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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취임 2주년 기념 국정연설을 하는 노무현 대통령.
지난 2월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취임 2주년 기념 국정연설을 하는 노무현 대통령.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3월 4일 청와대에서 방한중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깜짝 놀랄만한 발언을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초청해주면 평양에 날아가 김 위원장과 속내를 터놓고 진지하게 얘기하고 싶다"고 메가와티 전 대통령에게 대북 '구두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메가와티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김정일 위원장 주최로 평양에서 개최할 것을 제안한 것이었다.

노 대통령의 입장에 변화가 온 것 아니냐는 관측 불러일으킬 만한 것

따라서 노 대통령의 이와 같은 대북 메시지는 북핵 문제의 장기적인 교착 및 악화를 계기로 그동안 '6자회담을 통한 선(先)북핵 문제 안정화, 후(後)정상회담 개최' 원칙을 고수해온 노 대통령의 입장에 변화가 온 것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다.

3월 4일 당시 오찬 회담에는 노 대통령과 메가와티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권진호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과 정우성 대통령 외교보좌관이 배석했으며, 메가와티 측에서는 남편인 타우픽 키에마스 의원과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가 배석했다.

그러나 청와대 대변인의 공식 브리핑 내용에는 "12시부터 메가와티 전 대통령과 오찬회담을 했는데 특별히 브리핑할 내용은 없다"는 것과 "주로 쓰나미(지진해일) 피해 관련 위로와 감사 그리고 협력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는 것이 전부였다.

이틀 뒤에 대북 메시지의 내용 및 발언 배경에 대한 확인 취재에 들어가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마지못해 사실 확인요청에 응했다. 그러나 이 고위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그와 같은 발언을 한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 대신에 보도시점을 유예해 달라고 '부탁'했다.

우선 "김정일 위원장이 초청해 주면 평양에 날아가서 김 위원장과 속내를 터놓고 진지하게 얘기하고 싶다"고 말한 노 대통령의 핵심 메시지 내용은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고위 관계자는 다만, 그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는 않았다.

"인도네시아는 중국·러시아와 달리 이해관계 없는 '부담 없는 중재자'"

그 배경은 두 가지로 추측되었다.

첫째, 의도적으로 의미를 축소했을 가능성이다. 가능한 한 그 의미를 축소해야 언론이 비중 있게 다룰 가능성 또한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고위 관계자는 3월 6일 사실 확인을 요청하자 "현재 정부는 북한이 6자회담에 긍정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여기저기 설득중이다"면서 "메가와티는 그런 다양한 채널 중의 하나다"고 다소 그 의미를 축소해 밝혔다.

두 번째는 실제 메시지가 전달될 가능성을 별로 크게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또 북한이 그 메시지를 별로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메가와티가 북한에 가기도 전에 굳이 이쪽에서 먼저 메시지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고위 관계자는 메가와티의 방북을 하루 앞둔 4월 11일에 기자가 재확인을 요청하자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큰 기대를 하지는 않고 있다"고 그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나 이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6자회담 당사국인) 중국, 러시아, 미국 등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내재된 저항감 있다"면서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그런 이해관계가 없다"고 메가와티에게 메시지를 건넨 배경을 설명했다. '부담이 없는 메신저'라는 점도 덧붙였다.

또 이 관계자는 메가와티 전 대통령이 노 대통령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먼저 노 대통령에게 "오는 4월에 평양을 방문해 북한의 고위 인사를 만나게 되는데 전할 말이 있으면 말씀해 달라"고 요청한 점도 강조했다. 그쪽에서 먼저 요청했기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판단에서 다소 가볍게 "김 위원장이 초청해주면 평양에 날아가겠다"는 말을 꺼냈다는 얘기였다.

"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만나 1차적으로 '희망'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일단 '국익을 고려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여 보도시점을 메가와티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뒤로 미뤄달라는 부탁을 수용하기로 했다.

문제는 김 위원장의 초청을 전제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평양에 가서 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적극적인 발언 배경이었다.

이 고위 관계자는 '평양 날아가겠다'는 메시지와 관련 "농담으로 하신 것이다"고 해명했다. 또 "메가와티도 지금은 야인이고 공직을 맡고 있지 않아서 우리 정부도 중간(메신저)에 놓고 하기는 부담이다"면서 "따라서 공식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종합하면 '비공식적인 메시지'라는 얘기다.

물론 북핵 문제를 중간에 두고 심각한 남북한 지도자들이 외국의 전직 국가원수를 사이에 두고 '농담 메시지'를 건넸다는 해명부터가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쪽에서 '농담'으로 '비공식적'으로 얘기했다지만, 만일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쪽에서 '진지'하게 '공식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김정일 위원장에게도 나중에 '농담 따먹기'였다고 해명할까?

결국 이 고위 관계자는 '평양 날아가겠다'는 메시지를 전한 배경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뭔가 새로운 일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고 전제하고, "노 대통령은 대화해야 문제 해결이 가능한데 작년에 섭섭한 일(조문 불허 및 대량 탈북자 송환)이 있었다고 대화에 응하지 않아 북에도 도움되지 않고 답답해서 북한 지도자를 만나서 진의라도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대화로 풀고 실상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길게 설명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이어 "노 대통령은 (북핵문제 해결에) 낙관적 기대, 희망이 있는지 김 위원장을 만나서 직접 확인하고 싶어한다"면서 "노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의 의도에 대해 선의의 의지를 갖고 정치적 남남갈등을 감수하면서 지원해 왔는데 이제는 정말 김정일 정권이 합리적 정부인지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 고위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어떤 효과나 성과를 거두기보다는 1차적으로 '희망'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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