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유전성 거대 백악종' 환자인 이영학 씨는 25일부터 내년 1월 27일까지 전국 자전거 일주를 한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오전 8시] 캐리어 부착

25일 성탄절 오전 8시. 서울시 중랑구의 한 골목에서 홀로 분주한 사람이 있었다. '유전성 거대 백악종' 환자인 이영학(25)씨. 그는 오늘 자전거를 타고 서울을 떠날 계획이다. 자신과 똑같은 병을 앓고 있는 딸 아연이의 사연을 전국에 알리기 위해서다.

영학씨의 등 뒤엔 사이트 주소와 계좌 번호가 적혀 있다. 몸에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나온 영학씨는 자전거 뒤에 캐리어를 붙인다. 약 20kg 정도 되는 전단지 3000장을 담기 위해서다. 자전거 앞뒤로 짐가방 세 개도 올린다. 옷과 수첩, 필기구, 지도 등을 담았다. "기분이 어떻냐"고 물었더니 "떨린다"고 말한다. 이어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말을 덧붙였다.

골목 입구엔 차가 한 대 서 있다. 영학씨의 형인 이영민씨가 운전할 차다. "원래 영학이 혼자 간다고 했는데 양평 가는 길목에 터널이 하나 있더라구요. 갓길도 없는데 자전거 여행이 처음인 영학이한테 위험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터널 통과할 때까지만 막아주려구요."

영학씨만 바쁜 게 아니다. 1월 2일 방송 예정인 MBC '생방송 화제집중'팀도 영학씨를 촬영하느라 분주했다.

[오전 9시] 갑자기 펌프질

▲ 자전거 캐리어에 실린 3000장의 전단지. 20kg 무게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자전거 앞 뒤 타이어를 만져봤다. 손으로 눌러봤더니 '쑥' 들어간다. "바람이 없다"고 했더니 영학씨는 "그런가요"라며 '씩' 웃는다. 5분 뒤 나는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을 넣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이영민씨에게 말을 붙였다. "동생이 한 겨울에 자전거 여행하는 걸 말리지 않았냐"고 물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10년 전 아버지가 자신 명의로 사업을 하다 망한 일, 군대에 있을 때 빚을 절반으로 줄여주겠다는 제안이 왔지만 2만원도 안 되는 월급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일, 약 3년 간 주거지도 없이 유랑한 일, 1000원으로 남매 세 명이 살았던 일, 지금도 고스란히 그 빚을 안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들려주었다. 영민씨는 "그래도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행복하다"면서 환한 표정을 지었다.

10시가 가까워오자 동네 사람들이 다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홍보문구를 흘깃흘깃 보면서 지나간다. 전단지를 들고 가는가 하면, "언제 방송이 되냐"면서 묻기도 한다. 이웃주민들은 "한 동네에 살면서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오전 10시] 망우역 앞 12명의 라이더들

▲ 이영학 씨의 등에 달린 홍보 문구
ⓒ 오마이뉴스 김대홍
망우역 앞. 모두 12명의 라이더들이 광장 앞에 모여 있다. 한 명은 영학씨, 11명은 영학씨를 응원하기 위해 나온 자전거 동호인들이다. 동호인들은 경기도 남양주 덕소까지 약 10km 정도를 함께 달릴 계획이다. 자전거 뒤엔 깃발이 달려 있다. 문구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우리 아연이를 도와주세요'다.

그들은 영학씨를 보더니 매우 반가워하면서 한 마디씩 인사말을 건넨다. 이어 영학씨의 자전거를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한다. "신발을 가져가시네. 짐이 될 텐데.", "물통은 거꾸로 넣으세요. 그래야 덜렁거리지 않아요.", "캐리어 달고 몰아보셨죠? 의외로 회전반경이 커요.", "자전거는 이쪽으로 눕히세요. 그래야 망가지지 않아요."

그 외에도 궁금한 게 많고 전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가 보다. "숙소는 어디서?", "빨래는 찜질방에서 하시면 돼요. 자전거도 보관해줘요.", "망우리 고개 넘는 게 힘들 거예요."

일행 중 한 명이 "펑크났을 때 처리할 수 있냐"고 묻자, 영학 씨가 "아주 연습 많이 했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베테랑 라이더들은 왕초보 영학 씨가 아무래도 영 불안한가 보다.

일행 중엔 영학씨가 여행을 떠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강영원(39)씨도 있었다. 그는 영학씨가 타고 떠날 자전거와 캐리어, 짐가방 등을 구해준 장본인이다. 그는 "안 나오려고 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니 볼수록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라고.

처음에 돈만 후원하려던 그는 영학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생각이 바뀌었다. 이 사람을 도와주면 그도 남을 도와주는 일에 적극 나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는 것. 그 뒤 영학씨의 장비를 구해주기 위해 발 벗고 나섰고, 지금은 '괜찮은' 보일러가 있는 집을 마련해줄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 강영원씨는 지금 자영업을 하고 있다.

[오전 11시] 양평을 향해 출발

▲ 출발 직전 망우역 앞에 일렬로 늘어선 사람들.
ⓒ 오마이뉴스 김대홍
오전 11시가 되자 모두 망우역 광장에 일렬로 늘어섰다. 영학 씨는 "마음이 진정됐다가 떠난다 생각하니 다시 두근거린다"며 떨리는 마음을 내비쳤다. "감기는 나았냐"고 물어보니 "약을 챙겼다"면서 한 번 콜록거린다. 12명 라이더들이 "아연이 파이팅"을 외친 뒤, 영학씨부터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다행히 날씨가 좋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12.3도까지 올라갔다. 봄 날씨 같은 성탄절이다.

저녁 7시 40분. 영학씨가 양평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방금 '국밥' 한 그릇을 먹었단다. 그가 이 날 처음 한 식사다. 장거리 여행을 하기 위해선 충분한 영양분 공급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는 잘 몰랐다. 그는 "오르막이 힘들었다"고 이날 여행을 간단히 설명했다.

이날 달린 거리는 총 45.5km. 연말까지 정동진에 도착해 2~3일 정도 홍보 활동을 펼치고, 부산 쪽으로 방향을 잡을 계획이다. 정동진에서 100명, 부산에선 200명의 자전거 동호인들이 동참한다고 영학씨는 말했다.

덧붙이는 글 | 후원 계좌 : 새마을금고 0534-09-005832-7 예금주 이아연.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