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법무부는 지난 3월 12일 '불법체류 종합방지대책'을 발표했다. '불법체류 종합방지대책'의 골자는 불법체류자들에게 3월 25일부터 2달 동안 자진신고 기간을 주고 이 기간동안 자진신고를 하지 않으면 강력한 단속을 실시한다는 것.

자진신고 기간 동안 신고를 할 경우 최장 1년까지 출국준비기간을 주고 그 기간 동안 취업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당근'도 함께 제시됐다.

이 계획이 발표되자 3월 26일에 조선족 2000여명이 서울조선족 교회에 모여 '불법 체류 종합방지대책' 반대시위를 벌였고 4월 12일에는 조선족 500여명이 단식농성까지 벌였다.

민주노총 서울 경인지역 평등노동조합 이주노동자 지부(이하 이주지부) 소속 노동자들도 4월 7일 '미등록노동자 일제등록 거부와 합법화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고 추방반대를 외쳤다.

법무부의 방침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자 이주지부는 28일 1시 명동성당에서 농성발대식을 갖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 이틀째인 29일 오후 1시. 명동성당에 설치된 농성장에는 방글라데시 노동자 꼬빌(30) 씨와 비됴(29) 씨가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꼬빌 씨와 비됴 씨는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지난 주에 그만둔 상태다.

비됴 씨는 "10년 동안 한국에 있으면서 말도 배웠고, 맞으면서 기술도 익혔는데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며 한국정부에 서운함부터 드러냈다.

그는 이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그동안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우리 외국인노동자들은 만근수당도 없고 하루 빠지면 이틀 결근한 것으로 처리해요. 한 회사에서 4년 동안 일했어도 퇴직금 한 푼 못 받았구요. 처음에 한국말 몰랐을 때 망치가지고 오라고 그랬는데 뻰치가지고 와서 뻰치로 맞은 적도 있어요. 그래도 일하고 싶어요."

비됴 씨는 처음부터 불법체류자가 아니었다. 96년 한국에 들어올 당시만 해도 산업연수생으로 합법적인 외국인 노동자였다. 하지만 비됴 씨는 1년 2개월이 지나고 공장을 도망나온다. 그 뒤로 불법체류자가 된 것이다.

"산업연수생 월급이 40만원 정도 되는데, 한 달 생활비 제하고 나면 15만원이 남아요. 이것 3년 동안 모아도 처음 한국에 들어올 때 송출기관에 낸 700만원도 못 갚아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불법체류자가 되더라도 공장에서 도망나와야죠."

불법체류자 신세였기 때문에 비됴 씨는 사업주가 월급을 주지 않으면 아무 말없이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구타를 당해도 경찰서에 신고하지 못했다. 환풍기도 없는 가구공장에서 먼지를 마시며 일을 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못했다.

이렇게 해서 방글라데시에 보내는 돈은 30만원(다섯 식구가 한 달 동안 먹을 수 있는 쌀 값) 정도. 나머지 50만원 가량은 모두 한국에서 소비한다.

"가끔씩 어떤 분들은 우리가 한국에 있는 돈을 빼간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사실과 달라요. 똑같이 300만원 어치 일을 해도 한국사람에게는 300만원을 줘야 하지만 저희들에게는 100만원만 줘도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자꾸 저희들을 이렇게 추방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같이 농성에 참가하고 있는 이주지부 이윤주 위원장은 "한국인이 기피하는 3D업종에서 묵묵히 일하면서 한국경제에 큰 기여를 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정부가 고작 취한다는 조치가 추방이라니 이것이야말로 토사구팽 그 자체다"면서 "한국정부는 미등록 노동자에게 양국을 오가면서 자유롭게 노동을 할 수 있는 노동비자를 발부하고, 최소한 5년 동안 한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측의 입장은 불법체류자는 한국에서 추방돼야 한다는 원칙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법무부 체류심사과 이동휘 사무관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경제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하더라도 범법자에게 혜택을 주게 되면 또 다른 불법체류를 확산시킬 수 있다"면서 "불법체류자들은 이번 기회에 모두 고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반박했다.

아직 법무부와 이주지부의 입장차는 커 보인다. 비됴 씨와 꼬빌 씨는 정부가 자진신고 정책을 철회하고 노동비자를 발급해 줄 때까지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계속할 예정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