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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총선시민연대`가 6일 오전 낙선대상자 명단을 발표한 뒤, 손수건을 흔들며 `부패정치 안녕`을 외치고 있다. 선거법에 따라 기자회견을 통한 명단 발표를 제외하고 거리활동은 일체 금지된다.
`2004 총선시민연대`가 6일 오전 낙선대상자 명단을 발표한 뒤, 손수건을 흔들며 `부패정치 안녕`을 외치고 있다. 선거법에 따라 기자회견을 통한 명단 발표를 제외하고 거리활동은 일체 금지된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선거운동을 하는 단체는 선거운동기간 동안 어떤 집회도 열지 못한다. 이 때문에 총선시민연대는 '3악(부패정치·지역감정·돈선거) 추방 운동본부'를 별도의 단체를 만들어 거리캠페인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주최측과 시민발언대에 선 시민들은 선관위 직원의 '채증'을 의식해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며 "통쾌하고 재밌는 시민들의 정치연설이 비방선거를 막는다는 미명하에 위축되었다"로 토로했다.

선거법이 획기적으로 바뀌면서 돈 선거, 비방 선거가 사라지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정책과 인물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어 '총선'이 '대선'처럼 치러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행 선거법 하에서 후보자 혼자 발품을 팔아 유권자를 만나는 것 외에는 거의 방법이 없다. 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되던 합동연설회도 사라졌고 또 출근길 지하철 역사에서 만날 수 있었던 어깨띠를 두르고 도열한 선거운동원도 사라졌다.

무엇보다도 후보자간 상호토론이 중요한 선거. 케이블방송을 통해 1회 의무적으로 후보자 정책토론회를 개최해야 하지만 낮은 시청률로 미디어선거의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제기되는 이슈도 지나치게 협소한 지역적 쟁점에 불과하다.

선관위는 "거리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선관위의 윤석근 지도계장은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과거 거리유세나 합동연설회 등에서는 후보자가 일방적으로 알리는 과장, 비방내용이 주를 이뤘다"고 개정 선거법의 취지를 설명했다.

거리활동을 규제하는 대신 선관위가 후보자 정보를 관리, 통제하겠다는 얘기다. 각 가정으로 배달되는 유인물에는 후보자에 관한 기본 정보를 비롯해 재산, 납세실적, 전과, 병역 등의 기록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후보자 상호비교나 정책대결이 안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선관위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선거운동이 합법이나 불법이냐를 가리는데 소진되고 있다"며 "네거티브 선거운동방식이 전체 선거분위기를 가라앉게 한다"고 지적했다.

안병진(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상임연구원) 박사는 거리, 광장에서 이뤄지는 시민들의 의사표현을 '배달선거'(delivery polling)라고 정의한 뒤 "후보자나 선관위가 제공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넘어 시민들이 직접 의제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금권, 관권 선거를 바꾸기 위해 미국식 미디어 선거를 강조하지만 이는 유권자를 정치의 '관람자'로 전락시켜 능동적 참여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 특히 우리는 시민들의 평화로운 거리의 표현에 대해 천박하거나 당파성을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리의 정치가 민주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진실이다."

'막걸리 선거'의 역편향인가... 여행의 자유도 박탈한 개정 선거법

한 시민단체에거 근무하는 A씨. 그는 4월 10일, 대학 동창들과 여행을 계획했다가 취소한 일이 있다. 4월 2일부터 15일까지 선거기간 종친회, 향우회, 동창회는 어떤 목적의 모임이나 여행도 안된다는 선관위의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A씨는 "대학동창중에 여행사를 하는 친구가 있어 싼 가격에 봄꽃구경이나 가자는 취지로 여행을 추진했다"며 "선거법이 헌법상의 권리인 여행, 이주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냐"고 항변했다.

선관위측은 동창회, 향우회, 종친회 주최의 집회가 금지되어 있다는 규정을 근거로 들었다. 여행이 집회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수 모여서 움직이는 것도 집회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선관위의 해석이었다. 다만 인터넷 동호회는 규정에서 제외된다.

과거 동원선거의 근거지였던 종친회, 동창회, 향우회만 해당사항이 있는 것인데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선관위가 너무 '과거'에 연연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달라진 시민의식을 고려하지 않은채 제도가 규제일변도라는 것에 대한 지적이었다.

"개정 집시법 당론으로 반대한 정당 없어... 모든 국회의원 낙선시켜야 할 처지"

선거법에 더해 개정된 집시법은 선거기간 광장의 정치를 가로막는 결정타로 작용하고 있다. 작년 12월 통과된 집시법 개정안은 현재 시민단체의 불복종 운동과 함께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태다.

지난 10일 열린 공무원, 교사의 정치활동 보장 촉구결의대회. 개정 집시법 대응 연석회의 소속 한 시민단체 회원이 경찰의 과잉대응을 감시하기 위한 '집회장 인권침해 감시단(가슴에 노란색 목걸이)'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10일 열린 공무원, 교사의 정치활동 보장 촉구결의대회. 개정 집시법 대응 연석회의 소속 한 시민단체 회원이 경찰의 과잉대응을 감시하기 위한 '집회장 인권침해 감시단(가슴에 노란색 목걸이)' 활동을 하고 있다. ⓒ 김진석
10일 광화문에서 열린 공무원, 교사들의 정치자유 보장 촉구 결의대회. 집회 '지킴이'들이 등장했다. 개정집시법철폐 대응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 소속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집회현장 인권침해 시민감시단'이라고 쓰여진 노란색 아이디카드를 목에 걸고 집회장을 '감시'하고 있었다. 3월부터 발효된 개정집시법에 따라 경찰의 과잉대응을 감시하고 참석자들과의 마찰을 조정하기 위해서다.

연석회의의 주제준 상황실장은 이들 감시단에 대해 "선거 후 집시법 재개정 운동과 헌법소원 논의를 위해 현장을 직접 다니면서 사례를 취합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특히 소음규제를 한 것은 가장 악의적이라고 성토했다.

주 실장은 "아직 구체적인 시행령은 나오지 않았지만 논의되고 있는 80데시벨로 한정할 경우 이는 5명 정도가 모여 떠드는 수준의 규제"라며 "마이크 사용도 하지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개정집시법의 위헌 논란조항

▲집회신고서 제출기간을 720시간∼48시간으로 제한해 수개월 전부터 장소를 공지해야 하는 대규모 집회를 제한한 것 ▲집회에서 폭력이 발생할 경우 남은 집회 시위를 금지통고 할 수 있도록 해 사소한 충돌만으로도 집회를 금지하고 자의적 운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은 점 ▲서울시내에만 무려 2229개나 있는 초중고교나 시내에 인접한 군사시설 주변 집회를 금지조치한 규정 ▲외교기관 주변 집회 중 대규모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거나 휴일에 열리는 집회만 허용하는 규정 ▲관한 경찰서장에게 고속도로와 전국 95개 주요 도로행진 허용 판단권을 부여한 규정 ▲소음에 대해 규제해 집단함성이나 확성기 사용중지 명령을 가능케 한 규정

작년 11월 민주노총의 화염병 사용 논란 이후 급물살을 탄 집시법 개정. 새 집시법은 사실상 집회 신고제를 허가제로 바꾸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한 어떤 정당도 개악 집시법에 대해 당론으로 반대를 표명하지 않아 시민단체들은 "모든 국회의원들을 낙천대상에 넣어야 할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연석회의측은 "열린우리당 의원 일부가 막아보겠다는 의지를 보이긴 했지만 법사위를 통과할 때 그 의원들 마저 나타나지 않았다"며 "현재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은 개정에 반대하고 있고 열우당은 소극적이나마 개정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민노당은 적극적으로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야간집회를 금지하고 있는 개정 집시법에 따라 탄핵반대 촛불문화제를 주최한 범국민행동의 집행부에 대한 경찰의 불구속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손호철(서강대 정치학) 교수는 열린우리당 정동영 대표에게 선거 이후 집시법 개정을 당론으로 공식화할 것을 요구했다.

"정 의장은 촛불집회에 대해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평화적인 의사표현이었다며 경찰의 위법성 주장을 비판했다. 하지만 그는 집시법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합법이고 불리한 것은 불법이라고 하는 이중적 사고를 보여주었다. 이에 대해 공식사과하고 총선 뒤 열우당이 나서서 재개정을 하겠다는 것을 약속해야 한다."

안병진 박사는 "9·11 테러 이후 서구 자유주의 정권의 보수성이 강화되면서 집시법이나 반테러법안을 통해 시민들의 의사표현을 가로막고 있는데 참여민주주의의 확대를 내세운 노무현 정부도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잔디공원 돼버린 시청 앞 광장 "들어가지 마시오?"

3·1만세 운동 이후 약 한 세기가 지나는 동안 국민의 육성이 모아진 서울 시청 앞 광장. 그 곳에 사람 대신 잔디가 들어섰다. 광장역사의 산실이 '녹색'으로 뒤바뀐 모습을 바라보는 시민의 마음은 우울하다. 잔디밭은 '들어가지 마시오' '밟지 마시오'라는 금지구역으로 익숙하기 때문이다. 지난 월드컵 때처럼 온몸의 무게로 방방 뛰고, 지난 탄핵무효 촛불집회 때처럼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시청 앞 광장을 질주할 수 있을까.

서울시는 시민에게 광장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시민공모로 제안된 '빛의 광장'안을 폐기시킨 채, 정도 600년을 기념해 매년 열리고 있는 서울시 주최의 '서울시민의 날 행사(하이서울페스티벌)'를 위해 잔디광장으로 급조했다.

이에 시민단체, 건축인 등으로 구성된 공대위가 꾸려져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이상헌(건국대 건축역사학)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광장에 잔디가 심어진 경우는 없다"며 "비움이 광장의 공간미학"이라고 말한다. 또한 문화사회연구소 류승준 연구원은 "광장은 텍스트이고, 그 텍스트의 콘텐츠는 시민"이라고 말한다. 광장의 내용을 채우는 주체는 시민이라는 얘기다.

시민이 자발적으로 열어 가는 직접민주주의의 광장은 현재 '눈치'를 보고 있다. 개정된 집시법, 선거법으로 입조심에 사람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 탄핵무효 촛불문화제를 주도한 범국민행동의 박석운 집행위원장은 "인터넷과 광장을 통해 시민들의 정치적 주장과 욕구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법과 제도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며 "하지만 역사적에서 시민은 정부의 제약이 커지면 커질수록 광장의 문을 더 크게 열어 제쳤다"고 말했다.

5월 잔디광장으로 조성될 서울 시청 앞은 현재 공사 작업이 한창이다.
5월 잔디광장으로 조성될 서울 시청 앞은 현재 공사 작업이 한창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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