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끈 '정치 1번지'... 10대 1 중 웃을자는?

[총선격전지-서울종로] '서울 축소판'에서 홍사덕-정세균 박빙 접전

등록 2012.03.26 20:28수정 2012.03.26 22:54
0
원고료로 응원
a

제19대 총선 서울 종로에 출마한 기호1번 홍사덕 새누리당 후보와 기호2번 정세균 민주통합당 후보가 24일 종로구 유권자들을 만나던 중 취재진을 향해 손가락으로 자신의 기호를 펴보이고 있다. ⓒ 안홍기/권우성


19대 국회의원 총선거 후보 등록자가 가장 많은 곳은?

10명이 등록해 무려 1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서울 종로다. '정치 1번지'라는 상징성 때문에 원내 정당은 물론, 원외의 군소정당도 가능하면 후보를 내려다 보니, 진보-보수를 따지지 않고 이렇게 많은 후보들이 등록했다.

19대 총선 후보 등록자
홍사덕 새누리당, 정세균 민주통합당, 김성은 자유선진당, 김준수 국민의 힘, 홍성훈 국민행복당, 정재복 불교정도화합통일연합당, 정흥진 정통민주당, 최백순 진보신당, 류승구 무소속, 서맹종 무소속

현재는 국회가 서울 여의도에 있어 '정치 1번지'란 말이 실감이 안 날 수도 있지만, 제헌 국회가 세종로 중앙청에서 열렸다. 여의도 이전엔 지금의 중구 태평로 서울시의회 건물이 국회로 쓰였고 지역구는 종로와 중구가 합쳐져 있었다. 윤보선·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곳이기도 하니 종로가 정치 1번지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강남 같은 평창동, 서민 밀집 창신동... 종로는 서울의 축소판 

그러나 종로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왜 정치 1번지인지 더욱 실감이 난다. 청운효자동, 사직동, 삼청동, 부암동, 평창동, 무악동, 교남동, 가회동, 종로1·2·3·4가동, 종로5·6가동, 이화동, 혜화동, 명륜3가동, 창신1동, 창신2동, 창신3동, 숭인1동, 숭인2동 등 투·개표 진행 단위 동이 18개나 되는데 각 동의 투표성향에 차이가 뚜렷하다. 

박원순 53.4% 대 나경원 46.2%의 결과가 나온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개표 결과를 보면, 종로구 전체로는 박원순 54% 대 나경원 45.6%의 결과지만, 4개의 동에선 반대 결과가 나왔다. 박원순 대 나경원 순으로 득표율을 보면, 평창동은 41.1% - 58.3%, 사직동은 42.8% - 56.6%, 종로1·2·3·4가동은 46.5% - 52.9%, 삼청동은 48.6% - 50.7%다.


나머지 14개 동은 박원순 후보에 표를 많이 줬는데, 창신2동의 경우엔 박 66% - 나 32.8%, 명륜3가동은 박 66.2% - 나 32.6%로 박원순 후보에게 두 배 이상의 표를 안겨줬다. 평창동을 중심으로 한 종로구 북서쪽은 보수성향, 창신동을 중심으로 한 동쪽은 진보성향 투표를 한 양상은 2010년 6·2지방선거에서도, 2008년 18대 총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구 안에서 이토록 투표 성향이 갈리는 것은 각 동별 소득 수준과 세대구성 특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고급빌라들이 밀집했고 노년층이 많이 사는 부촌인 평창동은 보수성향을, 낙산공원 비탈 아래 서민주거지역이 펼쳐진 창신동과 대학생들이 많이 사는 명륜3가동은 진보성향을 띠는 것.

투표율에도 지역별 특성이 있는데, 18대 총선,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에선 진보성향 투표 지역에선 종로구 평균보다 낮은 투표율을 보인 반면, 보수성향 투표 지역에선 평균을 웃도는 투표율을 보여왔다.

투표성향과 투표율로 보면, 최근 두 번의 서울시장 선거 결과에서 집값이 비싸고 소득수준이 높은 강남3구가 보수 정당에 몰표를 주면서 높은 투표율을 보여온 양상과 흡사하다. 종로가 '정치 1번지'의 상징을 갖는 건, 정치 중심지로서의 역사와 전통 뿐 아니라 이렇게 서울시의 축소판을 보는 듯한 투표양상 때문이 아닐까.

"평창동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해" - "박근혜가 맡아도 새누리는 한나라"

4.11 총선 격전지 여론조사(종로구) ⓒ 고정미


정치 1번지답게 종로구 출마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도 많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초박빙, 결과를 알 수 없는 선거'다. 홍사덕 새누리당 후보와 정세균 민주통합당 후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만 한겨레·KSOI조사를 제외하면 모두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 그렇지만, 2002년 재선거에서부터 3번이나 박진 후보를 뽑아준 종로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선거 초반부터 초박빙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도 새누리당엔 위험신호다.

새누리당에 힘겨운 싸움이 될 거라는 이번 총선, 특히 서울지역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종로구 최후 보루는 평창동이다. 종로구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갖고 있으면서 투표율도 항상 높고 보수정당에 표를 몰아주는 곳이다. 정세균 후보는 열세를 만회해야 하고, 홍사덕 후보는 이 곳을 기반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러나 24일 둘러본 평창동에선 4·11 총선 분위기는 감지할 수 없었다. 서울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당 공약 현수막은 고급 빌라들이 들어선 언덕길은 물론, 대로변에서도 찾기가 어려웠다. 40대 남자 부동산 중개업자는 "주민들이 선거 관련해서 이야기하는 걸 아직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6·25 참전용사로 30년 이상 평창동에 살고 있는 80대 노신사는 "여기 사람들은 그냥 제각각 살지, 모여서 얘기하는 것 자체를 잘 안 한다. 그러니 선거 얘길 물어도 별로 듣지 못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노신사는 이어 "이 동네 사람들이 주로 공무원이고 사업가들이니까 언제나 투표가 (보수정당쪽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며 "사람들이 선거 얘길 안 하지만 기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자기가 알아서들 한나라당에 투표를 한다"고 말했다. 노신사는 "심판론 같은 게 먹히지 않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투표 성향에서 평창동과 대칭관계에 있는 곳은 창신동과 숭인동 일대다. 숭인동엔 이제 아파트가 제법 들어섰지만, 가파른 언덕에 있는 단독과 연립주택이 밀집한 창신동은 아직 80년대 풍경을 간직한 곳이 많다.

특히 이 동네엔 봉제공장 같은 소규모 공장이 꽤 있다. 작은 가게를 공장으로 개조해 동네 사람들 몇 명이 모여 남대문이나 동대문에 납품할 제품을 만든다. 이런 공장을 운영하는 40대 최 아무개 사장은 "이 동네는 일단 민주당편이다. 정세균 후보 왔을 때 '이 동네는 걱정마시라'고 했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서민 경제가 좋은지 나쁜지는 우리가 제일 잘 안다. MB정권 들어서 이 동네 사람들 잘 된 거 한 번도 못 봤다"며 "박근혜가 대표라도 새누리당은 한나라당이다. 이번에 세게 심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덕을 내려와 지하철 창신역 인근에서 만난 한 밥집 사장은 새누리당을 찍겠다고 다짐했다. 60대 여사장은 "요새 경기가 참으로 안 좋지마는… 이 동네는 안 그래도 호남 사람들이 많은데, 민주당에서 호남 사람(정세균 후보는 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에서 4선을 했음)이 와서 끼리끼리 뭉치는 게 더한 것 같다"고 푸념했다.

박진과 같이 뛰는 홍사덕 "박근혜에 MB 갖다 붙이는데 잘 안 붙어"

a

제19대 총선 서울 종로에 출마한 기호1번 홍사덕 새누리당 후보가 24일 오후 종로구 창신시장에서 박진 의원과 함께 유권자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안홍기


그러나 다른 지역 인사가 후보가 된 건 홍사덕 후보도 마찬가지다. 대구 서구 국회의원인 홍 후보는 지난 5일에야 당의 전략공천이 발표돼 부랴부랴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6선으로 그동안 경북 영주·영풍·영양·봉화, 서울 강남을, 경기 고양일산갑, 경기 광주, 대구 서구 등 지역구를 옮겨 다니면서도 당선됐던 홍 후보지만 이렇게 갑작스런 '출마 명령'으로 임하는 선거가 부담스럽지 않을 리 없다.

24일 오후 동대문역을 출발해 창신시장 일대를 다니며 지지를 호소한 홍 후보는 '유권자들이 모조리 생소한 이들인데 어떻게 만회할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특별한 방법이 없다. 정성껏, 지성으로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며 "죽자사자 만나야 한다"고 답했다.

다만, 홍 후보의 곁에는 이 지역에서 3선을 한 박진 의원이 붙어 다니며 "이번에 정말 훌륭한 후보가 오셨으니까 꼭 찍어주세요"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후보 어깨띠는 홍 후보가 두르고 있고, 유권자들이 반갑게 인사하는 건 박 의원인 다소 어색한 상황이 펼쳐졌다. 유권자가 '이번엔 안 나와요?'라고 묻고 박 의원이 멋쩍게 "전 이제 안 나와요"라며 웃는 상황이 수차례 반복됐다.

박 의원이 돕고 있는 상황에 대해 홍 후보는 "종로에 늦게 뛰어들어서 어려운 점이 많지만 박진 의원이 자기 선거보다 더 열심히 뛰어줘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고 말했다.

홍 후보는 이번 종로 선거의 승패가 야당이 내세우는 정권심판론을 제대로 차단하느냐에 갈릴 것으로 봤다. 홍 후보는 "총선은 다음 대통령을 준비하는 박근혜 대표에 힘을 실어줄 것이냐 말 것이냐를 유권자들이 결정하는 것"이라며 "야당이 박근혜 대표가 바꿔놓은 새누리당에 MB심판론을 갖다 붙이는데 잘 붙지 않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홍 후보는 이어 "박 대표가 (MB정권) 4년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보냈는가. 야당보다 더 처절하게 대통령과 싸운 걸 유권자들이 다 기억하는데 MB심판론이 먹혀들 리가 없다"며 "국정실패 세력인 친노세력이 부활하는 걸 막는 것, 여기에 이번 총선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균이 아세요?" 싹싹한 정세균 "결국은 정권심판론"

a

제19대 총선 서울 종로에 출마한 기호2번 정세균 민주통합당 후보가 24일 오전 종로구 창신3동 소규모 봉제공장을 찾아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권우성


그러나 정세균 후보는 "언론에서 보기엔 정권심판론이 작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바닥을 다니며 얘길 들어보면 사람들 얘기가 결국은 정권심판론"이라며 "전국 단위 선거는 심판론이 기본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천안함 사건으로 북풍을 만들려다 심판받은 예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정 후보는 "그동안 한나라당이 다수 여당을 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모습을 얼마나 많이 봐왔느냐"며 "의회권력의 교체를 이루는 게 급선무라는 게 내 생각이고, 유권자들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창신3동 골목길을 누비며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정 후보도 필사적이었다. 길에 보이는 이가 있으면 무조건 손을 잡고 말을 붙이는데, 20여 m 앞에 가는 이를 쪼르르 쫓아가 말을 거는 적극성도 보였다. 노인들이 모인 곳에 가서는 무릎을 꿇고 앉아 "저, 세균이 아세요?" "기호 2번 세균이 꼭 도와주세요"라며 마치 동네 청년 같은 싹싹함을 내세웠다.

한 40대 남성은 "비례대표 공천을 잘못했기 때문에 민주당 안 찍는다"고 악수도 거부했는데, 정 후보는 "그 얘길 좀 들어보자"며 한참을 듣더니 결국 이 남성의 손을 잡았고 미소를 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주민들도 정 후보가 동네를 다니는 모습을 이미 봤다는 반응이다. 정 후보는 "나는 일찌감치 호남 기득권을 내려놓고 어려운 선거에 도전하기로 했고, 6개월 동안 활동하면서 나름 스킨십을 많이 해왔다"며 "이번 선거는 투표 하러 얼마나 많이 가느냐가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종로 #총선 #격전지 #홍사덕 #정세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오마이뉴스에서 인포그래픽 뉴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종영 '수사반장 1958'... 청년층이 호평한 이유
  2. 2 '초보 노인'이 실버아파트에서 경험한 신세계
  3. 3 '동원된' 아이들 데리고 5.18기념식 참가... 인솔 교사의 분노
  4. 4 "개발도상국 대통령 기념사인가"... 윤 대통령 5·18기념사, 쏟아지는 혹평
  5. 5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