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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김시연 권박효원 기자
사진: 권우성 권박효원 기자
동영상: 김용남 기자


▲ 19일 오전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에서 열린 미2사단장 이취임식 중 사열에 참가한 미군병사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2사단장 이취임식이 열린 7월 19일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 주변은 아침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날 2년 임기를 마치고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인 러셀 L. 아너레이 소장은 경기도 양주 두 여중생 사망을 초래한 미2사단의 최고 책임자로 유가족들이 출국금지를 요청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날 사고 장갑차 소속 부대인 캠프 하우즈 부대 책임자인 해럴드 채플 대령이 고소 직후인 지난 6월 28일 출국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유가족과 범대위의 반감이 고조된 상태였다.

시위대 '함성'과 이취임식의 '포성' / 김용남 기자


<오전 8시 40분: 캠프 케이시 연병장>5천여 명의 미군과 50명의 시위대

▲ 미2사단 이취임식에서 기수단이 사열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캠프 케이시 정문 출입구 경비는 어느 때보다 삼엄했다. 오전 8시경 취재진이 도착했을 땐 이미 수백 명의 경찰기동대가 미리 대기하고 있었고 이날 취재진 안내를 맡은 미2사단 공보관은 행사장에서 지켜야할 '행동준칙(Ground rules)'을 문서화해 서명까지 받았을 정도.

점차 굵어지는 빗줄기에도 이취임식 행사는 예정대로 5000여명의 미 2사단 사병들이 운집한 잔디 연병장에서 진행됐다. 연병장과 가까운 후문 부근에서 갑작스런 함성이 들려온 건 행사를 10여 분 남겨둔 오전 8시 50분경. 전임 미2사단장의 출국을 막기 위해 나선 범대위 시위대였다.

"몰아내자, 몰아내자, 주한미군 몰아내자"

경비병의 제지를 뚫고 문 안쪽까지 밀고 들어온 50여 명의 시위대들은 저마다 피켓을 들고 반미 구호와 '반미투쟁가'를 제창해 취재진과 미군 관계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시위대가 있는 후문과 국내외 취재진이 갇혀 있던(?) 포토라인까지의 거리는 불과 100여 미터 남짓. 하지만 이들의 함성은 곧 미군 밴드의 요란한 군악 연주에 잠겨버리고 말았고, 보일 듯 말듯 피켓을 든 그들의 모습조차 9시 10분경 미군측이 동원한 버스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오전 8시 40분 : 캠프 케이시 후문> "미군부대 철문 열어라"

▲ 시위대가 던진 물감으로 얼룩진 캠프 케이시 건물.
ⓒ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발뺌과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미2사단장 출국을 저지하자"
"미2사단장 아너레이 어딜 도망가! 여중생 살인 책임져라"

오전 8시 40분경. 미2사단장 이취임식이 거행되는 캠프 케이시 후문에 미2사단장 출국 규탄 피켓을 든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 50여명이 몰려들었다.

대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범대위가 발족한 '시민특별수사대'에 가담, 부대 앞을 지키고 있는 전경 70여 명과 몸싸움을 벌이고 계란 5판을 던졌다. 주사기로 페인트를 넣어둔 계란이 후문 초소에 부딪쳐 깨지면서 초소 벽을 붉은 색과 검은 색으로 물들였다.

학생들은 약 20분간의 몸싸움 끝에 굳게 닫힌 부대 철문을 열었다. 그러나 전경 70여 명과 미군 30여 명이 시위대를 겹겹이 막아 부대 안으로 더 이상 진입하지는 못했다. 미군은 곤봉과 방패를 들고 대치했으며 군견을 끌고 나온 미군도 볼 수 있었다. 무장한 미군 병사들 너머로 이취임식장이 진행되는 연병장이 들여다보였으나 곧 미군은 후문에 버스 한 대를 배치해 연병장이 보이지 않도록 가로 막았다.

<오전 9시-캠프 케이시 연병장> "모든 책임은 떠나는 자가 진다?"

▲ 오른쪽부터 미2사단장 러셀 아너레이, 미8군사령관 다니엘 쟈니니, 신임사단장 존 우드.
ⓒ 오마이뉴스 권우성
조금 전 시위대들의 갑작스런 등장에는 아랑곳 없이 이취임식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이제 남은 유일한 '방해꾼'은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뿐이었다.

이날 미2사단장직을 주고받는 전임 러셀 아너레이(Russel L. Ohnore) 소장과 신임 존 우드(John R. Wood) 소장은 직속상관인 미8군사령관 다니엘 쟈니니(Daniel R. Zanini) 중장과 함께 차에 올라 연병장을 돌며 5000여 명의 사병들을 검열했다. 본부석에서는 리언 라포트 주한미군 사령관과 남재준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등 한미 양군 관계자들이 이를 지켜봤다.

한미 양국 국가가 차례로 울려 퍼지고 방금 위풍당당한 행진을 끝낸 아너레이 소장은 신임 사단장에게 미2사단 깃발을 전달했다. 바로 그때 후문 시위대를 가리고 있던 버스 뒤로 학생들의 대형 깃발이 불끈 솟아올랐다. 이 깃발은 이취임식이 진행되는 내내 펄럭이며 시위대의 존재를 알렸다.

일개 사단장 이취임식치고는 유난히 많이 참석한 국내외 취재진들을 의식한 듯 쟈니니 중장과 아너레이 소장은 연설 도중 이번 여중생 사망 사건을 언급하며 유감을 표명했다.

"한 달전 우리는 미2사단과 지역사회에 큰 슬픔을 안겨준 사고를 겪었다"고 운을 띤 쟈니니 중장은 "우리 모두는 그 사고에 대해 깊이 슬퍼하고 있으며 그 사고에 대해 전적인 책임(Full Responsibility)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또한 "사고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슬픔과 '양심의 가책(Remorse)'을 느끼고 있다"면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서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쟈니니 중장에 이어 연단에 오른 아너레이 소장 역시 "우리는 6월 13일 '참담한 사고(Fatal Accident)'에 유감을 표하며 나는 이번 사고에 대해 미 2사단을 대표해 다시 한 번 사과한다"고 밝혔다. 아너레이 소장은 여중생 사건을 언급하면서 잠시 말을 끊고 고개를 숙인 채 묵상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반면 신임 사단장인 존 우드 소장은 이번 여중생 사건에 대한 언급은 일절 배제한 채 6.25 전쟁 당시 미 2사단 장교로 참전했던 부친의 기억을 강조하며 취임사를 맺었다.

<오전 9시 30분: 캠프 케이시 후문> "사건 책임자 빼돌리지 마라"

▲ 미2사단장 이취임식이 열린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 후문에서 시위를 벌이는 '살인미군 한국법정 처벌을 위한 시민특별수사대'.
ⓒ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학생들과 전경의 대치가 계속되는 가운데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오전 9시30분경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관련책임자 미 2사단장 이임 및 출국금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범대위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미군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해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시간을 벌면서 그 책임자들을 한 명씩 본국으로 빼돌리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법무부는 미 2사단장과 사건 책임자들을 출국금지시키고 재판권을 넘겨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범대위는 "시민특별수사대를 동원해 사건 책임자를 직접 수배하고 체포하겠다"고 밝혔다. 시민특별수사대가 책임자들을 체포하지 못하고 미 2사단장 등 사건 책임자가 미국으로 출국한다면 외국 평화운동가들과 연대해 해외 체포활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범대위는 "시민특별수사대의 활동이 법적인 효력을 가질 수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이미 의정부지청에 사건책임자들을 고소했으며 피의자를 체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사대의 활동이 불법이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10시 50분경 기자회견문 발표가 끝나고 불교인권위원회 대표 진관 스님의 발언이 시작되자마자 전경들이 대학생들을 밀어내면서 격렬한 몸싸움이 시작됐고 기자회견은 곧 중단되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전경의 공격에 당황한 대학생들의 대열이 무너지면서 결국 5분도 안 돼 부대의 왼쪽 철문이 다시 닫혔다.

▲ 이취임식장이 열리는 연병장과 1백여미터정도 떨어진 캠프 케이시 후문에서 부대진입을 시도하는 시위대와 경찰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양측의 몸싸움이 진정된 오전 11시경 재개된 기자회견이 끝난 후 학생들은 다시 전경들과 잠시 몸싸움을 벌인 뒤 캠프 케이시 정문 앞으로 이동해 집회를 정리했다.

이날 범대위는 "합법적인 기자회견을 방해한 것은 불법행위이며 전국과 전세계의 오늘의 인권침해를 알리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법무부는 서울고검 서울지구 국가배상심의회 심의 결과, 두 여중생 유족들의 배상금액이 각각 1억 9500만원과 1억 9600만원으로 산정됐다고 발표했다. 법무부는 이를 최종 산정해 미군측에 통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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