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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식 한동대 법학부 교수의 인터뷰가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내수동 <오마이뉴스> 사무실 근처에서 진행됐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역사적으로 봤을 때 국가는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존재다. 이를 법이 통제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법률가들이 법의 이러한 역할을 망각한 채 시민 보호와 국가 통제 대신, 일방적으로 국가권력자나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길바닥에 내버려진 권리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때로는 헌법이 휴지조각처럼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로 그 본질적 의미가 왜곡되고 있기도 하다."

최근 우리 법조계의 편린을 솔직담백한 문체로 써내려간 자전적 에세이집 <헌법의 풍경>(교양인 발행)을 출간한 '검사 출신' 소장 법학자인 김두식(한동대 법학과) 교수의 경고다.

'검찰 공화국' 아래서의 시민권리찾기 나선 '검사출신 법학자'

김두식 교수는 누구?

김두식 교수는 1967년 서울에서 출생,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33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군법무관과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를 지내던 중 특수교육을 하는 아내의 뒷바라지를 위해 검사직을 사임했다. 이후 2년 동안 딸아이의 양육 등 가사일에 종사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누구보다 가정적이지만, 점차 '등처가'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회의를 느끼고 미국 코넬대 법과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현재 한동대 법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형법 및 형사소송법, 사회보장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 <헌법의 풍경>(교양인)이란 책을 출간한 그는 "법은 어려운 것이고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반 시민들이 알고 쉽고 편안히 읽을 수 있도록 책을 썼다"며 "(책을 통해) 앞으로 법률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을 알고 기본 권리를 찾길 바라며, 딱딱하고 권위적인 법조계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한 뒤 "우리는 어려서부터 국가는 절대적으로 선(善)이고, 국가는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이고,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존재라고만 배워왔다"면서 하지만 "근대 이후 법의 주된 목적은 '시민 통제'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시민들에게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기본적으로 있는데 이런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며 "그동안 일종의 '가족'이라는 공동체로 엮어진 법조계에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성'으로 실력을 갖춘 청렴하고 정의로운 젊은 법률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검사의 칼과 판사의 재판봉은 국가권력자가 아니라 국민의 편에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번에 출간된 책을 통해 왜곡된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왜곡된 법조문화의 현주소를 실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그는 검사 재직 시절의 체험을 소개하면서 시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기본권리를 알기 쉽게 설명한 뒤, '검찰공화국' 아래에서의 시민권리찾기를 제안하고 있다.

김 교수는 우선 최근 마무리된 불법대선자금 수사와 관련 "과거 검찰은 굉장히 많은 권한을 가진 상태에서 너무 많은 생각을 갖고 일을 해왔다. 그래서 검찰이 '독수리 5형제'라는 말도 나왔다"면서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가능한 것은 과거 '상명하복'이었던 검찰의 모습에서 벗어나 젊은 검사들이 발언권을 갖고 (자신의 의지를) 밀어붙일 수 있는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검찰이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가고 바른 나라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에 출간한 <헌법의 풍경>에서 우리사회를 '검찰 공화국'이라 표현한 그는 "건국이래 60년 동안 이런 상태가 지속되는 시기를 끝내고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상황이다"라고 평가하면서도 "(이번 불법대선자금 수사는) 모두가 잘못한 상태에서, 마치 황금어장에서 그물 하나만 가지고 건져내듯이, 범죄자를 잡아내면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검찰이 행사하는 권한은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이중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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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존속하자는 법률가 얼마나 될까

그는 또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이정열 판사의 판결과 관련 "과거 하급법원이 대법원을 따라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면서 "그러나 이정열 판사의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처럼 법관의 다양한 판결이 나와야 한다. 이는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와 국방의 의무라는 헌법적 가치가 충돌하면서 당연히 나올 수 있는 판결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 엄청난 대립이 있는 것처럼 보도되고 그러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이미 법률가들 사이에서는 일정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폐지, 대폭개정, 또는 형법에 일부 규정을 수용하고 폐지하는 등 세 가지 중에서 결론이 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30일(일) 오후 종로구 내수동에 위치한 <오마이뉴스> 사무실 인근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 김두식 한동대 교수
ⓒ 오마이뉴스 남소연
- '법(法)은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우리가 처한 법의 현실은 어떠하며, 법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이유는 뭐라고 보는지.
"우리나라만큼 법과 시민들의 삶이 유리된 나라가 많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탄핵소추 이후의 TV토론을 들 수 있다. 토론이 있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 것이 '이 문제는 이제 전문가들 손에 넘어갔으니까 다같이 입을 다물고 전문가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우리 마음속에는 전문가와 일반인에 대한 지나친 이분법이 존재하고 있다. 전문가들만이 이런 사안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법'에 대한 오해다. 누구나 발언권을 갖고 헌법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자기 의견을 '상식'에 입각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넌 전문가가 아니니까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꾸 듣는 과정에서 일반인들의 마음속에 억울함이 남게 된다. 그런 억울함이 있지만 그래도 '모르고 이야기하다가 망신당하니까 입 다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침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시민과 법률 사이의 괴리는 더욱 커지게 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우리 법률가들이 제대로 역할을 못한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 법에 대한 '오해'를 말했는데, 우리가 법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인가.
"우리는 어려서부터 국가는 절대적으로 선(善)이고, 국가는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이고,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존재라고만 배워왔다. 또 법은 못된 시민이 있을 때 그를 처벌하는 것이고, 그것을 집행하는 것이 법률가들이고, 그들에게 복종만 하는 것이 시민이란 것을 배워왔다.

근대 이후 법의 주된 목적은 '시민 통제'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를 통제하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국가는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존재다. 이를 법이 통제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법률가들이 법의 이러한 역할을 망각한 채 시민 보호와 국가 통제 대신, 일방적으로 국가권력자나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길바닥에 내버려진 권리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때로는 헌법이 휴지조각처럼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로 그 본질적 의미가 왜곡되고 있기도 하다."

"지금까지 법은 '말 안듣는 시민' 통치하는 것... 법치주의로 가는 길 아직 멀어"

- 시민들의 권리가 버려진 생황에서 과연 우리 나라를 '법치국가'라고 말할 수 있나.
"일단 법치(法治)에 관한 오해가 있다. 유신헌법 만드는데 관여하고 90년대 초반에 검찰총장도 하다가, 지금은 정치를 하는 분이 일종의 검찰 복무 지침으로 내세웠던 것이 '법의 지배'였다. 그 분이 생각한 법의 지배라는 것은 '말 안듣는 시민'을 통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법이니까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의 지배의 근본정신은 '정의의 지배' 또는 '정의에 합치되는 법의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다. 법실증주의적인 생각에 기초한 법치국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법치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먼저 그가 말하는 법치가 어느 쪽을 의미하는지 주목해야 한다. 법의 지배를 강조한 그 분이 선거에 직접 개입하기도 한 사례가 이야기해주듯 모든 법치주의가 '정의의 지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많이 나아지곤 있지만, 아직은 진정한 의미의 '법치주의'로 가기에는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한다."

- 벌써 '탄핵'이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는데, 탄핵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지금도 나로서는 그때 정치권(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탄핵을 왜 했는지 잘 모르겠다. 이제는 다 알다시피, 법을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예상했던 결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잘못한 것과 그에 대한 제재가 엄격하게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 결과가 나온 것이다.

탄핵 초기에 많은 법학자와 변호사들이 주장한 논리와 거의 유사한 결론을 헌법재판소가 도출한 것이다. 그걸 잘 알만한 법률가들이 탄핵소추에 앞장섰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반성해야 할 분(탄핵소추 의결한 국회의원)들이 지금 제대로 반성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국가가 엄청난 혼란에 빠졌었다. 안정을 강조한 분들이 그런 불안을 만들어낸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 탄핵소추를 결의한 의원들이나 오늘(30일) 아침 TV토론에 나온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도 탄핵에 대해 국회가 절차에 따라 결의했기 때문에 헌재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논리를 아직까지도 주장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국회의원)들이 모여 자신들의 권한에 따라 밀어붙인 것이니까 대통령의 위법사항이 조금이라도 나오게 되면 헌법재판소가 탄핵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펴고 있다. 그렇게 주장할 것이면 헌재 사람(헌법재판관)들이 있을 필요가 없고 탄핵심판을 할 이유 자체가 없는 것 아닌가.

전여옥 대변인이 말하는 것을 봤는데, 고건 총리 같은 사람을 반대를 무릅쓰고 임명했기 때문에 지난 2개월간 국가가 안정되었던 것 아닌가 하는 주장을 펴더라. 완전히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문제를 만든 사람들이 그 문제가 무사히 넘어갔다고 해서 자기들의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지금처럼 다행스럽게 모든 일이 해결된 상태에서 내가 그 입장이라면 '탄핵' 이야기를 다시는 입에 담지 않을 것이다."

"국가는 시민 통제하는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존재... 검찰·법원 막는 역할해야"

▲ 김두식 한동대 교수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최근 마무리된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국민들이 지켜보면서 지지와 성원,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짧게나마 검찰에서 생활한 경험에 비춰 나름대로의 평가를 내린다면.
"주변에서 자꾸 나는 '검사 출신의 법학자'로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부담스럽다. 난 잠깐 검찰에 있었던 것이고, 이런 저런 일을 겪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된 검사 경험을 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상식적인 사람 입장에서 검찰에 관한 생각들을 이야기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 '국가'는 언제든지 시민을 통제하는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존재다. 국가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을 수 있는 기관이 법원과 검찰이다. 동시에 국가가 괴물로 변하는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 법원과 검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법원과 검찰이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계속 박수를 쳐줘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법원과 검찰은 시민들이 감시의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기관이다.

과거 검찰은 굉장히 많은 권한을 가진 상태에서 너무 많은 생각을 갖고 일을 해왔다. 누굴 기소하는데 있어 국가경제나 남북관계 영향 등 주변 상황에 대해 너무 많은 고려를 했다. 그래서 검찰이 '독수리 5형제'라는 말도 나왔다. 검찰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고, 주어진 역할에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처벌하고, 국가를 대표해서 인권을 보장하는 수사를 하면 되는 것이다. 이번 검찰 수사가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는 오랫동안 (검찰이 근본적인 역할을) 못해왔던 것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금까지 해왔던 '독수리 5형제' 역할을 그만하고 주어진 역할만 하면 된다. 그걸 제대로 못하면 언제든지 국민의 신뢰를 잃고 비판을 받을 것이다."

- 이번에 출간한 <헌법의 풍경>에서 우리사회를 '검찰 공화국'이라 표현했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는 검찰 공화국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는지.
"군대가 중심이 되었던 폭력의 지배가 끝난 이후에 '법'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연히 법원이나 검찰이 힘을 갖게 된다. 우리 사회의 경우, 지난 세월 동안 공무원과 교사, 교수, 법조인, 기자, 정치인 등이 모두 잘못해 온 관행들이 없지 않았다. 촌지를 받는다는지 하는 것이 그런 부분이었는데 그게 그대로 용인됐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건국이래 60년 동안 이런 상태가 지속되는 시기를 끝내고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상황이다. 국회의원들이 '남들도 다하는 것을 재수 없어 걸리게 됐다'고 변명하는데 이건 실제로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어쩌다 눈에 띄어 걸리거나 권력자들에 잘못 보여 걸려든 현상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검찰이 막강한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잘못한 상태에서, 마치 황금어장에서 그물 하나만 가지고 건져내듯이, 범죄자를 잡아내면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검찰이 행사하는 권한은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이중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검찰이 무서운 것은 '예외없는 공정성' 확보에서 나온다"

-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지휘했던 안대희 전 중수부장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은 무서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감하나.
"공감한다. (검찰이) 과도하게 처벌하거나, 무섭게 처벌하거나, 밀어붙이거나 그렇게 하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닐 것이다. (죄를 지은 사람을) 빠짐없이 똑같이 처리한다는 것이 제일 무서운 것 아닌가. 우리나라에 힘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도 걸려 들어갈 수 있다는 '예외 없는 공정성'이 확보되면 진짜 무서운 검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997년 이전에 법조계에 들어온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완전히 (권력과 부정부패에) 자유로운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97년 이전에 비해 비교가 안 되게 나아진 셈인데, 법조가 지금처럼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97년 이전에 법조에 들어온 사람들이 예전의 잘못된 관행을 반성하면서 참회하는 구도자 같은 심정으로 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도 그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앞으로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검찰이든 법원이든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가능한 것은 과거 '상명하복'이었던 검찰의 모습에서 벗어나 젊은 검사들이 발언권을 갖고 (자신의 의지를) 밀어붙일 수 있는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검찰이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가고 바른 나라가 되고 있다."

-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놓고 이정열 판사의 판결이 화제가 되고 이에 따르는 논란이 일고 있다. 점차 다양한 의견과 판결이 법조계에서 제시되고 있는데.
"과거 하급법원이 대법원을 따라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를 따라 사법연수원에서는 누가 더 대법원 판결을 많이 아느냐 하는 것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됐다. 그러나 이정열 판사의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처럼 법관의 다양한 판결이 나와야 한다. 이는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와 국방의 의무라는 헌법적 가치가 충돌하면서 당연히 나올 수 있는 판결이다.

이런 의견이 법정이라고 하는 대화의 장에서 토론을 통해 일정한 방향으로 합의를 만들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대법관들만이 '이것이 법이다'라고 판결하면 다른 판사들이 모두 이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법률가들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렇게 되어야지 이 나라에서 소수자들도 숨을 쉬고 살 수 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사법개혁이 더 진행되면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것이고, 이런 점에서 우리 법조계가 더욱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 김두식 한동대 교수
ⓒ 오마이뉴스 남소연
"국보법은 폐지, 대폭개정, 형법의 일부 규정 수용 후 폐지 등에서 결정될 것"

- 시대가 변하고 법률적인 가치가 변함에 따라 법률적 판단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특히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법조계에 많은 의식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현실에 있어 국가보안법이 필요한 것인가.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 엄청난 대립이 있는 것처럼 보도되고 그러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법률가들 사이에서는 일정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폐지, 대폭개정, 또는 형법에 일부 규정을 수용하고 폐지하는 등 세 가지 중에서 결론이 날 것 같다.

지금 상태대로 놓아두어야 한다는 법률가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일부는 있겠지만 악용되는 법을 계속 놓아두어서는 안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상당히 합의가 되어 이번 국회에서 결정해 나갈 것으로 본다. 과거에는 남북관계를 논하면서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나 맑스주의자들을 무조건 감옥에 보내는 등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짓눌렀다. 유신시절에는 '자유와 평등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그 자체로 '형용의 모순'이다. 지금 그렇게 하라면 말이 안된다. 기본권을 제한하는 논리로 남북문제를 끌고 오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는 저급한 수준의 낮은 논리로 국민들을 호도하는 것이다."

- 국민들이 '법'에 쉽게 다가서는데 있어 이것만은 기본적으로 알고 행사할 권리가 어떤 것이 있는가.
"우선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진술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는 수사관행부터 해결되어야 한다. 말로 하는 수사는 분명히 임의수사이다. 비록 체포나 구속을 한다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도주와 증거인멸을 막기 위해 하는 것이지, 진술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범죄자들이) 체포나 구속된 상태에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자백하게 하는 관행은 옳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나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진술거부권'이다. 구속돼 있다고 하더라도 진술거부권을 갖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국가를 대표하는 검찰이라는 거대한 조직체에 맞서 시민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고는 말하지 않을 권리 밖에 없다. 우리가 알만한 법조인 치고 검찰에 붙잡혀 가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얼마전 구속된 이인제 의원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만큼 진술거부권이 유용하다는 것을 법률가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그것이 정당한 권리라는 것을 모른다. 시민들이 진술거부권을 비롯한 자기 권리를 찾아가기 시작하면, 수사기관도 진술에 의존하지 않고 과학적으로 수사하는 방법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 앞으로 법조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동안 법조계(판사-검사-변호사)는 일종의 '가족'으로 엮어진 공동운명체였다. 그것이 문제였고 그러다 보니 전관예우가 있어 왔다. 법률가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독립성'이다. 실력을 갖춘 청렴하고 정의감 있는 젊은 검사(법률가)들의 의견에 지도부가 귀를 기울이고, 능력 있는 나이든 검사도 계속 일하는 구조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검사들은 너무 빨리 실무 일선에서 물러나 관리직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또 21세기를 맞아 우리 사회는 공정한 절차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국회나 검찰 등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공정한 절차가 중요하다. 법정은 그 자체가 우리 사회의 가장 합리적인 답을 찾아가는 공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 최근 법조계가 보여주는 모습은 우리 법조계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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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통령실 마감하고, 서울을 떠나 세종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진실 너머 저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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