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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근로자의 날에>

선생은 근로자가 아니라서 이 날에도
출근해야 한단다.

노동자가 아니면
그럼 건달인가? 신선인가?

죽었다 깨어나도 육체적, 정신적 근로자이건만
노동자! 하고 입을 열면
도끼눈 뜨고 살매하는 인간들이 있다.

그들의 눈엔 아직도 선생이란 똥도 안 누고 사는 족속으로 여겨지는 것일까?
아니면 머저리 집단쯤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일까?

일꾼을 일꾼이라 말하면
오히려 눈총을 받는 세상
분명 참 낮일 수 없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사람이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대숲이 목소리를 높이고
돌들이 일어나 소리칠 것이다.

아직도 '발가벗은 임금님'의 나라 대한민국---


5월 1일이 '근로자의 날'이라고 적혀 있는 달력.
5월 1일이 '근로자의 날'이라고 적혀 있는 달력. ⓒ 김형태
같은 대한민국 달력임에도 이 달력에는 '세계노동자의 날'이라 적혀 있다. 아직도 우리는 냉전시대에 살고 있는가?
같은 대한민국 달력임에도 이 달력에는 '세계노동자의 날'이라 적혀 있다. 아직도 우리는 냉전시대에 살고 있는가? ⓒ 김형태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어느 달력에는 '세계노동자의 날'이라 적혀있고, 또 어느 달력에는 '근로자의 날'이라 적혀있다. 거의 모든 직장인들이 출근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사와 공무원은 출근을 해야 한다.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선생님, 왜 5월 1일에 쉬지 않나요? 선생님들도 노동자, 아니 근로자라고 해야 하나요? 노동자와 근로자는 어떻게 다르지요? 어쨌든 선생님들도 일하고 월급을 받는 분들이니, (선생님들이) 쉬면 우리도 학교에 하루 안 나오고 좋을 텐데…. 얘들아, 그렇지?"

지난 주 어느 반에서 수업을 하던 중 받은 푸념 섞인 한 학생의 질문이다.

"그러게나 말이다"하면서 그냥 웃고 말았지만, 퇴근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피식 웃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싶었다.

얼마 전 교장실에서 학년회의 중에 내가 "학기초라 일이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정말 담임교사의 일은 중노동(重勞動)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그랬더니 교장선생님은 대뜸 "용어 선택을 가려하라"며 일침을 가해왔다.

세상에 지금이 3공, 5공시대도 아니고, 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교사를 노동자라 칭하면 아직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다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일하는 사람'을 '노동자'라 하지 그럼 뭐라 한단 말인가? '노동자' 대신 '근로자'라 하면 '일하는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더군다나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가르치라고 해놓고, 정작 가르치는 일은 노동(일)이 아니고, 교사는 일하는 사람, 곧 일꾼(노동자) 아니라고 하니 학생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서울지역 교장협의회는 "스승의 날이 교육자의 노고(勞苦)를 위로하는 행사가 아니라 해마다 선물이나 촌지수수 문제를 부각시키는 바람에 부작용이 더 크다"며 "스승의 날을 자율 휴업일로 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5월 15일은 대부분의 학교가 문을 닫는다.

아마도 선생님들 중 누가 '스승의 날'을 만들어 달라고 한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원하지도 않은 스승의 날을 만들어놓고, 마치 도마 위에 생선을 올려놓고 난도질을 하듯 이맘때가 되면 단골메뉴로 '촌지' 운운하면서 마치 교사가 비리와 부정부패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떠들어댄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스승의 날이었지만, 이미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그 의미가 퇴색해 버렸다. 스승의 날을 뜻 깊게 보내라고 쉬는 것이 아니라 땅바닥에 내동댕이쳐가면서 촌지수수를 막기 위해 학교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라면 차라리 스승의 날을 없애는 것이 낫다. 말로는 '군사부일체'라고 하면서 걸핏하면 장대 끝에 올려놓고 흔들어대기 일쑤다. '스승 대접'을 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차라리 '노동자 대접'이라도 확실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5월 15일,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며 부끄럽게 쉬느니, 차라리 5월 1일 교육노동자로 당당히 하루를 쉬면서 노동의 신성한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 이것이 이땅을 살아가는 일선 교사들의 간절한 소망이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서울방송(SBS)와 국정넷포터 등의 매체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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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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