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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민주노총 강당에서 열린 학벌없는사회 월례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아 참가자들의 커다란 관심을 끈 정진상 교수
2월 28일 민주노총 강당에서 열린 학벌없는사회 월례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아 참가자들의 커다란 관심을 끈 정진상 교수 ⓒ 서상일
먼저 그에게 '국립대학 통합네트위크 구축'안을 제시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의 대학교육이 교육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 제도를 바로잡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 전체를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대학이 중등학교 나아가 초등학교까지도 지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대학 제도를 바로잡는 것은 중등학교 나아가서 초등학교까지 교육 전반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이어서 그는 "다음으로는 학벌 문제"라며, "우리나라 모든 폐단의 핵심에 있는 학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학벌 사회가 낳고 있는 여러 가지 폐단이 대학입시를 통해서 생성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대학을 통합해서 평준화하면 입시를 통해서 서열이 매겨지는 것을 해결하게 되고 학벌 문제를 넘어설 수 있게 되죠."

또 그는 "운동의 관점에서도 슬로건으로 내세울 때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때, 교육개혁 운동이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단순히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런 수준을 넘어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면 운동이 탄력을 받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 이 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런 안을 제시하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부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죠."

한편 정 교수의 안이 제기된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시민운동단체인 '학벌없는사회'(공동대표 홍세화)가 이 문제를 활발하게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그와 직접적인 교류 없이 발 빠르게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는 '학벌없는사회'가 "우리사회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 왔다"며 이렇게 말한다.

"학벌 문제를 비롯한 교육문제를 말하다 보면 때로 '우리 사회가 잘못된 것은 알고 있다. 그래서 어쩌잔 말인데. 너는 무슨 대안이 있나?'하는 반응이 나온단 말이죠. 그럴 때 연구자들이 할 수 있는 몫이 이런 거라고 생각했죠."

"실현가능한 개혁방안 제시하고, 개혁 추진할 주체세력 형성하자"

기자는 '국립대학 통합 네트워크 구축'안은 어떠한 원칙을 가지고 마련했는지 물어보았다. 정 교수는 첫째 원칙으로 대학교육의 공교육화를 제시한다.

"먼저 우리나라 교육이 해방 이후 처음에는 공교육 이념에 의해 시작되었다가, 교육 수요가 폭증하면서부터 국가권력이 공교육을 방치하고 사교육 쪽에 교육수요를 감당하도록 한 역사가 있습니다.

해방 이후 대학교육은 중등학교와 분리된 엘리트 교육이었죠. 따라서 소수의 학생들만 진학을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부터 거의 모든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갈 가능성이 생기면서 교육 수요가 폭증했죠. 이에 대해 교육정책의 최종 책임자인 국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중등 교육이 더 좋은 대학을 갈 목적으로 재편되어 버렸죠.

또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립대학의 설립 규정을 크게 완화하게 되면서 사립학교가 비대해지고, 그 틈을 타고 사립대학이 사회 교육을 통해 기여하기보다는 돈벌이 수단으로 팽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립 재벌에 의해 20년 이상 우리나라 교육 정책이 움직여왔죠.

그래서 첫째 원칙은 이것을 공교육의 원칙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 교수는 이어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국립대학을 개혁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원칙을 내세운다.

"둘째는 교육 개혁안이 실현가능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조건 속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조건은 사립학교의 급속한 확대에 의해서 공교육이 매우 축소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사회적인 힘의 관계로 볼 때, 사립대학 자체를 직접적으로 움직이기가 상당히 힘들게 되어 있다는 것이죠. 혁명적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고서는 말이죠.

따라서 개혁이라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많은 수는 아니지만 국가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국립대학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혁명적인 방법이 아니고 현실적으로 현재 조건 속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시도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다음으로는 대학서열체제 해소를 위한 근본적인 조치를 세울 것을 셋째 원칙으로 제시한다. 그는 "부분적으로 입시제도를 이렇게 저렇게 바꾸어 봐야 안 된다는 것이 이미 판명이 나 있기 때문에, 대학 제도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라며 대학서열체제를 그대로 두고선 어떠한 개혁도 성공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교육개혁 주체세력의 형성이 시급한 과제라고 말한다.

"더 보태어 말한다면, 교육 개혁의 주체세력을 형성하면서 할 수 있는 안을 낼 필요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현재 정부나 교육부, 국회를 생각해볼 때는 개혁이 될 수가 없죠.

현재의 질서를 바꾸기 위해서는 교육개혁을 열망하는 주체세력을 형성하자는 관점에서 이 개혁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 안은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있다기보다는 운동을 통해서 주체 세력이 형성되고 개혁 주도권을 가질 때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가 우리 사회에 어떤 효과를 가져올까? 정 교수는 교육 정상화, 학벌 타파, 사교육비 경감 등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본다고 말한다.

"가장 먼저 말할 수 있는 것은 중등교육이 정상화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입시경쟁은 수험생들을 1등부터 60만등까지 일렬로 세우는 체제인데, 이것이 가동되면 국립대학 네트워크에 들어가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사이에서만 선이 존재하겠죠.

가령 그것이 20만 명이라 하면, 20만 명의 언저리에 있는 학생들만 경쟁의 구속을 받겠죠. 그 위와 그 아래의 학생들은 거기에서 제외될 거라는 거죠. 그 선만 존재하기 때문에, 무한 경쟁에서 극히 제한된 경쟁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입시에 의해 왜곡되지 않고, 교사가 정말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치고, 학생도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게 되겠죠. 그것이 첫째 효과라고 봅니다.

둘째는 대학 교육도 정상화될 것입니다. 현재는 대학입학 시험에 의해 인생의 모든 것이 정해지기 때문에 대학에 입학해서 학과공부를 열심히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대학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기 때문에 대학이 정상화될 것입니다. 내가 어디를 나왔다 하는 것(간판)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공부했다는 것(실력)이 평가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에 대학이 정상화될 것입니다."

정 교수는 대학교육과 중등교육이 정상화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효과라고 본다고 밝힌다. 또 그는 "우리 사회에서 학벌주의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신분질서인데, 이것이 타파되고 능력에 의해서 평가받는 사회가 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하고 학벌주의 타파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그는 "사교육비 지출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며, "대학이 노동 시장 종속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한다.

"현재 대학 교육이 노동 시장에 의해서 종속되어 가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대학 교육이 노동 시장에 의한 완전한 종속에서 벗어나서 학문을 목적으로 하는 본연의 기능으로 사회에 기여할 것입니다.

또한 교육 기회의 형평성 면에서도 좋은 기여를 할 것이고, 무상 교육을 제공하면 능력만 되면 대학을 갈 수 있게 되어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통합 네트워크로 사립대학 유인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

우리나라의 교육은 교육적 원칙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힘의 세력 관계에 따라 정책이 결정된다. 특히 학벌 독재를 타파하려고 하면 기득권층의 수구적 공세가 매우 거셀 것이다. 따라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혁 세력의 힘의 결집이 필요한데, 정 교수에게 이에 대해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 개혁안은 당연히 기득권층의 저항이 거셀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의 기득권층이 이 개혁안을 본다면 자신들의 기득권이 해체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혁명적이다' 이렇게 해석할 가능성이 크죠. 사실 이건 자유주의적인 의제에 불과한데도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건 정도가 없다고 봅니다. 저는 결국은 삼박자가 같이 가야 한다고 봅니다."

정 교수는 교육 개혁을 위해서 대중조직, 시민단체, 정치 조직이라는 삼박자가 같이 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먼저 대중조직을 통한 대중운동입니다. 특히 교사 대중조직인 전교조입니다. 그리고 교수 대중조직, 노동자, 농민을 포함한 학부모 조직이 자기의 의제로 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이것을 의제로 담론으로 만들어나가는 작업이 배경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정치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결국 이 개혁안을 담보할 수 있는 정당 조직을 통해 관철되겠죠. 현재의 제도 정당에서는 민주노동당이 유일한 세력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이것을 자신의 정책으로 받아 안고, 대중운동이 결집하고 주체세력을 형성한다면 가능해지리라고 봅니다."

한편 국립대 평준화만으로는 우리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사립대학이 여기에 동참해야만 한다. 따라서 정 교수의 안은 당연히 사립대학을 어떻게 유인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국립대학을 통합한다고 하더라도 그 수(학생)가 25%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것을 해서 사립대학만 좋은 일 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제도를 시행하면서 사립대학이 네트워크에 들어올 수 있는 유인정책이 반드시 같이 가야 성공한다는 생각입니다.

서울대 특권을 폐지하게 되면 연고대로 특권이 이전될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고, 또 그것을 잡지 못한다면 실효를 얻기 힘듭니다. 당연히 그것에 대한 보완장치가 필요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 안과 대학 바깥에서 유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립대학이 통합 네트워크에 들어오면 학비를 무상 수준으로 제공하는 혜택을 통해 학생들을 유인하고, 또 교수들의 지위를 보장하는 안을 통해 교수들을 유인하면, 사립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이 네트워크로 들어가자는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강제로 통폐합을 하지는 못하지만, 자연스럽게 사립대학도 현재의 중등 사립학교가 공교육에 편입된 방식으로 사립대학의 틀을 유지하면서 공립대학 네트워크로 편입시킬 수 있게 유인해야 하겠죠."

그 외에도 그는 전문대학원이 부여하는 자격증 제도 등의 방법으로 사립대학이라는 지위는 유지하되 현재 중고등학교의 사립학교가 운영하는 것처럼, 이른바 '준공립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정 교수의 제안이 혁신적이기는 하나 인기학과로 몰리는 대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가 제안하는 학부과정 1기(2년), 2기(2년)가 결국 '고3 경쟁'을 '대2 경쟁'으로 '2년 연기'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두 가지 정도를 얘기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고3 경쟁을 해소하는 것 자체가 매우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대2 경쟁'은 일렬 경쟁이 아니고 분야가 모두 나누어진다는 것이죠. 경쟁이 분산되는 것이 중요한 효과입니다.

둘째는 인기학과의 입학 정원을 늘일 수 있다는 거죠. 특히 법학 대학원이나 의학 대학원을 학생들이 많이 가려고 할텐데, 정원을 늘여버리면 됩니다. 현재 정원을 늘이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집단 이기주의에 의해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법학 대학원이나 의학 대학원의 정원을 늘이는 방법으로 하면 수월합니다.

따라서 비록 경쟁이 있다고 할지라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경쟁 양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사회의 큰 틀에서 대학 교육을 보았을 때, 현재 대학 교육이 노동 시장에 의해 압도되고 있는 상황을 볼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대학 교육이 자본의 논리에 점점 종속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국립대학 통합 네트워크 구축안이 한계를 지닌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정 교수 역시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한 대학이 노동 시장에 종속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바꾸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고 밝히면서 "신자유적인 물결에 대한 방어선을 치고 공공 부문을 확대하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며 과제로 남겨둔다.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먼저 전선을 치고 유리한 싸움을 벌이자"

한편 교육부가 지난 2월 17일 발표한 '사교육비 경감 대책' 중에서 장기 계획에는 정 교수가 제안한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 구축안과 매우 유사해 보이는 안이 제시되어 있다. 정 교수는 교육부의 그런 행동을 어떻게 보는지 물어보았다.

"교육부도 제가 제안한 방식이 아니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고 봅니다. 교육부 스스로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해열제'라고 표현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것을 실토하고 있습니다.

제가 제시한 것이 독창적인 것이 아니고,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프랑스, 독일, 미국에서도 이미 실행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앞으로 그런 제도로 갈 수밖에 없는데, 교육부가 실행에 옮길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토한 것으로 봅니다."

또한 정 교수는 교육부의 "장기 계획과 단기 계획이 따로 논다"면서 "교육부가 진정으로 대학서열을 해소할 계획이 있다면 단기 계획이 그렇게 나오면 안 된다"고 말해 교육부가 '구색 갖추기'의 성격으로 장기 계획에 그런 안을 넣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비쳤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 동안 교육개혁 세력이 각각의 사안에 대해 방어적으로 대처해 왔다면서 "이제는 대안을 먼저 제시함으로써 전선을 형성하고 유리한 고지에서 싸움을 벌여나가자"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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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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