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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얼마 전 논산 훈련소에서 중대장이 사병들에게 인분을 먹이는 경악스러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94년에 입대했던 저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황당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유사사례가 없는지 철저히 조사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하지만 군대에서는 인분사건보다는 강도가 덜하지만 황당한 사건이 자주 일어납니다.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군대라는 조직 특성상 지휘관의 잘못된 판단이 일반 사병들에게는 엄청난 일로 다가올 때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군 시절 많은 황당한 사건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습니다. 전 군대에서 특이하게도 두 가지 보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포병과 관련된 보직이었고 또 하나는 기독교 군종병이었습니다.

대대급 이상 군종병들은 전임으로 업무를 담당하지만 포대(중대)급은 자신의 주특기와 같이 겸임으로 군종 업무를 맡습니다. 전 포병보직보다 군종병이라는 직책 때문에 황당한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군에서는 지휘관들 중 유독 기독교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장로, 집사직에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가끔 군종병들에게 황당한 명령이 내려오기도 합니다.

바로 일요일 날 교회에 사병들을 동원하는 일입니다. 여단장(제가 속했던 곳은 여단이었습니다)이나 대대장이 기독교 신자일 경우 일정 인원을 교회를 데리고 가야 합니다. 사병들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일요일 오전에 교회를 가는 것을 대부분 꺼립니다.

게다가 당시에 가장 인기 있었던 <짝>이라는 드라마가 교회 가는 시간에 방송됐기 때문에 사병들은 더욱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많이 데리고 가지 않으면 능력 없는 군종병으로 찍히곤 했습니다.

당시 저희 포대는 항상 꼴찌였습니다. 다른 포대에서는 80명 중 서열 40위까지만 열외로 하고 나머지는 교회를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포대는 10명 정도밖에 데리고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포대에서 중대장이 저를 다급하게 찾았습니다. 특히나 그 날은 일요일이 아니고 수요일이었습니다.

"전 병장 오늘 대대장이 교회에 사람 많이 동원하라는데."
"왜 그러십니까?"
"밖에서 유명한 부흥강사가 오는데 포대당 50명쯤 데리고 오래."
"네 알겠습니다."

대대장의 특별 명령이었습니다. 한참 힘든 일과를 마치고 쉬고 있는 병사들에게 교회를 데리고 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포대는 기독교인도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명령이 떨어진 이상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내무반별로 병장들을 제외한 모든 인원을 모으고 나니까 50명쯤 되었습니다. 교회에 도착하니 대대장을 포함해 중대장, 소대장까지 다 나와 있었습니다. 강의를 시작하기 전 부흥강사는 스스로 안수기도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자랑하기 바빴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난 후 안수기도를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부흥강사는 열정적으로 강의를 한 뒤 광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안수를 눈에다 합니다. 술귀신, 담배귀신, 질병귀신 등이 제 안수만 받으면 다 물러갑니다. 안수기도 받으실 분들은 다 남아주세요."

하지만 병사들은 다 내무반으로 돌아가기 바빴습니다. 저도 피곤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대대장이 일어나 한마디를 던집니다.

"각 포대 군종병들하고 대대 군종병은 남아서 안수 기도받고 가도록 해라."

그 소리에 뒷골이 아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안수기도라는 것을 받은 적이 없었던 저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약간의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눈에다 안수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대대장은 친절하게도 부흥강사에게 한마디 더 얘기합니다.

"이놈들 군종병 잘할 수 있도록 안수기도 세게 해주세요."
"네, 대대장님 성심 성의껏 하겠습니다."

대대장은 순서까지 지정해주었습니다. "자, 알파포대 군종병부터 받도록 해라." 바로 제가 속해 있는 알파포대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긴장한 마음에 등에서는 식은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자, 전진한 군종님 누우세요."
"네… 알겠습니다."
"제가 눈에다 손가락을 갖다 놓습니다. 누르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귀신이 없으면 전혀 아프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귀신이 많으면 많이 아픕니다. 꾹 참아야 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네… 알겠습니다."

대대장은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고 저의 안수 장면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평소에 술, 담배 하세요? 거짓말하면 안 됩니다."
"네, 술은 조금 합니다."
"자, 눈을 감으세요."

부흥강사가 제 눈에 손을 갖다 놓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부흥강사의 손이 눈을 찌르는 듯 힘을 줍니다. 강도가 점점 강해집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술 귀신은 물러가라."
"(소리를 지르며) 악…, 아파요…."
"참아요! 술 귀신이 나가고 있어요."

저는 눈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눈에 최대한 힘을 주었습니다. 눈에서는 불이 번쩍번쩍합니다. 마치 제 눈이 빠져나갈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비명이 나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릅니다. 드디어 안수를 마쳤습니다.

눈에서 눈물은 줄줄 흘러내립니다. 눈은 토끼 눈처럼 빨갛게 충혈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부흥강사는 웃으며 한마디 던집니다.

"이제 술 귀신이 물러갔습니다. 축하합니다."

전 서둘러 교회를 빠져나왔습니다. 교회 밖으로는 다른 군종병의 비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눈이 부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눈에는 선명하게 멍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눈의 멍자국은 보름이 지나서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군 동료들은 저만 보면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한마디씩 던지고 갑니다. "전 병장, 술 귀신 물러가서 좋겠다. 푸하하하하."

벌써 안수기도를 받은 지가 10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 부흥강사는 사이비가 확실합니다. 전 여전히 술을 좋아하고 자주 마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는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삽니다. 하지만 그 명령은 법에 근거하고 합리적일 때만이 복종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군대에서는 비상식적인 명령이 난무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제가 겪었던 경험과 논산 인분 사건은 사건의 상황과 성질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것 같습니다. 전혀 군 조직과 관련 없는 일을 지휘관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강요한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군 문화도 과거의 인습을 적극적으로 타파하고 개혁해야 할 때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강한 군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오늘따라 10년 전에 겪었던 군 시절 기억이 더욱 새롭습니다.

덧붙이는 글 | 내 군대 시절의 황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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