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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들은 정기구독자들에게 배달하기 위한 본판(또는 배달판)을 찍기 전에 미리 '가판'이라 불리는 초판을 찍어 거리와 지하철 등의 가판대에 보내서 판매한다.

가판은 본래 뉴스를 조금이라도 빨리 알려는 사람들의 욕구에 부응하고 신문을 한 부라도 더 팔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가판은 가판에 실린 보도의 대상이 된 이해당사자들의 대신문사 로비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판이 나오기가 무섭게 정부, 기업 등 신문보도에 커다란 이해관계가 걸린 당사자들이 가판을 사본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가 있으면 즉시 해당 신문사에 로비해서 그 기사를 배달판에서 빼거나 축소하거나 논조나 위치를 바꾸거나 한다.

신문사는 신문사대로 가판을 통해 로비의 대상이 됨으로써 광고 등의 이권을 챙긴다. 가판을 통해 언론과 정부, 기업 사이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판은 이들 사이의 부패의 연결고리의 하나인 것이다. 이런 가판은 폐지되어 마땅하다. 다행히, <중앙일보>는 2001년 10월 자율개혁 차원에서 가판을 폐지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다른 신문들은 이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노무현 당선자가 2월 22일 <오마이뉴스>와의 대담에서 앞으로 청와대와 정부 부처에서는 이러한 가판의 구독을 금지하도록 하겠으며, 가판을 보고 당국자가 신문사와 "비정상적으로 협상하는 것을 일체 금지하는 대신 사실과 다른 보도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정정 반론 보도를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이제 신문들과 비정상적인 밀실거래를 하지 않고, 떳떳하게 정정보도나 반론을 통해 언론의 잘못된 보도에 대처하겠다는 선언이다.

사실 정부가 언론의 잘못된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나 반론을 통해 당당하게 대처하지 않고 밀실에서 일종의 암거래를 통해서 해결한 것은 정부에 약점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것이 일종의 관행으로 굳어져온 탓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가판을 통한 밀실거래는 비정상이 정상으로 굳어진 예라고 할 수 있다.

개혁이란 흔히 이처럼 정상적인 듯이 행세하는 비정상을 바로잡는 일, 즉 비정상의 정상화라 할 수 있다. 비정상적인 것이 오랫동안 관행화하여 굳어지면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 사이에 본말전도가 일어나게 되면 이것을 뒤바꾸는 것이 대단히 어렵게 된다.

본래 비정상적인 것이지만 이제는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일부 세력이나 조직이나 개인들은 정상화한 비정상에서 많은 이득을 보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이것을 정상이라 우기며 그것을 바로잡는 일에 저항하게 된다.

우리는 그 동안 군사독재정권과 냉전체제 하에서 너무나 많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경험해야 했다. 비정상의 정상화의 대표적인 한 예가 정치세력과 언론간의 유착관계라고 할 수 있다.

가판을 통한 밀실거래는 정치세력과 언론간의 유착관계의 일단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세력과 언론의 정상적인 관계는 국익이나 공익을 위해 때로는 협조하고 때로는 상호 견제와 감시를 할 수 있는 적당한 긴장관계다.

거꾸로, 가판을 통한 밀실거래에서 보듯이 만일 정치세력과 언론이 상호 견제와 감시 대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유착관계를 형성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비정상적인 관계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과거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특정 정치세력 특히 집권세력과 유착관계를 형성하여 그 나팔수 노릇을 하고 그 반대급부로 언론인은 그 실세로부터 고급정보를 얻거나 정관계의 요직에 발탁되어 출세를 하고, 언론사는 이권을 챙겼다.

이처럼 언론들은 집권세력과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형성했고 거기서 많은 이득을 보았다. 반대로 야당을 비롯한 집권세력의 반대세력과는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해왔다. 이런 비정상적인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동안 그것은 매우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으로 자리잡았다. 언론들은 오랫동안 이런 비정상적인 관계와 거기서 발생하는 단맛에 젖어서 그것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관계는 사실 매우 비정상적인 것이다. 그것은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할 부패한 비정상이다. 그런 부패한 관계를 지속시키려 하는 퇴행적이고 수구적인 언론이 있다면 그 언론은 그만큼 부패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과 언론인은 그런 부패한 유착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이 보인다.

그들은 대통령을 비롯하여 집권세력의 실세들을 자신들이 잘 알고 교분이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만 그래서 손쉽게 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노골적인 편파보도를 통해 특정 정치세력의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반언론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다행히 그 동안 우리 사회와 정치의 민주화로 많은 비정상적인 사회 및 정치 관계가 정상화하였다. 문민정부와 국민정부를 거치면서 집권세력의 주체들도 점점 더 바뀌고 그들의 자세 또한 과거 독재정권의 주체들과는 달랐다.

민주화된 집권세력의 주체들은 약점이 별로 없었기에 언론과 유착되기보다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언론과 긴장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 집권세력과의 유착에서 혜택을 크게 본 언론들일수록 새로운 관계에 저항하면서 과거와 같은 유착관계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정부조차도 언론과 완전한 거리 두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국민정부는 언론과 유착을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정상적 관계를 형성한 것도 아니었다. 밀실에서 거래하는 대신 정정보도와 반론 등과 같이 정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긴 했지만 완벽하지는 못했다.

특히 국민정부 초기에는 그 실세들 가운데 일부는 과거의 관행에 젖어 또는 약점이 있는 탓에 언론과 적당한 긴장관계보다는 오히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유착관계를 선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민정부에 의한 언론사 세무조사를 계기로 언론과 집권세력의 관계는 적당한 긴장관계를 넘어서 아예 적대적인 관계로 발전하였다. 또 다른 비정상적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후보 시절부터 언론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어왔다. 이런 자세는 참여정부로 명명된 차기 정부에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조짐은 가판 구독금지 선언과 <인수위 브리핑>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인수위 브리핑>은 그 전신인 노 당선자 후보 시절의 <노무현 브리핑>과 마찬가지로 언론의 오해나 오보에 대해서 해명하거나 반박하는 기사들이 많다. 본래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은 언론 특히 영향력 있는 언론과는 유착관계나 아니면 적어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언론의 오보에 대해서도 적당히 넘어가고 만다. 대신 밀실에서 암거래 방식으로 해결한다.

그러나 노무현 당선자는 후보 시절이나 당선자 시절이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런 자세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 브리핑>을 <청와대 브리핑>으로 이름을 바꾸어 계속 발행하기로 한 결정이 그런 예상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언론은 과거 유착되었던 정치세력과의 유착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채 여전히 그 정치세력의 대변자 역할을 하면서 반대로 노무현 당선자와 집권세력에게는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들 언론이 유착한 세력과 적대하는 세력이 여야로 뒤바뀌었을 뿐 이들 언론의 정치세력과의 비정상적 관계의 유지는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국익과 공익을 위해서는 이 또한 정치세력과 언론의 바람직한 정상적 관계는 아니다. 국익과 공익을 위해서라면 정부와 언론은 협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세력과 언론은 적당한 긴장관계 속에서 상호 감시하고 비판하되 공익을 위해서는 협조도 하는 그런 정도의 관계여야지 무조건 비난하고 반대하는 극단적인 적대적 관계도 정상적인 관계라고는 할 수 없다.

이제 집권세력과 언론은 정상적인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은 언론개혁의 핵심적 과제다. 노무현 당선자 측은 <브리핑>의 발행과 가판 구독 금지 선언을 통해 그런 관계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 신문들은 가판 폐지라는 화답으로 집권세력과 정상적인 관계를 지향하고 있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국민들의 의식도 바뀌고 정치문화도 바뀌었다.

정치세력과 언론의 관계도 바뀌어야 한다. 아직도 유착관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언론들은 하루빨리 미몽에서 벗어나야 한다. 야당과는 유착관계를 유지하고 집권세력과는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언론들이 아직도 정치세력과 언론간의 비정상적인 관계만을 고집하는 반개혁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할 뿐이다.

참된 언론이라면 집권세력을 비롯하여 어떤 정치세력과도 밀실거래의 유혹을 과감하게 물리쳐야 한다. 언론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특정 정치세력과는 불가근불가원의 적당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되 국익과 공익을 위해 때로는 협조하고 때로는 비판하는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언론이 지향해야 할 정치세력과의 정상적 관계이고, 언론개혁이 추구하는 핵심적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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