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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서운 할머니가 입원 중인 진해제일병원의 병실 모습.
ⓒ 오마이뉴스 윤성효
“정말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 할머니에게 평화를.”

경남 진해제일병원의 한 병실. 한 달 째 이 병실에서 드러누워 있는 할머니 곁에 세 명의 젊은이가 지키고 있었다. 벽에는 '하트' 모양으로 불도 밝혔고, 색종이로 만든 꽃도 붙어 있었다. 케이크도 잘라 먹고 노래도 불렀다. 이들은 하늘 아래에서 가장 평온한 성탄 전야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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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 할머니와 청년 간병인

이들은 일제 때 정신대로 끌려갔던 정서운(82·진해) 할머니와 그녀를 돕고 있는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경남도민모임' 회원들이다. 강동오(38·하동) 매암차문화박물관 관장과 채수영(33·사천)씨, 박보현(23·창원)씨가 성탄절 전날 정 할머니의 병실을 찾아온 것이다.

채수영씨는 정 할머니가 마산 삼성병원에 입원했을 때 간병을 했다. 침대에서 떨어져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왔다가, 간병을 할 사람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보름간 간병을 도맡았다.

할머니는 11월 말 경 진해로 병원을 옮겼고, 채씨는 서울로 공부하러 갔다. 그 동안 병실은 전문 간병인으로 지키도록 했고, 강동오 관장 등 회원들이 간혹 병원으로 와서 살피기도 했다.

채씨는 한 달 전 할머니 곁을 떠날 때 “성탄절에 다시 오겠다”고 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채씨는 “간혹 전화를 할 때마다, 언제 올 거냐고 할머니께서 말씀하셔서 마음이 무거웠다”고 말했다.

그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아이처럼 응석을 부리면서, 반가운 얼굴을 보이셨는데, 이전보다 훨씬 더 기력이 없으신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병실에 들어섰던 채씨는 마음이 무거웠는지 이내 나와 버렸다. 복도에 한참 동안 서서 마음을 추스른 뒤, 다시 병실에 들어섰다. 그리고 할머니의 손을 잡고 다시 소곤소곤 말을 주고 받았다.

채씨는 할머니의 입술이 마르자 약을 발라주기도 했다. 강동오 관장과 박보현씨는 할머니의 손과 다리를 주물렀다.

강 관장이 “할머니,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아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벽에는 김소영씨가 이날 낮에 만들어 놓은 '하트' 모양의 불빛이 병실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김씨는 창원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지난 10월 <오마이뉴스>에 정 할머니 관련 기사가 나오고 난 뒤 스스로 병실을 찾아왔다.

박보현씨는 인터넷 다음카페 '정서운 할머니 일어나세요' 운영자다.회원 10여명이 가입해 있는데, 할머니와 관련한 갖가지 자료를 모아 놓았다. 할머니의 건강 상태를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어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이들이 모여 그야말로 아름다운 성탄 전야를 보내고 있었다.

▲ 채수영씨가 정 할머니의 입술이 마르자 약을 발라주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정서운 할머니는 정신대 첫 공개 증언, 병원비 부족으로 도움 호소

정서운 활머니는 경남 하동 악양 출신으로, 16살 때인 1930년대 말 정신대에 끌려갔다가 6년간 지냈다. 30대 후반에 재혼한 남편인 할아버지와 그동안 진해에서 살았다. 일본이 "정신대는 없었다"고 할 때부터 정 할머니는 공개적으로 증언하고 나섰고, 정신대 공개 증언 1호로 알려져 있다.

정 할머니는 지난 10월 17일 침대에서 떨어져 대퇴부 골절상을 입었다. 마산 삼성병원에 입원했다가 한 달 전 진해제일병원으로 옮겼다. 진해에 사시는 할아버지가 마산까지 다니기가 불편해 옮긴 것이다.

할머니는 지금 여러 가지 병을 앓고 있다. 간경화에다 당뇨, 고혈압, 위장출혈 등을 앓고 있으며, 욕창도 심하고 복수도 많이 찬 상태다.

강동오 관장은 "며칠 전부터 기력이 많이 쇠약해졌다"면서, "말도 많이 못하고, 밤에는 산소호흡기를 해야만 잠을 조금 잘 정도"라고 말했다.

정 할머니는 주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10월말 정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알려진 뒤, 150여만원의 성금이 들어왔다. 그리고 진해시에서 70만원의 병원비를 내놓았고, 마산 삼성병원도 입원비 중에 100여만원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헌혈증도 내놓은 이가 있었다. 정 할머니는 마산삼성병원 입원 당시 수혈을 받았다. 30여장의 헌혈증이 모아졌는데, 병원비를 줄이는 데 큰 보탬이 되었다.

강 관장은 "우리나라가 소득 2만불 시대를 위해 달려간다고 하지만, 정신대 할머니조차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처지라고 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한 달 넘게 입원한 진해제일병원의 병원비에 대해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강 관장은 "지금까지 들어왔던 성금 중에 남아 있는 돈은 40여만원뿐인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 걱정"이라 말했다. 그는 "성탄절에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정말로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정 할머니 곁에 선 채수영 강동오 박보현씨(오른쪽부터).
ⓒ 오마이뉴스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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