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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기에 나온 군국가요 대부분은 당시에도 이미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했으므로 광복 이후에는 거의 잊혀지다시피 했다. 현재 공개적으로 복각음반이 나와 있는 것도 앞서 본 <결사대의 아내> 한 곡밖에 없으므로, 군국가요를 직접 들어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많은 군국가요들 가운데 유일하게 1950년대에 다시 취입이 될 정도로 비교적 널리 알려진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아들의 혈서>라는 작품이다.

<아들의 혈서>는 1942년 3월 신보로 오케레코드에서 발매되었으며(음반번호 31093), 조명암(趙鳴岩) 작사·박시춘(朴是春) 작곡에 백년설(白年雪)이 노래를 불렀다. 세 사람은 1942년 당시 작사가, 작곡가, 가수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인물들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후대에는 <아들의 혈서>가 군국가요의 대표적인 예로 지목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백년설이 매일 방송국에서 가서 <아들의 혈서>를 부르고 거액의 부당한 이익을 취했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이는 별다른 근거가 없는 말이다.

어머님전에 이 글월을 쓰옵노니/ 병정이 되온 것도 어머님 은혜/ 나라에 바친 목숨 환고향(還故鄕)하올 적엔/ 쏟아지는 적탄 아래 죽어서 가오리다
어제는 황야 오는 날은 산협(山峽)천리/ 군마도 철수레도 끝없이 가는/ 너른 땅 수천 리에 진군의 길은/ 우리들의 피와 뼈로 빛나는 길입니다
어머님전에 무슨 말을 못하리까/ 이 아들 보내시고 일구월심(日久月深)에/ 이 아들 축원하사 기다리실 제/ 이 얼굴을 다시 보리 생각은 마옵소서
(유성기 음반에 실린 내용을 채록한 것이다)


<아들의 혈서>가 과연 군국가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거론될 수 있는지 여부는 일단 논외로 치더라도, 가사가 대단히 노골적인 군국가요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쏟아지는 적탄 아래 죽어서 가겠다는, 그리고 다시는 이 얼굴 볼 생각을 하지 말라는 아들의 말은 일견 평이한 듯도 하지만, 군국주의 이념을 위해 개인의 피와 뼈가 무슨 재료나 되는 양 희생되었던 당시의 정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들의 혈서>는 1943년에 나온 군국가요 모음집 <오케가요극장>에 수록된 여섯 곡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오케가요극장>에는 제1절 가사만 수록되어 있고, 노래 앞에 영화배우 유계선(劉桂仙)이 낭독한 대사가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빛나는 싸움마당으로 떠나간 아들이여 반도의 의용남아여 그대에게는 오직 충성이 있을 뿐이다 그대들이 돌격하는 아침과 저녁에 무수한 철조망이 끊어지고 무수한 천막이 찢어지고 그래서 대동아의 새로운 건설의 **가 훤하게 **는 것이다 그럼 전선에서 온 아들의 혈서를 읽어보자
(유성기음반에 실린 내용을 직접 채록한 것이다)


일본군이 되어 대동아 공영권 건설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내용이 분명한 <아들의 혈서>가 광복 이후에도 계속 불렸다는 것은 언뜻 납득하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거기에는 아마도 6.25전쟁의 영향이 컸으리라고 짐작된다.

광복을 맞은 지 5년만에 내전에 휘말리게 된 상황에서 군가나 진중가요로 부를 만한 노래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일제 말기의 군국가요가 다시 불리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대단히 부자연스런 모습이기도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독립군들이 일본 군가를 즐겨 불렀던 일을 생각해 보면 한편으로 수긍이 되기도 한다.

물론 독립군들이 일본 군가를 부를 때 가사를 새로 붙였던 것처럼, <아들의 혈서>도 가사가 새로 붙여지기는 했다. 1950년대 이후 재취입된 <아들의 혈서>는 <울고 넘는 박달재>로 유명한 가수 박재홍(朴載弘)(1924-1989)이 불렀고, 서로 약간씩 다른 두 가지 가사가 확인되고 있다.

어머님전에 이 글월을 쓰옵노니/ 군인이 되온 것도 어머님 은혜/ 나라에 바친 목숨 충성을 다할 적에/ 쏟아지는 적탄 아래 생사를 거오리다
어제는 광야 오늘날은 산협(山峽) 천리/ 군마도 철수레도 끝없이 가는/ 자욱한 포연 속에 적진을 부술 적에/ 이 아들의 용감함을 자랑을 하옵소서

어머님전에 이 글월을 쓰옵노니/ 군인이 되온 것도 어머님 은혜/ 나라에 바친 목숨 충성을 다할 적에/ 쏟아지는 적탄 아래 생사를 거오리다
어머님전에 무슨 말을 못하리까/ 이 아들 보내시고 일구월심(日久月深)에/ 이 아들 철모자를 받아서 거올 적에/ 우리들의 소원성취 이루는 날입니다


두 가지 모두 3절로 이루어진 원곡과는 달리 2절로 되어 있는데, 제1절은 똑같이 원곡의 제1절을 약간 변형시켰다. 첫 번째 가사의 제2절은 원곡의 제2절을 변형시킨 것이지만, 두 번째 가사의 제2절은 원곡의 제3절을 변형시킨 것이다. 어떠한 경우든 전반부는 원곡을 그대로 살리고 후반부는 새로운 내용으로 바꾸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대략 절반 정도가 바뀐 가운데 원곡에서 죽음을 노골적으로 강조한 제1절과 제3절의 후반부가 모두 비교적 부드러운 표현으로 바뀐 것이 재취입된 <아들의 혈서>에서 가장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이러한 개사는 일단 원곡을 작사한 조명암이 월북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일이기도 했겠지만, 전쟁의 광기가 극에 달했던 일제 말기에 나온 가사가 십수 년이 흐른 뒤에는 아무래도 그대로 불리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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