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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서 죽었다'는 언론보도로 세간의 충격을 준 인규군의 집. 하지만 최근 인규군이 희귀성 난치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굶어서 죽었다'는 언론보도로 세간의 충격을 준 인규군의 집. 하지만 최근 인규군이 희귀성 난치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굶겨서 죽었다니요.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인규가 죽고난 후 닷새 동안은 정말 지옥을 다녀온 기분입니다."

최근 대구에서 네살짜리 아이가 자신의 집에서 굶어 죽었다는 보도가 세간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줬다. 하지만 첫 보도가 나간지 사흘만에 아이의 죽음이 단순 '기아사'(飢餓死)가 아닌 '병사'(病死)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난 18일 사망한 채 발견된 김인규(4·가명)군의 아버지 김아무개(37)씨는 21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의 사망과정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아래 인터뷰 일문일답 참조)

이날 인규군의 동생이 입원한 대구시내 한 병원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난 아버지 김씨는 '굶어서 죽었다'는 언론보도가 나가는 동안은 "지옥을 오고 간 기분"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김씨는 "(아들이) 굶어서 죽었다는 것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구체적인 병명(선천적 척수성 근위축증)은 몰랐지만 어릴적부터 인규가 몸이 마르고 최근에는 미음도 먹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어 "(아들이) 태어난 후로 시름시름 앓고 몸이 말라가는 병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죽을 지경에까지 이를 것이라는 것은 몰랐다"면서 계속 병원치료를 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최근 들어 월 250만원이나 드는 병원비를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담당 소아과 전문의 "제대로 먹지 못해 사망할 수 있는 병 앓았다"

한편 지난 6월까지 인규군을 진료해왔던 미래연합소아과 김호 전문의는 21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인규군을 지난 2001년경 첫 진료했을 때 선천적 척수성 근위축증이 의심스러워 인규군의 부모에게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권했다"면서 "인규군의 동생(2)도 같은 증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김 전문의는 "이 질병에 걸리면 제대로 먹지 못한다. 1주일 정도 먹지 못하거나, 2~3일 정도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하면 탈수증세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면서 "인규군의 죽음도 이 질병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아래 상자기사 참조)

따라서 인규군을 진료해온 전문의와 인규군 아버지의 말을 종합해볼 때 인규군 집의 경제적 형편이 매우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기존 언론보도처럼 인규군이 굶어서 죽은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어 보인다. 경찰의 부검 등을 거친 후 최종사인이 판명나겠지만 현재로서는 병사했을 가능성이 좀 더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인규군의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최종 사인이 밝혀지기 전에 언론이 성급하게 굶어서 죽은 쪽으로 단정한 것이 아니냐"며 언론의 성급한 보도태도를 지적했다.

한편 <영남일보>는 21舅?석간의 머릿기사 <'장롱속 주검' 과연 굶어죽었나>에서 병사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본격 제기하면서 "경찰조사에서 김군 부모는 김군의 병력이나 병원 치료여부에 대해서는 진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대구지방경찰청이 지난 19일 각 언론사로 보낸 사건 관련 보도자료. 사망 어린이 사인에 대해 "아사로 추정되는 변사체"라며 "정확한 사인 규명키 위하여 부검예정"이라고 밝혔다.
대구지방경찰청이 지난 19일 각 언론사로 보낸 사건 관련 보도자료. 사망 어린이 사인에 대해 "아사로 추정되는 변사체"라며 "정확한 사인 규명키 위하여 부검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래도 남는 '사회안전망' 문제점

그러나 설사 인규군이 희귀병으로 인해 밥을 못먹게 되어 죽었다고 최종 판명난다 하더라도 이번 사건은 우리사회의 사회안전망과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인규군의 가족처럼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병원비가 많이 드는 병에 걸렸을 때 우리 사회가 어떤 안전망을 제공해주고 있는지, 또 우리사회의 공동체가 이웃의 어려운 형편을 어느정도 알고 서로돕고 지내고 있는지 되돌아볼 때다.

다음은 아버지 김씨와 가진 인터뷰 요지이다.

- 지금 심정은 어떤가.
"지옥을 갔다 온 기분이다. 인규(가명)가 죽은 것도 마음이 아픈데 굶겨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또한번 죽이는 꼴이 됐다. 거기다 장롱에 '유기'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니깐 너무 억울한 마음이었다."

- 인규가 죽을 당시 상태는 어느 정도였나.
"평소 경기를 하면 내가 수지침을 놔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전혀 미음도 먹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 인규가 희귀난치병(선천성 척수성 근위축증)이 의심되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나.
"건강이 안 좋고 발달장애가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다."

- 인규의 죽음이 알려진 후 굶어서 죽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굶어서 죽은 것은 아니다. 죽을 쑤어 줘도 입으로 넘기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최근 경제적으로 어렵다보니 먹을 것이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먹을 것이 없었거나 먹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 왜 병원으로 가진 않았나?
"인규가 태어나고 난 후 지금까지 많이 앓아왔다. 올해 6월까지도 동네병원에 인규 엄마랑 자주 다녔다. 지난 6월에는 더 큰 병원 응급실까지 실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비를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 월 250만원은 든다고 하는데 막막할 뿐이었다."

- 주위의 도움을 받거나 희귀병의 경우 의료보험 혜택을 볼 수 있지 않았나.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된다. 주위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구했어야 하는데…. 내가 아직 젊고 일도 할 수 있어 의료보험 혜택이나 정부지원을 받기가 여의치 않은 것 같아 신청을 못했다. 친척들도 거의 헤어진 것이나 다름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 도움을 구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인규 엄마까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고 셋째 딸도 인규와 같은 병을 앓다보니 최근 들어서는 내가 거의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 인규가 숨진 후 며칠이 지나도록 시신이 장롱안에 있었다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
"인규가 죽었다는 것을 안 것이 16일 밤 10시쯤이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앞으로 (장례나 장례비 등은)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이 혹시나 인규 시신에 손을 댈까 장롱 안에 둔 것이고, 아이 엄마가 제례는 갖춰야 한다면서 밥이랑 물을 밥상 위에 올려 장롱 앞에 차려 놔뒀다. 18일 아침 성당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인규 시신을 보여준 것이다"

- 끝으로 사망한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디 다음 세상에서는 좋은 부모 만나 잘 자라길 빌 뿐이다. 잘 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

"굶어서 죽었다" 언론보도 정확성 논란일듯
진료의사 "희귀성 난치병 의심"... 불확실 보도로 주변 피해

장롱 속 주검으로 발견된 김인규(4·가명)군의 사인이 '기아사'가 아닌 질병사의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확인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언론의 성급하고 불확실한 보도가 또다시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까지 인규군을 진료해왔던 미래연합소아과 김호 전문의는 21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인규군을 지난 2001년경 첫 진료를 했을 때 선천적 척수성 근위축증이 의심스러워 인규군의 부모에게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권했다"면서 "인규군의 여동생(2)도 같은 증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선천적 척수성 근위축증은 척수세포가 괴사하면서 근육의 부피가 줄어드는 병으로 외국의학계 보고에 따르면 2만5000명 중의 1명 꼴로 발병하는 희귀성 난치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근위축증은 태어날 때부터 근육이 생기지 못하고 심해지면 말라들어가 정상적으로 걷지도 앉지도 못하게 되는 증세를 보인다. 현재로선 치료법이 없으며 심하면 2살 이내에 사망하고 적어도 10살 이전에는 사망하는 난치병.

김 전문의는 "이 질병에 걸리면 제대로 먹지 못한다. 1주일 정도 먹지 못하거나, 2~3일 정도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하면 탈수증세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면서 "인규군의 죽음도 이 질병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인규군의 시신을 발견할 당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인규군의 동생도 오빠와 유사한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지난 20일 인규군의 시신을 부검한 경북대 법의학팀은 "부검 결과 인규군의 시신이 근육과 피하지방이 사라지는 등 기아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고 "사고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은 이마의 작은 화상자국을 제외하고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부검당시 인규군의 체중은 정상 어린이의 3분의 1정도인 5kg, 신장은 88.5cm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의학팀 한 관계자는 21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다른 질병으로 인한 사망에 대해서는 부검으로 확인할 수 없다"면서 "인규군의 평소 병원력 등을 종합해 살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경찰과 법의학팀은 인규군의 위 속 내용물과 심장혈액과 조직 등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정밀감정을 의뢰해 놓은 상태로 구체적인 사인은 추후 판명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규군의 사망사건을 '기아사'로 보도한 일부 언론의 '성급한' 보도가 또다시 지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찰의 '아사' 추정 발표를 언론이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고 뒤따라가 결국 그 파장이 인규군의 가족과 이웃주민·관공서 등으로 적지 않게 미쳤다.

21일 현장 취재에서 만난 인규군의 이웃주민들은 언론의 보도행태를 비난했다. 이웃주민 이아무개(41)씨는 "너무 안타깝다"면서 "언론에 보도가 나가면서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인간미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그동안 인규네가 우리 동네에서 살면서 그렇게 어렵다는 내색을 하지 않아 그 정도 지경인지는 몰랐다"면서 "어떻게라도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인데 세상인심이 더 야박해졌다는 소리를 들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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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오마이뉴스(dg.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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