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로비' 태광그룹에 또 면죄부 줄까

"청와대-방통위 로비 없었다더니"... 검찰 수사에 '반신반의'

등록 2010.10.20 09:37수정 2010.10.2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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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설치된 조형물 '진실의 눈'에 비친 청사 ⓒ 유성호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설치된 조형물 '진실의 눈'에 비친 청사 모습. ⓒ 유성호

검찰이 태광그룹(회장 이호진) 비자금 수사에 나서면서 그동안 태광 주변을 맴돌던 온갖 의혹들이 굴비 엮듯 튀어나오고 있다.

 

1조 원대로 추정되는 비자금을 시작으로 미성년 자녀 재산 편법 상속 및 증여 의혹, 2006년 쌍용화재(현 흥국화재) 인수 자격 문제와 2009년 태광 계열사 티브로드의 큐릭스 인수 논란 등을 거쳐 청와대, 국세청, 금감원, 방통위 등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실제 최근 검찰이 태광에서 로비를 벌인 정관계 인사 100여 명 명단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관계 기관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태광그룹 비자금 조성이나 정관계 로비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검찰에서 유야무야 넘어간 경우가 많아 이번에도 정작 '몸통'은 안 건드리고 '스폰서 검사' 의혹 등에 대한 국면 타개용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낳고 있다. 

 

태광그룹 '성공한 로비' 실체, 이번엔 밝혀지나

 

그 첫 화살이 향한 곳은 방송통신위원회(옛 방송위원회)였다. 태광 비자금 문제를 검찰에 제보한 박윤배 서울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지난 15일 언론사 기자들을 만나 "(큐릭스홀딩스 인수를 위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 로비는 2006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성공한 기획 로비"라면서 "방송법 시행령 개정은 태광을 위한 맞춤형이고 시행령 개정 당사자는 방통위"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방송 사업을 꾸준히 확대해온 태광그룹은 현재 국내 최대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티브로드를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전국 77개 방송 권역 중 15개를 차지한 티브로드가 7개 권역을 가진 경쟁 MSO 큐릭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방통위를 상대로 조직적 로비를 벌인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 문제는 사실 새삼스러울 게 없다. 참여정부 시절 방송위 직원 로비 의혹으로 청와대가 검찰에 티브로드 내사를 요청한 사실이 최근 <한겨레> 보도로 밝혀졌고, 실제 지난해 3월 태광 직원이 청와대 행정관과 방통위 과장에게 성접대 로비를 벌이다 들통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티브로드의 큐릭스 인수에 물꼬를 튼 방송법 시행령 개정과 방통위 인수 승인 과정에 태광 쪽 로비가 개입됐는지 여부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티브로드 확장 물꼬' 방송위-방통위 합작?

 

실제 방통위가 지난 2008년 12월 31일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겸영 기준을 완화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하자 티브로드는 기다렸다는 듯 이듬해 1월 29일 큐릭스 지분 70%를 인수했다. 하지만 앞서 성접대 파문과 2006년 태광의 큐릭스 지분 우회 확보 문제가 연이어 터졌다.

 

당시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2006년 12월 19일 태광이 군인공제회와 화인파트너스와 옵션(주식을 매수-매도할 수 있는 권리) 계약을 맺어 큐릭스 지분 30%를 우회 확보한 것이 방송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방통위는 "옵션 계약은 직접적으로 주식을 소유한 게 아니어서 방송법상 소유 제한 범위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며 지난해 5월 18일 티브로드의 큐릭스 인수를 승인했다.

 

당시 이경자 부위원장도 "군인공제회 이사회 회의록에 '방송법에 저촉되지 않게 계약서 작성'이란 부분과 티브로드가 옵션 계약 사실을 숨긴 게 마음에 걸린다"며 추가 해명을 요구했지만 처리 시한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통과됐다.

 

지금도 방통위는 당시 티브로드의 큐릭스 인수 승인 과정은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며 자신감을 보이면서 오히려 2006년 우회 지분 확보 당시 방송위 로비 의혹에 무게를 싣고 있다. 

 

권역 규제 완화는 케이블방송업계에서 방송위 시절인 2004년 11월부터 줄기차게 건의해 왔고 지난 2008년 2월 방송위에서 전국 방송인 IPTV와의 규제 형평 차원에서 검토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넘겨 받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반면 전직 방송위 고위 인사는 19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2006년 이전부터 방송통신융합 환경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케이블방송 권역 확대를 논의해 왔지만 구체적으로 시행령을 개정한 건 방통위 들어서"라고 밝혔다.

 

이 인사는 "규제를 푸는 쪽이든 강화하는 쪽이든 정책 담당자가 신념에 따라 정책적 결정을 하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면서 "이번 사안(태광 수사)은 돈으로 로비를 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검찰, 청와대-방통위 로비 '봐주기' 의혹 벗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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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준규 검찰총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준규 검찰총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실제 이 문제는 대기업의 방송사업 소유제한 기준 완화 등과 묶여 이명박 정부 주요 국정 과제로 선정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케이블방송업계의 요구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혜택이 지배적 사업자인 티브로드에 돌아갔고 태광에서 방송위나 방통위 직원들을 상대로 조직적 로비를 벌인 정황이 드러난 이상 본격적인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태광그룹의 정관계 로비 의혹은 지금까지 끊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검찰은 솜방망이 수사로 '몸통'을 피해갔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성접대 의혹 때 대가성 여부는 밝히지 못한 채 청와대 행정관 2명을 성매매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친 곳도 현재 태광그룹 수사를 벌이고 있는 서울서부지검이었다.

 

2006년 큐릭스 지분 편법 인수 의혹도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에서 내사했으나 지난 4월 무혐의로 종결했다. 이에 최문순 의원실 관계자는 "검찰에서 참여정부와 관련성을 노리고 조사에 들어갔지만 별다른 내용이 없자 종결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오마이뉴스>에서 첫 보도한 '청와대 이메일 보도 지침' 파동으로 물러난 이성호 전 청와대 행정관은 청와대-태광그룹 유착 의혹의 중심에 있었다. 이기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아들이자 이호진 회장 외사촌인 이 전 행정관은 티브로드 팀장을 거쳐 청와대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PD저널>에선 국내 최대 MSO인 태광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엉뚱하게 종합편성채널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종편 사업자에게 낮은 번호대 채널 특혜를 공언해 왔지만 정작 그 주도권을 쥔 SO들이 줄곧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검찰의 이번 태광그룹 수사를 놓고 한화그룹 비자금 수사 물타기, '스폰서 검사' 국면 타개책 등 온갖 추측이 나돌고 있는 것도 지금까지 검찰이 태광그룹 관련 수사에서 보여준 '봐주기 의혹' 때문이다.

 

검찰은 18일 태광그룹 세무조사를 벌였던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압수수색했다. 태광그룹 비자금을 적발해 놓고도 790억 원만 추징하고 검찰 고발하지 않은 것이 '봐주기'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와중이었다. 국세청 다음으로 서울서부지검의 거침 없는 메스가 향할 곳은 다름 아닌 검찰 자신이어야 할 것이다.

2010.10.20 09:37 ⓒ 2010 OhmyNews
#태광그룹 #태광 비자금 #티브로드 #방통위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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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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