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을 우습게 봤다 큰코 다친 후보들

[총선취재 후일담-안산 상록을] 총선을 통해 보게 되는 민심

등록 2008.04.11 16:18수정 2008.04.11 16:19
0
원고료로 응원

a

임종인 의원 산책길에서 만난 유권자들과 함께 ⓒ 성하훈

▲ 임종인 의원 산책길에서 만난 유권자들과 함께 ⓒ 성하훈

 

[선거운동 취재는 운동] 3㎞ 산책로, 연달아 두 번이나 돌다

 

경쟁력 있는 후보들이 4명이나 나온 안산 상록을은 취재 과정에서 내게 '운동'을 요구했다.

 

노적봉. 지역에 있는 작은 산봉우리 이름이다. 주변으로 봉우리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나 있으며 거리는 대략 3㎞ 정도. 주말에는 산책나온 시민들이나 운동나온 지역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따라서 지역구 유권자들을 만나기는 가장 쉬운 곳이어서 후보들에게는 언제나 빠트릴 수 없는 코스.

 

그러다 보니 4명의 후보들은 빠짐없이 이곳을 찾았고, 산책로를 도는 일을 빼놓지 않았다. 덕분에 그들을 취재하면서 나 또한 줄기차게 그 산책로를 돌아야 했다. 어느 날인가는 그날 취재한 후보 두 명이 연달아 그곳을 찾는 바람에 땀 흘리며 연속으로 두 바퀴를 돌았다. 장장 6㎞!

 

한나라당 이진동 후보와 무소속 임종인 후보를 취재하던 날, 이진동 후보의 위치를 수소문하니 산책로를 돌고 있다고 했다. 반 바퀴를 쫓아가 만나보니 후보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 후보와 동행해 남은 반 바퀴를 돌며 취재를 마쳤다. 간만의 걷기 운동에 땀이 흐른다.

 

그리고 잠시 뒤 임종인 후보에게 연락이 왔다. 산책로를 돌 예정이라고 했다. 주차장이 있는 입구에서 만나자고 한다. 다시금 도는 산책코스. 두번째는 거리가 조금 더 길게 느껴졌다. 어둠이 내리 깔릴 즈음 내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오르락내리락 하며 도는 순환 코스 산책로. 취재는 내게 '운동'이었다. 

 

[임종인 의원이 간과한 민심] 소신정치, 지역민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a

마지막날 선거운동에 열중하고 있는 임종인 후보 ⓒ 성하훈

마지막날 선거운동에 열중하고 있는 임종인 후보 ⓒ 성하훈

 

'소신정치'를 고집한 정치인은 안타깝게도 결국 패배했다. 유력 네 후보 중 4등. 비정규직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고, 한미FTA나 비정규직 문제, 평택 대추리 등에서 당시 여당 의원답지 않게 소신을 폈던 임종인 의원은 그러나 끝내 지역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채 초라한 성적표만 남겼다.

 

패배의 원인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후보 측은 '무소속'으로 선거에 나온 것을 큰 이유로 꼽았다. 의정보고서나 선거공보에 "열린우리당 탈당 후 유일하게 통합민주당에 합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랑하며 소신을 강조'했지만,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는 '너무 자신감에 차있었다, 자만한 면이 있다, 유권자들을 가볍게 여긴 것 같다'는 지역민들의 지적이 더 설득력 있게 들려왔다. 현역의원으로서 낮은 득표를 한 것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선거를 며칠 앞두고, 임종인 후보를 묵시적으로 지지하는 진보진영은 이미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있었다. 김초환 전 민주노동당 안산시당 위원장의 말이다.

 

"임종인 의원이 하늘만 보고 정치한 느낌이다. 지역민들에게 깊이 다가가지 못했다. 슬로건('민주세력재건 그 새로운 중심')도 지역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다. 지지율이 답보 상태다. 여론조사가 15% 안팎으로 나오는데 더 치고 올라가지 못하고 꺾이는 것 같다. 고정 지지층 외에 더 넓히지 못하고 있다. 자기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파악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 당원들에게 이야기했고, 잘 되기 바랄 뿐이지만 솔직히 임 후보에게 큰 힘이 되지 못한다. 현재 분위기에서는 잘해야 3등 할 것 같다."

 

정작 지역민들에게는 '임종인'이라는 가치가 내세울 수 있는 힘이 약하다는 것이다. 현역의원으로서의 프리미엄도 있고 인지도 면에서는 제일 높았던 후보. 서민과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애써왔지만 결국 민심을 읽는 데는 둔했다는 것이 임 후보를 지지하는 쪽에서 내린 냉철한 평가였다. 

 

"솔직히 민주당 적자는 임종인 의원이잖아요. 민주당으로 나왔으면 공천 받았을 것이고 지금 같은 구도에서 당선이 가능할 텐데, 너무 소신만 고집하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입니다."

 

선거 운동이 막판에 접어들며 넋두리하던 민주당 시의원의 말이다. 민주당 김재목 후보나 무소속 임종인 후보 모두 당선이 어렵다고 판단한 탓인지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17대 총선 당시의 상황을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임종인 후보는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였고, 한나라당 이영해 후보와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해 무소속 출마한 홍장표 후보와 3파전을 벌였다. 탄핵 바람 속에 한나라당 성향 표가 두 후보에게 갈리며, 임종인 의원이 당선한 것이다.

 

이번에도 17대와 비슷한 구도. 한나라당은 이진동 후보를 공천했고, 공천에서 탈락한 홍장표 후보는 친박연대로 말을 갈아탔다. 그러나 이번에는 야당도 2곳으로 갈렸다. 통합민주당 김재목 후보가 출마하며 임종인 후보와 표를 나눈 것. 결과는 홍장표(32.2%), 이진동 (28.1%), 김재목(22.5%), 임종인(15.5%). 야당 성향 후보들이 하나로 모였다면 당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었다.

 

4파전으로 갔던 선거, 개인 득표력(임종인-홍장표)과 정당 득표력(김재목-이진동) 간의 대결은 개인 득표력의 승리로 끝났지만, 임종인 의원의 득표력은 4위였다. 그간의 활동에 대해 지역민들이 내려준 평가였다. 소신은 지켰다지만 지역민들의 마음을 얻는 것에는 실패한 임종인 의원.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민심은 냉혹했다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한나라당이 우습게 본 민심] 낙하산 공천,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반란

 

a

"낙하산을 막아내겠습니다" 홍장표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나눠 준 명함 ⓒ 성하훈

▲ "낙하산을 막아내겠습니다" 홍장표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나눠 준 명함 ⓒ 성하훈

친박연대 홍장표 후보의 당선에는 민심을 읽어내지 못하고 가볍게 본 한나라당의 태도도 한몫 단단히 했다.

 

공천 여론조사 결과 홍장표(48.7%)-이진동(13.7%), 여야 양자대결 구도로 가도 여유있는 당선이 예상되는 상황. 그러나 한나라당은 어떤 영문인지 지역기반이 탄탄하고 압승이 예상되는 후보보다는 정치 신인을 공천했다. 이것도 일종의 자만심. 누가 나가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듯 했다.

 

17대에 이어 홍 후보는 이번에 또다시 탈당했지만, 그를 철새라 말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18년 동안 다져온 바닥 민심은 홍장표 후보를 지역일꾼으로 인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반한나라당 성향의 주민들조차 홍 후보에게는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분위기였다. 

 

'토사구팽'당한 심정인 듯, 악에 받친 홍장표 후보가 내건 구호는 '낙하산을 막아내겠습니다!'. 명함 제일 앞에 새겨진 내용이었고, 시종일관 그의 표어였다. 그의 칼끝은 오직 이진동 후보만 겨누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선거운동에 열성을 다한 그를 기억하는 지역민들은 홍장표 후보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반응이었다.

 

한나라당 이진동 후보 측은 이런 홍 후보를 겨냥해 "우린 네거티브를 안 하며 정책 인물 선거를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비방 음해 흑색 선전을 하지 맙시다"라는 내용을 홈페이지에 올리며 대응했다. 홍 후보측의 공격적 선거운동에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홍장표 후보는 물론 당선이 최선의 목표였지만, 그것이 안될 경우 차선은 이진동 후보의 당선 저지였다. 왜냐하면 그렇게라도 해야 공천이 잘못돼 '의석을 놓쳤다'는 주장을 할 수 있고, 다시금 입지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일 이진동 후보가 당선될 경우에는 공천불복 딱지가 붙으며 홍장표 후보의 입지가 좁아지는 셈. 그래서 홍장표 후보는 이진동 후보 공격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a

홍장표 후보의 낙하산 공천 공격에 비방 음해 흑색선전 추방으로 대응했던 이진동 후보측 ⓒ 이진동 후보 홈페이지

홍장표 후보의 낙하산 공천 공격에 비방 음해 흑색선전 추방으로 대응했던 이진동 후보측 ⓒ 이진동 후보 홈페이지

이를 알고 있다는 듯 주변의 통반장들을 비롯한 지역주민들의 '홍 후보 구하기'는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한나라당 선거운동을 지원하고 있던 지역 시의원 역시 이진동 후보를 열심히 돕고 있었지만, 홍 후보의 출마에 대한 의견을 묻자 속마음을 이렇게만 표현했다.

 

"제발 제게는 묻지 말아주세요. 솔직히 답답하고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그냥 안타깝고 갑갑하고 그렇습니다. 오죽했으면 (공천 불복하고)나왔겠어요."

 

홍 후보를 지지하는 지역 주민들 또한 대부분 한나라당과 연관을 맺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인지 이름이나 나이 등을 물으면 속 시원히 밝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제가 한나라당에서 뭘 맡고 있어서 이름이 나가면 안 되거든요. 이름은 절대 못 가르쳐 드리니까 이해해주세요. 아무튼 한나라당 공천 잘못됐어요. 낙하산 때문에 이번에도 홍장표가 피해봤는데, 번번이 이러는 건 지역민들 무시하는 거예요." (여군 출신 김OO씨)

 

선거가 끝나면 정당들은 민심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말을 되풀이 한다. 어떻게 나타날지 몰랐던 민심의 결과에 대한 정당들의 반응이겠지만, 민심을 먼저 알아볼 수는 없는 것일까?

 

각 지역별 특성이 있는 총선의 성격상 지역 민심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노력이 필요한데도, 선거전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민심을 수용하겠다는 정치권의 표현은 형식적 수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경쟁 후보 측도 차라리 한나라당 이진동 후보보다는 홍장표 후보의 당선이 잘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번 선거 결과는 민심의 반란이라고 보면 됩니다. 지역 무시하고 무조건 아무나 내려 보내면 당선될 줄 아는 정당에 보낸 따끔한 경고지요. 앞으로는 낙하산 공천하면 힘들 겁니다."

 

민주당 선거운동을 도왔다는 지역주민 조남용씨의 말이었다.

2008.04.11 16:18 ⓒ 2008 OhmyNews
#총선 #안산상록을 #이진동 #홍장표 #임종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종영 '수사반장 1958'... 청년층이 호평한 이유
  2. 2 '동원된' 아이들 데리고 5.18기념식 참가... 인솔 교사의 분노
  3. 3 '초보 노인'이 실버아파트에서 경험한 신세계
  4. 4 "개발도상국 대통령 기념사인가"... 윤 대통령 5·18기념사, 쏟아지는 혹평
  5. 5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