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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 여성축구단 회원들
은평구 여성축구단 회원들 ⓒ 홍용희
그 뒤 아내는 일주일에 세 번 축구를 하러 나갔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쉬지 않았다. 한 번은 태풍이 남해안에 상륙해서 뒷산 아카시아 나무가 쓰러질 만큼 비바람이 세찬 날에도 축구를 하러 갔다. 비를 흠뻑 맞고 들어온 아내를 보고 내가 "대단해!"하며 혀를 찼더니, 아내는 "오늘은 아줌마들이 더 많이 나왔어"하는 거였다.

아내가 축구를 하는 시간에 내가 할 일은 아이들 보기다. 아들 기저귀 갈기, 분유 타서 먹이기, 다섯 살 된 딸아이 아침밥 챙겨 먹이기 등등. 나는 별 무리 없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사건이 터졌다. 아들이 몹시 울어댄 것이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아들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어디가 아파서 그런가 싶어 아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코치 핸드폰도 마찬가지였다.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아들을 달래길 수십 분. 그제야 아들은 울음을 그치더니 잠이 들었다.

얼마 뒤, 아내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막 연습이 끝났는지 숨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전화했어?"

그 순간 입에서 "축구 때려 치워!"하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고 말했다.

"찬우가 많이 울었어."

아내는 다리에 시퍼렇게 멍이 들기도 했고 몸살이 나기도 했다. 그에 비례해 축구 실력은 부쩍 늘어났고, 4개월여만에 후보 선수에서 주전선수로 자리 잡았다. 이내 스트라이커가 되었다.

지난 8월 1일, 서울 중구에 있는 '손기정 체육공원'에서 서울시 여성축구단 선수들이 모여 시합을 벌였다. 시합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한 팀은 전국 대회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나는 아들과 딸아이를 데리고 응원을 갔다. 시합 도중 딸아이가 엄마를 보더니 외쳤다.

"엄마, 파이팅!"

쩌렁쩌렁한 딸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아내는 더욱 열심히 뛰었다. 아내는 상대편 모서리를 파고들면서 날카롭게 공을 차 올렸다. 1차전 강동구 여성축구단과의 시합에서 아내는 한 골을 어시스트하고 한 골을 멋지게 넣었다. 시합은 3대 1로 은평구 여성축구단이 이겼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내는 준결승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고, 팀도 시합에서 지고 말았다.

아내는 발목 부상으로 운동을 쉴 수밖에 없었다. 파스도 붙이고 얼음찜질도 한 끝에 보름만에 다시 축구를 할 수 있었다.

"봄이 오면 여성축구팀과 남편들하고 시합하면 어때?"
"좋긴 한데, 배 나온 아저씨들이 뛸 수 있으려나?"

초등학교 시절 육상부 활동을 했다는 아내는 만능 스포츠우먼이다. 대학 축제 때는 핸드볼, 소프트볼과 대표였고, 결혼 뒤에는 여성 씨름대회, 팔씨름대회에도 나갔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를 끔찍하게 싫어할 만큼 운동신경이 둔한 나는 처음 하는 운동도 금방 잘 하는 아내가 부럽다.

드넓은 운동장에서 비 오듯 땀방울을 흘리고, 모래 바람을 일으키며 공을 차는 아내. 아내는 진정 꽃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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