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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들어 그 동안 잠잠했던 이인제 의원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고 있습니다. 민주당에서 현재 추진하고 있는 신당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 그의 견해입니다. 그 견해에 동조하고 있는 의원들이 수십 명에 달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

처음 신당 이야기가 나왔을 때에는 그리 목소리가 높지 않았으나, 국민 경선 쪽으로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게 거의 확정이 되니까 그것을 적극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노무현이 대선 후보라는 직함을 사퇴하지 않고 국민 경선을 고집하기 때문에, 외부의 유력한 대선 후보들이 동참하지 않게 되었다며 집행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지금 흘러가는 상황으로 봐선 뾰족한 탈출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민주당에서 늘 잠복해왔던 분당 사태가 바야흐로 눈앞에 다가온 것 같습니다. 물론 정치란 것이 거의 막바지에 가서 극적인 타결로 새로운 길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번 민주당의 신당 분쟁은 그러한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이번 신당 분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바로 노무현과 이인제입니다. 노무현의 정치적 견해에 대해선 이인제가 크게 반발하고, 이인제의 정치적 견해에 대해선 노무현이 목소리를 높여 반대하고 있습니다. 두 정치인의 관계는 물과 불과 같다는 세간의 평을 마치 증명이나 하듯이 사사건건 그 두 사람은 부딪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노무현과 이인제는 민주당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의 강력한 경쟁자였습니다. 아니, 국민 경선이 있기 전까지는 이인제가 후보가 될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은 노무현을 상당한 차이로 앞선 여러 여론조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인제도 당연히 자신이 무난히 선출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다르게 나왔습니다. 노무현이 이인제를 누르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입니다. 이인제는 경선 막바지에 대세의 흐름이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함을 인식하고 후보 자리를 사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 이인제가 드디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습니다. 민주당의 돌아가는 상황이 자신의 목소리와 힘을 내도록 이끌었기 때문인지, 당 지도부의 신당 논의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하며 자신의 노선을 분명히 보이며 동조 세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탈당도 불사하겠다는 것입니다. 따로 나가서 신당을 거국적으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노무현과 이인제는 지난 국민 경선 때에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제주에서 시작된 경선이 서울에서 끝날 때까지 열여섯 번에 걸쳐 불꽃 튀기는 유세전을 펼쳤습니다. 이인제가 부산과 경기와 서울 경선은 사퇴했기 때문에, 사실상 둘의 대결은 열세 번이었습니다. 그 숨막히는 대결에서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노무현이 이인제를 이긴 것입니다.

경선 기간 동안에 둘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서로의 정책에 대해 비판을 하였습니다. 게다가 뒤에 가서는 사상 논쟁까지 불붙어 경선 자체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급진적 좌파, 중도노선, 보수성향 등 여러 말들이 둘 사이를 오고갔습니다. 대북 정책과 경제 정책도 둘은 한 치의 양보 없이 자신의 견해를 강도 있게 전달하고, 상대방의 견해에 대해 예리한 비판을 끊임없이 하였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피를 말리는 격렬한 경선이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정상적이고 올바른 정당이라면, 경선 기간 동안에는 이기기 위해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발언을 한다 하더라도, 끝난 다음에는 선출된 후보에게 축하의 말을 해주고 적극적으로 그가 대선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특히 노무현과 이인제의 관계는, 경선 기간 내내 한 치의 양보 없이 격돌을 벌인 것도 부족하여 경선이 끝난 후에도 개선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둘이 그러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인 것은, 안타깝게도 경선을 하면서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습니다.

노무현은 만약에 이인제가 후보가 된다면 그를 위해 선거 운동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러기가 힘들 것이라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이인제도 노무현이 후보가 되었을 때에 적극적으로 그의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뛰어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민주당의 강력한 대통령 후보 둘은 시종일관 이런 보기 흉한 태도를 국민들에게 보여왔습니다.

그것을 바라본 국민들은 경선이 끝난 다음에도 그 후유증은 치유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은 불행하게도 맞아떨어졌습니다. 노무현과 이인제는 승자와 패자로 결판이 났는데도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은 경선 후 적극적으로 이인제를 끌어안으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고, 이인제는 노무현에 대해 아예 문을 닫아걸고 다시 찾아올 기회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기회란 자신에게 패배의 쓴잔을 마시게 한 노무현이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는 것입니다. 오랜 정치 역정을 거쳐오면서 이인제는 충분히 노무현이 갖고 있는 힘의 한계를 내다봤을 것입니다.

드디어 간절히 기다렸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6월과 8월에 있었던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선 결과가 민주당의 참패로 끝났습니다. 이회창 대선 후보가 이끈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선 후보가 이끈 민주당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이긴 것입니다. 사정이 어떻든간에 선거의 사령탑 역할을 맡았던 노무현은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경선 기간에 급등했던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반대로 급락했습니다. 물론 지지도 하락의 원인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따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합니다. 노무현을 반대하는 정적에게 있어서, 당장 눈에 보이는 지지도의 하락은 둘도 없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비로소 그 동안 자신이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이인제가 자리를 박차고 힘을 내서 일어났습니다. 경선이 끝난 다음부터 약 3개월 가량 동면 상태에 들어가 이를 갈며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펼칠 날만을 기다렸던 그가 포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노무현과 이인제, 그 둘은 이제 정면으로 마주섰습니다. 그 두 사람에게 있어 한발 뒤로 물러난다는 것은 정치적 생명이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양보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원칙이니, 믿음이니 하는 말들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그저 앞을 향해 용감하게 나아가는 것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원칙을 말합니다. 정치적 믿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통하는 우리나라의 정치라면 이런 신당 문제는 처음부터 거론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국민 경선을 통해 뽑힌 후보를 사퇴하라고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를 뽑는, 후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원칙이니, 정치적 신뢰니 하는 말들은 현실 상황에서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저 낱말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이미 국민 경선을 통해 승패가 가려진 노무현과 이인제가 우리나라라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이상적이라면, 승자인 노무현을 위해 패자인 이인제가 축하의 말을 건네고, 헌신적으로 그의 당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는 미국이나 영국이 아닙니다. '정치'하면 후진성을 못 벗어나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링 위에서 다시 만난 노무현과 이인제의 진흙탕 싸움을 이제는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상식을 가진 이 땅의 국민들이라면 노무현과 이인제의 정치 역정과 정책, 그리고 지니고 있는 사상을 웬만큼 알고 있습니다.

둘이 또 피 튀기는 싸움을 하고, 결과에 대해 승자는 패자를 아량으로 위로하고 감싸주지 않고, 패자는 진심으로 승자를 위해 협조하지 않는 상황이 다시 올 것임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둘이 가야할 길은 딱 한 가지뿐입니다. 둘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이제 노무현과 이인제는 한솥밥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 편하게 따로 밥을 먹어야 합니다. 노무현은 그의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과, 이인제는 그의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과 같이 모여 그들만의 당을 이끌어나가는 것입니다. 현 상황으로 봐서 다른 방법은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둘이 같이 한솥밥을 먹는 한 절대로 상황이 호전될 수가 없습니다.

노무현과 이인제는 각자 많은 장점과 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인기도 많이 얻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둘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색깔을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제시하여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설령 오는 12월 대선 때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건설적인 야당의 길을 의연하게 걸어가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되겠습니다.

노무현과 이인제가 같은 당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모습을 더 이상 보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서로 갈라지는 견해에 대해 너무 극단적인 생각이라고 탓만 하지 말고, 그 동안 국민들에게 보여주었던 모습에 대해 깊이 성찰해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정치인 노무현의 길과 이인제의 길, 그 두 사람이 앞으로 걸어나갈 길을 국민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것입니다. 부디 자신들만의 독특한 색깔을 갖고 각기 다른 당에서 정정당당하게 대결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땅의 정치를 한 단계 높이는 큰 어른 역할을 담당해주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둘의 싸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짜증을 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맞지 않으면서 어떻게 같은 당에 몸담고 있느냐고 비난을 합니다. 이제는 국민들의 그러한 견해에 대해 두 사람이 답을 해야 될 차례입니다. 이번에는 어영부영 넘어가지 말고 확실한 태도를 국민들에게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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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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