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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정리에 놓인 철로
ⓒ 최삼경
세계적인 냉전체제의 와해와 남북의 화해 분위기가 상승하고 있는 이즈음, 굳이 ‘정치적, 이념적 볼모공간이자 냉전구조의 사생아’인 민통선 마을에 대해 언급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러나 철원, 특히 접적지역 곳곳을 다녀보면 아직도 공존, 상생, 평화란 말에서 구체적인 현실감을 느끼기란 쉽지 않았다. 바다로, 육로로 금강산을 관광하는 시대라는 어떠한 단서도 찾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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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보다는 민통선 마을을 통과하는데 그 절차나 심사기준이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이곳 철원 민통선마을에서만큼은 전쟁은 계속 진행형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철원 대마리가 소설의 주요무대로 되어 있는데, 예전에는 이곳도 민통선마을 안에 있었으나 지금은 민통선 검문소가 위쪽으로 이동하여 제법 많은 주민들과 건물들이 들어서 왁자하였다. 이곳은 또한 남북한 이산가족의 면회소를 설치하는 주요 후보지로도 거론되고 있다.

전쟁막바지 철원의 평야지역을 두고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 이유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이 곳 마을의 논과 밭에는 우리네 현대사의 질곡과는 관계없이 풍성한 수확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논두렁과 1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지뢰’라는 삼각표식이 날카롭게 번뜩이는 살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소설은 상사로 제대한 아버지가 집과 땅이 무상으로 주어진다는 이유만으로 민통선 마을에 고단한 삶의 짐을 풀게 되는 한 가족의 주인공인 초등학생의 눈으로 시작한다. 적당한 기승전결 구조와 갈등의 기제를 갖고 있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전인적 관찰자에 의한 다큐멘터리를 읽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차분하고 무겁게 이어진다.

‘낙타와 바늘구멍’, ‘움베르토 에코의 부분집합’, ‘이방인’ 등 소설 속 부제에서도 느껴지듯이 책 곳곳에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비장함이 배어 있다. 작가는 1년 동안 민통선 주민으로서 적응하고자 했던 가족의 눈물겨운 노력이 결국 허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강조한다. 민통선 사람들, 본질적으로 그들은 유폐된 삶을 살고 있고, 그러한 정치적 볼모로 묶인
그들의 처지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눈길이 작품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 노동당사
ⓒ 최삼경
그곳은 말하자면 주인공이 또래의 여학생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검문소를 지나 놀러가서 보았던, 이념의 무게에 짓눌리고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노동당사 건물의 잔해와 같은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 곳 지하실, 시간의 깊이와는 반대로 겁 없는 아이들의 소꿉놀이를 위해 한두 뼘도 안 되는 깊이에서 파 올려지는 인골들은 정작 이념의 화석이었다.

어디엔들 원통하고 갑작스런 죽음이 없으랴. 이유도 까닭도 없이 들판에 버려진 죽음들을 지난 시간의 풍경이라고 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이곳이 진정한 공존, 상생의 땅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2000년부터 활기차게 시작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면회소 설치 등 양쪽 합의사항에 대한 지금까지의 지지부진한 사업진행을 보고 있노라면 벼랑 끝 같은 조바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작가 임동헌(46)은 실제로 민통선 마을에서 산 적이 없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퇴비용 풀을 두 리어카씩이나 해야 하는 숙제가 있었던 그 시절, 그 아이들이 숙제를 도맡아 해주는 등 많은 친분과 교감을 나누었다 한다. ‘민통선 마을’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세상, 세상을 그 속성대로 구분하자면 몇 개의 세상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이 얼마이든 아마 민통선마을 만큼 전혀 이질적이고, 폐쇄된 세상은 흔치 않으리라

▲ 승일교
ⓒ 최삼경
이승만과 김일성이 반반씩 지었다하여 이름 지은 ‘승일교’를 지나고, 화천과 철원 사이의 험한 준령을 시원하게 뚫은 ‘하오터널’을 지나면서도 마음은 왠지 끝끝내 묵적지근 하였다. 그것은 최소한 우리의 자의에 의한 결정도 아니었던 지금의 분단상황 전반에 대한 안타까움과 강원도, 접적지역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또 실제적으로 느끼는 소외와 고통의 부피를 조금이나마 가늠하고 배려할 어떠한 통로도 부재하다는 현실에서 오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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