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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덕원이야기> 포스터
ⓒ 극단 차이무
작년 대학로 연극계에 관객동원에 있어 단연 화제를 몰고 온 <생연극시리즈>가 올해 두 번째를 맞았다. 생맥주 같은 생생한 연극을 1년간 시리즈로 보여주는 <생연극시리즈>는 2004년 극단 차이무의 <양덕원이야기>(민복기 작/연출)를 첫 번째 작품으로 공연되고 있다.

아버지의 임종을 앞뒀음에도 자식들은 걸려온 핸드폰을 받기 바쁘다. 시집식구들과 서먹한 며느리들은 시아버지의 죽음을 중계방송 듣듯이 핸드폰으로 전해 듣는다.

아버지 곁에서 쓸쓸하게 임종을 지키던 큰아들은 바이어에게 전화가 오자 마당으로 달려 나와 웃으며 통화를 한다. 마당에 나와 있는 둘째는 끝나 가는 휴가를 걱정하고 셋째는 일상처럼 빨래를 걷는다.

염하러 온 이웃 아저씨는 빨리 돌아가시라고 재촉을 한다. 3시간이면 돌아가신다는 아버지의 임종이 길어지면서 귀향과 귀경을 반복하는 가족 사이의 이야기 <양덕원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양덕원이야기>의 무대는 경기도 양평의 시골 마을 양덕원의 어느 집 마당이다. 마당 한쪽에는 죽어가는 늙은 나무가 있고, 살대가 성근 가을철 때늦은 평상이 마당을 지키고 있다. 무대 뒤편으로는 빨랫줄에 널려있는 옷가지들이 있다.

무대의 늙은 나무는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버지처럼 묵묵히 자식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이제 수명이 다해 베어질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를 말해주듯 염을 하러 온 동네 아저씨는 거치적거리니 빨리 베라고 재촉한다. 그가 아버지에게 빨리 돌아가시라고 재촉하듯이. 하지만 그가 나무 뒤에 숨어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 늙은 나무는 아직 든든하다. 아버지가 자식들의 듬직한 배경이듯이.

이 늙은 나무는 무대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주요한 장치이다. 술 취한 아저씨가 슬립스틱 코미디를 보여주듯 나무에 부닥치기도 하고 나무에 숨기도 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초상을 알리는 황색등이 달림으로써 늙은 나무는 그 마지막 역할을 한다.

무대 가운데는 평상이 있다. 늦은 가을의 평상은 때늦은 반소매 옷과 같다. 평상은 모깃불을 피워 모기를 쫓는 여름에나 어울린다. 바깥주인이 있었다면 치워지고 없을 그것이 늦은 가을에도 마당을 지키고 있는 것은 바깥주인이 몸이 아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평상은 무대 위의 무대 역할을 한다. 차이무의 전작 <거기>에서 배우들이 동작선 없이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아 이야기로 극을 진행했던 것처럼 <양덕원이야기>에서도 배우들의 동작은 제한적이며 대화가 이루어지는 주요한 장소는 평상이다.

늦은 가을, 방이 아니라 평상에 나와 있는 자식들의 모습은 이들이 고향을 추억하기는 하나 이곳에서 살 수 없는, 그래서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귀경과 귀향을 반복할 수 없는 상황을 대변해 준다. 때문에 자식들의 대사에는 고향의 현재보다 과거를 추억하는 이야기가 많다.

▲ <양덕원이야기> 공연장면
ⓒ 극단 차이무
무대서 볼 수 있는 빨래는 극중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는 소품으로 사용된다. 배우가 빨래를 널면 오전이나 점심쯤이고 빨래를 걷으면 어스름한 저녁이 된다. 또한 빨래를 널고 걷고 개면서 배우는 어색하지 않게 연기할 수 있다. 라면을 먹고 소주를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무대에서 볼 수 없으나 분명 존재하는 도꾸(개)는 관객과 무대를 가깝게 만든다. 배우들이 객석의 한 관객을 도꾸로 지정하여 그에게 라면도 먹여주고 쓰다듬기도 하면서 관객들은 배우들이 그 ‘도꾸’를 바라보기만 해도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이러한 여유와 웃음은 극단 차이무의 특징으로 많은 관객들이 차이무 공연을 즐겨보게 만드는 힘이다.

<양덕원이야기>의 극작과 연출은 극단 차이무의 대표 민복기가 맡았다. 그는 다재다능한 젊은 연극인으로서 작년 <거기> <조통면옥> 등에서 구수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친 연기자이자 <조통면옥> <돼지사냥> 등을 연출한 인정받는 연출가이다. 여기에 주변의 살아있는 이야기와 재기발랄한 대사가 살아있는 <양덕원이야기>를 통해 그의 능력이 극작에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배우들이 훌륭한 앙상블도 연극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이 작품은 동작보다는 주고받는 대사가 많아 배우들의 호흡이 중요하다. 이 작품이 배우들의 앙상블로 적절한 극중 분위기와 상황을 끌어낸 것은 민복기의 연출능력과 경륜이 쌓여 가는 차이무 배우들의 능력이 상승작용을 한 것이다.

<양덕원이야기>는 큰 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 명절에나 두어 번 정도 만나는 형제들이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평소보다 자주 만나 서로 티격태격할 뿐이다. 하지만 이 형제들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이고 쉽게 공감하는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사까지 마치고 자식들이 다시 서울로 떠나가면서 극은 마무리된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큰 극적인 사건이 없음에도 소소한 이야기들이 만들어내는 동감은 관객들에게 극이 끝났을 때 크게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감동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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