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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 아침 컨디션은 참 좋습니다. 어제 충분한 잠을 잔 덕분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제일 바쁘게 움직인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쁜 것이 좋냐구요? 네. 좋습니다. 몸이 훨씬 덜 피곤합니다. 다른날 처럼 손님은 별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작았던 날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바빴던 이유는 새로운 일거리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돈가스를 미리 만들어 놓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매일하는 일은 아닙니다. 돈가스 전문점처럼 두꺼운 돼지고기에 바삭바삭한 빵가루를 묻혀 바로바로 튀겨내지 않고, 얇은 돼지고기에 빵가루를 입혀 다시 냉동보관시킵니다. 일주일분을 만들어 놓는 일이었습니다. 원래는 주간근무자들이 하던 일인데, 바빴는지 야간근무자에게 일이 넘어왔습니다.

식당일은 타이밍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재료 준비도 미리미리 왕창 해놓을 수가 없습니다. 상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을 몰아서 할 수가 없습니다. 청소도 여유가 있을 때 하면 좋겠지만, 다음 청소시간까지 고려하여 할 시간이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김밥도 미리 말아놓으면 밥이 다 말라버려 제 맛이 안나기 때문에 적정한 개수를 유지해야 합니다. 사정이 이러니 쉬는 시간도 안정적이지 못합니다. 바쁠 때는 여러 개가 겹치고 말입니다.

몇가지 할일들을 하고 나서 주방 이모와 돈가스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칼집이 들어간 돼지고기에 계란을 입히고 그 위에 빵가루를 씌어 차곡차곡 재워놓는 일이었습니다. 숙달된 주방이모의 시범을 따라 해보았습니다. 속도가 늦어지니 답답한 주방 이모는 계란 옷 입히는 일을 하고 저는 빵가루를 꾹꾹 눌러서 붙이는 일을 맡았습니다.

힘이 남아도는지 두툼했던 돼지고기가 점점 얇아집니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 보다 크기가 훨씬 커져버렸습니다. 돈가스를 만드는 시간대는 청소를 하고 김밥을 마는 시간대였습니다.

새벽 3시쯤에 청소를 시작해 4시쯤에 청소를 마치고 새벽장사에 쓸 김밥을 말아놓는 것이 보통인데, 일은 빨리 안 끝나고 시계는 4시를 향하고 있습니다. 돈가스를 은박지로 포장을 하고, 다시 랩으로 싼 후 냉동실에 보관하고 나니 4시 30분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음은 급해지고 손놀림도 빨라졌습니다. 이렇게 후닥닥 청소를 하면 몸의 리듬도 빨라지고 생기가 돕니다. 천천히 늘어지게 했던 일들을 한 번에 두 세개씩 해치우니 시간이 단축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점차 익숙해지는 김밥 말기도 빠른 속도로 해치워버립니다.

일이 이렇게 되면 신이 납니다. 배달도 더 빠른 걸음으로 다녀오고 맛있게 먹으라는 인사도 밝아집니다. 어쩌면 늘 늘어지게 일을 하다 이런 날이 생겼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일 매일 바쁘면 당연히 더 힘이 들겠지요.

식당에서 보통 쓰는 호칭은 '이모'입니다. 가정에서는 보통 밥을 주는 사람은 어머니인데, 어머니라 부를 수 없으니, 어머니와 가장 가까운 이모라는 호칭을 주로 쓰게 되나 봅니다. 친한 손님들도 이모라는 호칭을 선호합니다. 그러면 식당의 '이모'들은 '삼촌'이라고 화답합니다. 저도 일하는 분들에게 이모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단골 손님에게도 삼촌이라고는 부르지 못합니다. 부를 생각도 없구요.

대부분의 손님들은 저를 '아줌마'라고 부릅니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나이도 얼마되지 않은 저에게 아줌마라는 호칭은 부당하지만 식당에서는 적절한 호칭입니다.

그리고 저를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저보다 어린 여자가 아니라,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들입니다. 이럴때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속이 불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오늘은 급기야 '새댁'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주방 이모와는 이미 친분이 있는 듯 '삼촌'이라 불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이가 많을 것 같지는 않은데, 밤에 일을 하니 기혼자라고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배달 다녀온 사이 사실을 알게된 그 '삼촌'은 새댁이라 불러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여보세요'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저기요'라고도 합니다. 사실 붜라 부르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주문을 잘 받는 것이 저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장님은 사장님으로 불리지만, 사장님의 아내는 사모님으로 불리지는 않습니다. '아침 이모'라고 불리지요. 야간조가 퇴근하는 오전 7시에 출근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립니다. 사실 사장님도 명칭만 사장이지 하는 일은 저희랑 똑같습니다. 거기다 배달까지합니다.

어떤 일을 잘못하여 주방이모가 잔소리를 할 때는 참 묘한 기분으로 보게 됩니다. 잘못한 것이 있으니 사장님은 조용히 그 잔소리를 다 듣고 있거든요. 사장님이 조금 게으름을 피워 일이 밀린 것에 대해 항의하거나, 사장에게 일을 시키는 이모들을 보고 있으면 사장 노릇하려면 자금력이 뛰어나거나 그 분야에서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이 식당에서 사장님이 독보적인 분야는 쫄면 양념장입니다. 그 비법은 아무도 모릅니다. 어디가에서 돈을 주고 배워왔다는 사장님은 양념장을 직접 만들어 놓습니다. 주방이모들도 그 쫄면 양념장에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합니다. 맛있기 때문입니다. 몇몇 주방이모들이 만들려고 시도를 했다고는 합니다. 그러나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사장님의 어깨에 힘이 더 들어갈려면 쫄면이 많이 팔려야 하는데, 오늘도 달랑 한개 팔렸으니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사장님이 김밥을 더 이쁘게 말던가 배달 그릇을 제때 제때 찾아오는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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