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태어날 아이 위해, 천막농성 시작했어요"

티브로드 전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연

등록 2016.02.17 10:33수정 2016.02.1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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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 계약 종료 통보를) 받고 보니 이게 해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협상 자체도 없고 말 그대로 끝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난 1월 26일 티브로드 전주협력센터 비정규직 노동자 정금동(33세)씨는 하청업체 지성통신으로부터 근로계약 종료 통보를 받았다. 설 명절을 두 주 앞두고 1월 29일까지 출근하라는 사실상 해고통보를 받은 것. 티브로드가 신규업체로 구이앤금우통신(구이통신)을 내정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구이통신은 비정규직 노동자 전원을 신규 채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근로기준법 제26조는 적어도 해고의 예고는 30일 전에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법조차 무시되는 곳이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터이다. 수년을 함께 일해 온 동료 56명은 26일 정금동씨와 마찬가지로 근로 계약 종료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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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세 아이의 아빠가 되는 정금동(33)씨는 희망연대노조 티브로드비정규직지부 전주지회장이다. 하루 하루 이곳에서 일을 하다보니 티브로드는 우리 회사가 됐고 어느새 전부가 됐다고 말하는 그는 미래를 지키기 위해 투쟁을 하고 있다. ⓒ 문주현


해고 통보를 받던 날, 그는 동료들과 위로가 될까 쓰디 쓴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지만, 가족을 생각하니 위안이 될 수 없었다.

"집에 들어가 보니 첫째(다섯 살)와 둘째(세 살)가 아빠하고 품에 안기는데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아이들을 안고 가족들을 생각하는데 정말 눈물이 나왔어요."

곧 있으면 셋째 아이 출산을 앞둔 부인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다른 회사를 알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를 설득했다. 그런 그녀에게 "아직 시간이 있으니 좀 더 지켜보자"라는 말을 건넸다.

2년 전, 130만 원의 박봉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바꿔보고자 노조를 만들고 파업도 경험한 그였다. 지켜보자는 의미는 다시 한 번 머리띠를 묶어보겠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대로 쫓겨나지 않겠다는 자존심이기도 했다. 그러나 부인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이 있다. 그 마음을 기자에게 털어놨다.


"가족도 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취업이 쉬운 것도 아니죠. 이제 갈 곳도 없어요. 아내한테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지만, 이곳이 제게는 벼랑이고 희망입니다."

"박봉으로 시작한 직업, 겨우 미래를 그릴 수 있었는데"

티브로드 가입 고객들의 방송과 인터넷 등 설치와 A/S, 철거, 공사 등을 도맡아 하는 노동자들은 비정규 하청노동자들이다. 정금동씨는 2010년 지성통신으로 입사했다.

그는 지성통신 직원이 아니라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1년 단위로 계약을 맺었다. 4대 보험도 개인사업자 신분이었기에 가입하지 못했다. 식사는 회사 근처 식당에서만 먹어야 했다. 멀리 완주에서 작업을 하고 있더라도 밥을 먹기 위해서는 수십 분이 걸리는 회사까지 다시 와야 했다. 이 점심도 그나마 일이 없어야 가능했다. 여름에는 기름 값을 아끼기 위해 차 안에서 에어컨을 켜지도 못했다. 겨울도 마찬가지였다.

"예전(2013년 이전)에는 대부분 비슷한 시간대에 2~3곳의 일이 동시에 잡혀요. 밥도 못 먹고 오후 7시~8시까지 일을 하죠. 그런데도 영업을 하지 못하면 들어올 수도 없었어요. 노조를 만든 계기가 됐죠."

설치 및 A/S 처리도 정신없는데, 고객에게 결합 상품을 유도하는 영업도 해야했다. 고장 민원으로 화가 난 고객에게 영업을 하는 것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욕설을 듣는 것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곳이 회사 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노조는 이런 분위기에서 만들어졌다. 고객을 상대하는 일도 만만치 않지만 영업 실적이 떨어져서 생기는 불이익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른바 '기술지표'는 그런 불이익의 근거가 된다. 개별 노동자들와 협력센터에 대한 평가와 같은 것이다. A/S 재발생 빈도와 당일 설치율 등 7~8개의 항목을 두어 노동자들과 협력센터를 평가했다.

티브로드는 2015년 최하위 평가를 받은 4개 협력업체와 계약을 맺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전주센터는 그 중 하나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일반 해고의 대상인 저성과자가 바로 그들이다. 노동계로부터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는 저성과자 해고도 나름의 절차가 있다. 그러나 정씨에 대한 해고 과정에서 그 절차를 찾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 현장과는 거리가 먼 평가들이에요. 지역마다 환경도 다른데 전혀 반영이 안 되어 있어요. 어떤 고객은 만족도 평가에서 회사가 그냥 싫다거나 귀찮아서 최하점을 줬다는 말도 해요. 그렇게 점수를 못 받으면 평가는 최악이죠. 민원을 적게 받기 위해 명함을 보통 주고 직접 제게 연락을 주라고 해요. 그러면 업무량은 엄청 늘게 되죠. 현장의 상황이 전혀 고려가 되지 않은 평가라고 할 수 있죠."

"겉으로는 웃지만, 다들 잠도 못 자요"

2월 12일 오후 전주시 중화산동에 위치한 전주 티브로드빌딩 4층. 해고를 앞둔 노동자들이 티브로드 관계자 면담을 요구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았다. 벨을 눌러 안쪽에서 허락을 해야 문이 열리는 사무실이다. 노동자들이 벨을 눌러보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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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로드 작업복을 입고 일을 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해고가 코 앞인 상황에서 티브로드의 문을 두들겨 보지만 맞이하는 이 없다. ⓒ 문주현


티브로드 이전 유선방송 시절부터 설치 기사 일을 했다는 정상조(44세, 18년 근무)씨는 문 앞에 주저앉았다. 앉자마자 울려대는 핸드폰. 받아보니 티브로드 고객이다.

"고객님! 저희가 어느 날 갑자기 다 해고가 됐어요. TV가 안 나오는 문제는 직접 가야하는데 지금 항의하러 와서 갈 수가 없네요. 콜센터에 전화를 해 보세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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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8년차 베테랑 노동자. 정상조(44)씨. 해고를 직접 당하니 억장이 무너진다고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저성과자로 몰려 직장을 잃어버리게 생긴 지금도 그의 휴대폰으로 고객들의 민원 전화는 끊이지 않는다. ⓒ 문주현


콜센터와도 통화가 잘 안 되는 고객인 모양이다. 그 후로 2번 정도 더 전화가 왔다. 고객의 전화를 받으니 마음이 울컥한다.

"98년에 입사해서 결혼하고 청춘을 다 보냈어요. 20년 가까이 일했는데 하루 아침에 나가라고 하니 정말 배반감이 드네요. 동료들은 겉으로는 웃지만 담이 걸려 병원 다니는 친구도 있어요."

사실 고용불안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상이었다. 1년마다 재계약을 맺어야 했고, 한때는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일을 해야 하기도 했다. 업체가 바뀌면 잘리는 것이 아닌가 불안에 떨어야 했다. 2013년 노조를 만든 것은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 파업을 했고, 서울 본사 앞에서 농성을 했다.

2013년 10월에는 티브로드와 협력업체, 노조 간의 상생 협약을 맺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박봉의 임금이 인상됐고, 노조 활동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무엇보다 업체 변경 사유가 발생하면 신규 업체가 조합원의 고용을 승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도 얻어냈다. 그리고 개인사업자 등의 특수 형태의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정규직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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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승계 쟁취를 위해 차디찬 아스팔트에서 투쟁을 시작했다. ⓒ 문주현


티브로드 "고용승계 관련 부분은 협력사의 인사경영권 간섭"

그 노력을 과연 티브로드는 하고 있는 것일까? 16일 티브로드 홍보팀 관계자는 "협력사에 대한 평가를 하는데, 전주는 실적이 저조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문제점이 있어 위탁계약 해지 통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고용승계와 관련한 부분은 협력사의 인사 경영권을 간섭하는 것으로 티브로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적극 권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금동씨는 티브로드의 이런 해명에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신규 업체는 구두상으로만 경력자를 인정할 수 있다고 했지, 모집 공고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어요. 소문으로는 노조원들은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신규 업체가 새로운 일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장과 업체명만 바뀌는 것인데 당연히 승계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요?  쓰다 버리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목숨인가요?"

2월 15일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차디찬 거리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유난히도 추운 날이었다. 저녁에는 눈이 내렸다. 2년 전 처음 노조를 만들고 경험한 파업, 당시 서울까지 상경하여 티브로드 본사에서 진행한 농성도 기약이 없었다. 밤에는 모기와 싸우고, 낮에는 생존을 위해 싸웠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을 얻었다.

"미래를 그리기가 쉽지 않은 직업인데, 노조가 생기고 파업을 하면서 미래가 그나마 보였죠."

이번 농성은 정말 그나마 보였던 미래를 움켜쥐기 위한 싸움이다. 지난 시절 파업으로 정금동씨는 1000만 원의 빚을 졌다. 2년 만에 갚고, 5월에 태어날 아기만을 기다리던 그였다. 5월에도 그는 티브로드 작업복을 입고 아기를 맞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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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승계 쟁취를 위해 시작한 첫 농성. 눈이 내렸다. ⓒ 문주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티브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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