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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4일, 철도노조의 파업이 나흘만에 끝났다. 그러나 철도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철도노조가 줄기차게 요구했던 공공성 확보, KTX 건설부채 정부지급, 인력충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해고자복직 등 어느 하나 타결된 게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량 직위해제 등 파업참여 조합원 징계, 거액 손해배상청구 소송, 경찰 진압과정의 인권침해 논란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되레 늘어났다. 무엇보다 '국민을 위한 철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가 우리 사회의 큰 숙제로 놓여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철도파업이 남긴 과제를 짚어보기 위해 수배 중인 김영훈(38) 전국철도노동조합 위원장을 7일 저녁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김 위원장은 불법파업에 의한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지난 1일 전국에 지명수배된 상태이다.

"불법연행한 조합원 내보내는 조건으로 '복귀각서' 쓰게 했다"

김 위원장은 "공공철도를 요구하다 '공공의 적'으로 몰렸다"면서도 "명분 없는 파업이 결코 아니었다"고 단언했다. '직권중재' 자체도 문제지만, 중재과정에 하자가 있었기 때문에 현행법으로도 "불법파업이 아니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정부 발표만 믿고 '직권중재로 불법이 됐는데도 노조가 (파업을) 강행했다'고 몰아친 언론의 책임도 크다는 것. 이와 관련, 이번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중앙노동위원회 중재과정의 절차상 문제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특히 김 위원장은 "경찰이 산개투쟁 조합원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일어났다"며 국가인권위원회 진정과 별도로 국제노동기구에 제소할 뜻을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경찰은 현행범도 아닌 조합원을 불법연행하고, 심지어 찜질방에서 쉬는 조합원까지 강제연행했다고 지적했다.

또 경찰은 불법연행된 조합원을 내보내면서 '임의동행 동의서'에 서명하게 하는가 하면 '복귀각서'를 쓰는 조건으로 풀어준 것도 헌법의 강제노역 금지조항을 어긴 것이자 국제노동기구의 '강제노동폐지 협약·조약'도 위반했다는 것.

"비정규직 해결 없으면 투쟁 끝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해결하는데 공공부문도 일정한 역할이 있다"며 쇄신된 공기업 노조의 책임성을 강조했다. 이번에 철도노조가 내걸었던 '철도 상업화 반대, 철도산업 비정규직 해결' 등의 요구도 그같은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KTX 여승무원들과 앞으로도 함께 투쟁할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10조원의 고속철도 건설부채와 관련, 그는 "철도상업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에 이어 "정부가 (부채를) 인수해 구조적인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대량 직위해제 등 철도공사의 초강경대응에 대해 "안전운행을 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군사정권 방식으로 노동자를 잘 탄압한다는 이유로 보수언론의 칭송을 받고 있는 이철 사장에게 연민의 감정마저 든다"고 꼬집었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백기투항 아니다, 양극화 등 사회문제 제기도 성과 "

김영훈 위원장은

김영훈 전국철도노조 위원장은 부산 사나이다. 1992년 옛 철도청에 기관사로 입사해 무궁화호를 몰았다. 어용노조로 꼽히던 철도노조 개혁을 위한 '위원장 직선제' 쟁취로 싸우다 회사 눈밖에 나 2000년 서울로 발령이 났다.

2001년 노조가 민주화된 뒤 정책실장, 대변인 등을 거쳐 2004년 3월 위원장에 취임했다. 2000년부터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김 위원장은. 지난 2월 22일 아들의 유치원 재롱잔치 참석차 잠시 부산에 다녀온 뒤 수배까지 겹쳐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 4일만에 파업을 접고 복귀했다. 이를 '백기투항'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일시적이고 조직적인 퇴각이며 파업에서 현장투쟁으로 전환한 것이다. 복귀 결정을 할 때 1만명의 조합원이 남아있던 데서도 드러나듯 동력이 없었던 게 아니다. 정부는 복귀율에만 연연하지 말고 반이성적 탄압에도 많은 조합원들이 계속 남아있던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당시 KTX 기관사들은 복귀했지만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 일반열차 기관사들은 거의 남아있었고 KTX 검수원들도 90% 이상 복귀하지 않고 있었다. 열차는 기관사만 있다고 해서 운행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안전점검 등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노조는 공사가 KTX 기관사 복귀에 고무돼 정비작업이 미비한 상태에서 운행할 경우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고 판단, 복귀를 결정한 것이다."

- 이번 파업에서 성과 없이 대량징계 등의 부담만 안고 복귀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번 투쟁을 준비하면서 공기업 노조가 어떤 요구를 제시하고 싸워야 하는가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 우리는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라는 본질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공기업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철도상업화 반대, 공공성 강화' 'KTX 여승무원 등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내건 것도 그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명분 없는 파업'이라고 떠들어대지만 실제로는 명분이 뚜렷한 파업이었다. 우리 사회는 공공부문이 매우 취약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는 (위원장 직선제를 쟁취한) 2001년 이전의 철도노조처럼 사측과 담합했거나 이른바 '직권중재'에 눌린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취약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공공부문이 부패했다거나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와 관련 있다. 그런 비판을 하는 시민을 탓할 게 아니라 공공부문의 건강성을 가로막는 요소를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근본적인 사회문제를 제기하는 방향으로 민주노조운동이 전환해야 함을 철도노조가 보여줬다고 본다. 우리는 (정규직 중심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를 의식적으로 추구했다.

그리고 파업에 들어갈 무렵 시민들에게 '조금만 참아주시면 오래도록, 편안하게 모시겠다'고 호소했다. 보수언론이 이야기하는 민영화가 아니라, 공공성을 강화해 공공부문을 제대로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철도를 요구하다가 '공공의 적'으로 몰렸지만 철도노조의 투쟁은 승리하고 있으며,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다. 합의문 없이 복귀했음에도 조합원들이 패배감에 젖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현행법으로도 불법파업 아니었다"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정부와 공사측은 '직권중재' 규정상 이번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했했다.
"그렇지 않다. 직권중재 자체가 문제가 많은 조항이기도 하지만 설령 그 조항을 따르더라도 이번 파업은 불법이 아니다. 중재절차에 문제점이 많았다. 엄밀히 말하면 직권중재란 현행법상 존재하지 않는 법률용어다. 1997년 노동법이 개정되면서 사라진 용어며 지금은 '중재'만 남아있다.

중앙노동위원장이 '직권으로' 중재에 회부할 수 있던 데서 '특별조정위원회의 조정과 공익위원의 진술'을 들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번 경우 특별조정위원회에서는 중앙노동위원장에게 '노사교섭 상황을 지켜보되 쟁의행위의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 중앙노동위원장이 중재에 회부할 수 있다'고 조정했다. 그러나 중앙노동위원장은 지난해 12월 17일 중재회부 결정을 보류했다가 2월말이 돼서야 회부했다.

그런데 노조가 2월 7일 '교섭 결렬시 3월 1일 총파업'을 결정하고 KTX 승무원 사복탑승 투쟁 등 실질적인 쟁의행위를 할 때도 가만 있더니, 마지막에 가서야 중재회부 결정을 내렸다. 개정 노동법의 취지에 어긋날 뿐 아니라 심각한 절차상 오류다. 오로지 파업을 불법화하기 위해 중앙노동위원회가 그런 결정을 했다고 본다. 정부 발표만 믿고 '노조가 불법파업을 강행했다'고 몰아친 언론도 반성해야 한다. 또 이번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중재과정의 절차상 문제에 대해서는 소송을 낼 것이다."

- 현장에 복귀하면서, 상황에 따라 재파업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했는데.
"국민의 불편을 수반하는 문제이기에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금처럼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된다면 조기에 다시 돌입할 수도 있다. 다만 이달 15일까지는 중재기간이므로 우선 교섭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 뒤엔 불법파업이라고 부를 만한 법적 근거가 없다.

현재 공사측은 '노조 죽이기'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측도 폐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개인손해배상청구 방침을 고수하고 있고, 본인 동의 없이 비연고지로 전출시키지 못하게 한 것 등을 인사상 독소조항이라며 바꾸겠다고 한다. 2244명을 직위해제하면 검수 등 열차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도 강행하겠다고 한다. 안전운행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공사측이 이성을 찾아야 한다."

- 이번에 비정규직 문제를 전면에 내걸었지만 KTX 여승무원들만 남겨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철도산업 내 비정규직 문제 해결 없이 투쟁을 중단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현장복귀 결정을 내릴 때 KTX 여승무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 복귀 후에도 KTX 여승무원의 투쟁에 정규직 조합원들이 함께 하고 있다.

우리는 1년 전 정규직 조합원들의 조합비로 비정규직을 구호할 수 있게 하는 등 규약을 개정하고 지속적으로 교육했다. 지난 1년간 조합원들이 많이 바뀌었다. 이번에 불가능해보였던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이뤄냈고 정규직이 비정규직 문제로 파업을 하는 등 소중한 연대를 경험했다.

현재 KTX 여승무원은 철도공사에 직접 고용된 것도 아닌, 하청 비정규직이다. 그러나 정규직과 똑같은 조합원이며 조합에서 아무런 차별도 없다. 교섭과정에서 '일괄타결' 원칙을 유지한 이유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서다. 철도공사가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들도 파업에 많이 참여했는데 현장복귀 뒤 공사가 이들의 계약을 해지하려 했지만 노조가 다시 원상회복시켰다."

"비정규직도 동등한 조합원, 정규직 의식 많이 바뀌었다"

- 파업 이외 다른 길은 없었나.
"노조가 도저히 합의할 수 없는 조건이 제시됐다. 가령 KTX 여승무원 문제의 경우 사측은 '자회사 정규직화'를 내놨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승무원들에게 상품판매까지 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 신규사업이 대폭 늘어났음에도 사측은 인력충원을 1명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 외주화 등을 수반할 수밖에 없고 열차 안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높아진다. 비정규직 상황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고 안전운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조건에 합의할 수는 없지 않은가."

- 민주노총 총파업과 시점이 맞물렸는데.
"비정규법안 처리를 둘러싼 정치권의 상황이 2월말 갑자기 바뀌면서 우연히 일치하게 됐다. 일부 언론은 철도노조가 민주노총 지침에 따라 무리하게 파업했다는 식으로 보도했지만 그렇지 않다. 철도노조 파업은 그 전부터 예고돼 있었다. 오히려 민주노조 진영의 지원과 엄호가 약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 새 지도부가 들어선 지 1주일밖에 안되는 등 우리 자체적으로 길을 열어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 경찰이 산개투쟁한 조합원들을 연행하면서 인권침해를 했다고 인권위원회에 진정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국가권력이야말로 구태를 벗어야 한다. 지난해말 농민시위 때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농민 2명이 숨지지 않았나. 이번에도 경찰이 무력진압을 통보, 불행한 사고를 막기 위해 산개를 결정했다. 선로나 시설물을 점거한 것도 아니고 평화롭게 직장에서 이탈했을 뿐이다. 그런데 경찰은 헬기까지 동원해 찜질방에서 쉬는 조합원들까지 강제연행했다.

영장이 발부된 26명을 제외하면 현행범도 아닌데 불법 연행했다. 그들도 그런 행동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걸 안다. 그 증거로 조합원들을 경찰서에서 내보낼 때 치졸하게도 '임의동행 동의서'에 서명하게 했다. 내보내는 조건으로 '복귀각서'를 쓰게 한 것도 명백한 강제노역금지(헌법) 위반이다. 강제노역금지 위반과 불법 행에 대해 국제노동기구에 제소할 예정이다."

"건설부채 문제, 노조 핑계 대지 말라"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이번 단협의 쟁점은 아니었지만 '철도 상업화' 우려의 근원에는 10조원이 넘는 부채 문제가 있다.
"노조는 2003년 6월 파업에서 부채 때문에 철도의 공공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때 우리는 거의 미친 놈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대통령이 올해 연두기자회견에서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임기내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이례적으로 발표했다. 2003년 공권력을 투입했던 정부가 노조에서 우려했던 내용을 시인하고, 당시 십자포화를 퍼부었던 언론이 이를 받아는 걸 보면서 깜짝 놀랐다.

노조의 일관된 주장은, 고속철도 건설은 국책사업이니 외국과 마찬가지로 건설부채는 국가가 인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처음에 정부가 발표했던 것보다 돈이 몇 배나 더 든 것도 설계변경, 차량 문제, 비리 등 때문 아닌가. 건설부채를 공사에 떠넘길 경우 공사는 상업화로 갈 수밖에 없고 그 부담은 이용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대통령 연두기자회견 뒤 꾸려진 정부차원의 태스크포스팀이 5월에 그 결과를 발표하는데 이를 주시하고 있다. 공사는 파업으로 더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며 책임을 미루는 모양인데, 노조 핑계를 댈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정책실패를 인정했으면 바꿀 방향대로 추진하면 된다. 솔직히 노조가 이런 문제를 모른 척하고 정년만 마칠 수도 있다. 그러나 공기업노조라면 공공성 문제를 반드시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민주화운동을 하다 사형선고까지 받지 않았나. 그런 사람이 이제는 개혁도 제대로 못하면서, 군사정권 방식으로 노동자를 잘 탄압한다는 이유로 보수언론의 칭송을 받고 있다. 그의 경력에 비춰봤을 때 자랑스러울까, 연민의 감정마저 든다.

이철 사장이 내정됐을 때 보수언론 기자들이 노조 사무실에 진을 쳤다. 비판하는 코멘트를 듣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거부하자 그들은 '낙하산'이라며 이철 사장을 공박했다. 당시 우리 내부에서도 '낙하산에 보은인사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의 개혁성을 높이 사자는 논평을 냈다. '오일 게이트'로 전임 사장이 물러난 때인 만큼 공사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심정에서였다. 그러나 지금 모습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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