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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루한씨.
김두루한씨.
재단법인 한글학회가 김계곤(78, 경인교대 명예교수) 이사장 겸 학회장 체제로 새 집행부를 구성한 가운데 한 현직 교사가 학회의 개혁을 촉구하는 ‘1인 성명서’를 발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 광양고등학교 국어교사로서 한글학회 평회원인 김두루한씨는 지난 21일 ‘한글이 지닌 나라-겨레 사랑의 민주 정신으로 함께 떨쳐 일어나자‘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김씨는 한글학회 누리집(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서에서 “한글학회는 ‘한글’이 지닌 민주 정신에 걸맞지 않게, 임원을 선출하는 방식이 대단히 비민주적”이라며 “오직 한글과 한글학회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하루 빨리 개선할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또한 김씨는 “한글학회는 재단법인 ‘한글학회’와 학술단체인 ‘한글학회’로 분리하여 학술 활동과 운동을 효율적으로 벌여야 하는데, 이사장이 학회장을 겸직하는 체제를 고집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시대 흐름이나 일을 꾸려가는 양면에서 볼 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라고 강조했다.

한글학회는 허웅 전 이사장 겸 학회장이 지난 1월 별세한 이후 일부 회원들과 외부 한글운동 단체들로부터 △학회장을 직선-단임제로 뽑고 △이사장과 학회장의 겸직을 금지하고 △좀 더 젊은 인사들로 집행부를 구성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한글학회는 지난 13일 열린 평의원회-정기총회-이사회에서 이같은 여론을 수용하지 않아 개혁을 외면했다는 눈총을 받았다.

한편, 유운상 한글학회 사무국장은 "22일 이사회에서 한글학회의 개혁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개혁안이 일부 수용될 수 있지만 그 폭이 얼마나 넓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씨와 나눈 일문일답.

- 한글학회에는 젊은 회원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고, 출신 대학도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고 하던데.
“학회 정신을 제대로 전수하려면 무엇보다 대학원생들이, 즉 젊은 국어학도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인문학 부재’ 현상까지 맞물리면서 이들이 모이지 않고 있다.

한글학회 학술회원들이 속한 대학의 분포도 무척 한정되어 있다. 서울의 경우는 연세대, 건국대, 상명대, 서울대 언어학과 수준의 회원이 대부분이다. 지방의 경우는 부산대, 경북대, 동아대, 영남대 등이 회원 의식을 지닌 학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최현배, 정인승, 허웅 등의 영향권 아래 학통을 잇는 자들로 여기에서 멈출 뿐, 더 이상 회원이 확산되지 않고 있다."

- 일반인들은 한글학회 정회원이 될 수 없다는데 사실인가?
“한글학회 정회원은 국어학을 전공한 이들 중, 국어학 관련 논문을 제출했으며 두 명 이상의 정회원이 추천을 받아 이사회의 통과를 얻은 경우에만 가입할 수 있다.

그래서 일반인이 정회원이 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이런 정회원(학술회원)을 제외하고, 한때 특별회원이나 한글문화협회회원(한글새소식을 구독하는 이)을 늘리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 허웅 선생께서 향년 86세까지 35년 동안이나 한글학회 이사장과 학회장을 맡은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말 그대로 ‘장기 집권’이라 생각한다. 큰 나무에 눌려서 작은 나무가 자라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분도 있다. 스스로 큰 산이 되려는 사람들이 (회장이) 되어야 마땅하다. 또 그렇게 되려면 마땅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허웅 선생께서 살아 계실 적에 ‘그만 두겠다’는 뜻을 밝혔는데도, 김계곤 신임 이사장 겸 학회장께서 ‘내가 말렸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신다. ‘개인’이 아닌 ‘단체’를 생각하는 쪽의 노력을 좀 더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 김계곤 신임 이사장 겸 학회장은 한글학회의 개혁을 촉구하는 이들의 생각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개혁을 외치는 이들의 생각을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허심탄회하게 사심없는 활동가들의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를 경청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 새로 구성된 이사진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이사회에서는 스스로 개혁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제 업무 영역을 분담할 시점인데, 각자 세부 방안을 제시하면 좋을 것이다. 이번 임원들이 얼마 만큼 변화된 모습을 보일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 내년 정기총회와 평의원회에서는 한글학회의 개혁안이 수용될 것으로 보는가?
“새 이사진이 이번 문제 제기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어느 정도 반영될 것인가가 관건이다. 새 이사진이 개혁안을 획기적으로 수용하길 희망한다."

- 한글학회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첫째 한글학회가 걸어온 길에 비추어 위상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 1945년 이후 우리말글 교육과 학술 연구에 앞장 선 ‘한글학회’가 1980년대 이후 국립국어연구원과 위상 면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호하다.

둘째 ‘한글학회’란 명칭이 지닌 임원들로 하려금 모호한 운영을 하게 만든다. 재단법인 한글학회와 학술단체 한글학회가 분리되어 있지 않음으로써 안이한 운영이 예상된다. 실제로 이사진 중에는 임원직이 겹치는 이들도 있다. 이것이 학회 살림을 좌우하는 그들로 하여금 비민주적인 운영을 하게끔 하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셋째, 민간 시민 단체의 참여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학술단체 한글학회와 운동단체 한글문화협회가 분리되어 전문성을 서로 갖추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 그밖에 개선할 점이 있다면?
“한글문화협회를 공식적으로 기구화하여 그들이 안정된 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한글회관의 일부를 내 주어야 한다. 이제껏 자원 봉사 차원의 활동이 있었지만, 한글학회가 이들을 지원하는 것은 대단히 미약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공간’을 독점하고 있는 한글회관 사용 실태를 보면 오늘의 ‘한글회관’은 진정한 회관이 아니다. 그저 ‘한글학회’가 들어 있는 건물일 뿐이다.

더불어 학회 직원들에 대한 처우도 달라져야 한다. 급여를 현실화하여 그들이 보람을 맛보며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간 단체인 면에 치우쳐 운영하고 있는데, 준국가기관으로 만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 김 선생은 지난 13일 정기 총회에서 김정수 한양대 교수의 '한글학회 회칙 개정안'을 재청을 하면서 학회의 개혁을 주장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
“김정수 교수가 회칙 개정안을 발의했을 때, 내가 재청을 했으므로 곧바로 심의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도 회장을 비롯해 몇몇 선생님이 계속 1년을 미뤘다가 다음에 하자고 말하거나, '오늘 뽑은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고 다시 뽑자는 것인가'라고 말해 혼선을 빚었다."

- 한글학회의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에 대해 일부 인사들이 상당히 노여워했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는가?“일찍이 사람과 생각은 구분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의 주장 안에 담긴 의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 한글학회의 개혁을 외치는지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 언제 한글학회에 가입을 했는가?
“1992년 3월 1일로 기억한다. 당시 신기남 변호사(현 국회의원)가 진행하는 토론 프로그램 ‘여의도 법정'에 한글학회를 대표하여 당시 중학 교사로서 참여한 바 있다.

그 뒤 김계곤 당시 이사(현 이사장 겸 학회장)와 이강로 명예이사의 추천으로 정식 가입을 하였다. 학회 회원이 되려면 논문 제출이 요건인데, 석사 논문을 제출했다. 경북대학교 한글운동학생회 초대 회장으로서 1980년 이후 대학생 한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 오랫동안 이사와 부회장을 역임한 이현복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13일 이사를 뽑는 평의원회에서 득표를 많이 얻지 못해 평의원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임원 선출 과정에 문제는 없는가? 나눠 먹기식으로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선거를 하는 과정에서 후보자로 거론된 분이 결과에 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면 3년을 주기로 열린 평의원 선거의 경우 학회 부회장을 맡은 분들이 이사 선출에서 계속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니까 이번 선거에서 이현복 부회장의 경우와 같이, 김석득 부회장도 지난 선거에서 이사로 선출되지 않은 사례가 있다. 평의원 선거 자체가 지닌 모순이긴 하나, 일종의 표다지기나 표쏠림 현상으로 발생한 문제라고 본다.”

- 한글학회를 어떤 사람이 이끌어야 한다고 봅니까?
“첫째, 좀 더 젊은 사람들이 이끌어야 한다. 허웅 선생께서 회장에 오른 때는 50대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이사들이 그 무렵부터 이사를 맡았다. 학회 일을 40대나 50대에 맡기고 원로들은 뒤에서 격려를 했으면 좋겠다.

둘째, 우리 사회에서 한글학회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정말 고민을 많이 한 분이 맡으면 좋겠다. 국어연구원이 활발히 국립기관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글학회는 자칫 예전의 명성만 안고 현실과 동떨어진 학회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정말 온 겨레가 참여하며 100년 한국 근현대사의 축을 이루는 학회 정신을 오늘에 되살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셋째, 재단이사장은 재정 운용을 주어진 틀에서 살림하는 식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일을 추진할 수 있는 기금을 모으고, 다양한 사회 참여를 통해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도록 해야 한다.

또 학회장은 ‘학술’ 활동에 눈부신 성과가 있는 분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우리말과 한글 연구의 성과를 한단계 끌어올린 사람 중에서 적임자를 뽑아야 한다. 한글학회 안에서 그런 분들을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고 본다."

- 마지막으로, 한글학회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정리해 달라.
“첫째, 한글학회는 ’한글이 지닌 민주 정신’에 투철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현재 평의원회를 통한 이사진 선출과 이사진에서 회장을 선출하는 이중 간선제의 회장 선출 방식은 비민주적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현재 한글학회는 ‘학술’과 ‘운동’을 아우를 수 있는 효과적인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재정비가 필요하다. 먼저 재단법인 '한글학회'와 학술단체인 ‘한글학회’는 분리해야 한다. 다음으로 학술단체 ‘한글학회’ 는 다시 ‘한글문화협회’와 분리해야 한다.

먼저 학술지 ‘한글’지는 학술 재단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학회로서 한글학회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 면을 드러내고 있다. ‘한글새소식’은 학술단체 학회의 활동으로 볼 것이 아니다. 시민 운동 단체로서 ‘한글문화협회’에서 관장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한글새소식’은 70년 대 이후 ‘한글문화운동’의 매체로서 ‘한글문화협회’의 기관지였다.

셋째, ‘한글학회’는 온 국민이 참여하는 학회로 거듭나야 한다. 누구나 정보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시대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온 국민이 ‘한글이 지닌 가치, 한글이 지닌 힘’을 바로 알고, 그동안의 잘못된 관념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대한민국 교육에서 누구나 경험하고 있는 ‘말하기’와 ‘글쓰기’를 경시하는 풍토를 바로 잡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70년대의 ‘국어순화운동’을 통한 ‘우리말 낱말’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의사 소통을 해야하는 현실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분야가 말하기, 글쓰기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 한글학회는 이런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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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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