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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2004년 3월에 조그마한 식당을 열었습니다. 아직 서른도 안된 나이에 나의 가게를 가진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지만, 조그맣게 시작해서 성공해 보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준비랍시고 여러 창업 사이트도 들락날락 거리고, 생활 정보지에 나온 임대 광고도 메모하면서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습니다. 수중에 가진 돈이라고는 별로 없었기에 장사를 시작하려면 최소한 자기자본비율이 50%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말도 나의 굳건한 의지로 돌파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넘겨 버리고,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위의 충고도 기우라 생각했습니다.

시작은 작았지만 장차 프랜차이즈로 성공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도 가슴에 가득 찼습니다. 저의 그런 의지를 믿어준 언니에게 빌린 돈으로 작은 평수의 가게를 얻고 소상공인지원센터에 사업 계획서를 제출하고 운영자금을 대출받았습니다.

나의 첫 가게, 그 가슴 설레던 날들

▲ 2004년 3월 문을 열었던 저의 첫 식당. 울고 웃던 수많은 날을 뒤로 하고 결국 폐업 신고를 했습니다.
ⓒ 오마이뉴스 조경국
오랫동안 주인이 없었던 가게를 수리하고, 주방기기들을 사러 재래시장을 돌아다니고, 장차 나의 손님이 될 주변 사무실들에서 설문조사도 하면서 저의 꿈은 많이 자라났던 것 같습니다. 홈페이지도 만들고 간판도 달면서 저는 많이 기뻤습니다.

아르바이트로 고깃집에서 일한 것이 다였기에 야간에 김밥집에서 김밥을 말며 식당일을 조금 익히기도 했습니다. 육체적으로 고단했고, 절대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렸지만, 멋진 가게 '사장'이 되겠다는 희망이 더욱 컸기에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정신없는 시간들이 지나가고, 처음 개업을 하던 전날 누구나 그러하듯이 잠도 잘 안오고, 내일 무슨 옷을 입을지 고르기도 하며 설렜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개업 첫날 실수도 많았고, 그런 실수 때문에 다시 손님들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으로 첫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바뀐 메뉴표를 들고 인근 사무실로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홍보 전단도 뿌리고, 달랑 두 개뿐인 테이블 때문에 돌아가는 손님들을 아쉬워하면서 저의 일상은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장사를 하면서 느끼는 것을 여기 <오마이뉴스>에 적으며 하루를 반성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격려도 많이 받았습니다.

장사는 꿈으로만 되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장사라는 것이 저의 꿈과 희망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낯설었던 풍경들이 익숙해지고, 식당일 역시 손에 익숙해져 갔지만, 주문량은 점차 줄어들고, 2명의 배달 이모를 한 명으로 줄이게 됐습니다. 가게세도 점차 밀리게 되고, 주인의 듣기 싫은 독촉 전화를 받게 되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일확천금을 벌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성실히 그리고 꾸준히 한다면 테이블이 두 개뿐인 식당도 조금씩 넓혀질 거라 믿었지만 현실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냉정했습니다.

▲ 장사는 제 꿈과 포부만으로 되는 게 아니더군요. 나빠진 경제 상황은 더이상 식당을 운영할 수 없게 했습니다. 앞으로는 좋은 날도 오겠지요(위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계가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조경국
장사가 잘 안 되니 경제적인 어려움 역시 커지는 게 당연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싫고 두려웠던 것은 저의 인상이 변해가는 것이었습니다. 장사를 시작하기 전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가졌던 당당함이 하루하루 맞춰야 하는 돈 걱정으로 인상이 구겨진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부담이 되고 싫어졌습니다.

장사가 안 된다고 판단되면 빨리 접는 게 손해를 덜 본다는 충고도 많았지만, 꿈을 접는 것 같아 많이 망설여지기도 하고, 배달하는 구역을 좀 더 넓혀가면서 활로를 찾다 보면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장사를 접게 되면 당장 해결해야 하는 채무들이 많았는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막막함도 결정을 미루는 데 크게 작용했습니다.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 글도 자주 썼는데, 그 내용도 점차 단순해지고 피폐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사를 잘하지도 못하는데, 더는 쓸 내용도 없는 것 같아 여기에 글을 적지 못했습니다.

즉시 처리된 폐업신고... 눈물 왈칵

그리고 21일 오늘 폐업 신고를 했습니다. 처음 사업자등록을 하기 위해 들어섰던 세무소에 가서 폐업 신고서를 작성하고 순서를 기다리는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날 남들보다 조금 더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하고, 긴 인생을 본다면 분명 좋은 경험이었노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습니다.

창업을 준비하고, 실제 장사를 하면서 보낸 물리적인 시간과 그 속에서 변해간 내 모습에 비해, 폐업처리는 정말 몇 분 걸리지 않았습니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처리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담당자가 괜히 심술스럽고 미워 보이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오랜 시간 부부의 연으로 살다 이혼 수속을 밟는 사람들도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오늘따라 햇볕은 좋아서 봄기운이 나는데, 햇빛 때문인지 마음 때문인지 얼굴은 자꾸 찌푸려집니다. 세무서에서 나온 다음 다시 구청에 가서 폐업신고를 했습니다. 역시나 작성해야 하는 서류는 단순했고 '즉시처리'되었습니다. 1월부터 지금까지의 등록세는 내야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집으로 오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돈 잃더라도 나 자신은 잃지 말자

▲ 약 3년여의 식당 운영 뒤에 많은 채무를 지게 됐지만 마음만은 다치지 않으렵니다. 지금 마음을 다치면 돈을 잃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테니까요.
ⓒ 오마이뉴스 조경국
이런 것에 마음을 다치면 돈을 잃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을 거라는 생각으로 꾹 참으며 앞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당장 빚을 갚아야 하는 일이 가장 급하고, 내놓은 지 오래됐지만 나가지 않는 가게 처리, 그리고 더 많은 날을 살아가야 할 저의 인생이었습니다.

나보다 더한 사람들도 많다는 주변의 위로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로 지금 저는 제 문제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돈을 잃더라도 나 자신은 잃지 말자고 그렇게 경계했는데, 위축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본 일도 별로 없었는데,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채무자가 되어 살아가야 하고, 성공만을 위해 살지는 않았지만 '실패했다'는 자괴감이 한동안 제 머릿속에는 가득 차 있을 것 같습니다.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장사를 정리했다는 말을 하기도 싫었고,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도 싫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이 걱정을 해주어도 '당신들은 경험해 보지 못해 잘 모를 거야'라는 못난 생각으로 그런 말들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정말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글을 적을까 말까도 고민이 되었습니다. 뭐 좋은 일이라고 글을 올리나 싶기도 하고, 혹시나 저를 아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저를 보게 될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글을 올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자신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앞으로 남들보다 좀 더 고생을 해야겠지만, 잘 정리하고 이겨내야 하기에 제가 처한 현실을 다시 돌아보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나의 마음을 다잡고 싶었습니다.

젊은 날의 수업료, 비싸게 치렀습니다

흔히들 일이 실패하더라도 사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장사를 하면서 그리고 실패하면서 저 자신을 많이 잃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 두렵기도 합니다. 변해가는 모습이 정말 싫었는데, 앞으로 견뎌나가야 할 현실들에 제가 많이 변해가고 저의 마음을 잃어갈까 봐 겁이 납니다.

젊은 날의 수업료치고는 조금 비싼 것 같습니다. 남들보다 좋은 학교를 다녔기에 당연히 수업료도 비싸다고 훌훌 털어버리고 싶습니다. 폐업 처리를 하던 담당자들처럼 그렇게 무덤덤해질 수 있도록 자주 웃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잘 적지 못했던 사는 이야기도 다양하게 적을 수 있도록 시선을 저에게만 돌리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계속 다짐은 하는데 가슴속에서 울컥울컥 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밤이 왠지 길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장사를 시작할 때 많은 격려를 해주셨던 여러분들과 저의 글을 읽어 주셨던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삶이 훨씬 더 소중할 거라 믿으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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