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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6일의 일이니 벌써 열흘도 더 지난 일인데도, 내 마음은 여전히 우울하고 허전하고 착잡하다. 생각할수록 후회가 막심하여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날 뒷동 동생네 집에서 김장 공사를 해서 내가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간 것이 일의 시초였다. 그리고 그냥 밥만 먹으면 될 것을, 밥을 먹으면서도 고양이들에게 줄 것을 챙긴 내 버릇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겨우 배추 20여 포기 김장하는 것도 공사라고, 동생 집에는 제수씨의 두 여동생과 제부 한 명에다가 친정 어머니까지 오셨다. 제수씨는 돼지 수육과 명태 찌개와 겉절이로 푸짐하게 점심상을 차렸다. 그날은 동생도 집에 있는 날이어서 나는 동생과 동생의 동서와 함께 술도 한잔하며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나는 제수씨의 동태 찌개 끓이는 솜씨가 제법 늘었다고 생각하면서 찌개를 먹는데, 자연발생적으로 고양이 생각이 났다. 빈 그릇을 하나 청해서 거기에다가 명태의 대가리와 뼈 등을 담았다.

그러자, 나의 그런 행동 때문에 자연히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들이 화제가 되었다. 내가 가족 외식이든 모임 외식이든 외식을 하게 되면 꼭꼭 남은 밥이며 생선 따위를 비닐 종이에 싸 가지고 온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남은 음식을 싸 가지고 오는 일은 근래에 생긴 내 버릇이다. 나는 기를 쓰고 그 일을 한다. 지역 기관장 유지들과의 점잖은 모임에 가서도 체면 불구하고 종업원들에게 부탁을 한다. 남은 밥과 조기 멸치 갈치 꽁치 따위를 한 보따리나 싸 가지고 와서 상하지 않도록 잘 보관을 하면서 고양이 다섯 마리에게 일주일 동안이나 먹인 적도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부터는 고양이들에게 찬 음식을 주지 않는다. 냄비에다가 밥과 생선을 적당히 넣고 끓여서 주는데, 생선은 으레 숟갈로 잘게 으스러뜨려서 준다. 생선을 토막으로 그냥 주면 놈들이 밥그릇 위에서 충돌을 더 잘하고, 생선 토막을 차지한 놈은 곧잘 저만치 물고 튀어서는 흙바닥에다 놓고 먹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생선을 잘 으스러뜨려 주어야 녀석들이 밥을 먹을 때 생선 가시에 찔릴 위험이 덜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냄비를 문 앞에다 놓고 숟갈로 생선 토막이나 대가리를 으깨고 밥을 골고루 비비느라고 톡톡 소리를 내면, 현관에 모여 있던 고양이들이 우리 집 앞으로 몰려와서 야옹 야옹 노래를 부른다. 참지 못하고 문을 치는 놈도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소리를 크게 많이 내는 것은 장애 암코양이다. 그리고 장애 암코양이와 한배 새끼인 수놈이 재촉을 많이 했었다.

나는 고양이들이 국물도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되도록 국물을 많이 만든다. 그리고 널찍한 두 개의 고양이 밥그릇에다 똑같이 나누어 부어준다. 정신없이 내 다리와 밥그릇 주위를 맴돌던 녀석들은 재미있는 소리를 지르며 밥을 먹기 시작하는데, 작고 빨간 혀로 국물부터 맛있게 핥아먹는 장면은 볼수록 재미있다.

그리고 녀석들은 잔가시가 많은 생선을 으스러뜨려서 비벼 준 밥도 용케 가시를 잘 가려내며 먹는다. 입안에 들어간 잔가시를 순간적으로 뱉아 내는 모습도 재미있고, 체구가 좀더 큰 수놈들은 어지간한 생선뼈는 잘도 깨물어 먹는다. 녀석들이 밥을 다 먹고 났을 때 보면 그릇 바닥에 길고 가는 생선 가시만 하얗게 남아 있다. 밥을 급히 먹다가 가시에 찔려 깜짝 놀라는 때도 간혹 있지만, 앞발도 이용하면서 (실효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입을 묘하게 비틀어서 해결을 하는 걸 보면 참 용하고도 신기하다.

나는 빈 냄비를 들고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맛있는 소리를 내며 밥을 먹는 고양이들을 한참씩이나 들여다보곤 한다. 오늘도 내 덕에 맛있는 밥을 먹는 고양이들의 머리를, 이때만큼은 내 손을 피하지 않는 겁 많고 방정맞은 놈들도 차례로 만져보는 재미가 실팍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가 별로 실속은 없으나마 자유직업인이라는 사실이, 바쁜 아침 시간에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고, 아침 준비와 출근 준비에 바쁜 아내에게 슬몃 미안해지는 마음도 들곤 한다.

현재만을 놓고 볼 때는, 그리고 먹는 문제에 한해서는 놈들은 복터진 팔자임이 분명하다. 우리 집은 어머니 덕에 생선 찌개를 자주 먹는다. 노인네의 음식 솜씨를 이웃들이 모두 부러워할 정도다. 동태 찌개 같은 것은 무를 많이 썰어 넣고 큰 냄비로 하나 끓이면 보통 삼일까지 먹는다. 그런 생선 찌개 맛을 고양이들도 함께 누리고 사는 셈이다.

놈들에게 비벼 줄 국물이 없을 때는 라면이라도 끓여서 밥을 말아준다. 동네 근처 공터에 만두와 찐빵을 파는 차가 자주 와서 하루종일 영업을 하는데, 그 덕에 고양이들이 만두와 찐빵 맛을 보는 날들도 있다.

며칠 전에는 연 이틀 저녁에 가족 외식을 했는데, 초등학생 조카녀석이 두 번이나 밥을 많이 남긴 덕에, 고양이들은 갈비탕과 삼계탕 맛도 보았다. 국물을 더 보태서 끓여주니 고양이들은 갈비탕과 삼계탕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내가 이렇게 고양이들 밥에 신경을 쓰는 것은 대략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생명체에 대한 애정과 인연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조물주께서 창조해 주신 생명인 데다가 사람 곁에서 사람과 함께 살도록 안배해 주신 그 법칙을 무시하기가 어렵다. 영겁의 시간 속에서 하필이면 지금 이 시간에, 그리고 한없는 공간 속에서 하필이면 이곳 이 자리에서 함께 존재한다는 것―우연과 필연 속에서 서로 만나 사물을 분간하는 눈빛으로 서로를 보고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산다는 것 자체가 나로서는 외경의 대상이다. 비록 사람과 동물 사이일지라도 거기에는 오묘함과 신비스러움이 존재한다.

처음부터 내가 기르지는 않았을 지라도 이왕 내게로 와서 밥을 얻어먹으며 살기 시작하였으니, 그것도 귀중한 인연으로 여기고 잘 보살피며 정성껏 먹여 줘야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여기에는 고양이들의 번식에 대한 걱정이 따르는 것을 배제하지 못한다.)

또 하나는 장애 고양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내 차에 치여서 심각한 장애를 겪게 되었으니 참으로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차 바퀴 밑에 아직 어린 고양이가 있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시동 소리에 놀라 차 밑의 고양이들이 뛰어나가는 것을 본 것으로 마음을 놓고 평소 습관대로 그냥 차를 후진시킨 것은 내가 부인할 수 없는 실수이고, 반드시 책임져야 할 일이다.

그 사실만을 놓고 나이 먹은 사람에게 나쁜 놈이라는 극언까지 해대는 사람들, 컴퓨터를 손으로 다룰 줄만 아는 사람에게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만, 당신이라면 어쩌겠는가?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라도 있는가?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고양이와 관련하는 모든 책임을 총체적으로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나는 장애 고양이가 참 불쌍하다. 오늘도 글을 쓰다가 말고 여러 번이나 현관을 들락거렸다. 날이 궂으니 더욱 밖으로 나돌지를 못하고 홀로 현관에 남아서 놈이 자꾸만 나를 찾기 때문이었다.

나는 녀석의 야옹 소리가 어린아이 소리와 너무나 비슷하다고 느끼면서 번번이 나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의 엉덩이가 불결하고 냄새가 날지라도 얼굴을 만져 주고 몸을 쓰다듬어 주고 하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내 발등에 얼굴을 비비고 다리 사이를 돌고 하는데, 녀석의 목에서는 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난다. 따뜻한 방안도 아닌 추운 현관에서도 그런 소리를 내는 녀석이 더욱 측은하다.

오래 놀아주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갈 때는 녀석을 추운 현관에 남겨두고 나 혼자 따뜻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여간 미안하지 않다. 녀석이 다른 놈들과는 달리 사람과 쉽게 친숙해질 수 있는 느긋한 성질을 타고났기 때문에 그날도 다른 놈들처럼 재빨리 차 밑에서 뛰어나가지를 않아서 화를 당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새롭게 들어 녀석을 한번 더 돌아보니, 머리를 돌려 나를 보는 눈빛이 애처롭다.

저 녀석에게 사람의 집안에서 살았던 경험이 없기 망정이지 그 경험이 있는 놈이라면 얼마나 섭섭하고 야속할까라는 생각과 함께 슬몃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마침내 녀석의 야옹 소리가 들리지 않아 더욱 궁금해져서 다시 나가보니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하는 마음에 지난 가을 화단에다 만들어 준 고양이 집의 안을 들여다보니 녀석은 볏짚 위에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잠을 자고 있다. 다른 고양이들은 모두 어디로들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데, 녀석 혼자 쓸쓸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쓰럽다.

다시금 불현듯 한배 새끼인 수놈 생각이 난다. 그놈은 장애 암코양이와 비슷하게 생긴 놈이었다. 흰털과 검은 털이 잘 배합이 되었는데, 장애 암코양이보다 흰털이 좀더 많았다. 코 부위가 두드러지게 튀어나와서 늠름함이랄까, 얼굴부터 수놈답다는 느낌을 주었었다.

그놈이 지금도 여기에 있다면, 장애 암코양이는 덜 외로울 것이다. 그 수놈이 가장 많이 장애 암코양이와 함께 있어주곤 했었다. 어미보다도 그 두 남매가 함께 있는 것을 나는 자주 보곤 했는데, 내 나름으로 오라비가 몸이 불편한 누이를 챙겨 주는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며 슬며시 미소를 짓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11월 26일은 그 수놈의 운명이 졸지에 뒤틀려져 버린 날이다. 김장 공사를 하는 뒷동 동생 집에 가서 점심을 먹다가 고양이 얘기를 하게 된 탓이다. 고양이 얘기는 내가 명태 찌개를 먹으면서 빈 대접을 하나 얻어 명태 대가리와 뼈를 담은 데서 시초가 된 것이었다.

농촌인 남산리에서 오신 제수씨의 친정 어머니께서 고양이 한 마리를 얻어 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집에 쥐들이 너무 많아 보통 심란한 게 아니라고 했다. 고양이를 얻어 가면, 어렸을 때부터 기른 고양이가 아니라서 한동안 묶어놓고 길러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그렇게 해도 고양이 소리를 들으면 쥐들이 요동을 치지는 못하리라는 말도 했다.

동네에 고양이들이 많아서 알게 모르게 부담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어머니, 제수씨, 뒷동의 성진 엄마도 고양이 한 마리를 남산으로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찬성을 했다.

고양이의 번식을 은근히 걱정하고 있던 나는 그때 얼른 흰털과 노란 털이 섞인 또 한 마리 암코양이를 생각했다. 그놈은 내게 섭섭함을 많이 안겨 주고 있는 녀석이었다. 방정맞을 정도로 사람을 몹시 경계해 온 그 녀석은 어렸을 때는 내가 밥을 주고서도 멀찍이 물러나야 겨우 다가와서 밥을 먹고,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획 달아나고 한 녀석이었다. 지금도 밥 먹을 때를 빼고는 내 손을 피하곤 하니 좀처럼 정이 들지 않을 것 같은 놈이었다.

어머니의 의견도 있어서 나는 그 놈을 주기로 결심했다. 나는 고양이들에게 점심은 주지 않으니 지금은 그놈을 잡을 수 없고, 이따가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놈들이 밥을 먹을 때 그 놈을 잡아다 주겠노라고 제수씨의 친정 어머니와 약속을 했다.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그 겁쟁이 암코양이와 한배 새끼가 아닌 잿빛 얼룩무늬 수놈은 쓰레기장 근처에서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니 놈들은 저희들에게 밥을 주는 사람인데도 둔덕 밑으로 달아났다.

네놈들 내일 아침에 보자. 너희 두 놈은 이제 내 밥을 그만 먹어야 해.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오니 현관 안에 털 색깔이 비슷한 오누이 고양이가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 있었다. 수놈 고양이는 또다시 장애 암코양이, 불쌍한 누이를 잘 챙겨 주고 있는 듯한 본새였다. 녀석들은 나를 보자, 수놈은 일어서서 앞발을 내밀고 허리를 쭉 펴서 인사를 했고, 장애 암코양이는 두어 번 야옹 소리를 내었다.

이거, 너희들 줄 거야. 나는 명태 대가리와 뼈들이 가득 담긴 대접을 녀석들에게 슬쩍 보여 주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는 정말이지 그 녀석들을 남산리로 데리고 가리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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