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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전에 이어 월드컵 열기가 그야말로 최고조에 달했던 10일, 온 국민이 축구에 몰두해 있던 그 시간, 마치 딴 세상처럼 표정이 굳어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린 축구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이들. '집을 돌려 달라'며 10여 일째 농성 중인 대전시 서구 용두동 철거민들이었다.

용두1지구는 7·8평 남짓한 소규모 주택이 밀집되어 있던 지역으로 중구청이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하여 지난 3월 21일 19가구가 철거되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중구청이 보상금을 턱없이 낮게 책정하였다"며 철거 당일까지 이주하지 않은 채 집 안에서 버티다 사지가 붙들려 끌려나왔다.

중구청이 의뢰하여 측정한 이 지역 토지가는 평당 80∼90만원. 한 가구당 평균 700만원의 보상금이 측정되어 변두리에 전세 얻기도 어려운 금액이다. 이에 주민들은 "우리 동네 좋게 만들어 준다고 해서 동의했는데 이렇게 돈 몇 푼에 쫓겨나게 될 줄 알았다면 동의 안 했을 거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적어도 '내 집'에서 속 편히 살던 주민들은 집터를 떠나지 못하고 3개월 째 천막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달 3일부터는 서대전 공원서 농성을 시작했다.

이날 서대전공원 한쪽 구석에서는 60·70 대로 보이는 노인들이 '강제철거 사죄하라'는 문구가 적힌 띠를 어깨에 두른 채 마늘을 까고 있었다. 그들에게 마늘 까는 일은 생계수단이다. 십 수년 혹은 수 십년 살아온 집을 하루 아침에 잃은 비통함에 가슴은 무너질망정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해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가 없다. 억울한 마음 누르고라도 다른 곳으로 이주가 가능한 사람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경우다.

용두동 문제는 지난 4월 공영방송 MBC에서 가오동 개발 문제와 함께 심층적으로 다룬 바 있다.

주민대책위원장 조야연(46)씨는 "방송에 나왔어봐야 구청이나 시청이나 끄떡도 안 한다"며 "전에 살던 만큼만 유지하며 살게 해달라는 게 무리한 요구냐"고 분개하지만 중구청과 시청 입장은 다르다.

주민들이 요구하는 보상금액은 평당 40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계산된 액수다.

시청 측 관계자는 "둔산 쪽도 평당 400만원씩 하는데 용두동 땅을 그 수준에 맞추려는 건 무리"라고 설명한다. 사실 주거환경개선사업은 도시개발공사처럼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 아니다. 때문에 개발 지구에 건설할 아파트를 해당 지역 철거민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주민들 요구대로 평당 400만원·600만원으로 계산하여 7·8 평 주택에 대한 보상금을 지불한다 해도 '내 집 마련'은 어림없는 금액이고, 졸지에 집을 잃은 주민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10평 이하 가옥주들에게 영구임대아파트를 제공하겠다는 대안에 대해서도 주민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마늘이나 까면서 근근히 먹고사는 노인네들이 무슨 수로 관리비를 마련하느냐"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문제는 사업 주체인 중구청이 '달동네'라고도 불리는 용두동 지역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모를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대안 없이 공사를 강행했다는 데에 있다. 누구를 위한 주거환경 개선 사업인지 그 명분부터 다시 검토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

용두동 외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추진될 지역은 중구에만 8곳이다.

조야연 주민대책위원장은 "지금은 선거기간이라 우선은 우릴 그냥 두고 있지만, 선거 끝나고 나면 더 많은 피해가 있을 것"이라며 "용두동 철거민들이 끝까지 싸워서 다른 지역 주민들의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전했다. 또 "농성 인원이 적을 뿐 실제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정치인이 누구일지 수백의 주민들이 후보자들을 주목하고 있다"며 지자체(지방자치단체) 선거 후보자들에게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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