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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진입로 앞에 게라지 세일 표지판을 세우고 풍선을 매달다
우리 집 진입로 앞에 게라지 세일 표지판을 세우고 풍선을 매달다 ⓒ 정철용
특히 게라지 세일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중고품 시장인데, 그 말처럼 자신의 집 차고에서 이루어집니다. 게라지 세일은 보통 이사를 앞두고 열리지만 집에 군더더기 살림살이가 너무 많아서 처분할 필요가 있을 때에도 많이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이제 이민 온 지 2년 반쯤밖에 안 되었는데, 우리집 살림에도 그 사이에 군살이 많이 붙어서 우리도 게라지 세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1주일 내내 물건들을 꺼내 정리하고 고민하면서 가격표를 붙였습니다. 이민 오면서 한 번 정리한 살림살이인데도 막상 구석구석 살펴보니 쓸데없는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작은 방이 이내 꽉 차더군요.

주로 아내의 귀걸이를 비롯한 각종 액세서리들, 열 개도 넘는 내 넥타이들, 딸아이의 손때 묻은 인형들, 그리고 이제는 입지 않는 우리 부부의 옷들과 작아서 못 입는 딸아이의 옷들, 아동용 자전거와 4인용 식탁 및 교자상 등이었지요.

딸아이가 신던 신발들도 잘 빨아서 내놓고 나와 아내가 영어 교실에서 사용했던 영어 교재도 내놓았습니다. 심지어는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딸아이가 무료로 받은 판촉용 장난감들도 하나로 모아 1달러를 붙여 놓았습니다.

우리 집 게라지 세일에 나온 물건들. 인형들과 장난감들과 영어교재들이 보인다
우리 집 게라지 세일에 나온 물건들. 인형들과 장난감들과 영어교재들이 보인다 ⓒ 정철용
지역 신문에 광고도 내고 교민들이 자주 보는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에도 방을 써 붙이고 동네 도로변에 표지판도 세웠습니다. 그리고 게라지 세일이 있는 토요일에는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우리 집으로 이어지는 진입로 앞에 표지판도 세우고 눈에 잘 띄게 풍선도 매달았습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나고 8시가 되면 차고 문을 올려 차를 빼고 판만 벌여 놓으면 됩니다.

그런데 아침을 먹고 나서 아직 볼일도 보지 못했는데 벌써 초인종이 울립니다. 시계를 보니 7시 40분. 문밖을 보니 10여 명의 사람들이 언제 차고 문을 올리느냐고 벌써부터 성화입니다. 그렇게 일찍 와서 보채니 하는 수 없지요. 예정된 시간보다 20분 먼저 게라지 세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한 시간 동안은 그야말로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더군요. 물건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대답하랴, 가격 흥정 하랴, 잔돈 바꿔주랴, 새로 오는 손님들에게 인사하랴, 잘못 놓여진 물건들 바로 세워 진열하랴…. 우리 집 세 식구가 다 달라붙었는데도 일손이 모자랄 판입니다. 차고 문을 열고 1시간 동안에 거의 절반 이상의 손님들이 다녀간 듯합니다.

그렇게 바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찬찬히 둘러보니 남아 있는 물건들은 별로 좋은 것이 없어 보입니다. "일찍 일어난 새들이 먹이를 잡는다(The early bird catches the worm)"라는 속담처럼, 좋은 물건들은 일찍 일어난 새들이 이미 다 물어갔으니 남아 있을 리가 없지요.

우리도 이민 초기에 숱하게 게라지 세일을 다녔지만 딸아이 책 몇 권과 해변용 접는 의자 두 개 말고는 건진 게 없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주말이라고 늦잠자고 일어나 아침 다 먹은 후에 뒤늦게 게라지 세일을 찾았던 우리 가족이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도 마다하고 아직 열지도 않는 차고 문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당해낼 수 있었겠어요! 그러니 게라지 세일에서 좋은 물건을 사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책 한 권, 옷 한 벌에 단돈 1달러. 그래도 쓰레기로 버리는 것보다 낫다
책 한 권, 옷 한 벌에 단돈 1달러. 그래도 쓰레기로 버리는 것보다 낫다 ⓒ 정철용
그런데 파는 사람, 즉 게라지 세일을 여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라지 세일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차고 문을 여는 것이 좋은 손님들을 많이 확보하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이지요. 이곳 키위들이 새벽 6시부터 게라지 세일을 여는 것이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10시쯤 되니 이미 파장 분위기입니다. 그 사이에 식탁과 교자상 두 개와 컴퓨터용 책상 등 가구류는 모두 팔렸고 딸아이의 인형들과 장난감들과 책들과 옷들도 많이 나갔습니다. 비디오 테이프와 자잘한 가정용품들도 제법 팔렸지만 우리 부부의 옷들과 액세서리들은 거의 그대로입니다. 한국 돈으로 1500원에서 1만2000원까지 붙여놓은 아내의 귀걸이와 목걸이 등의 액세서리와 내 재킷과 셔츠들은 상태가 매우 좋은데도 팔리지가 않습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옷들의 경우에는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내린 결론은 액세서리와 옷들이 이들에게는 그다지 필요하고 긴요한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겨울에도 반팔에 반바지에 샌들을 신는 것을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 이들에게 귀걸이와 목걸이와 매번 드라이 클리닝을 해야하는 고급 옷들과 다려 입어야 하는 와이셔츠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막판까지 팔리지 않고 남은 아내와 나의 옷들. 키위들은 외모를 가꾸고 꾸미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막판까지 팔리지 않고 남은 아내와 나의 옷들. 키위들은 외모를 가꾸고 꾸미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 정철용
그런데 12시가 다 되어서 찾아온 젊은 키위 남녀가 옷걸이에서 내 순모 양복 상의를 하나 꺼내 입어 보더군요. 자주색 넥타이도 하나 꺼내서 맞춰봅니다. 맘에 드는 모양입니다. 가격을 물어봅니다. 양복 상의는 15달러, 자주색 넥타이는 1달러, 합쳐서 16달러라고 대답해주었더니 10달러에 줄 수 없느냐고 다시 묻습니다. 나는 "노(No)"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시간도 다 되어 팔리지 않을 텐데, 그러면 이건 도로 상자 속에 쑤셔 넣어야 되는 게 아니냐?"라고 흥정을 해 옵니다. "그러면 내가 다시 입을 거다"라고 대답은 해주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갈등이 한참입니다. 그들은 지갑을 열어보고는 서로 뭐라고 주고받더니 사정조로 다시 말을 건네옵니다. "우리가 지금 가진 돈이 10달러밖에 없어서 그런데, 정말 10달러에 안 되겠느냐?"

우리 집 게라지 세일의 마지막을 차지한 내 재킷과 넥타이는 결국 10달러에 낙찰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10달러밖에 돈이 없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막판 떨이를 노리고 온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들의 영악함에 나는 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또 하나를 배웠으니 그리 나쁜 거래만은 아니었습니다. 게라지 세일에서 좋은 물건을 값싸게 사는 두 번째 방법, 즉 '차고 문 내리기 전 막판을 노려라'라는 것을 그들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차고 문을 내리고 계산해 보니, 우리가 토요일 오전 4시간 20분 동안 게라지 세일을 통해서 벌은 돈은 지역 신문 광고료를 빼고 모두 오십만 원 정도이더군요. 살림살이에 붙은 군살도 빼고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돈도 벌었으니 기분이 몹시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분이 좋았던 것은 우리 집에서는 이제 소용없는 물건들이 쓰레기로 변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제 가치를 인정받아 이제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몸의 군살은 다이어트로 없어지고 말지만 살림살이에 붙은 군살은 이렇게 게라지 세일을 거치면서 다른 사람의 긴요한 살림살이로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 이상적인 것은 게라지 세일을 할 필요가 없도록 아예 살림살이에 군살이 붙지 않게 평소에 조심하는 것입니다. 충동 구매와 과시용 소비 대신에 절제와 검약을, 조금이라도 편하고자 하는 생활의 편리 추구 대신에 가능하면 스스로 땀 흘려 만들고 가꾸는 데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는 생활 방식으로의 전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보기 싫게 나온 뱃살을 '인격'이라고 두둔하는 것이 천만의 말씀인 것처럼, 우리 살림에 알게 모르게 낀 군살은 더 이상 '풍요'의 상징이 아닙니다. 다이어트는 몸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살림에도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이번 게라지 세일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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