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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자 조합원대표와 김정순조합원이 서울대 병원 본관 앞에서 간병인 무료소개소 폐지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정원자 조합원대표와 김정순조합원이 서울대 병원 본관 앞에서 간병인 무료소개소 폐지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 보건의료노조
서울대 병원이 그 동안 운영해 오던 간병인 무료소개소를 지난 달 1일 폐쇄하고 일방적으로 유료소개업체를 선정하자 병원 노조와 간병인들이 단식농성을 벌이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 병원 본관 입구에는 간병인 조합원 대표 정원자씨와 김정순씨가 지난 1일부터 일주일 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서울대 병원이 노조의 무료소개소 운영 방침까지 무시하고 사설 유료업체를 선정한 것은 간병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키는 무책임한 행위"라며 무료소개소 폐지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병원 측은 "그 동안 무료소개소 간병인들의 웃돈 요구나 자질문제 등으로 많은 민원이 발생했다며 사설업체들이 간병인들을 소개하고 관리할 경우 이런 민원이 사라지게 돼 환자들에게 보다 양질의 간병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무료소개소 폐쇄 이유를 밝힌 상태다.

하지만 간병인들은 이런 주장에 대해 병원 측의 잘못된 결정을 덮기 위한 것이며 사실과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유료소개소 선정은 의료서비스 질 저하시키는 무책임한 결정

서울대 병원 본관 앞을 지나던 환자 보호자가 무료소개소운영에 찬성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서울대 병원 본관 앞을 지나던 환자 보호자가 무료소개소운영에 찬성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훈
실제로 서울대 병원이 운영해 왔던 무료 소개소의 경우 공채를 통해 일정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을 선발하고 병원 간호부에서 정기적인 교육을 실시해 왔지만, 사설 업체의 경우 적십자사에서 1주일 과정의 간병인 교육을 수료한 사람을 모집해 환자에게 소개할 뿐 사후 교육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간병인들은 "영리추구가 목표인 사설업체가 간병인들을 소개할 경우 오히려 간병서비스의 질 저하로 끊임없는 민원이 이어질 것"이라며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다면 병원장의 책임 하에 운영되는 무료소개소를 통해 간병인을 교육하고 관리하는 것이 공공병원으로서의 마땅한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간병인들이 무료소개소를 지키려는 더 큰 이유는 병원 측의 이번 결정이 환자들에겐 서비스 질 저하를 초래할 뿐 아니라, 간병인들에게는 소개비 부담을 지워 업체의 배만 불려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간병인들은 사설유료업체에 등록할 경우 입회비와 소개비 명목으로 간병료 중 일부를 업체에 빼앗겨야하고 조건이 좋은 환자를 맡기 위해서는 관리자들에게 뇌물을 상납해야 하는 비리에 시달려야 할 수도 있다.

무료 소개소와는 달리 유료 소개소의 경우 업체마다 편차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간병인들은 최초 입회비로 25만여 원, 월 회비로 5만여 원을 꼬박꼬박 납입해야 한다. 24시간 간병으로 고작 5만원의 수고비를 받는 간병인들에게 이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설유료업체 간병인들은 공식적인 입회비와 소개비 외에도 모든 간병인들이 선호하는 장기입원환자나 조건이 좋은 병원에서의 간병을 위해서는 업체 간부에게 수십 만원의 뒷돈을 상납해야만 한다.

소개소 간부에게 정기적으로 뒷돈 상납해야

간병인들, 저임금, 소개비에 뇌물까지 삼중부담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현재 전국적으로 간병인들은 2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간병인들은 유·무료소개소나 개인 소개를 통해 간병할 환자를 만나고 환자나 보호자들로부터 직접 간병료를 받기 때문에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고 있다. 다른 이름으로 '비공식 노동자'로 불리는 이들은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자로서 어떠한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다.

최경숙 보건의료노조 조직국장은 "간병인 제도는 간호사 등 병원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환자간호의 부담이 보호자에게 돌아가게 돼 생겨난 것"이라며 "실제로 간병인들은 무의식 환자 튜브식사, 가래제거, 소변량 체크 등 의료서비스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등 제대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유료소개소에 속해있는 간병인들은 업체에 입회비나 소개비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중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최경숙 국장은 "간병인들에 대한 이중착취구조 개선, 간병업무의 질 향상, 의료서비스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는 노조의 무료소개소 운영으로 간병인들의 조직화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승훈 기자
대표적인 유료간병협회인 A사에 소속돼 10년 째 환자 간병을 해온 최아무개(여·56)씨는 "A사의 경우 안정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장기환자를 소개받기 위해서는 최소 30만원 이상을 상납해야 하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간병인 관리를 명목으로 병원을 순회하는 업체 관계자들에게 정기적으로 금품을 제공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최씨는 "서울대 병원 무료소개소로 옮기고 나서 가장 좋았던 점이 간병료에서 소개비 등을 뜯기지 않아도 되고 다른 것(뇌물 문제) 생각하지 않고 간병하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간병인 무료소개소는 이미 폐쇄된 서울대병원을 제외하면 YWCA 무료 소개소가 유일하다. 보건의료노조 측은 "그 동안 서울대 병원이 다른 병원과는 달리 무료소개소 직영을 통해 질 높은 간병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범 사례였는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비리의 온상인 사설업체를 선정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보호자들도 무료소개소 원해, 노조측 직접 무료소개소 운영할 것

환자 보호자들도 무료소개소 유지에 찬성하고 있다. 간병인들이 벌이고 있는 무료소개소 폐쇄 철회를 위한 서명운동에 2천여명이 넘는 환자보호자가 이미 서명을 했고 지난 달 16일 실시된 무료소개소 유지 찬반을 묻는 즉석 투표에서도 반대 의견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버지가 노환으로 1년째 병원에 입원 중인 박아무개(남·58)씨는 "무료소개소가 운영될 때도 그쪽에서 관리를 철저하게 해 줘서 큰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사설 업체로 바꾸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무엇보다 한 병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간병인들이 더 신뢰가 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울대 병원 노조는 병원 측의 소개소 폐쇄에 맞서 직접 무료소개소를 운영한다는 방침을 마련했다. 이는 노조가 무료소개소를 운영한다면 유료소개소 소속 간병인들이 대부분 무료소개소로 옮겨올 것이고 이를 통해 간병인들에 대한 중간착취구조 개선하고 간병업무의 질 향상을 꾀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병원 노조 측은 또 "이를 통해 법적으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간병인들의 조직화도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경숙 보건의료노조 조직국장은 "병원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간병인 제도는 차선책에 불과하다"며 "간병인들의 열악한 처우와 환자보호자에게 사적 의료비의 이중부담을 지우는 간병인 제도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병원인력 충원과 국가 의료제도의 개선이 이루어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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