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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새 마누라 생겨서 좋겠네!"

나이 마흔을 각각 위 아래로 두고 있는 나와 박수애씨는 인생살이에서는 선배겠지만, 연기에 있어서는 이제 갓 스물다섯을 넘긴 젊은 여감독 지아(Zia)의 후배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연륜이란 무시할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초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연기는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만족스러운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더니 마흔이 되기까지의 인생살이 덕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특히, 우리의 영화 <소시지 먹기>에서는 뉴질랜드로 갓 이민 온 중년의 한국인 부부가 낯선 환경과 문화에서 겪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표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박수애씨나 나나 어느 정도 그런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 큰 도움이 되었다.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남편 김이 출근하고 빈집에 홀로 남은 수정의 망연한 모습이다. 이민 생활이란 그런 외로움을 견뎌내는 일이다.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남편 김이 출근하고 빈집에 홀로 남은 수정의 망연한 모습이다. 이민 생활이란 그런 외로움을 견뎌내는 일이다. ⓒ 정철용
남편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남아 있어야 했기에 박수애씨는 의지할 남편도 없이 딸과 함께 이민 생활을 꾸려나가야 했다. 그리고 나는 가족들을 이끌고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땅으로 건너와 아주 쉬운 일도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스러워하면서 이민 초기 시절을 보냈다. 그런 박수애씨의 외로움과 나의 두려움이 우리의 연기를 도와 준 것이다.

그런데 초보 연기자인 우리들의 연기 연습은 나름대로 순조로웠지만 제작 일정은 그렇지 못했다. 처음에는 지난 해 11월 말로 예정되었던 당초의 촬영 일정이 프로듀서의 사정으로 인해 해를 넘겨 올해 1월 말로 늦춰졌다. 그러더니 다시 2월 초로, 2월 중순으로 자꾸 연기되다가 마침내는 당초의 일정보다 무려 4개월이나 늦어진 올해 3월 말로 결정된 것이다.

배우들은 이미 모든 준비가 되었는데 제작진의 사정에 의해 이렇게 촬영 날짜가 자꾸 늦춰지니 우리는 조금씩 김이 빠지기 시작했다. 감독인 지아는 우리에게 몹시도 미안해 했다. 지난 2월 초의 어느 날. 지아는 촬영 일정이 2월 중순에서 3월 말로 또다시 연기되었음을 알려주면서 제법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출연료를 지급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오랫동안 두분의 시간을 빼앗아서 정말 미안해요. 이제 이번 3월 말 촬영 일정이 정말 마지막이 될 것 같은데, 지금 두 분이 그만두겠다고 하더라도 저는 할말이 없네요."

나는 지아의 말을 듣고 박수애씨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고는 말했다.

"지아, 나는 처음에는 당신의 영화에 단순히 배우로서 참여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연기 연습을 하는 동안, 이 영화가 당신의 영화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영화라는 것을 느꼈어요. <소시지 먹기>는 당신의 영화이기도 하지만 나의 영화이기도 한 것이지요. 그러니 그게 언제가 되든지, 끝을 봐야 되지 않겠어요? 그렇지 않나요, 수애씨?"

박수애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그 순간 우리를 바라보던 지아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영화 촬영 일정은 최종적으로 3월 말에서 4월 초에 이르는 4일간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렇게 촬영 일정이 자꾸 늦춰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 즉 제작비 문제가 가장 컸다. 물론 이번 영화의 제작비로 얼마간 확보된 자금이 있기는 했다.

지아가 크리에이티브 뉴질랜드(한국문화예술진흥원과 유사한 기구)와 뉴질랜드 영화위원회(한국영화진흥위원회와 유사한 기구)에 신청해서 1만8000달러(한국 돈으로 약 1300만원)의 제작 지원금을 받아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많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그나마 이 제작 지원금도 지아가 세번째 단편영화로 2002년 웰링턴 프린지 필름 페스티벌에서 코닥 상(Kodak Award)을 수상한 경력이 있었기에 지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부족한 제작비를 조달하기 위하여 지아는 뉴질랜드의 기업체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영업 중인 한국 기업체들에게 협찬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아무리 한국인 배우들이 출연해서 뉴질랜드의 한국인 이민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라고는 하지만, 단편영화라는 큰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이나 뉴질랜드나 돈 안 되는 단편영화에 관심을 갖는 기업체가 없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부족한 제작비를 기업체들의 협찬으로 조달하려는 우리의 계획은 시내에 있는 한 한국 음식점에서 영화에 쓸 김치와 반찬과 밥 등의 음식물을 제공받고, 뉴질랜드의 한 정육점 체인점에서 소시지 몇 박스를 지원받는 데 그치고 말았다.

박수애씨와 나도 옆에서 함께 거들었던 협찬 섭외가 큰 성과 없이 이렇게 끝나자 이제 방법은 단 하나, 부족한 제작비를 최대한 아껴 쓰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제작진도 영화 관련 일을 하는 지아의 친구 등 알음알음으로 포섭한 자원봉사 인력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촬영감독을 비롯한 많은 제작 스태프들이 우리의 영화에 자원봉사로 참여했다.
촬영감독을 비롯한 많은 제작 스태프들이 우리의 영화에 자원봉사로 참여했다. ⓒ 정철용
그런데 그들은 모두 이미 영화나 광고 제작 등 자신의 일에 종사하고 있는 직업인이어서 함께 작업이 가능한 비는 시간을 서로 맞추기가 몹시도 어려웠던 것이다. 이것이 영화 촬영 일정이 자꾸 늦춰지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제작비를 아끼기 위하여 영화에 필요한 의상과 소품까지도 각자의 집에서 쓸만한 것들을 골라 사용하기로 했다. 나는 의상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이민 올 때 가지고 온 뻐꾸기 시계, 밥 공기와 대접 등의 식기, 책, 음반과 가족 사진 등을 소품으로 내놓았다. 박수애씨는 지난 1월에 남편을 만나러 한국을 다녀오면서 영화 속 여주인공이 입어야 하는 잠옷을 자기 돈을 들여 사오기까지 했다.

"아, 우린 돈 한푼 받지도 못하면서, 무슨 정성이 뻗쳤다고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이걸로 영화배우가 되려는 것도 아닌데…. 협찬 섭외에 의상과 소품 제공까지, 배우가 별걸 다 하는군요."

영화 촬영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연기 연습은 제쳐 두고 소품 준비에만 바쁘게 되자, 박수애씨가 넋두리를 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우린 1인 2역이 아니라 1인 3역, 4역이군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영화 촬영 날짜가 하루씩 가까워지자 우리는 조금씩 기대되고 흥분되는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실제 촬영할 때에도 과연 떨리지 않고 평소처럼 연기를 잘 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3월 17일, 영화 촬영용으로 간신히 구한 집에서 마지막으로 간단하게 연기 연습을 한 이후로는 함께 호흡을 맞춰 볼 시간이 전혀 없었다. 그 사이에 지아는 프로듀서와 조감독 및 촬영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과 끊임없이 제작 회의를 하느라 우리에게 연기 지도를 할 틈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촬영 이틀 전에야 전화를 걸어온 지아는 전혀 걱정스러운 눈치가 아니었다. 나 역시 막상 촬영 날짜가 코앞에 닥치자, 오히려 연기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다. 박수애씨도 자꾸 연기되어 질질 끌던 촬영이 이제 시작되니 속 시원하다고 할 뿐, 촬영에 대한 공포는 전혀 없는 듯했다. 부족한 제작비를 여기저기 알음알음으로 끌어 모은 자원봉사 스태프들의 품앗이로 겨우 해결하고 마침내 영화 촬영이 시작되니, 우리의 마음은 오히려 홀가분했다.

연기라고는 평생 단 한번도 해보지 않은 초보 연기자들을 데리고 만드는 이 작품으로 국제 영화제에까지 진출하겠다는 지아의 야무진 꿈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그 꿈이 현실이 될지 아니면 단순히 꿈에 머물지 판가름날 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나는 다시 시나리오를 읽으며 '김'의 대사와 감정을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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