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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전망대에 서면 북녘 해변이 참 선명하게도 보인다.
ⓒ 최윤미
기억 속에서 북한은 늘 '갈 수 없는 나라'였다. 98년 해상관광으로 시작해 2003년에 육로가 열리면서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나라가 되었지만, 북한에 대한 심리적인 거리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오랜 반공교육 탓이 아니라, 전후 세대의 무관심으로 북한을 그저 다른 나라로 인식했던 것 같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장기수 송환 같은 수많은 보도에도 불구하고, 무심하고, 덤덤하게….

그러던 마음이 통일전망대 외길로 접어들면서 차츰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외딴 풍경 속에 자리한 통일전망대와 그 아래 남측 출입사무소(CIQ). 금강산 가는 길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지난 12월 1일 동해선 남북연결도로가 임시 개통되면서, 금강통문을 지나 남방한계선까지 가는 길이 무척 쉬워졌다고 한다.

▲ 자유롭게 찍을 수 있었던 유일한 북녘 사람들. 모란봉 예술단.
ⓒ 최윤미
금강통문을 지나자 바람 가득한 들에 갈대가 우거진 쓸쓸한 풍경의 비무장지대가 시작되었다. 그 사이로 난 가느다란 길로 금강산 관광객들을 태운 똑같은 모양의 버스들이 왼편에 동해선 철도를 두고, 오른편에 시린 바다를 두고 천천히 달렸다.

잠시 후 산세가 신기하리만치 달라졌다. 봉우리가 둥글둥글한 바위산에 나무가 거의 없어 황량해 보였는데, 이 모두가 6·25 전쟁 당시 있었던 폭격과 전투의 흔적이라고 한다.

▲ 구룡연 산행이 시작되는 곳에 목란관이 있다. 비빔밥, 냉면, 털게찜, 손두부 등을 파는데 맛이 퍽 좋다.
ⓒ 최윤미
남방한계선을 통과해 버스는 잠시 멈추었다. 북측의 군인 두 명(경무관)이 특유의 절도 있는 걸음으로 버스에 올라 검문을 했다. 영화 < JSA >에서 보았던 북한군 장교 복장을 한 두 사람은 낯선 억양으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했다.

처음으로 북한 사람을 눈앞에서 보니, 이제야 북한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머릿속에도 있고, 지도에도 있고, TV에도 있지만 그동안 피부로 느끼지는 못했던 북한. 닮은 얼굴, 같은 언어가 주는 동질감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 얼음 동동 뜬 계곡물 아래 가을이 그대로 고여 있다.
ⓒ 최윤미
장전항(고성항)에 자리한 북측 출입사무소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그곳에서 여느 외국처럼 입경 심사를 받고, 숙소로 이동했다. 정해진 경로 외에는 갈 수도, 볼 수도 없고 사진촬영은 더 더욱 안된다는 인솔 조장들의 당부가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게다가 관광객들이 묵는 숙소 외에는 불 밝혀진 곳이 거의 없어서 창 밖을 바라보아도 항구도, 마을도 아무 것도 안보였다. 마치 암전이라도 된 것처럼.

▲ 옥류동 계곡의 옥류폭포와 옥류담.
ⓒ 최윤미
초록 물빛 계곡미의 절정, 구룡연

다음날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하늘이 잔뜩 흐려 있었다. 어둑어둑하고 왠지 우울하기도 한 아침, 온정각 휴게소를 떠나 구룡연 구역이 시작되는 입구까지 모든 버스가 동시에 움직였다. 봄날의 소나무처럼 푸르고 건강한 미인송들이 빽빽이 들어선 창터솔밭을 지나 목란다리를 건너자 바로 산행 코스가 시작되었다.

시작은 비교적 평이했지만, 깎아지른 봉우리들과 좁다랗게 열린 하늘은 만만한 산행은 아닐 거라는 예감을 주었다. 마라톤 스타트 라인에서처럼 열 대가 넘는 버스에서 내린 관광객 모두가 동시에 출발하는 풍경은 더 더욱.

▲ 이런 물빛은 처음이다. 아마 설악산 물빛도 이렇다지.
ⓒ 최윤미
계곡을 따라 오를수록 선 굵은 금강산의 면모가 여실히 느껴졌다. 외금강 구룡연 구역은 왕복 4~5시간이 걸리고, 8개의 다리를 지나 상팔담이 내려다보이는 구룡대 정상까지 다녀오는 코스다. 구룡대 정상은 해발 880m로 그리 높은 축은 아니지만, 오르면서 보는 정상은 어지러울 정도로 높았다.

산삼과 녹용이 녹아 흐른다는 삼록수를 마시고, 바위 사이로 난 금강문을 지나자, 넓게 탁 트인 옥류동 계곡이 나타났다. 높은 곳에서 흘러와 초록색으로 고인 옥류담까지 왔을 때 북측 환경관리원이 관광객들을 모아 놓고 설명을 하고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고운 여성은 또랑또랑한 말씨로 선녀들이 내려와 춤을 추었다는 무대바위, 6m 깊이의 옥류담, 58m 높이의 옥류폭포 등에 대해 설명을 하고 마지막에는 멋진 시조도 하나 읊어 주었다.

▲ 구룡대 정상에서 내려다본 상팔담. 물이 많을 때 진짜 멋질 것 같다.
ⓒ 최윤미
옥류담, 연주담, 상팔담까지 계곡을 오르면서 만나는 많은 담들이 짙은 초록색 물빛을 하고 있었다. 금강산은 폭포와 담이 곳곳에 발달해 있는데, 바닥까지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맑은 물빛이 지금껏 본 어떤 물빛보다 맑았다.

연주폭포, 비봉폭포, 무봉폭포, 주렴폭포, 구룡폭포가 모두 이 계곡에 있다. 갈수기라 폭포수 줄기는 많이 가늘어졌지만, 거대한 위용만은 느낄 수 있었다.

▲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전해온다는 상팔담 세번째 담.
ⓒ 최윤미
구룡연 구역의 마지막 다리 무용교를 건너 가파른 등산로를 올라서 구룡대 정상에 오르자 등 뒤에 두고온 아스라한 풍경들이 한꺼번에 펼쳐졌다. 하늘 아래 굽이굽이 늘어선 외금강 능선들이 겹쳐지고 풀리며 아득해져 갔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는 여덟 개의 담들이 줄줄이 연결된 상팔담이 내려다 보였다. 세 번째 담에는 선녀의 날개옷을 감추었던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 구룡대 정상 암벽에 새겨진 문구들.
ⓒ 최윤미
상팔담 물줄기들이 쏟아져 내리는 구룡폭포는 구룡대 아래 관폭정에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설악산의 대승폭포, 개성 대흥산의 박연폭포와 함께 조선의 3대 폭포로 불리는 구룡폭포는 길이 82m, 깊이 13m로 거대하다.

폭포벽에는 미륵불(彌勒佛)이라는 글씨가 김규진의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佛'자의 세로획을 길게 늘여 썼는데 폭포의 깊이와 같은 13m라고, 유머감각도 풍부하고 노래도 잘 불렀던 환경관리원이 설명해 주었다.

▲ 구룡폭포. 자세히 보면 미륵불 글씨가 보인다.
ⓒ 최윤미
하산하는 길에 눈이 아닌 빗방울이 떨어졌다. 펄펄 날리는 눈보라를 기대했지만 끝내 빗줄기는 눈으로 바뀌지 않았고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으므로 서둘러 삼일포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온정각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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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가는 길

현재 금강산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대아산의 금강산 여행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다. 당일, 1박 2일, 2박 3일의 세 가지 유형이 있으며, 숙박지에 따라 금강산호텔, 호텔해금강, 금강펜션타운, 온천빌리지 등으로 나뉜다.

통일부의 방북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최소 10일 전에는 전국의 금강산 관광 지정 대리점을 통해 신청해야 한다. 남측 고성군에 위치한 금강산 콘도에서 일정이 시작되며, 콘도까지는 개인 승용차는 물론 지정 셔틀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

북측에서의 여행은 숙소를 기준으로 구분된 반과 조별로 이루어지며, 항상 조장의 지도에 따라야 한다. 낮 시간 중에는 구룡연, 만물상(해금강 중 선택), 삼일포 등의 구역을 여행하고 밤 시간에는 숙소와 온천 등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금강산 관광지구 내에서는 달러와 충전카드를 사용하며, 원화는 사용이 금지된다.

금강산 여행을 즐겁게 하려면

금강산 여행은 제한이 많다. 일정에 따라 지정된 구역만 여행할 수 있으며, 여행객 모두가 한꺼번에 움직이므로 시간을 잘 지켜야 한다. 구역별로 긴 산행은 아니지만 조금 힘이 든다고 생각하면 쉽고, 외금강 자체가 웅장하고 다소 험하기 때문에 산행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무리가 따를 수도 있다.

외금강 여행 코스 내에서는 사진촬영이 자유롭지만, 버스 이동 중이나 숙소 외부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며 북한 주민과 마을, 군인을 촬영할 경우 고액의 벌금이 부과되고 카메라, 필름을 압수당할 수 있다.

그리고 산행 중에 만나게 되는 환경관리원과 대화할 경우 북한 체제를 비하하는 발언이나 정치, 경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대화는 금지된다. / 최윤미

(2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지난해 12월 14~16일 다녀온 금강산 여행기입니다.

쌍용 사보와 제 블로그(blog.paran.com/withwhee)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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