
- 양소연, '소주도 페트병이 대세?‥플라스틱 감축은 언제' (MBC, 2024.5.2)
덧붙이는 글 * '오늘의 기후'는 지상파 최초의 주7일 '기후' 방송으로 FM 99.9 MHz OBS 라디오를 통해 오후 5시부터 7시30분까지 2시간 30분 분량으로 방송되고 있습니다. 을 통해서도 시청,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 #플라스틱 #오늘의기후 #김은정 #소비자기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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