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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구 국정원장의 국회 정보위 보고 내용이 발설되면서 조선일보가 자신의 특종이 사실로 확인되었다며 기고만장하고 있다. 더불어 내 이름으로 올린 작년 12월18일자 <오마이뉴스> 기사에 대해 시비를 걸고 있다. 조선 기자가 전화를 해 물어보길래 인터뷰는 하지 않는다며 시대소리(www.sidaesori.com)나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www.antichosun.com)에서 확인하라고 한 바 있다.

조선은 12일자 미디어면 기사 <북한 核 고폭실험 本紙 두차례 특종 / '오마이뉴스'는 당시 나쁜 보도라고 시비>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내 글에 대해 조선이 <오마이뉴스>를 걸고 넘어지며 흠집을 내므로 해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얘기다. 조선은 작년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12월18일 <94년 제네바합의 이후에도 北, 70여 차례 核 고폭실험>을 1면 톱으로 올렸다. 나는 당일로 이 기사를 '나쁜 보도'로 규정한 미디어국민연대의 모니터 보고서를 내 이름으로 올린 것이다.

제네바합의가 고폭실험을 제한하는 것도 아니며, 미국도 그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별 문제를 삼지 않고 있었고, 조선이 밝힌 대로 98년 11월23에도 보도한 바 있는 사안을 하필 선거 하루 전날 마치 엄청난 사실이라도 새삼스럽게 확인된 양 보도하는 게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아니었는가가 내 글의 요지였다. 그리고 취재원을 밝히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지적을 했다.

제목만 보아도 독자들은 북한이 마치 대단히 위험한 핵실험을 했으며, 그것이 또한 제네바합의를 위반한 것과 같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폭실험은 핵실험이 아니며, 따라서 제네바합의의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조선이 밝힐 게 있다. '70여 차례 고폭실험' 사실을 언제 확인했는가? 하필 선거 전날 보도하게 된 게 우연이었는가?

다음으로 고영구 원장의 국회 보고 내용에 대한 과도한 해석의 문제다. 조선은 10일자 1면 톱 기사 <北, 5년간 70여 차례 核고폭실험 / DJ정부 출범초 알고도 햇볕정책>에서 "이는 '김대중 정부'가 출범 초부터 북한이 고폭실험을 통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햇볕정책을 추진"한 점을 문제 삼았다. 거듭 말하지만 고폭실험은 핵실험의 전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핵무기 개발로 비약하고 햇볕정책을 흠집내는 것은 악의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 기사에서 "(북한은) 영변 재처리 시설에서 8000여개의 폐연료봉 중 소량을 재처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국정원장 발언에 대해 제목에서는 <국정원장 國會보고 "최근 폐연료봉 재처리">로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렸다. 이 점에 대한 중앙과 한겨레의 해석을 비교해보면 조선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앞서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미 정보당국은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북한이 재처리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따라서 高원장의 이날 재처리 가능성 확인 발언은 우리 정보당국이 미 정보당국의 정보판단을 받아들였다는 의미가 있다.

국정원측이 이날 북한이 1997년부터 지난 해 9월까지 평북 구성시 용덕동에서 70여 차례에 걸쳐 고폭실험을 실시했다고 밝힌 것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중앙일보 7월11일자 3면, 高국정원장 답변 의미 - 북핵 재처리 美판단 수용)

"그런 점에서 본다면 '소량의 재처리 착수 추정'은 이미 알려진 사실인 영변 핵시설 연기에 대한 또 다른 정보판단일 뿐이다. 이를 재처리를 위한 시험가동으로 볼 것인지, 또는 소량의 재처리 추정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재처리에 본격 착수한 것은 아니라고 볼 것인지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엿장수 맘대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한겨레신문 7월11일자, '영변 연기' 미 재평가 국정원서 수용)

고영구 원장은 관련보도에 대해 "내가 얘기하지도 않은, 사실과 다른 내용을 위원이 왜 얘기하느냐"고 국회에 항의했다고 한다. 비공개 회의에서의 발언을 공개한 국회의원이나 이를 대서특필한 신문이나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럼 뭐하러 비공개로 하는가? 조선의 보도원칙은 햇볕정책에 재를 뿌리고 노무현 정부를 흔들어대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안보나 민족의 평화공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필요에 따라서는 작문도 마다하지 않는다.

익명 취재원에 근거한 보도에 대해 조선은 12일자 기사에서 외국어대 김우룡 교수의 "특종발굴 기사의 경우 취재원을 밝히면 당사자에게 불이익이 갈 수 있으며, 특히 국방·안보 문제와 관련해서는 취재원 공개가 국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익명을 보장하는 것이 전 세계적 관행"이라는 주장을 소개해놓았다.

그럴 듯한 얘기다. 설령 그게 맞는 얘기라 해도 조선에는 적용되기 어려운 기준이다. 익명성의 우산 아래 숫한 허위·왜곡보도를 자행한 '전과'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이 문제 삼은 작년의 내 글은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혐의를 둘 만한 것이었다. 분명히 말하건대, 취재원의 익명성은 기자가 스스로 보호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지 법적이나 사회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조선은 그들만의 은밀한 취재원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취재원은 우리 민족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는 대단히 위험한 취재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작년 12월18일의 조선일보 1면 톱 기사는 그것이 아무리 특종이었다고 하더라도 나쁜 기사였다는 판단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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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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