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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무형문화재라는 별난 개념의 문화유산이 있다. 'XX무형문화재 제X호'하면서 많이 듣지만 다소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나라에서 엄격한 기준을 세워 종목을 지정하고 종목에 따라서는 세부기능까지 분류하고 국가적 지원을 함으로써 전래의 원형을 보존하려는 제도다. 우리의 무관심과는 달리 뜻밖에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알아주는 무형문화재 보호의 선진국이다.

10월 초에 문화올림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세계박물관총회(ICOM)가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중국을 제치고 아시아에선 최초로 서울에서 열렸을 때, 그 주제를 '박물관과 무형문화유산'으로 정한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며, 근간에 유네스코에서도 인류의 무형문화유산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렇게 무형문화유산은 우리의 보편적 인식보다 그 의미가 깊다.

▲ 들판에서 자란 왕골의 화려한 변신. 화문석을 만드는 왕골을 결어서 만든 과자그릇.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그러나 우리의 소중한 무형문화재가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ICOM 총회의 전시행사로 열린 특별전시장에 문화재청에서 대형 전시공간을 마련하고 야심적으로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들의 작품(대회 성격상 공예품 위주)을 전시했다. 행사에 참가한 외국인은 물론 모든 이들에게 개방했으나 전시공간을 찾는 내국인은 적었다. 전시를 주관했던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전시팀장이 "전시를 준비하며 과로로 실려 나간 직원도 있었다"고 할 정도로 공을 들였지만 전시장을 찾는 내국인은 적었다.

반면에 외국인들의 호응은 뜨거워서 무형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과는 대조적이었다. 빗대어 말하면 중국이 고구려 역사가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하자 갑자기 고구려의 역사와 유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듯이, 여름날 문에 드리워 운치를 돋우는 '발'을 일본이 자기네 것이라고 하면 그 때서야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할 것인가.

그러나 그것이 가정이 아니라 일본이 정말로 서서히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니 속이 답답하다.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의 고뇌를 소상히 알고 있는데 측우기가 자기네 것이라 우기는 중국의 주장은 어이가 없으나 그들의 주장은 이미 오래되었고 그 논리도 매우 치밀하다. 과거의 역사를 빼앗으려 함은 결국 현재의 땅에 경계선을 확실히 긋자는 속셈이요, 유물을 빼앗는 것은 혼으로 이뤄진 사물의 근원을 빼앗자는 속셈일 것이니, 땅도 뺏기고 혼도 뺏기면 우리에겐 뭐가 남을까.

무형문화재는 친근하게 우리 곁에 살아 있다

▲ 가을하늘이 명주에 들어왔다. 명주에 쪽물 염색. 천연염색은 최근에 일반의 관심이 많아진 분야이다. 사진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115호 염색장 정관채 선생의 작품.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대부분의 중요무형문화재는 박물관 유리상자 안의 유물과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박물관의 유물이 포수에게 피살되어 박제된 충북 음성의 황새라면 무형문화재는 광릉 숲 속에 아름답게 살아 있는 크낙새다. 죽어서 박제가 된 황새의 학문적 가치도 중요하고 광릉 숲 속에 살아있는 크낙새도 중요하다.

어차피 볼 수 없게 된 토종 황새이니 박제라도 잘 보존해야겠지만 아직은 살아 있는 크낙새의 보호를 게을리 해서 크낙새마저 박제로만 보게 된다면 그건 비극이다.

무형문화재란 단어는 '형태가 없는 문화재'가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재'로 해석해야 옳다. 무형문화재가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크낙새처럼 아름답게 살아 있는 우리의 무형문화재를 자주 찾고 만지고 즐기자. 우선은 찾고 즐겨주는 것만으로도 대부분 연세가 높으신 기능보유자들은 기뻐하고 그 관심에 미안할 정도로 고마워하신다.

앞으로 무형문화재를 시리즈로 연재하여 우리의 문화적 관심의 일부를 사라져가는 무형문화재에 나눠보고자 한다. 이는 이 땅에서 후손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도리이기도 하다. 어떤 분야의 무형문화재는 세계 유일의 문화적 희소가치에도 불구하고 계승자를 찾지 못해 그 기능이 대가 끓길 위기에 있기도 하다.

끝으로 무형문화재를 정의한 '문화재 보호법'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무형문화재가 박물관 유리상자 속의 유물과 달리 지금도 바로 쓰고 듣고 보는 것이 가능한‘우리 일상생활 주변의 것들’ 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음악, 무용, 연극, 놀이, 의식, 무예 등과 관련된 예술과 공예기술, 음식 등 각종 생활용품을 제조하는 기술로서 역사상 또는 학술 예술상 가치가 크고 향토색이 현저한 무형의 문화적 소산.

강남구 삼성동의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

강남구 삼성동 선정릉(흔히 '선릉') 근처에 있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운영하는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을 찾아가면 품위있는 공연과 전시가 일년 내내 내용을 바꿔가며 우리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공연이나 전시내용의 품격은 단연 정상급이나, 무료라는 혜택이 오히려 '싼 게 비지떡 아닐까'하는 선입견이 되었는지 시민의 방문은 많지 않은 편이다.

지금은 ‘자연을 이어, 전통을 엮어서’라는 우아한 제목의 기획전시가 24일까지 열리고 있다. 멍석, 짚신, 쌀가마니 등은 물론 거친 짚으로 만든 섬세한 생활용구가 뜻밖에 많은 것을 보고 놀라게 될 것이다. 이 모두 안타깝게 사라져가는 우리의 소중한 무형문화유산이다.

판소리 탈춤 등의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월·목·금요일 저녁에 전수회관내 무대에 서 펼치는 공연의 품격 또한 정상급의 무대이다. 입구에서 도우미 분들이 고운 한복 차림으로 맞는 세련된 공연공간으로의 입장이 미안하게도 역시 무료이다.

또 ‘정오에 만나는 전통문화무료체험행사’가 화·수·목요일 낮12시에서 1시 사이에 열리는데 누구나 찾아가면 참가 할 수 있으며, 3개월 정도만 꾸준히 배우면 웬만큼 한다는 소리를 듣더라는 관계자의 말.

탈춤·사물놀이·민요·전통악기 등 여러 과목이 있는데 악기대여비, 재료비등 일체의 비용이 없는 완전 무료. ‘싼 게 비지떡’이라는 선입견만 빼고 가면 되는 '무형문화재와의 우아한 만남'이 우리를 기다린다. / 곽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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