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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더 잘할거란 다짐을 하는 은평축구단
다음엔 더 잘할거란 다짐을 하는 은평축구단 ⓒ 김미옥
15일 아침 8시에 우리 서울 은평구 선수단은 버스를 타고 오룡경기장으로 모였습니다. 축구선수들만 모여 다시 입장식을 한다고 합니다. 유소년부, 장년부, 노년부, 여성부 선수들과 일본선수들이 함께 간단한 입장식을 했습니다.

간단한 입장식이 끝나고 우리가 경기할 천안연암대학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장년부는 입장식을 한 오룡경기장에서, 노년부는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여성부는 연암대학에서 경기를 펼치는데, 우리는 다시 30여 분을 차를 타고 가야 했습니다.

학교 앞 한 식당에서 한참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여유를 부리며 경기장에 들어가니 벌써 다른 팀의 경기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9개팀이 참가한 이번 여성부 대회는 두 개조로 나누어 예선을 치르는데 모든 경기는 토너먼트방식입니다. 한 번 지면 다신 기회가 없는 방식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 초반부터 여성 축구가 본격적으로 육성되기 시작했는데 그 무렵의 학생선수들이 이제는 은퇴하고 여성(주부)축구단에 들어가 활동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여성축구의 저변을 확대하고 생활 체육으로 자리잡기 위한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귀동냥으로 들어보니 전국에 많은 주부축구단이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팀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긴장된 마음을 풀어보려고 했지만 잘 안 됐습니다. 하기야 잠깐 육상을 하던 학창시절에도 전국무대에 서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경기 시간이 다가오면서 우리 팀도 슬슬 몸을 풀었습니다. 간단한 워밍업과 볼터치로 몸을 풀며 본부석에 가 선수 확인을 했습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여성선수는 모두 주부이어야 하며 한 경기에 20대 2명, 30대 6명, 40대 이상 3명이 뛸 수 있습니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인데, 이 부분도 형식적인 면이 많았습니다. 우리팀의 가장 약한 부분이 이것인데, 20대 선수는 아예 없고 30대도 겨우 1명 바로 나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4~50대 선수이다 보니 체력적으로 많은 열세를 예상했습니다.

드디어 우리가 경기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와 시합을 할 팀은 인천광역시 팀입니다. 인천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반 초반은 탐색을 하고 전반 후반에 강하게 공격을 펼치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여성팀은 첫 골이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전반에 많은 힘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4-3-3전술입니다.

"삐익~."

마침내 심판의 휘슬 소리에 맞춰 인천팀의 선공으로 전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비교적 젊은 선수로 이루어진 인천팀은 정확한 패스로 우리 진영으로 압박해 오고 있었습니다. 긴장한 탓에 우리 수비선수들이 찬 공이 멀리 나가지 못했습니다. 다시 공을 빼앗으려다 반칙을 했습니다. 중앙선에서 약간 벗어난 지역이었습니다. 별 걱정없이 킥하는 상대선수를 바라봤습니다.

오룡경기장에서의 축구선수단 입장식
오룡경기장에서의 축구선수단 입장식 ⓒ 김미옥
인천팀의 20번 선수가 부드럽게 공을 차 올렸습니다. 앗! 그렇게 멀리서 그렇게 강하지 않은 듯하게 찬 공이 우리 골대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문지기가 손을 써 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왼쪽 구석으로 꽂혀버렸습니다. 전반 5분이 채 경과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어지간한 남자 선수들보다도 정확하고 멋진 킥이었습니다. 그저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괜찮아."
"우리도 집중해서 해보자! 은평 화이팅!"
"화이팅!"


주장을 비롯한 미드필더들이 화이팅을 외칩니다. 나도 정신을 차리고 화이팅을 힘차게 외쳐봅니다. 전열을 가다듬은 우리팀도 상대 수비를 압박하며 공격을 했습니다. 여러 번의 공격이 수비수에게 막히다가 마침내 기회가 왔습니다.

전반 15분경이었습니다. 오른쪽 날개를 맡았던 나를 향해 공이 패스됐고, 나는 잽싸게 돌아서며 공을 앞으로 툭 차 놓았습니다. 빠른 발을 이용해 몰고 가니 문지기와 단독으로 맞서는 상황이 됐습니다. 문지기는 오른쪽으로 자리를 잡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간 왼쪽으로 골대가 훤하게 보였고 그 때 강하게 오른발로 차 넣었습니다. 당연히 골인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공이 골대를 맞고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참으로 당황스러웠습니다. 나는 튀어나오는 공을 엉겁결에 다시 찼지만 골대를 비껴 끝선으로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골대 앞에는 우리 주장이 단독으로 있었다고 합니다. 살짝 옆으로 밀어만 줬어도 골을 넣을 확률이 높았는데, 당황한 나머지 미처 보지 못한 것입니다. 경험부족이기도 하구요.

상대 수비수를 앞지를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에 우리팀은 계속 나에게 공을 줬고 나는 아까와 같은 상황을 다시 만들려고 했습니다. 잠시 뒤 먼저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고 이번엔 좀 더 정확하게 차려고 인사이드킥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너무 약했는지 골대 앞에서 공이 너무 천천히 굴러가 이대로 있다간 문지기에게 잡힐 판입니다.

나를 비롯한 우리 팀 세 명의 공격수는 일제히 문전으로 달려들었습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공을 골대 안으로 차 넣으려고 했고 수비수는 걷어내려 했습니다. 문지기는 공을 잡으려다 워낙 혼전이다 보니 놓쳤습니다. 혼전을 거듭하다 마침내 우리팀 주장이 골문 안으로 밀어넣었습니다. 골인이었습니다. 상대방이 오프사이드 반칙이라고 주장했지만 심판은 골인으로 인정했습니다. 1-1 동점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뒤 우리팀은 미드필드에서는 밀리는 경기를 했지만 수비수가 잘 막아냈습니다. 일단 공을 잡으면 상대 수비수 사이로 찔러 넣어주는 패스를 주로 했지만 더이상의 추가골을 넣지 못했습니다. 전반 25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잘 했어요. 후반에 체력 잘 안배하시구요."
"그래, 우리가 조금은 우세한 것 같으니, 한발만 더 뛰자."


코치와 문지기 언니가 말했습니다. 후반전이 되어서는 코치의 말대로 체력적 열세와 전반전에 읽혀버린 오른쪽 공격라인이 막혀버렸습니다. 왼쪽 공격라인을 가동했지만 번번이 골에어리어 근처에 가서 수비수에게 막혀버리곤 했습니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동안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간간이 상대 20번 선수에게 아슬아슬한 킥을 몇 번 허용했습니다. 특히 이 선수는 두 번의 코너킥을 직접 골로 연결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살짝 골대를 벗어났습니다. 정말 무서운 킥입니다. 결국 후반전도 득점 없이 비기고 경기는 1대 1로 끝났습니다. 승부차기로 결정을 지어야합니다. 평소에 승부차기를 연습하긴 했지만, 그래도 긴장이 됐습니다.

다른 팀이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다른 팀이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 김미옥
인천팀에서는 주장 완장을 한 선수가 첫번째로 공을 찼는데 골대 오른쪽 구석으로 정확히 들어갔습니다. 우리팀에서는 주장이 첫번째로 공을 찼습니다. 킥을 하는 순간 모두가 숨을 죽이고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믿었던 언니의 공이 힘없이 문지기 앞으로 갔습니다. 실망하는 우리팀에게 보란듯이 상대 두번째 선수가 또 성공을 했습니다.

다음엔 내 차례였습니다. 이번에도 공을 못 넣으면 정말 이대로 지고 말지도 모릅니다. 방망이질 치는 마음을 가다듬고 왼쪽 구석을 보고 강하게 찼습니다. 생각보다 느리게 간 공이 다행히 그물을 출렁였습니다. 그 뒤 양 팀 네번째 선수까지 모두 성공을 했습니다.

이제 각각 한 명씩만 남았습니다. 인천팀에서 문지기를 보던 선수가 킥커로 나서 오른쪽 골대쪽으로 찼습니다. 그런데 정말 다행히도 골대를 맞히고 나왔습니다. 우리팀 마지막 키커는 우리가 믿는 10번 미드필더였기에 역전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승부차기는 아무도 모르는 법! 그 유명한 베컴 선수도 실축하는 승부차기, 우리팀 10번 언니가 실축을 하고 말았습니다. 3-4로 지고 말았습니다. 정말 아까웠습니다.

축구경기에선 경기 중 골대를 맞추면 진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전반에 내가 골대를 맞춰서 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이길 수도 있었던 경기를 놓친 것 같아 정말 아쉬웠습니다.

“잘했어. 최선을 다했잖아."
"그래, 다음에 기회가 또 있을 거야."
"자, 기운 내."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저마다 한마디씩 했습니다. 그래도 얼굴이 펴지지 않으니 수비를 보던 언니가 얘기합니다.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공이 자꾸 빗나가는 거 있지."
"멀어도 전국대회 있으면 자꾸 나가봐야겠어."


아쉽지만 우리는 경기장을 나와 짐을 쌌습니다. 졌으니 서울로 올라가야지요. 다음을 기약하면서요. 전국대회 첫 출전에서 당한 패배가 자꾸 여운을 남깁니다. 하기야 첫술부터 배부를 수는 없지요. 난생처음 나온 전국대회 시합에서 승리하기를 바란 건 어쩌면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도 전무했구요.

이번 대회 우승은 경기안산팀이 하고 준우승은 충남연기군팀이 했습니다. 우리도 다음 대회에는 입상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연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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