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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고사리를 삶아서 건졌습니다.
고사리를 삶아서 건졌습니다. ⓒ 김규환
"직아부지 한술 뜨고 허십시다."
"*염사가 없는디…."
"글도 시장허신께 뜨싯쇼. 글다 *지워분당께요."
"아부지 맛있어라우."

어머니와 나는 꾸러미에서 밥을 풀어 헤쳤다. 보자기를 깔고 그 위에 차려진 밥과 숟가락 하나씩에 김치가 전부다. 손에는 고사리 잔털이 묻어있으나 옷에 한번 쓰윽 닦고는 '바게지'를 하나씩 들어 젓가락 없이 한 술 뜨고 베무니 깨무는 소리가 사각인다. 짭쪼름 하지만 군내는 나지 않고 오히려 깔끔하다. 몇 번 더 씹으니 보리밥과 어울려 달짝지근하다.

"드실만 헝께 쬐까만 떠보시랑께요."
"그려."

아버지는 마지못해 나뭇가지를 꺾어와 짠지 하나에 밥 세 술을 떴다.

"어이 모가 많이 떠서 걱정이여."
"왜라우? 깨구락지가 휘젓고 다녔소?"
"아침저녁으로 싸늘해서 그런디 키도 *빼물당께."
"시방이라도 못자리 더 하면 안 되끄라우?"
"사나흘 지다려보더라구."

비는 완전히 그친 모양이다. 백아산 상봉 근처가 환해지더니 이내 밝아졌다. 한결 여유로와졌다. 이러다 보면 몸도 가벼워질 것이다. 꽤 무거워진 망태기를 짊어지고 반반한 맥을 타고 등을 따라 무등산 중머리재 오르듯 산 정상을 향해 걸으며 군데군데 나 있는 고사리며 취나물을 꺾어 담았다.

딱주 사삼 혹은 잔대라 불리는 어린싹을 보고 뿌리를 캐서 산후조리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대단한 약재입니다.
딱주 사삼 혹은 잔대라 불리는 어린싹을 보고 뿌리를 캐서 산후조리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대단한 약재입니다. ⓒ 김규환
오른편으로 저수지가 보였다. 저수지는 두 내외에겐 쳐다보기도 싫은 존재다. 13년 전 나로서는 큰어머니가 큰집 막내누나를 낳던 가을에 저 지랄 같은 저수지를 막는데 돈 좀 벌어보겠다고 사람들이 들어가지 말라는 걸 한사코 우겨서 화를 당한 지긋지긋한 곳이다.

어머니는 쉬면서 내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이를 낳은 지 1년이 지난 1967년 어느 날이었다. 욋등을 거쳐 참난쟁이를 돌아 감남쟁이를 끼고 검덕굴 자락에 저수지를 막는데 양지마을 아녀자들은 집안 일을 팽개치다시피 하고는 2년째 이어지는 공사판에 일을 나갔다.

감남쟁이를 돌던 때 담보(담비)가 돌무지 위를 총총걸음으로 바삐 움직이는 게 보였다.

"워메 성님 담보요."
"왜 그려?"
"저 놈이 보이면 재숫대가리 없다급디다."
"뭔 일 있을라고 서둘러 가장께."

담보가 나타나면 큰 사고가 발생했던 경험이 누차 있었던지라 좋지 않은 예감에 사로잡힌 어머니는 일 나갈 마음이 확 달아났단다. 마치 사지에 끌려가는 듯 했지만 마침 그날 일을 마치고 전표와 현금을 맞바꿔주는 보름날이었기에 찜찜한 기분을 억누르고 가던 길을 가고 있다.

점심 시간에도 어머니는 큰어머니를 불러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성님 저 흙구뎅이는 절대로 가지 마싯쇼잉."
"그려."
"성님 참말로 가시면 안된당께라우."
"걱정 말더라고."

둑을 높여 가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남정네들은 나무 메로 쳐서 흙을 다지거나 큰 돌을 옮겨왔다. 아낙들은 그 위에 흙구덩이에서 흙을 머리에 이어다가 부어주었다. 서로 흙을 긁어내리는 일을 꺼리는 통에 십장이 나선다.

"아따 뭣땜시 그래싸요. 싸게 싸게들 안 들어가고?"
"몰라라우. 하여튼지간에 오늘은 쩌긴 안 들어 갈라그러요."
"오늘은 *무담시 그래싼네."

서로 꽁무니를 빼는 것이었다. 막바지로 치닫던 일을 독려하던 감독은 애가 탈 수 밖에 없었다.

"좋시다. 정 그러시다면 오늘 흙구덩이에 들어가시는 인부들에겐 배로 쳐드리리다. 오늘 바로 지불할라요. 자원자 없수?"

그 때 나선 이가 그래도 몇은 있었다고 한다. 큰어머니도 끼어있었다.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나저나 조심허싯쇼잉" 하는 감독관의 말을 듣고 얼마 안 가 30여 미터나 되는 흙구덩이가 무너지는 바람에 흙에 파묻히고 말았다. 모든 일은 중단되었다. 업어서 집으로 데려오던 중 숨이 멎었다.

그러니 형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자리 근처는 해마다 하나 밖에 없는 당신의 오빠와 엄니 제사 때 검덕굴을 넘을 적에도 한번 쳐다본 적이 없었단다. 벌써 막내아들인 내가 열 셋이었으니 14년 전이라고 했다. 그 시간만큼이나 본의 아니게 맏며느리 노릇하며 살았으니 그 세월이 얼마나 미웠을까.



진짜배기 참취, 취나물은 아래가 불그스름해야 진품입니다.
진짜배기 참취, 취나물은 아래가 불그스름해야 진품입니다. ⓒ 김규환
"어이 그만 내려가더라고."

가득 채워 더 이상 담을 수 없게 되자 보자기 하나 풀어 담았으니 평소 꺾던 양보다 세 배나 되는 양이다. 입구를 나무 껍질을 벗겨 간신히 처매고 손에도 들고 길을 나서는데 꿩 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어머니는 남들처럼 일부러 꺼병이를 집으로 데려오지 않은 습성이 몸에 밴 사람이다. 날짐승을 괜스레 집으로 가져왔다가는 무슨 변고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지나치려고 고개를 숙이고 나무사이를 통과하는데 까투리가 자리를 피하지 못하고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그냥 가십시다."
"알은 괜찮당게."
"그냥 가시잔께요."
"아따 이사람아 괜찮어."
"엄마 꽁알 먹고싶어."

찬찬히 주위를 살피던 아버지께서 땅에 낳아 둔 꿩알을 찾아내셨다. 녹두를 발라 놓은 듯한 꿩알이 아홉 개나 있었다. 메추리알보다는 세 배 크고 날 달걀 거지반쯤 크기다. 아버지와 내 웃옷 주머니에 하나하나 깨지지 않게 나눠 담았다.

하루가 간 듯 싶었지만 두 시도 안 된 시각이었다. 곧 길을 찾아 산을 벗어나 사람 다니는 들길로 접어들었다. 오리가 넘는 길을 무거운 짐을 지고 바쁜 걸음으로 돌아왔다. 향긋하고 싸하고 달콤한 봄내음이 몰려왔다. 찐한 더덕 향을 몰고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
"오냐. 내 쌀가지. 잘 놀았어? 할매 뭐하시댜?"
"잉. 할매는 밭에 가시고 언니랑 놀았어."
"그려 잘 했다."
"엄마 칡깽이 있제?"
"하믄. 우리 막내딸 줄라고 엄니가 많이 해왔응께 째까만 지달려라와."
"야, 우리 엄마 아부지 최고다."

어머니는 마루에 고사리를 풀어 가지런히 놓는 동안 아버지와 나는 불땔 준비를 거진 마친 상태였다. 불을 메워놓고 물을 한 바케스 붓고 마저 더 끓여간다.

손놀림이 빠른 어머니는 제일 먼저 칡순을 골라 딸에게 안기고 고사리와 고비 따로, 취나물도 종류별로 분류하고 더덕 몇 뿌리 한쪽으로 치운다. 동생은 부드러운 순을 껍질을 벗기고 다소 딱딱한 안쪽 줄기를 한번 더 벗겨서 찔레순처럼 톡톡톡 잘라 씹는다. 달보드래한 칡 내음이 풍겨왔다.

칡 순, 칡 싹을 우린 칡깽이라 불렀답니다. 질근질근 많이도 씹어댔지요.
칡 순, 칡 싹을 우린 칡깽이라 불렀답니다. 질근질근 많이도 씹어댔지요. ⓒ 김규환
중학생이던 형이 사립문에 들어선다.

"엄마 학교 다녀왔어라우."
"그려 인자오냐."
"예."
"밥은 묵었제? 칡깽이 묵어라."
"근디 쩌건 뭔 알이다요?"
"뭣은 꽁알이다. 니기 아부지가 주서오셨당께. 얼렁 꼬사리 삶아 널고 삶아줄 것인게 지달리그라와."

나는 아직도 칡 순 씹으면서 어머니 뒤를 졸졸 따랐다. 마룻바닥엔 고사리와 고비 털이 무수히 날렸다. 무더기는 그 전에 보았던 양과는 비교가 안되었다. 방 세 칸 짜리 긴 마루에 고사리가 수북히 쌓여있으니 어린 나도 옹골졌다.

"겁나게 많으요."
"너랑 아부지랑 같이 갔응께 이만치 해왔제. 가서 *삼태미하고 큰 소쿠리 갖고 오니라."
"예."

고사리 삶느라고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부엌에서 불을 꺼트리지 않고 때는 건 내 차지가 되었다. 큰 주걱을 옆에 두고 대형 밥솥에 고사리를 네 번에 걸쳐 삶아서는 먼저 마루에서 확 부려 물기를 뺀다. 아직 마당이 질컥거려 내일쯤에나 마당에 널어도 상관이 없다.

"아가 데일라 한 삐짝으로 나가 있거라."
"예."

건질 때는 잠시 아궁이 앞을 피하는 게 델 염려가 없다. 팔팔 끓는 물에 넣고 주걱으로 휘저어 주자 꼿꼿하고 때론 부드러워 곧 끊어질 성싶던 고사리가 야들야들 부드러워지며 쪼그라들었다. 숨을 제대로 죽이고 나서 순식간에 건진다. 한 번밖에 하지 않았는데도 정지는 김 천지라 이마에선 땀이 주르르 타고 흘러내렸다. 땀을 훔치고 작업에 몰두하는 모양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숨이 죽는 동안 마루에 식어 가는 고사리를 두 줌 가량 모아 손빨래하듯 죽죽 비벼서 옆옆이 놓고 비비기를 반복한다. 이러면 고사리 밥이 얼마간은 떨어진다. 세 번 북북 비비고 쭉 널찍하게 널고 한번 손길을 주고 다시 부엌으로 오셨다.

"불 좀 더 세게 때그라와."

한 삼태기 가득 가져와 툭 털어 넣는다. 이러기를 시간 반은 계속했다. 건져서 뜨거운 물이 줄줄 흐르는 삼태기를 두 번은 내가 갖다 부었다. 축 늘어진데다가 뜨거워서 팔 힘만으로 옮기다보니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마치 까무잡잡한 지렁이가 마루에 겹쳐서 가득 널려 있는 풍경이다. 간혹 중병아리가 된 닭이 올라와 닭똥을 찍 깔기고는 지렁이를 포획한 모양으로 하나 물고 달아나는 통에 항상 한쪽에는 걸레가 마련되어 있었다. 취나물을 삶아 너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틈날 때마다 나와 동생 입에는 칡순이 물려 있었다. 동생만 빼고 우린 새참을 먹고 들로 나갔다. 비닐 하우스를 걷어 발그스레하게 서쪽으로 지는 해를 활용하여 잎 가운데 부분에 붉은 빛이 도는 피를 하나씩 골라나갔다.

잘 삶은 고사리
잘 삶은 고사리 ⓒ 김규환
글쓴이 註

*무담시: 괜히, 이유 없이
*삼태미: 삼태기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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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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