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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일 창녕 영산에서 열렸던 영산 삼일 민속 문화제에 다녀왔습니다.

▲ 지신밟기
ⓒ 박재현

일제 강점 시절. 기미년에 영산 땅 '구중회'씨를 비롯한 23명의 젊은이(19세 청년도 몇 명 있습니다)들이 이른바 '영산 삼일 만세 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이 삼일 만세 운동은 영남에서는 제일 먼저 일어난 것으로, 인근 지역의 삼일 만세 운동을 촉발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 어우러짐
ⓒ 박재현

그야말로 '전원일기' 같은, 만 명도 안 되는 조그마한 시골이 당시 영남 전체 지역에 영향을 끼친 것인데, 곧바로 함안 및 다른 인근 대도시에서도 이에 자극받아 삼일 만세 운동이 이어지게 됩니다. 영남 지역 항일 정신의 근원지인 셈입니다.

여기 영산에 대하여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찔이가 많다'라고 말합니다. '어찔이'란 경상도 사투리로 말을 잘 듣지 않고 고집이 세다는 뜻입니다.

옛 어르신들의 말씀으로는, 영산의 영추산과 함박산의 산세가 너무 세기도 하거니와 왼쪽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다는 데 그 어찔이의 근원이 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그 억센 산세를 해마다 풀어주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이 다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부터 벼농사의 부산물인 짚을 가지고 두 가지 놀이를 하게 됩니다.

▲ 서낭대 대기
ⓒ 박재현

그 하나는 쇠머리대기로 산살이 센 영추산과 함박산을 닮은 나무와 짚으로 만든 소를 가지고 하던 '쇠머리대기'였습니다. 또 하나는 정월 대보름에 하던 '줄다리기'였습니다.

그러다가 삼일 만세 운동 이후 후손들이 이 놀이를 점점 잊어버려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차에 정월 대보름에 하던 줄다리기를 삼일절에 맞추어 쇠머리대기와 같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쇠머리대기와 줄다리기는 밀고 당기는 놀이로서 화는 밀어내고 복은 잡아오고 그런 뜻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서양의 스포츠와 같아 보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스포츠의 원뜻은 멀리 간다(dis=멀리, port=가다)란 단어에서 나온 뜻으로 무언가를 하기 위해 집을 떠나 나가서 뭘 한다는 것입니다만, 이 두 놀이는 서양의 스포츠와는 달리 옛 선조들의 삶에 대한 철학과 길흉화복에 대한 민속 신앙이 들어 있는 바로 우리 민족의 경기인 것입니다.

44년 전 삼일 문화제가 최초에 열릴 때 당시 영산읍과 창녕읍의 면장이 서로 만나서 군 이름과 삼일 문화제의 개최권을 가지고 협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당시 영산읍이 더 규모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창녕군이라는 이름을 내어주고 그 대신 삼일 문화제를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여기 영산 땅 사람들은 삼일 만세 운동의 본거지인 마을 주민으로서 삼일 문화제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 쇠머리대기
ⓒ 박재현

영산의 삼일 문화제 중 쇠머리대기는 다른 문화제와는 달리 큰 의미가 한 가지 있습니다.

차전놀이나 다른 쇠머리대기는 각본을 짜고 시연하는 공연식의 문화제 놀이마당이나, 영산땅의 쇠머리대기는 각본 없이 마을을 서군과 동군으로 나누고 대장 중장 소장을 뽑아 실제로 서로 이기기 위해 있는 힘을 다 쓰는 진짜 놀이라는 것입니다.

▲ 쇠머리 대기 II
ⓒ 박재현

그래서인지 몇 년에 한 번씩 큰 사고도 나서 몇 명이 크게 다치기도 합니다. 이번 2005년 삼일절 행사 때는 평년과는 달리 좀 과격하게 한다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서군의 대장님이 어른 키 다섯 배 높이에서 낙상하는 큰 사고가 생겼습니다.

▲ 그날의 함성 속으로
ⓒ 박재현

보통 이런 사고가 나면 행사 측에서 몇 년 동안은 주의를 주기 때문에 4~5년간은 다시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다리가 부러지고 해서 다치는 건 예사였습니다.

쇠머리에 타시는 분들은 실제 마을 분으로 4,50대의 농부를 중심으로 선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장군님들을 만나시게 되면 할아버지로 보실 수도 있습니다. 쇠머리를 끄는 사람들은 원래 마을의 고등학생들이었으나, 요즘은 마을의 군인들을 훈련시켜서 하고 있습니다.

▲ 골목길 줄다리기
ⓒ 박재현

지금 보시는 사진은 줄다리기가 아닌 줄다리기와 쇠머리대기의 축소판인 골목길 줄다리기입니다.

줄을 가지고 어린이들로만 하는 경기로서 쇠머리대기와 같이 장수를 뽑아 미는 경기와 장수들의 한판 싸움이 끝나면 줄다리기를 하는 것입니다.

놀이마당 전에 마을의 주민들로 구성된 농악패와 놀이패들의 농무와 농악이 귀를 찢어 놓습니다. 그 북소리를 들으면 왠지 가슴이 울렁울렁하기도 했는데….

이번 골목길 줄다리기에서는 덩치 큰 학생이 이길 것처럼 보였으나 반대편 작은 어린이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씨름의 기술 같은 잡치기로 상대편 장수를 넘어뜨리네요.

▲ 골목길 줄다리기 II
ⓒ 박재현

사진에서 등이 보이는 덩치 큰 어린이가 반대편 어린이에게 넘어가버렸습니다.

▲ 골목길 줄다리기 III
ⓒ 박재현

이제 줄다리기 장면입니다. 줄다리기는 어린이들만 해야 합니다만 가끔은 자기 편이 지게 되면 어른들이 나서기도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쪽(사진에 보이는) 편이 연이어 계속 지기만 하네요. 그래서인지 더 많은 어른들이 가세했습니다. 그런데도 연달아 네 판을 계속 졌습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하는 행사인지라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도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삼일절 행사의 취지는 후손들이 여기 조그마한 영산 땅에서 일어났던 삼일 만세 운동을 잊지 말고 그 정신을 계속 이어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행사에 참가한 많은 학생들이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들이 직접 참가했던 이 놀이와 행사의 의의를 잊지 말고 계속 이어주기를 바랍니다.

▲ 동심
ⓒ 박재현

저의 어릴 때 모습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이제는 다른 지방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삼일절만 되면 본가에 매년 찾아가고 있습니다.

철없는 아이의 모습이 아주 좋습니다. 나중에 꼭 자신이 여기 영산의 삼일절 행사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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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센 영산의 힘, 영산쇠머리대기

덧붙이는 글 | 과거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은 패전 이후 유럽에서 자신들이 저질렀던 만행들에 대해 사과와 사죄를 하고 보상할 것이 있으면 다 보상하고 해서 지금은 유럽의 일원으로 과거사를 다 잊고 함께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우리의 이웃인 일본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사과는커녕, 남의 땅을 자신의 땅이라고 억지 쓰기도 하고 하는데 이는 아시아가 아직도 단결되지 않고 있는 제일 큰 이유가 자신들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에 정말 깊게 반성해야 합니다.

역사를 히스토리(History)라고 하는데 쌓았다는 뜻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하여 차곡차곡 쌓여진 그들의 과오에 대해서 무작정 덮어두기 식의 방법보다는 다 들춰내는 진정한 사과와 반성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야만 아시아의 미래가 그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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