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느릿느릿 박철

아빠가 날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이야!

우리 집 막내 딸, 은빈(초1)이를 나는 병아리라고 부릅니다. 내가 병아리라고 부르는 이유는 병아리처럼 단 1분도 가만있지 못하고 재잘거립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못하는 말이 없습니다. 어느 때는 엉뚱한 말을 해서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며칠 전 아내가 어머니가 감기가 걸려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입에서 나온 말이 “아이구, 주여!”였답니다. 그걸 듣고 은빈이가 하는 말이 “엄마, 주여 주여! 그러면 좀 나아져?”그러는 것입니다.

ⓒ 느릿느릿 박철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해서 늘 책을 끼고 삽니다. 밥도 잘 먹습니다. 한 끼라도 어쩌다 때를 놓치게 되면 당장 굶어 죽는 줄 압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엄마, 밥 줘! 배고프단 말이야!”입니다. 자기가 집에서 귀염 받는 늦둥이 딸이라는 걸 알아서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오빠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오빠들에게 걸핏하면 대듭니다. 그러다 오빠한테 한대 쥐어 박히면 죽는 시늉을 하고 웁니다.

이틀 전, 밤 10시쯤 잠자리에 들었는데 나와 아내 사이에 있던 우리 집 병아리가 잠을 안자고 자꾸 뒤척거리면서 성가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 느릿느릿 박철

“너, 왜 안 자구 자꾸 뒤척거리냐? 네가 부시럭거리니까 아빠가 잘 수 없잖아. 아빠가 빨리 자야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있단 말이야!”
내가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우리 집 병아리가 뾰쪽해져서 한마디 합니다.

“나 지금 똥꼬가 아프단 말이야! 똥꼬가 아프고 간지러워서 잠을 못자겠어!”
“자꾸 똥꼬 생각하지 말고 자!”


하고 내가 휙 돌아누웠습니다. 그리고 나는 잠에 곯아 떨어졌습니다. 거기까지는 생각이 납니다. 아마 은빈이는 계속 뒤척거리며 잠을 못 잤던 모양입니다. 은빈이가 징징거리고 잠을 못 자자 아내가 일어나 물 티슈로 은빈이 똥꼬를 닦아 주었는데도 잠깐뿐이고, 또 은빈이가 징징대자 이번에는 은빈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들어가 뜨거운 물에 한참동안 앉히고 미지근한 물로 씻기고 똥꼬가 성이 나지 않도록 잘 달래서 다시 재우려고 방에 들어온 모양입니다. 이불 속에서 은빈이가 불쑥 한마디 하더랍니다.

ⓒ 느릿느릿 박철

“아빠는 나빠! 나보고 맨날 예쁘다고 그러구, 사랑한다고 그러면서 내가 똥꼬가 아파서 못자게다고 하는데도 그냥 빨리 자라고 야단만 치고 아빠는 순 거짓말쟁이야. 엄마가 진짜 나를 사랑하는 엄마야...”


그러더니 곧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어제 아침 아내가 그 얘길 내게 꺼냈습니다. 유구무언입니다. 할말이 없었습니다. ‘그 녀석 참...’

어제 밤, 아내는 넝쿨이 공부를 봐준다고 애들 방으로 갔고, 나는 우리 집 병아리를 데리고 화장실에 들어가 목욕을 시켜주었습니다. 머리를 정성껏 감겨주고 손가락으로 아프지 않게 떼를 밀어주고 똥꼬도 시원하게 닦아주었습니다. 이미 내가 자야할 시간이 지났습니다. 목욕을 다하고 나온 은빈이가 한마디 합니다.

ⓒ 느릿느릿 박철

ⓒ 느릿느릿 박철

“야, 시원하고 좋다. 아빠 사랑해요!”

은빈이는 내 팔을 베고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나도 완벽한 사랑은 아니지만, 우리 집 병아리를 사랑하는 건 사실입니다.

엄마, 불나요. 빨리 불 꺼요!

지난번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로 수많은 목숨들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입니다. 그 일이 있고 우리 집에서도 작은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 은빈이가 불에 대해서 굉장한 과민반응을 보입니다.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를 텔레비전에서 시간 시간 보여주자, 은빈이가 잘 모르는 줄 알았는데 그걸 다 본 모양입니다. 아내가 밥을 지으려고 가스렌지에 불만 켜도 아이가 자지러지게 놀랍니다. 아이를 안심시키고 ‘괜찮아. 걱정하지 말라’고 설명해도 잠간뿐이고 이내 막무가내로 불을 끄라는 것입니다.

ⓒ 느릿느릿 박철

아내가 밥이나 국을 올려놓고 잠시 세탁기에 세탁물을 넣으러 간 사이, 은빈이가 얼른 불을 꺼버려서 문제가 발생하곤 합니다. 압력밥솥이 어느 정도 밥이 다 되면 김이 빠지는 꼭지가 딸랑거리며 회전을 하는데, 그때가 되면 아이가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울어댑니다.

“엄마! 빨리 불 꺼. 불나요! 무서워!”
“은빈아. 불을 꺼버리면 밥을 어떻게 하니. 그러면 밥을 어떻게 먹어. 불을 잘 사용하면 고마운 불이야. 그리고 부엌에서 사용하는 불을 안전한 불이야. 엄마가 지켜서 있잖아. 그러니 안심해도 된단다.”


ⓒ 느릿느릿 박철

간신히 은빈이를 설득해서 넘어가면 그 다음날 그런 상황이 또 반복됩니다. 아무래도 은빈이 마음에 큰 충격을 준 것 같습니다. 잠을 자다가도 꿈속에서 불이 나는 꿈을 꾸는 모양입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해결될 일이지만, 어릴 적 그 무서운 충격이 빨리 완화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 집은 은빈이로 인해 불과의 작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은빈이가 불보다 더 무서운 일들을 많이 만날 텐데, 그 모든 것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요.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라는 노래가 있던데, 어른들의 무책임한 행동이, 어른들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막 자라나는 아이들의 가슴에 큰 멍울을 남겨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방금 제 이부자리에서 곤하게 잠이 든 은빈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 느릿느릿 박철

“주님, 이 아이가 불을 무서워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불을 조심하게 해주소서. 세상을 무서워하지 않게 하시고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하고 맑은 아이로 자라게 하여 주소서.”

지금 은빈이가 깊은 잠에 빠져 새근새근 거리는 소리가 참 평화롭습니다. 고즈넉한 밤입니다.

ⓒ 느릿느릿 박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