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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미국 대선에 이어 2004 미국 대선은 양극화되고 있는 미국 사회를 보여준다. 미국 사회내 블루(blue)와 레드(red)의 대립은 단지 서로 의견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서로를 증오하는 수준까지 심화되고 있다. 이 같은 양극화는 정치는 물론 지역, 인종, 경제, 문화, 심지어는 스포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 원인은 묘하게도 세계화(globalization)에 있다. 세계화의 엔진이자 진원지인 미국이야말로 세계화의 영향을 가장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크게 받고 있다. 어느 때보다 치열한 선거전이 예상되는 2004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사회의 양극화된 이면을 현장취재한다. 블루와 레드는 미국대선 개표 때 주별로 민주당이 이긴 지역은 블루, 공화당이 이긴 지역은 레드로 표현한 데서 착안한 것이다.... 기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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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블루와 레드, 길에서 만난 두 개의 미국


맥도날드 본사를 가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약간의 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일주 여행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이쪽 맥도날드에서 저쪽 맥도날드까지의 왕복이다. 어딜 가도 맥도날드의 골든 아치로 시작해서 피자헛, 버거킹, 웬디스, 할리데이인, 이코노라지, 채널4 등 프랜차이즈들이 순서만 바꿔서 도열해 있다. 자동차를 몰고 여러 시간을 달려도 도착하는 곳은 언제나 똑같다.

언젠가 기차 침대칸에 누워서 미국을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책을 읽다가 졸리면 자곤 했다. 자다가 눈을 뜨면 경치가 바뀌어 있었다. 유람선 여행은 이래서 하는구나 싶었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세계가 내게로 달려온다. 더구나 당시 기차여행은 2월에 미국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것이어서 낮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계절까지 바뀌어 있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 뉴올리언즈의 초봄에 출발한 기차가 미시시피강을 따라 북상하면서 반나절도 안돼 겨울로 바뀌었다. 아이오와 주의 평원을 달릴 때는 안전한 거리에서 폭설이 내렸다.

그런데 시카고에서 워싱턴으로 향하는 구간은 마치 뭔가에 씌운 것 같았다. 밤이었는데 잠에서 깨어서 바깥을 내려다 보자 낯익은 맥도날드의 골든 아치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잠을 더 자고 일어나서 보니 여전히 골든 아치가 시선을 가로막았다. 기차는 쉼없이 달렸다. 하지만 여전히 골든 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달아나려고 발버둥치는데도 제자리에 머물러있는 악몽과도 같았다.

하지만 스스로 위선적이라는 걸 안다. 여행을 다닐 때마다 점심을 해결하는 곳은 맥도날드, 버거킹, 웬디스, 피자헛, 아니면 중국식당이다. 값이 저렴하면서도 항상 안전한 선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싫어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끌려들어가는 기분은 더욱 좋지 않다. 하지만 나 역시 '맥도날드화된 인간'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변화를 바라는 것 같으면서 내심은 변화를 싫어하는, 피상적인 변화는 원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싫어하는, 현실안주형 진보주의자라고 할까.

이번 미국 여행지를 결정할 때 첫번째로 맥도날드가 떠올랐다. 끝없는 세포분열을 통해 미국을 프랜차이즈하고, 나아가 전세계에 촉수를 뻗치고 있으며, 나의 취향과 체질마저 보수화시키고 있는 이 괴물의 정체를 모르고는 미국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심장부를 쳐들어가지 않고서는 어떻게 자료만으로 맥도날드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겠는가. 가자.

맥도날드 본사에는 골든 아치가 없다

▲ 맥도날드 플라자의 1층에 있는 맥도날드 식당. 의자와 식탁이 분리돼 있다.
ⓒ 홍은택
오후 4시가 돼서야 일리노이 주 오크 브룩(Oak Brook)에 있는 맥도날드 본사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지 못했다. 처음엔 맥도날드 본사에서 파는 햄버거 맛을 보기 위해 꾹 참고 운전했다. 그런데 고속도로 290번에서 빠져나와 루트 63번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다 31번가를 만났을 때 좌회전해야 할 걸 우회전해버렸다.

길을 찾느라 시간이 지체되자 마음이 간사해지기 시작한다. 오크 브룩에 있는 아무 맥도날드에서나 햄버거를 먹으면 어떤가. 맥도날드 본사가 있는 동네의 햄버거 맛이 어떤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동네엔 그 흔한 맥도날드가 없다. 파운틴 쇼핑몰이라는 곳에 들어갔더니 맥도날드 비슷한 패스트 푸드점도 없다. 오크 브룩은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 중 60개 기업의 본사나 지사가 있는 오피스 전원도시. 경비원이 출입문을 지키는 고급 주택촌들이 하늘 높이 자란 숲 속에 숨어있다.

그렇게 헤매다 보니 어느 새 맥도날드 본사 건물 중 하나인 8층짜리 맥도날드 플라자에 도착해버렸다. 그런데 이게 맥도날드 건물인지 긴가민가했다. 맥도날드의 상징, 골든 아치가 없다.

사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맥도날드 본사를 찾는 것은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세계 곳곳에 솟아있는 골든 아치가 본사 건물에는 얼마나 높이 솟아있을 것인가. 멀리서 그것을 길잡이 삼아서 따라오면 본사 건물에 당도하지 않겠는가.

골든 아치는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이 만들어낸 '골든 아치의 분쟁 예방 이론(Golden Arches Theory of Conflict Prevention)'이라는 그럴듯한 얘기의 소재이기도 했다. <올리브 나무와 렉서스>라는 그의 책에 따르면 지금까지 골든 아치가 들어간 나라끼리 전쟁하는 적이 없었다고 한다.

골든 아치가 마치 평화의 전령인 것처럼 보이는 이 주장은 곧장 깨졌다. 미국 매릴랜드대의 사회학자 조지 리처는 저서 < McDonaldization of Society >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이 이미 맥도날드가 들어간 유고슬라비아를 폭격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어쨌든 그처럼 이론에도 등장하는 골든 아치가 본사에는 없다.

그 이유를 추론할 수 있는 일화가 있다. 골든 아치는 맥도날드를 전국적 프랜차이즈로 만든 레이 크록이 그토록 미워한 맥도날드 형제의 작품이다. 맥도날드는 60년대말 회사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리차드 맥도날드가 본래 고안한 식당의 디자인을 바꿔버렸다. 이 때 골든 아치마저 없애버리기로 했다. 그러나 디자인 변경에 따른 소비자 반응을 조사하기 위해 채용한 심리학자겸 디자인 컨설턴트 루이스 체스킨(Louis Cheskin)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는 골든 아치가 소비자의 무의식에서 프로이드적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골든 아치 한 쌍을 보면 큰 가슴이 연상되기 때문에 엄마 맥도날드 젖가슴의 이미지로 소비자들의 무의식에 각인돼 있다는 것. 솔깃한 그의 설명 덕분에 골든 아치는 철거의 운명을 피해 오늘날에는 교회의 십자가보다 더 유명한 야외 조형물 중 하나가 됐다. 그의 말을 듣고 다시 보면 아치가 큰 가슴을 닮은 것 같기는 하다.

본사 건물 1층에 있는 맥도날드 햄버거에서 '넘버 6 BIG N TASTY'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3달러30센트에 세금 22센트 모두 3달러52센트다. 싼 편이다.

이 식당은 두 가지 점에서 지금까지 가본 수많은 맥도날드와 달랐다. 먼저 탄산음료 외에 주스와 스포츠 음료도 같은 가격에 선택할 수 있고 대·중·소 구분 없이 맘껏 따라 마실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식탁과 의자가 붙어있지 않았다. 마치 진짜 식당처럼 의자를 뒤로 길게 뺄 수도, 바짝 붙여 앉을 수도 있었다. 조화이기는 했지만 빨간 장미 한 송이가 식탁마다 놓여있어 제법 진짜 식당 같다.

다른 맥도날드에 가면 식탁과 의자가 붙어있어 거리조정이 안된다. 필자처럼 다리가 긴 사람으로서는 공부할 때도 하지 않는 정좌를 하고 햄버거를 먹어야 한다. 더구나 의자는 딱딱하고 초를 발라놓은 것처럼 반질반질하다. 인체공학적으로 이처럼 일부러 오래 앉아있지 못하도록 설계된 식탁과 의자는 매우 드물다.

리처 교수는 그게 바로 맥도날드가 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빨리 일어나야 손님들의 회전이 빨라진다. 빠른 회전은 많은 매출, 높은 수익을 의미한다. 그게 패스트 푸드다.

원래 자동차 여행 도중 가볍게 빨리 먹기 위해서 패스트 푸드가 나왔지만 패스트 푸드가 보편화되면서 패스트 푸드의 속도에 사회가 좇아가는 양상이 돼버렸다. 일례로 점심 시간은 더욱 더 짧아진다. 남들이 패스트 푸드를 먹고 일찍 오후 업무를 시작하는데 여전히 점심을 먹고 있다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다른 의미에서 속도전을 촉발하기도 한다. 맥도날드에 소고기를 납품하는 미 최대의 소고기 가공업체 IBP의 도살장에서는 시간당 4백 두의 소가 도살된다고 한다. 만약 시간당 3백 두의 소를 도살하는 업체가 있다면 이 업체는 IBP보다 소고기 가공 원가가 높기 때문에 맥도날드사에 대한 납품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만약 시간당 5백 두의 소를 도살하는 업체가 나타난다면 IBP로서는 기를 쓰고 도살 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를 도살하고 가공하는 작업에는 지금도 일일이 사람의 손이 가야 한다. 날카로운 큰 칼을 쥔 손이 빨라져야 한다. 그러다 보면 더 많은 부상을 입게 되고 때로는 사람이 도살되는 일마저 일어난다. 그게 실제 미국 육가공 공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맥도날드라고 해서 속도를 조절하지는 못한다. 운전석에는 앉아 있지만 끊임없이 다른 차의 속도를 곁눈질해야 한다. 맥도날드는 더 이상 미국 내에서 최대 가맹점을 가진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최대 가맹점을 가진 프랜차이즈는 버거킹도, 웬디스, 캔터키프라이드치킨도 아닌, 가장 후발주자인 서브웨이다.

미국 최대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맥도날드가 아니다

▲ 서브웨이의 대변인인 제러드 포글의 살빼기 이전과 이후
ⓒ 서브웨이사
맥도날드보다 10년 늦은 1965년에 생긴 서브웨이는 2001년 12월 31일을 기준으로 미국 내에서 1만3247개를 기록, 맥도날드를 148개의 차이로 제쳤다. 서브웨이는 미국 내에서 매년 1천 개 꼴의 파죽지세로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늘려가고 있는 반면 맥도날드는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서브웨이의 성장비결 중 하나는 칼로리가 적은 샌드위치다. 서브웨이의 대변인은 제러드 포글(Jared Fogle)씨. 그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회사를 대변한다. 포글씨는 하루에 서브웨이 샌드위치 2개만 먹으면서 1년 동안 꾸준히 운동량을 늘린 결과 무려 110kg을 뺐다고 선전하고 있다.

오타가 아니다. 110kg. 웬만한 여성 두 사람의 체중을 뺐다. 그렇게 하고도 그의 몸에는 87kg이 남았으니 원래 몸무게가 얼마였을까. 그는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국민인 미국인의 새로운 우상이다. 일년 열두 달 365일 강연요청이 쇄도한다. 더 살이 안 빠지는 게 궁금할 지경이다.

서브웨이 성장의 비결이 꼭 샌드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서브웨이의 특공대원들은 '개발 에이전트(development agent)'. 개발 에이전트는 서브웨이 직원이 아닌 독립적인 세일즈맨들인데, 이들은 샌드위치가 아닌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판다. 한 가맹점을 개점할 때마다 가맹점 신청자로부터 프랜차이즈 가맹비의 절반, 그리고 이 가맹점이 매년 내는 로열티의 1/3을 가져가며 가맹점의 권리가 다른 사람한테 넘어갈 때는 권리금의 1/3을 먹는다. 이들은 매월 가맹점 확장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서브웨이 본사에 부족분만큼 물어내야 하기 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가맹점을 늘려갈 수밖에 없다.

서브웨이 가맹비는 10만 달러로 주요 패스트 푸드 프랜차이즈 중에서는 가장 낮다. 하지만 매년 내는 로열티는 매출의 8%로 가장 높다. 쉽게 가맹할 수 있기 때문에 가맹점 주인 중 이민자들이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서브웨이는 공항, 편의점, 운동장, 병원, 비디오 대여점 등 구석구석 조그만 틈만 있어도 파고들어가 맥도날드와 다른 선발 업체들을 포위해 버린다.

최근 맥도날드가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다. 새로운 경쟁자들의 도전도 도전이지만 무엇보다 비만과 당뇨의 원인을 제공하는 패스트 푸드의 원흉으로, 그리고 미국 자본 침투의 첨병으로 찍혀서 세계 곳곳에서 보이코트와 심지어는 폭탄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올해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사이즈 미(Supersize me. 나를 극대화하라)> 역시 맥도날드에게는 중성자탄 같은 것이다. 감독 모건 스퍼로크(Morgan Spurlock)가 스스로 30일 동안 맥도날드 제품만 먹은 체험을 기록해 만든 이 영화는 호주와 같은 곳에서는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 영화 <슈퍼사이즈 미>의 감독 모건 스퍼로크의 영화 포스터
영화에서 그의 몸무게는 한달 동안 11kg이나 늘었고 콜레스트롤 수치가 168에서 230으로 치솟았다. 뿐만 아니라 불면증, 가슴 두근거림, 설탕 중독 등의 고통을 호소했다. 맥도날드는 당초 이 영화를 무시했다. 영화를 보면 스퍼로크가 맥도날드 측에 집요하게 인터뷰를 신청하지만 15번 동안 전화를 걸어도 회답이 없다.

필자도 여기 오기 전 맥도날드 본사에 인터뷰를 신청했지만 일주일 만에 온 회답은 한국 맥도날드를 통해 취재목적을 밝히고 새로 절차를 밟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고 찾아왔다.

맥도날드 플라자에서 차로 5분만 남쪽으로 내려가면 맥도날드 캠퍼스가 펼쳐진다. 남북으로는 31번가와 22번가 사이, 동서로는 루트 63번과 요크 로드 사이의 10만평 대지에 자리잡은 이 곳에는 햄버거 대학과 하이야트가 운영하는 호텔, 또 다른 본사 건물이 있다.

특히 햄버거 대학이라는 이름이 멋있다. 햄버거라는 식품 하나를 소우주로 생각하고 연구하고 가르친다면 세상이 얼마나 다양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가득 차 있게되는 것일까. 담배 대학도, 연필 대학도, 심지어는 가위 대학도 생길 수 있는 것 아닌가.

▲ 맥도날드 캠퍼스의 햄버거 대학 전경과 호수 프레드
ⓒ 홍은택
미국의 어느 대학 못지 않은 아름다운 캠퍼스다. 울창한 숲과 뱃놀이를 할 만큼 넓은 호수를 끼고 있다. 캠퍼스 내 두 줄기의 도로는 각각 로널드 레인(Ronald Lane), 크록 드라이브(Kroc Drive)로 명명돼 있다. '로널드'는 맥도날드가 어린이를 겨냥해 개발한 어릿광대 캐릭터 로널드 맥도날드에서, '크록'은 창업자 레이 크록의 이름에서 따왔다.

대학과 호텔 사이에 있는 호수는 '레이크 프레드(Lake Fred)'라고 불린다. 프레드는 크록에 이어 맥도날드의 2인자였던 프레드 터너의 이름이다. 정확한 지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날의 맥도날드는 터너 없이는 상상하기 어렵다.

맥도날드 햄버거는 모스크바 맥도날드든, 시카고 맥도날드든 익히기 전의 무게가 1.6온스(약 44.8g)이어야 한다. 햄버거 안에 들어가는 간 소고기의 지름은 3.875인치(9.8425cm), 빵의 지름은 조금 작아서 3.5인치(8.89cm). 햄버거 고기의 지방 비율은 19%로 통일돼 있다.

이처럼 햄버거의 품질이 규격화돼 있기 때문에 맥도날드 본사에서 먹는 햄버거든,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먹는 햄버거든 맛이 같다. 이같은 통일성이 맥도날드 성공의 원인이다. 낯선 음식을 접할 때의 불안감이 맥도날드에는 없기 때문이다. 최선의 선택은 아니지만 항상 무난한 선택은 된다. 이것이 나의 식성을 보수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처럼 제품 표준화의 가치에 일찍 눈 뜨고 피클의 두께까지 통일한 사람이 터너다. 후에 크록에 이어 2대 선임 회장에 오른 터너는 1958년부터 회사의 운영과 직원 훈련 매뉴얼을 만들어 거의 모든 것을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도록 했는데 75쪽이었던 이 매뉴얼이 지금은 700쪽이 넘는다. 이 매뉴얼의 별명은 '성경'이다.

700쪽에 달하는 맥도날드 '성경'

▲ 맥도날드의 프레드 터너 전 선임 회장
ⓒ 맥도날드사
햄버거 대학도 터너 회장이 자신이 직영한 매장이었던 엘크 그로브 빌리지(Elk Grove Village)의 지하실에 만든 훈련 센터에서 시작된 것이다. 햄버거만 죽자 사자 연구하는 데는 아니다. 그러니 담배 대학이나 가위 대학도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지금은 30여명의 교수진이 맥도날드 매니저들과 예비 점주들을 대상으로 매장관리에서부터 장비관리, 인사관리, 품질관리, 고객관리 등 햄버거 매장 운영에 관한 모든 것을 22개 언어로 가르칠 수 있다. 2주 과정을 졸업하면 '햄버거학(hamburgerology)' 수료증을 받는다. 지금까지 6만5천명이 이 대학을 다녀갔다. 시드니, 뮌헨, 도쿄, 홍콩, 상파울로, 런던에도 '분교'를 두고 있다.

'학생'들은 호수 위로 난 구름다리를 건너 '라지(lodge: 오두막집)'라는 소박한 이름의, 하지만 하룻밤의 숙박료가 세금 포함 175달러(약 20만원)인 호텔에서 묵는다. 객실 수가 218개나 되는 이 호텔은 일반인도 투숙할 수 있다. 실내 수영장과 헬스 클럽, 이태리 식당, 대연회장 등을 갖추고 있다.

호텔 복도에는 맥도날드 콤보 세트를 정물화로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수채화로 그린 이 그림은 마치 캠벨 수프 캔을 그린 앤디 워홀의 그림처럼 우리가 물신화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햄버거는 그냥 무난한 선택 정도가 아니라 그 미학을 감상하면서 먹는 대상으로 올라섰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이 호텔의 로비에서 만난 흑인 여성 티나 그레인은 "햄버거 대학에서 비즈니스 리더십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하루에 9시간씩 수업을 듣지만 중간에 휴식이 있어서 일하는 것보다는 수월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텍사스 주 위니에 있는 맥도날드 햄버거 가맹점의 매니저. 처음 크루(crew)라고 부르는 일반 종업원에서부터 시작해 근무조의 조장, 보조 매니저를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오는데 13년이 걸렸다. 맥도날드 한 가맹점의 평균 종업원수는 50명 내외. 이중 조장, 보조 매니저, 매니저로 이뤄지는 간부진은 5명 안팎이다. 그녀는 "그야말로 밑바닥에서부터 빡빡 기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며 활짝 웃어보였다.

그녀는 원래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엔지니어로 일하다 항공 스튜어디스를 거쳐 맥도날드에 들어왔다. 맥도날드 종업원들의 기준으로 보면 이례적인 경력이다.

어떻게 해야 당신처럼 매니저가 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누구나 열심히 하면 될 수 있다"고 바로 대답했다. 곧 성공학에 대해 한바탕 늘어놓을 기세다. 그래서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견제성 질문을 재차 던지자 "뛰어난 관리 기술만 있으면 된다"고 답했다. 두 대답이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뛰어난 관리 기술이 생기느냐고 더 묻지는 않았다.

얼마를 받느냐고 묻자 "돈이란 항상 부족한 것 아니냐, 불평하지는 않는다"면서 끝내 털어놓지 않았다. 패스트 푸드 체인의 매니저들의 평균 연봉은 2만3000달러 수준(2002년 기준)으로 높은 편은 아니다.

그녀의 꿈은 지역의 감독관(supervisor)이 되는 것이다. 그녀는 감독관이 되기 위해 대학에 등록해 스페인어를 배워야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스페인어를 모르고는 영업도 관리도 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텍사스에는 남미에서 온 이민자(Hispanic)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 내 맥도날드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중 6분의 1은 영어가 오히려 외국어다. 가끔 맥도날드 햄버거에서 세트 메뉴를 고르지 않고 복잡한 주문을 하면 종업원이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다. 보통은 자기 영어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부끄러워하게 되는데 사실은 저쪽 영어가 더 문제일 수 있다. 넘버 원, 넘버 식스 등의 맥도날드 잉글리시(McDonald English)로만 대화가 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본사에 있는 맥도날드 햄버거 식당에서 만난 엔리케씨가 그런 경우다. 멕시코에서 이민 온 그는 식당을 청소하는 일을 맡고 있다. 햄버거를 먹는 도중 눈길이 부딪힐 때마다 받아주는 미소가 부드럽다.

▲ 맥도날드 플라자의 맥도날드 식당에서 일하는 멕시코 이주 노동자 엔리케씨
ⓒ 홍은택
다가가서 몇 마디 대화를 이어나면서 그가 시간당 8달러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필자가 놀라는 표정으로 꽤 많이 받는다고 말하니까 아홉 손가락을 펴면서 지금까지 9년 동안 일해 왔는데 그게 뭐 많으냐고 말했다. 그는 올해 65세다. 그의 바람은 앞으로도 계속 안정적으로 청소하는 것이다. 북미 대륙의 맥도날드에는 노조가 없다. 그리고 지금 기자가 둘러보고 있는 본사에는 노조 결성을 와해시키는 기동타격대가 있다.

햄버거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자. 이 아름다운 호수에 연한 그림 같은 햄버거 대학이 맥도날드 제품과 직원을 표준화시키는 역할을 해왔지만 맥도날드가 주도해온 마케팅의 혁신에 기여한 흔적은 많지 않다.
판매량을 늘리는 고전적인 마케팅 방법은 한 개의 값에 두 개를 팔면서 한 개 값을 살짝 올리는 것이었다. 이 방법을 쓰면 옷이나 책, 가구 등 어떤 제품도 판매량이 늘었다. 하지만 음식에는 소용이 없었다. 한번에 먹을 수 있는 양이 제한돼 있어서 그런 탓도 있지만 근본 원인은 딴 데 있었다.

극장의 수입은 팝콘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팝콘의 판매 마진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60년대 극장 체인 밸러밴(Balaban)에서 일하던 데이비드 왈러스타인(David Wallerstein)은 팝콘 판매가 부진한 원인을 분석했다. 한 상자 값으로 두 상자를 준다고 해도 사람들은 손사래를 저었다.

왜 그럴까. 그는 어느 날 사람들이 두 상자를 쥐면 너무 탐욕스러워 보이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럼 한 상자로 만들어 버리는 게 어떨까. 그는 팝콘 상자를 두 배로 크게 만든 점보 사이즈 팝콘을 내놓은 뒤 가격은 조금만 올려서 내놓았다.

그렇게 첫 주가 지난 뒤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왈러스타인은 스스로도 놀랐다. 팝콘 판매량이 는 것은 물론이고 코카콜라와 같은 탄산음료의 판매도 급증했다. 팝콘을 많이 먹으면 짜니까 음료수도 자연 많이 먹게 된다. 음료수의 판매 마진도 팝콘만큼 크기 때문에 마케팅 효과는 두 배가 아니라 거의 4배가 됐다.

맥도날드로 이직한 왈러스타인은 그 경험을 되살려 70년대 초 큰 사이즈의 프렌치 프라이를 제안했다.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다. 레이 크록마저도 사람들이 프렌치 프라이를 더 먹길 원하면 두 통을 시킬텐데 굳이 큰 사이즈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했다. 왈러스타인은 사람들이 프렌치 프라이 통의 바닥까지 긁어서 먹는 것을 보면 분명 더 먹길 원하지만 새로 한 통을 주문하지 않는 심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맥도날드가 마지 못해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대자 프렌치 프라이를 내놓았다. 사이즈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맥도날드 성공의 비결은 '슈퍼사이징'

1960년대 피츠버그에 있는 맥도날드의 점주였던 짐 델리가티(Jim Delligatti)가 햄버거 두 개를 붙여서 만든 빅 맥도 비슷한 마케팅 개념이었다. 먹으면 더 들어가게 돼 있는 게 '위대한' 배의 속성이다. 그렇게 한번 대자로 사이즈를 확대해 놓으니까 점점 더 들어갔다.

1960년대 200 칼로리였던 프렌치 프라이가 70년대말에는 320, 90년대 중반에는 450에서 90년대 후반 540 지금은 610 칼로리까지 치솟았다. 그동안 과체중이거나 비만이던 미국인의 비율은 인구의 25%에서 지금은 과반수가 넘는 61%로 올라갔다.

아마 인류 역사상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한 나라 국민의 체형이 집단적으로 비틀린 경우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지 패스트 푸드의 문제만은 아니다.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혁신은 세트메뉴의 개발. 버밍햄 맥도날드의 점주였던 맥스 쿠퍼(Max Cooper)의 작품이다. 가격을 더 이상 내릴 수도, 비용을 더 이상 줄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윤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매출을 늘리는 것이다.

극장이 팝콘으로 돈을 벌듯이 햄버거 식당은 음료수와 프라이로 돈을 번다. 햄버거를 팔아서 남는 돈은 얼마 안된다. 1975년 쿠퍼는 햄버거를 판매 마진이 높은 음료수, 프라이와 한 꾸러미로 파는 게 어떨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표준화와 통일성을 중시하는 맥도날드 본사는 그의 파격에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독립기념일을 기해 빅 맥과 음료수, 프라이를 결합한 콤보 메뉴를 내놓았다. 대히트였다. 지금은 모든 맥도날드, 그리고 버거킹과 웬디스와 같은 다른 패스트 푸드 체인도 모두 세트 메뉴를 쓰고 있다.

이 변화를 미국 패스트 푸드 업계에서는 '수퍼사이징(supersizing)'이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 중 하나만 먹던 사람도 세트 메뉴를 선택한다. 햄버거와 프라이 두 개를 따로 사는 것보다 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세트 메뉴를 고른다. 그렇게 점심을 먹었다고 해서 저녁을 거르지는 않으니까 칼로리 섭취량은 비약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콤보 메뉴나 빅 맥은 물론 생선 샌드위치(Filet-o-Fish)와 에그 맥머핀(Egg McMuffin), 아침 식사메뉴도 모두 본사가 아닌, 한 가맹점에서 개발돼 효과가 입증된 뒤 본사를 통해 전 가맹점으로 확산됐다.

내친 김에 맥도날드의 메뉴에 대해 한 가지만 더 얘기하고 넘어가자. 치킨 너게츠다. 이 제품은 밑에서가 아니라 위에서 내려간 상의하달식의 개발 과정을 거쳤다.

1979년 레이 크록으로부터 회장직을 넘겨받은 레이크 프레드의 주인공 터너는 육류 납품회사였던 키스톤 푸드(Keystone Foods)의 간부를 불러서 엄지 손톱 크기의 뼈가 없는 닭고기 제품을 개발해보라고 제안했다. 당시는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방이 적은 닭고기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을 때였다.

닭고기 상품화의 필요성을 일찍 깨달은 터너 회장의 제안에 따라 키스톤사의 실험실은 맥도날드 소속 과학자들과 협력해 6개월 만에 맥너게츠를 개발해냈다. 맥너게츠가 대성공할 가능성이 보이자 맥도날드는 공급을 늘리기 위해 최대 닭 가공회사인 타이슨(Tyson)사를 끌어들였다. 타이슨은 가슴만 비대한 새로운 닭 품종을 개발해, '미스터 맥도날드'라고 명명했다.

맥너게츠의 공식 데뷰는 1983년. 맥도날드는 단번에 미국 내에서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다음으로 큰 닭고기 구매회사가 됐고, 그 이후 9년만인 1992년 미국 내에서 소비되는 육류 중 닭이 소를 처음으로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건강에 더 좋은 것으로 보였던 맥너게츠의 지방산 분포가 닭고기보다는 소고기에 가깝다는 하버드대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 온스당 너게츠에 포함된 지방은 햄버거에 비해 두 배나 되는 것으로도 밝혀졌다.

어쨌든 폭증하는 닭고기 소비를 충족시키기 위해 닭을 대량생산하는 체제가 들어섰다. 그러자 언제나 대량생산시대가 되면 그렇듯 닭을 키우던 농가들은 기업농에 밀려 폐가가 돼버렸다. 이미 패스트 푸드 햄버거의 등장에 따라 소고기 수요가 늘면서 목축업도 대기업화되고 미국의 영원한 상징인 카우보이들이 거의 멸종지경이 이르게 된 것에 이은 미 농가의 또 다른 타격이었다.

수요가 늘어날수록 그 물건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생활이 오히려 궁핍해진다는 것은 역설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자본주의적 역설이다. 에릭 슐로서는 이것을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에 빗대 설명했다. 합성의 오류는 개인적으로는 타당한 행동을 모두가 다 같이 할 경우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될 때 쓰인다. 혼잡한 콘서트에서 자기만 잘 보려고 일어서면 모두 다 일어서 모두가 다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결과가 되는 게 비근한 예다. 저축을 장려해서 모두 저축만 하고 소비를 안 하면 경제가 망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슐로서는 미국 농민들이 서로 더 싼 가격에 더 많은 농산물을 더 빨리 생산하려고 경쟁하다 보니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모두가 죽게 되고 대기업만 살아남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합성의 오류로 설명하는 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방치해두면 독점화되는 경향을 띠고 있는 자본주의의 내재된 특성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맥도날드가 세계 최대의 패스트 푸드 회사가 된 것은 바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가맹점의 독립적인 실험을 허용하고 수용할 줄 아는 유연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으로서의 맥도날드에 대한 평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맥도날드 성장에 따른 다른 부문의 희생이 너무나 크다. 그 일차적인 대가는 미국인들이 갈수록 비만해지는 몸으로 치르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숲에 파묻힌 맥도날드 캠퍼스에서 피폐화되는 농촌과 획일화되는 식성과 문화, 산처럼 커지는 미국인의 체형이 잘 보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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