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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식 감사원장 후보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
조 의원은 또 "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서 반복되는 선생님의 의견이 모두 '교우관계가 불순하다', 심지어 '게으르다'였다"고 덧붙였다.(뉴스전문 케이블방송 YTN의 '돌발영상' 참조)

이 같은 말을 들은 윤 감사원장 후보는 손을 부르르 떨며 "제가 성적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란 말을 한 채 얼굴을 떨궜다. 학교 교사들이 적어 놓은 생활기록부 때문에 씻을 수 없는 봉변을 당한 것이다.

신문과 방송에서 생활기록부의 등장은 이번만이 아니다. 생활기록부가 나오기만 하면 이번 '양가 아저씨' 타령처럼 대부분 그 장본인들은 망신을 당하기 일쑤다.

올 3월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아들의 생활기록부가 공개돼 궁지에 몰린 바 있다. 다음은 이를 다룬 <한국일보> 3월 7일치 사설.

"진 장관은 '아들 성적이 대학갈 정도가 못됐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외국인 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했으나, 현장 확인 결과 경기도의 비평준 명문고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으며, 학적부에는 '학생생활 규범을 잘 따르는 모범학생'이라고 기재돼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활기록부, 그리고 <조선일보>

이 같은 사례는 약과다. 지난 해 노무현 대통령의 생활기록부 파동을 되돌아보자. 지난 해 4월 노 당시 대통령 후보의 생활기록부가 공개되자 언론들은 앞다투어 이를 보도했다. 이 가운데 조선일보 4월 29일치 신문 제목이 가장 자극적이다.

지난해 조선일보 4월 29일치 기사.
지난해 조선일보 4월 29일치 기사.
"노무현 누구인가/여 대선후보; '두뇌명철, 판단력 풍부… 비타협적 극히 독선적' 중3기록부"

이 기사엔 제목에 어울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1959년 진영중학교에 입학했다. …중 2를 마친 뒤 그는 집안 형편으로 휴학했다가 이듬해 복학했다. 중3 (생활기록부) 평가란에는 ‘두뇌 명철, 사리 판단력이 풍부함. 그러나 비타협적이며 극히 독선적임. 행동은 불안한 거동이 많으며 악화의 우려조차 엿보임. 지나치게 자만심이 강하여 비협조적임'이라고 돼있다."

노 대통령의 중 3 담임은 그의 생활기록부 평가 내용이 삼천리 방방곡곡 온 백성한테 다 전달될 줄 알았을까. 노무현 학생이 독선적인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 선생님이 포용력이 부족한 것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권양숙, 이회창, 김대중의 생활기록부도 공개돼

이 밖에도 생활기록부가 언론에 공개된 인사로는 노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 이회창 대선 후보,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럼 일반인들의 생활기록부는 안전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위에 나온 이들이 모두 내로라하는 인사들이기에 언론을 탔을 뿐, 일반인들의 기록 또한 새나가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학교엔 다른 사람의 생활기록부를 '염탐'하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주로 결혼을 앞둔 약혼자들이 상대의 성품을 알기 위해 열람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소식이다. 물론 대부분의 학교는 본인이 직접 오지 않을 때 생활기록부를 내주지 않는다.

초중고생활기록부 관리지침을 보면 "각급 학교장은 생활기록부를 학생 졸업 후 50년간 보관해야 한다"(22조)고 되어 있다. 이 규칙은 또 "생활기록부는 학생의 지도자료, 상급학교 승급자료로 제공할 수 있다"(23조)고 써 있다. 다른 용도의 사용은 법률에 근거하지 않는 한 막고 있는 것이다.

왜 그 은밀한 생활기록부가 새어 나왔을까

왜 그럴까. 생활기록부는 학생의 은밀한 개인정보 수백 가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은 "보유기관의 장은 개인정보 파일의 보유목적 외의 목적으로 처리정보를 이용하거나 다른 기관에 제공할 수 없다"(10조 2항)고 못 박고 있다. 교육 목적으로 수집된 개인정보인 생활기록부는 더더욱 제공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샘솟지 않는가. 그럼 왜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와 역대 대통령 등의 생활기록부가 떠돌아다니고 있는지. 솔직히 나도 그 내막을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윤 후보처럼 본인도 모르는 새 생활기록부가 빼돌려졌다면 큰 일이다. 해당 학교 교장은 물론 교육당국은 법에 따른 책임을 면키 어려운 것이다.

기자들이 달라거나, 국회의원이 엄포를 놓는다고 해서 생활기록부를 빼준다면 이미 그것은 학교가 학교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 까닭은 학교를 믿고 정보를 제공한 학생의 믿음을 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학교 담 넘어 가버린 생활기록부, NEIS

이전엔 생활기록부가 학교에만 있었지만 이젠 시도교육청 서버에도 함께 보관되고 있다. 현재 논란을 빚고 있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 계속 가동 상태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초부터 교사와 학생들도 모르는 사이에 1천만명에 가까운 졸업생과 재학생의 생활기록부 내용을 빠짐없이 시도교육청 서버에 옮겼다. 기가 막힌 일이다.

KBS-2TV 인기 프로그램인 'TV는 사랑을 싣고'는 오는 9월 28일 472회 째를 맞는다. 이 프로그램은 교장이나 교감이 나와 찾고자 하는 이의 생활기록부를 들춰보는 화면을 내보낸다.

아무리 '악의성'이 없다해도 이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는 행동인 것이다. 남의 정보를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교장과 교감도 문제고 이를 내보내는 방송 또한 책임을 면키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모습을 보며 낄낄대고 웃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아닐까.

'양가 아저씨'는 계속 나올 것인가

이런 개인정보인권에 대한 불감증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양가 아저씨'는 계속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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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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