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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는 것은 죄악입니다.

늦은 밤, 정자에 모기장을 치고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데 얼굴이 불콰해진 목수가 찾아 왔습니다.
지난 3년여, 나는 목수와 함께 동천다려의 집을 짓고, 고치고 정자를 세웠습니다.
올해 40줄로 접어든 목수는 우리 전래의 세살문을 직접 짤 수 있는 드문 재주를 가졌습니다. 동천다려의 세살문과 나무문들도 모두 그가 짠 것입니다.
몇 채의 집을 고치고 지으면서 목수와 나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요.
전작이 깊은지 목수는 조금 흥분해 있습니다.

보길도에 여름이 오고 피서객들이 몰려들면 섬 전체가 들뜨기 시작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인구 3500의 작은 섬에 매일같이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피서객들이 붐비는 걸요.
목수도 어딘지 열에 들떠 있습니다.
요즘들어 부쩍 목수일이 싫다고 말합니다. 1년내내 죽어라 대패질해봐야 전복양식이나 해조류 양식업 하는 사람들 소득의 반에 반도 못되니 그럴만도 하지요.
피서철 청별 식당가나 예송리 해수욕장 등지의 관광수입이 목수에게 또 기름을 붇습니다.

목수는 열 여덟살부터 목공일을 시작해 혼자 힘으로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손수 자기 집을 짓고 목공소도 지어 자수성가 했습니다.
한 때는 목수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었지요.
그러나 양식기술의 발달과 갑작스레 몰려들기 시작한 관광객들 덕분에 큰 재산을 모으고 떵떵거리며 사는 몇몇 마을 사람들을 보며 목수는 생각을 바꾼 듯 합니다.
삼성 현대 등 대재벌들의 추악하고 범죄적인 재산 상속 싸움이 언론을 통해 알려질 때마다 자신은 절대로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큰소리 치던 목수.
이제 목수도 한 번 부자가 되보기로 작정 한 듯 합니다.
나는 잔을 잡아 목수에게 쓴 술 한잔을 권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돈에 대한 욕심마져 버리라는 충고는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무자비하기 까지 합니다.
하지만 부자가 되지 말라는 충고는 충분히 설득력 있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 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며 부자의 죄를 일갈한 바 있는 예수는 저 아름다운 산상 설교를 통해 부자가 되지 말 것을 다시 한번 권유하고 있습니다.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 먹거나 녹이 슬어 못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쓰게 되는 일이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가지도 못한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는 말은 지상의 물욕을 버리고 영혼의 양식을 쌓으라는 뜻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지상에서의 삶을 하찮게 여기는 것과는 무관합니다.
무엇보다 이 말의 본 뜻은 평등한 나눔의 권고이며, 재물을 자신의 곳간에 쌓아 두고 자신만을 위해 써서는 안되다는 질책입니다.
어떻게 부자가 될 것인지 번민의 밤을 보내지 말고 어떻게 나눔의 횃불을 들 것인지 고뇌하라는 충언이지요.

다산 정약용 또한 '여유당전서'에서 예수의 말을 이렇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무릇 재화를 비밀리에 숨겨두는 방법으로, 남에게 시혜하는 방법보다 더 좋은 게 없다. 시혜해 버리면 도적에게 빼앗길 걱정이 없고
불이 나서 타버릴 걱정이 없고, 소나 말로 운반하는 수고도 없다.
그리하여 자기가 죽은 후 꽃다운 이름을 천년 뒤까지 남길 수도 있다.
꽉 쥐면 쥘수록 더욱 미끄러운 게 재물이니 재물이야 말로 메기 같은
물고기라고 할까."
부자들과 부자가 되려고 무던히 애쓰는 이들이 꼭 귀담아 들어야 할 금언이지요.

정자옆 멀구슬 나무 가지 사이로 붉은 달이 지나갑니다.
달 아래 목수의 낯빛이 달빛보다 더 붉게 이글거립니다.
하지만 나는 목수가 생각을 아주 바꿨다고 믿고 싶지 않습니다.
이 열병의 한철이 가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 오면 목수는 다시 톱과 대패와 망치를 들게 되겠지요.
여름날 밤, 나는 여전히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은 여유로움이 아니라 거의 죄악이라는 믿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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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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