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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공릉
공릉 ⓒ 한성희
처음에는 그냥 가벼운 공릉 얘기와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은 왕릉 얘기를 전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연재를 계속하면서 점점 깊이 빠지게 됐고 지난 가을부터 조선시대의 왕실과 왕릉에 넋을 놓고 빠져서 조선의 마약에 취해 허우적댔다.

뭐든지 한 번 빠지면 대책 없고 철딱서니 없는 내 성격도 문제다. 그래서 나는 한 번 빠지면 손가락 발가락 다 잘라도 후회 안 하는 내 성격을 알기에 절대로 화투나 도박에 손을 안 댄다.

왕릉 연재에 독이 오를 만큼 올랐을 때 누군가 그랬다.

“왕릉이 꿈에 안 나타나?”

안 나타나긴? 도사처럼 알기도 잘 안다. 더구나 이 얄미운 말을 한 사람은 문화유적에 도가 터서 역사에 대한 글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아는 인간이다. 역사를 놓고 와글와글 시끄럽고 왈가왈부가 오가는 걸 너무 잘 알아서 나처럼 무지막지 덤비지 않는 현명한 사람이다.

일 년 가야 꿈을 한두 번 꿀까말까 하는 ‘몽무’(夢無) 체질인데도 연재를 하는 몇 개월 동안 왕릉 꿈을 두 번이나 꿨다(몽무란 방금 지어낸 신조어니까 행여 국어사전에서 찾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국장제도를 쓸 때는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필름으로 왕릉이 꿈에 나타났다. 그것도 하필이면 무덤 속이다. 기사를 쓰면서 광의 깊이와 넓이를 어떻게 독자에게 쉽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끙끙대다가 잠들자 누워있는 왕비 시신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꿈속에서도 소름이 끼치게 만들었고, 그 왕비가 벌떡 일어나서 나에게 뭐라고 말하는 데 놀라서 잠에서 깨어나기도 했다.

효릉
효릉 ⓒ 한성희
참 이상도 하지. 몽무 체질인 내가 몇 달 동안 두 번이나 꿈을 꿨는데 왕은 도통 그림자도 안보이고 왕비만 나타나는 거다. 왕비에 대해 애틋한 편파적인 글을 썼다는 걸 아는지(조선시대 여성들의 지위에 열 받는, 내 저변에 깔린 기본 사상을 안 드러내서 독자들은 모르겠지만) 왜 꿈에서도 왕비만 보이는 것인지.

이왕이면 성종이나 숙종 같이 멋있고 매력적인 왕이 꿈에라도 나타나면 좀 좋아? 왜 매력적이고 좋으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말은 없다. 알아서 상상하길 바란다.

성종은 조선 임금 중에 가장 키가 큰 남자고 숙종은 14살에 왕위에 올랐으면서도 수렴청정을 거부하고 친정을 한 똑똑한 남자라서 호기심이 있다면 대답이 될지? 14살이라면 중학교 1학년이나 2학년 정도인데 조선 팔도를 그 나이에 다스릴 능력이 있었다는 얘기다.

영릉
영릉 ⓒ 한성희
조선의 남녀 평균 신장은 얼마나 될까? 남자는 160cm, 여자는 150cm 정도다. 요즘은 중학생도 흔한 키인 180cm가 그 당시엔 6척(180cm)이면 거구이고 장사나 장군감으로 전설적인 화제가 됐던 것도 사실이다.

성종의 키는 6척 정도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를 여행하려면 키 높이를 낮춰서 봐야 한다. 그래야 당시의 건축물과 왕릉의 구조도 이해가 간다.

연재를 하면서 많은 이메일을 받았다. 필요하다면 도와주겠다는 풍수 전문가에게 온 이메일부터 조종(祖宗)을 잘못 안다면서 흥분한 독자가 기자의 자질을 성토한 이메일, 연대와 역사의 착각 지적, 위안 받는 격려성 메일(극소수인 게 유감이지만), 출판사와 방송에 이르기까지.

고마운 메일들이다. 잘못 착각한 것은 즉시 시정했고 다행히 독자들에게 들키지 않은 착각, 나는 알지만 독자들이 미처 모르고 있는 오류는 아직 시정하지 않고 있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고쳐달라고 편집부에 고개 조아리며 사정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한 꼭지에 몇 번이나 고쳐달라고 편집 부탁하는 짓을 어떻게 계속한담?

500년이나 내려온 왕조의 연대나 사건들을 착각하지 않을 사람(나처럼 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있으면 나와 보라.

공릉 숲
공릉 숲 ⓒ 한성희
왜 하필 왕릉인가? 내가 미쳤지 하필이면 왜 왕릉을 연재 한다고 오기를 부렸던가? 한 꼭지 쓰려면 다른 기사 서너 꼭지에서 열 꼭지 이상 쓸 시간과 노동이 동반되는 이 미친 짓을 왜 한다고 호기를 부렸던가. 내 평생, 고작 20매 글 한 꼭지 쓰느라고 12시간 이상 컴퓨터에 들러붙어 엉덩이에 쥐가 난 기록을 세운 것도 이 연재 탓이다.

기사를 하나 쓰고 나면 꼭 후회하며 되풀이 하는 후렴이 ‘내가 미쳤지’ 타령이다. 삼국지의 장비 같이, 앞뒤 안 보고 무턱대고 일을 저지르고 보는 무식한 내 기질을 저주해 봐도 엎어진 물이니 소용없다.

“다음에 또 어떤 연재 쓸 계획 있어요?”
(헉! 또 연재를? 지금도 죽을 맛인데 또 쓰면 얼마 남지 않은 숱 없는 내 머리는 대머리 여가수가 될 거고 허연 서릿발이 해골 전역에서 서리서리 돋아나지. 누구 일찍 늙어 죽을 일 있나?)

“오, 노! 노! 노!!!!! 이젠 연재 절대 안 쓸 거예요. 내가 미쳤지, 왜 연재를 쓴다고 덤볐는지 모르겠네요.”

평소에 사정없이 꼬치꼬치 묻고 취재 하다가 어느 출판사 편집장에게 취재 당하는 기분은 정말이지 묘했다. 연재하다가 받은 이 질문에서 사람은 자기 능력과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깨달음도 있었다.

순릉 겨우살이
순릉 겨우살이 ⓒ 한성희
이 참에 <오마이뉴스> 연재 계약을 맺을 때 지켜야 하는 조건을 은근히 저주하면서 공표해볼까 한다. 연재의 조건은, 일주일에 한번 이상 무조건 써야 한다. 그런데 이게 사람 피 말리는 지옥의 계약이다. ‘지옥의 링’이라는 이현세 만화 제목에서 차용한 것은 절대 아니다. ‘지옥의 조건’이라는 걸 강조한다.

기사 한 번 올리고 나면 이삼일은 룰루랄라 유유자적한다. 숙제 끝났으니 놀기좋아라 하는 나는 이젠 맘 놓고 놀아야지 희희낙락 백치아다다처럼 아무 생각 없이 신이 난다. 그리고 시위 떠난 살처럼 시간은 후딱 가버린다.

이윽고 데드라인이 가까워지면 안절부절 소화불량에 심장 압박까지 온다. 이러다가 심장마비로 죽는다 해도 <오마이뉴스>에서 부고 한 줄도 내주지 않을 텐데 그냥 한 이삼일 쓰지 말고 넘겨봐?

밥상(토종 체질이라 퍼질러 앉는 밥상이 책상보다 편하다) 위에 잔뜩 올라간 저 왕릉 참고 책들을 아직 머리에 정리 못했는데 언제 쓴담. 시간이 갈수록 그 서적들의 높이는 피사의 사탑처럼 올라가면서 불안정하게 기우뚱거리며 나를 협박한다. 괜히 이 책 저 책 들쑤셔대며 한 줄도 못 쓰고 있는 참에, 너저분한 저 놈의 책 좀 정리 하라는 식구들의 잔소리도 소화불량에 한 몫 한다.

“언제까지 무덤 얘기만 쓸 거야?”

시시때때로 이메일과 전화 문자 메시지에 들어오는 이런 소릴 들을 때면 ‘니들은 안 죽고 영원히 살 거 같냐?’ 울화가 치밀지만 꾹꾹 참고 다 씹어버린다(모른 척 무시한다).

사실 이렇게 오만가지 구구하게 늘어놓는 얘기들은, 하루에 한 꼭지 이상 기사 올리는 정렬적인 <오마이뉴스> 폐인 기자들이 너무 부러워서 변명 겸 푸념을 한 것이다.

을유년 올해는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로 등록한 이래 괄목할(이건 자화자찬이다) 신기록으로 기사를 올린 지난해보다 더 많은 글을 써야지 하는 자신 없는 새해 다짐을 해본다. 2000년 9월부터 기사를 올리며 모두 120여 꼭지를 썼는데 지난 1년간 쓴 게 50꼭지라면 게으른 나로서는 대단한 부지런을 떤 결과다. 그렇지만 <오마이뉴스> 편집부 기자들은 생각보다 머리가 무지 좋다.

“글 좀 자주 써욧! 안 쓸 때는 2달도 안 쓰더라.”
“캑, 그거까지 다 기억?”

편집부 김아무개 기자의 말에서 보듯이 그 많은 기자들의 기사 쓰는 시간까지 기억하는 현대판 빅 브라더가 <오마이뉴스>다. 소름 끼치게 무시무시한 매체가 맞다. 코가 잘 꿰인 건지 잘못 꿰인 건지 조금만 더 생각해 봐야지.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와 나>에 응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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