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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분선 할머니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
고 김분선 할머니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 ⓒ 허미옥
'술이란 무엇이냐~, 마시면 취하드라~요'란 노랠 잘 부르시던 할머니. 수많은 증언, 수요집회,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할머니, '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의 '색시' 할머니.

"분선 할매, 다시는 세월 잘못 만나지 마시고. 편안한 영혼으로 잠드십시오."

김분선 할머니를 소개하는 영상 마지막 문구에서, 영결식장에는 흐느낌 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지난 12일 오전 9시 대구시 곽병원 지하 강당. 위안부 피해자 김분선 할머니 시민단체장이 치러지던 곳. 수많은 추모객의 슬픔만큼이나 취재진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장례위원장인 미군기지되찾기대구시민모임 정학 대표의 추도사를 시작으로, 고 김분선 할머니 영상 상영에 이어 '할머니가 걸어오신 길' 소개, 곽병원 곽동협 원장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조사에 이르기까지 영결식장이 조금씩 훌쩍이거나 흐느끼고 있었다.

1월 12일 고 김분선 할머니 대구지역 시민사회 단체장
1월 12일 고 김분선 할머니 대구지역 시민사회 단체장 ⓒ 허미옥
하지만 고 김분선 할머니를 늘 옆에서 지켜보면서 함께 했던 회원, 활동가들의 이야기에 참석자 대부분 눈물을 쏟아냈다.

97년 대학시절부터 고 김분선 할머니와 친분을 가지고 있었던 김기홍씨는 "대학시절 할머니를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라며 "상인동 비둘기 아파트에서 초라하고 궁색했지만, 소박한 밥상을 함께 하면서 즐겁게 살았던 그때가 그립다"고 밝혔다.

경기도 안산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김씨는 이날 영결식을 위해 새벽 같이 대구로 달려왔다.

'분선 할매'를 보내며...
자원활동가 천혜진이 눈물로 쏟아놓은 사연

▲ 천혜진양
할매.

1년 전 겨울, 처음 분선 할머니를 만났고, 나에게 '할매'라고 부르는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까지 그 시간이 짧은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보여주었던 그 환한 미소 때문에 할매를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항상 나를,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고
우리를 집밖에서 기다리고
내 두 손을 잡아주고
나를 안아주고
나의 볼을 비벼주던 그 모습이
기쁘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할매는
우리가 먹는 모습을 좋아하고
우리가 떠드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하고
그저 항상 우리가 있음을 좋아하셨습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담배와 꽃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할머니를
우리는 사랑합니다 / 천혜진
한편 자원활동가로서 늘 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던 천혜진양. 쏟아지는 눈물로 인해 말을 잊지 못했던 천양은 "1년 전 처음 분선 할머니를 만나 나에게 할머니라고 부르는 한 사람이 되었다"라며 "할매는 우리가 먹는 모습, 떠드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하고, 그저 항상 우리가 있음을 좋아했다"며 조사를 마쳤다.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관계자는 "이제 특별법도 제정되고, 진실규명이 시작되는데, 피해자인 할머니들이 한두 분씩 세상을 떠나시게 되는 것이 너무 마음 아프다"며 "그들이 못 다한 이야기는 증언, 기록 등으로 남겨 일본인 사죄와 배상에 주요한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고 김분선 할머니는 칠곡 현대공원에 안장되며, 영천 은해사에서 49재를 지내게 된다.

고 김분선 할머니는 1922년 경북 칠곡에서 태어나, 37년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얘기에 속아 대만으로 연행, 일본군 '위안부'가 된 후, 필리핀에서 생활을 하던 중 한 장교의 배려로 전쟁이 끝나기 전인 1944년 대구로 돌아왔다.

2004년 6월 폐렴으로 입원한 뒤, 2005년 1월 10일 오후 2시 45분 만 82세 나이로 운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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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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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허미옥 기자는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입니다.

자세한 문의 : 053-423-4315/http://www.chamma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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