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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촌스러웠다. 출신 지역을 묻는 질문에, "서울이요"라는 대답을 듣고는 속으로 '아니, 꼭 가보고 싶은데 말고, 태어난 곳이 어디냐고?'라고 되묻고 싶었다. 내가 알기로 서울은,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루고, 세련과 기품이 넘치는 사람들이 거리를 당당하게 활보하는 그런 도시다. 저녁 6시가 되면 전기가 끊기고, 하루 한 번 버스가 다니는 그런 산골에서 방금 상경한 듯한 분위기의 소녀가 사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그 의심쩍은 첫 만남 이후, 십 년이 흘렀다. 서울에도 변두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내게 일깨워 준 곱슬머리 그 소녀는 예상대로 나의 아내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이 둘을 낳아주고, 든든한 동행이 되어 세월 속으로 함께 걸어가고 있다.

이렇게 끝나면 읽을거리가 못 된다. 그 촌스러움 충만한 서울 변두리 소녀가 어떻게 나의 배필이 되었는가, 이것이 오늘 풀어낼 이야기다. 대학 신입생으로 처음 조우하여 연극반 후배로 10년을 함께 지내오면서, 내 눈에는 그저 막 키우는 남동생쯤이었고, 그녀의 눈에는 파인애플 피부를 가진 겉늙은 선배에 불과했다. 각자에게 이렇다 할 감흥 없이, 이성의 레이더에 걸리는 일은 더더욱 없이 시간은 흘렀다.

막 키우는 남동생 같았던 그녀, 어느날 갑자기    

결혼 6년차. 나비의 날갯짓으로 다가온 그녀가 이제는 나무가 되어 내게 아낌없이 주고 있다, 나의 든든한 동반자로써 모든 걸...
▲ 나비와 나무 결혼 6년차. 나비의 날갯짓으로 다가온 그녀가 이제는 나무가 되어 내게 아낌없이 주고 있다, 나의 든든한 동반자로써 모든 걸...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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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연습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연출이었고, 신입생이었던 그녀의 연기가 당연히 눈에 찰리 없었다. 슬프게 목 놓아 울어야 하는 장면이었는데, 훌쩍거리기만 하는 게 아닌가? "옆에 비어 있는 동아리방 가서 우는 연습하고 와!" 거의 때릴 듯한 기세로 울려서 내보냈다. 옆방까지 통곡하는 소리가 거의 한 시간 쯤 들렸다. 그러다 다른 장면을 연습시키는 데 몰두하느라 그녀의 존재를 깜빡 잊고 말았다.

연습이 끝나고 배우들을 무대 위에 세웠는데,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아차, 싶어 옆방에 가보니 여전히 울고 있었다. 하루 종일 우는 연습을 하느라 목은 쉬고, 눈은 주먹만 해지고 코는 빨갛게 부풀어 오르고, 그녀는 그날 분명, 악마를 보았을 게다. 술 한 잔 사주고 달래고 어르고 해서 간신히 붙잡긴 했지만, 그날 그녀가 연극반을 탈퇴했다면 역사는 어느 방향으로 흘렀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서로에게 존재감 없이 흐르던 시간 속에서도 감정의 윤곽이랄까, 밑그림은 서서히 자리를 잡았나 보다. 새벽녘까지 술 취한 동기들 후배들, 자취방과 하숙집에 퍼다 나르고, 두어 시간 눈 붙이고 학교에 수업들으러 갔다는 얘기를 들으며, 과연 인간인가? 라는 생각을 잠시 했던 건 사실이다. 하루 종일 집에서 자다가, 저녁 때 다시 불러내 술을 먹이는 나를 보면서 그녀도 느꼈을 것이다, 저게 과연 인간인가?

그렇게 부대끼며, 십 년이 흐르는 동안 각자 사랑도 하고, 연애도 하며, 서로의 길을 걸어갔지만, 모퉁이를 돌면 딱 보이는 그 자리에 그녀는 늘 존재했다. 그리고 삶의 무게에 만신창이가 되어 한숨 짓던 어느 날, 그 촌스럽던 아이의 등에 날개가 돋아나고, 여자가 되어 하늘을 나는 모습이 내게 신내림처럼 다가왔다. 그 운명의 날은 나비효과 이외에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나 화장실 갔다 올테니까 그 때까지 나랑 사귈지 결정해라"

전날의 과음으로 이번 주말은 기필코 쉬고 말리라, 다짐하며 출근한 토요일. 우연히 들어간 동아리 카페에 번개 공지가 떴다.

'싱글 모임 결성합니다. 커플 사절! 우아하게 와인 마시며 싱글들끼리 이야기합시다.'

그리고 그 밑에 적힌 그녀의 이름. 그날따라 그 이름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아닐 거야, 내가 어제 술을 많이 마신 탓인 게야' 고개를 저어도 그녀의 날갯짓을 떨칠 수가 없었다.

'너를 초라한 싱글들 속에 파묻어두지는 않겠어!' 오전 근무를 마치자마자, 대강 짐을 꾸려 버스에 올랐다. 차가 없던 시절, 시외버스만 두 번 갈아타고 네 시간을 가야 하는 대장정의 길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를 구하는 백마 탄 왕자는 나뿐이라는 확신이 생겼으니까. 그리고 그날 저녁, 마침내 역사는 이루어진다.

태생이 연극반인데, 와인 따위 홀짝거리는 건 생리에 맞지 않는다. 싱글 모임에 고개 당당히 들고 자랑스럽게 참석한 군상들만 십여 명. 그들은 시작부터 서로를 감싸안아주기 시작하며 술잔을 마구 주고받았다.

"니가 그러니까 연애를 못 하는거야."
"선배는 그 나이 먹도록 뭐했어요."

굉장히 살가운 광경이 연출되고, 초저녁부터 시작한 술자리는 광란의 새벽까지 젖어들었다. 새벽 두시경, 한껏 취기가 오른 나는 평상시 같았으면, 쉽게 못 꺼냈을 그 한마디를 무신경하게 던졌다.

"너! 나랑 사귈래?", "…(인간, 또 취했구나)…"

대답을 듣지 못한 나는 급기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 화장실 다녀올 테니까, 그때까지 사귈 건지 말 건지 결정해라!"

그리고 휘청거리며 화장실에 갔는데, 화장실 바닥이 미끄러워 그만 넘어지고 만 것이다.

술 마시고 한두 번 넘어진 것도 아니고, 무탈하게 자리에 돌아와서, 혀 꼬부라진 소리로, "그래서 나랑 연애할 거야, 말 거야!"라고 외치는 순간, 시끄럽던 술자리에 순간 흐르던 정적. 내 이마와 귀 옆으로 흐르는 핏줄기에 그녀 및 좌중은 얼어붙었다. 그리고 응급실로 실려가고, 나는 터진 머리를 이십여 바늘 꿰맸다(그날 머리카락과 상처 부위를 함께 꿰매준 모 선배님께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피 흘리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는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 나갔고, 오갈 데 없는 나를 결국 자신의 자취방에 재워줌으로써, 그녀는 나의 프러포즈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물론 소문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이씨가 연애를 제안했다가 거부당하자, 화장실에 가서는 머리를 짓이기고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더라.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어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공포와 협박에 어쩔 수 없이 둘이 사귀게 됐다더라. 그런 파렴치한 인간이 어디있냐….

피투성이 남편을 포함하여 아들 셋을 키우느라 고생이 많은 사자같은 와이프. 그리고 두 아들.
▲ 예천 곤충 박물관에서 피투성이 남편을 포함하여 아들 셋을 키우느라 고생이 많은 사자같은 와이프. 그리고 두 아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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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버스로 네 시간 거리를 매주 주말마다 다녀왔고, 협박(?)은 회유를 거쳐 진심으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후에 우리는 혼인 서약을 하게 된다.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말을 달린 온달은 평강공주를 만나 구원을 얻은 것이다. 그녀의 한마디를 보탠다.

"학교 다닐 때 선배 보면서, 나중에 저 인간 도대체 누가 데려갈지 참 걱정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날, 내가 동아리 카페를 클릭하지 않았더라면, 그 허름한 횟집의 화장실 바닥 상태가 청결하여 미끄러지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아내는 내 곁에 없었을까? 아닐 거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미 내 마음 속에서 날갯짓을 일으킨 그녀를 포기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소문처럼, 자해공갈을 해서라도 그녀의 사랑을 쟁취했을 거라는 것이다. 사랑하는데, 그깟 머리 좀 깨진 게 대수랴. 피 흘리지 않은 사랑은, 그래서 사랑이 아닌 거다.

덧붙이는 글 | '사랑이 뭐길래' 공모글입니다



태그:#나비효과, #싱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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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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