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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화로 달려가는 이 시대의 노인 문제를 알기 쉽게 이해하고 생각해보기 위해 다양한 노년 관련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기자말]
*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감쪽같은 그녀> 중
  영화 <감쪽같은 그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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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마저 위협받는 아찔한 동거

독거 노인의 삶의 취약성이 심각하지만 어쩌면 혼자가 나을지도 모르는, 그런 노인 가정도 있다. 영화 <감쪽같은 그녀>가 그리는 조손가정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걷고 걷고 또 걷고, 언덕을 오르고 또 올라야 도착할 수 있는 부산의 한 오래된 집. 72세의 노인 말순(나문희 분)이 살고 있는 이 집에 어느 날 갓난아기를 등에 업은 초등 여자아이 공주(김수안 분)가 찾아온다. 그 아이의 손에 들린 건 바로 말순의 딸 효선의 유골. 알고 보니 공주와 갓난아기 진주는 집을 나가 행방을 알지 못했던 말순의 딸 효선의 아이들이었고, 효선이 세상을 떠나자 보호자가 필요했던 이들은 수소문 끝에 갑작스레 외할머니를 찾아왔던 것이다.

평소 길거리 가판에서 손수 자수를 놓은 손수건을 판매하며 근근이 살림을 이어가던 말순에게 두 명의 손녀가 더해졌으니 이들에게는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도 큰 걱정이다. 그래서 말순은 큰 손녀 공주와 마트에 가서 사은품 기저귀나 분유를 챙겨오는 등의 작당모의를 함께 한다. 그나마 다행히도 이 과정에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할머니와 손녀 간에 온정이 싹튼다.

조손가정이 이렇게 생계의 위협의 받는 것이 비단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조손가정은 대략 15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이들의 연평균 소득은 2175만 원으로 전체 가구나 다문화 가정, 장애인 가정의 평균 소득보다도 낮은 수준이다.(통계청 2015, 2023)

노인들은 일자리를 얻기 어렵고 건강이 좋지 못해 생계를 유지가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런데 돌봐야 할 손자까지 있다면 이들의 어려움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 그러나 조손가정이 겪는 어려움에 비해 그에 대한 지원책은 미비하기만 하다. 정부 차원에서 조손가정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것은 2010년 단 한 차례 뿐이고 실태 파악이 되지 않으니 그들에 대한 수요조사, 복지서비스에 대한 지원 방식 또한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단, 조부모 한 명과 손자가 사는 경우 이들은 한부모 가정으로 분류되어 이에 해당하는 지원책을 받을 수 있는데 그 예로 가계 소득에 따른 아동 수당이 지급되거나 필요할 경우 자금을 대여해주거나 통신이나 전기 요금 등을 감면해주는 등이 이에 포함된다. 하지만 조손가정의 경우 이러한 행정 지원을 잘 알지 못하는 노년층이 가장인 경우가 많아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까지 찾아가는 복지체계가 발달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그야말로 조손가정은 취약 계층인 노인과 또 다른 취약 계층인 아동이 함께 사는, 가장 취약한 가구 형태 중 하나다.

취약 계층 더하기 취약 계층
 
  영화 <감쪽같은 그녀> 중
  영화 <감쪽같은 그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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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은 어렵지만 서로 의지하며 즐겁게 생활하던 말순과 손녀들은 어느 날, 진주에게 예방접종을 맞히러 병원에 들렀다가 의사로부터 진주가 희귀병에 걸린 듯 하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그리고 진료를 받으러 도착한 대학 병원에서 갑자기 말순이 길을 잃는다. 큰 병원을 헤매다 간신히 손녀들과 다시 상봉한 말순은 이후 치매 진단을 받고 심한 좌절을 느낀다.

'저게 말이 되나?' 할 정도로 온갖 불행을 섞어 놓은 영화 전개가 너무 신파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어른도 아이도 모두 건강 문제를 겪는 것은 현실의 조손가정에서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조손가정의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세심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또래보다 발달이 느려서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질병에 걸려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겪는 일이 잦고 어른인 조부모 또한 노인성 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말순과 진주의 이야기가 단순히 영화를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것.

또한 조손가정의 아이가 건강히 잘 성장한다고 해도 그런 자신의 성장이 마냥 행복일 수만은 없다. 아이가 자람과 동시에 당연히 조부모는 점차 노쇠해질 것이며 아이들은 그런 조부모의 '어린 보호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누가 누구를 돌보는지 그 대상만 바뀔 뿐 가정의 삶이 취약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2035년이 되면 우리나라 조손가정은 35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노인도 아동도 모두 어려움을 겪는 조손가정이야말로 민과 관의 관심이 모두 높아져야 하는 대상이다. 조부모와 손자의 사랑은 애틋하고 지나고 보면 아이에게 어린 시절의 푸근한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랑이 아픔이 되지 않기 위해선 이 사회의 관심과 제도적 개선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플랫폼 alookso와 브런치스토리에도 게재됩니다.


태그:#노인, #영화, #감쪽같은그녀, #조손가정,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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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엄마가 있었다> 작가. 문화, 육아, 교육 분야의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결혼 후 힘든 육아와 부모의 질병을 겪으며 돌봄과 나이듦에 관심 갖고 사회복지를 공부한다. 소중한 일상, 인생, 나이듦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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