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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린 재미 언론인 김민웅씨의 "긴장해소 · 전쟁방지 위한 비상권한/사법판단 보다 민족사 관점 처리를" 제하의 기사에 대해 재미작가 조화유씨가 반론을 보내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현재 정치권 안팎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상선 대북송금'건에 대해 각계 각층의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 대한 반론 역시 환영합니다....<편집자 주>


김민웅 기자는 그의 장황한 기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일관된 한반도 정책의 결단과 의지는 오늘날 이만큼의 평화와 전쟁통제력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설 때를 전후해서 한반도가 전쟁 일보 직전이거나 그럴 위험이 많았었다는 얘기가 되는데 과연 그랬었나? 또 그의 주장대로라면, 현재의 북핵 위기는 생기지 않았어야 되는 것 아닌가?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1998년 2월 한반도에는 전쟁 위기가 전혀 없었다. 전쟁 위기는 오히려 김영삼 정권 초기인 1993년에 있었다. 당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한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NPT(핵확산방지조약)에 의거, 북한에 대해 핵사찰을 요구하자, 북한은 NPT로부터 탈퇴하겠다고 위협했고, 이를 심각하게 우려한 미국 클린턴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기 전에 핵시설을 파괴하기로 결정, 구체적인 군사작전까지 수립했다.

@ADTOP7@
미국의 전쟁불사 의지를 간파한 당시 김일성 정권은 카터 전대통령의 중재를 받아드려 미국과의 협상에 동의, 그 결과 1994년 기본합의서(Agreed Framework)가 조인되고 이에 의해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대신 미국, 일본, 한국, 유럽연합(EU)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을 공동으로 구성하여 북한 함경도 금호지역에 1천 메가와트급 경수로 원자력 발전소 2개를 지어줌과 동시에 미국은 매년 북한에 50민톤의 중유까지 공급해주기로 합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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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해소 · 전쟁방지 위한 비상권한 사법판단 보다 민족사 관점 처리를"

그래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에는 한반도에 심각한 남북 긴장 사태도 없었고 전쟁 위기는 더더구나 없었다. 다만 그해 6월 영변 북쪽 금창리에 대규모 지하시설이 있음을 탐지한 미국이 북한이 1994년 합의를 어기고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는 게 아니냐고 사찰을 요구했고 북한은 3억달러의 현금을 대가로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현금 지불은 거부하고 대신 식량 제공을 제의했다. 북한은 이를 수락하고 금창리 지하시설에 대한 사찰을 받았다.

그 후 IAEA사찰단원이 북한에 상주하면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못하도록 감시를 해왔다. 그런데 같은 해 8월 북한은 느닷없이 일본열도를 뛰어넘어 태평양 바다에 떨어지는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1호를 시험발사했다. 당시 북한 언론은 그것이 미사일이 아니라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기 위한 추진 로케트 발사였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일본은 당연히 과민한 반응을 보였으나 그뿐,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거나 위기가 조성되지는 않았다.

다음해인 1999년 한반도는 더 평온했다. 다만 북한에서는 1995년부터 시작된 극심한 기근으로 수많은 우리 동포가 죽어가고 있었다. 전문가들의 추측으로는 1999년 현재 적게는 2백만, 많게는 3백만명이 굶어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민들에게 먹을 것을 배급해주게 되어 있는 김정일 공산주의 정권은 막대한 돈이 드는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는 엄청난 돈을 쏟아부우면서도 배고픈 인민들을 먹일 능력은 없었다.

@ADTOP8@
그 결과 수십만 북녘 동포가 중국 땅으로 넘어가 거지같은 생활로 연명을 해야 했다. 이러한 슬픈 뉴스가 있었을 뿐, 남북한 간에는 아무런 위기가 없었고, 따라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관한한 김대중 정부가 걱정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그때 김대중 대통령 머리 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있었지 않나 추측된다. 하나는 다음해인 2000년 4월13일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퇴임하기 전 남북 관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고 그 것을 계기로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아닌가 한다.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묘안으로 나온 것이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해보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까? 어쨌든 결과는 토끼 한 마리밖에 잡지 못했다. 속 들여다 보이게 불과 투표 3일 전에 6월 남북 정상회담 계획을 발표하는 바람에 오히려 역효과를 보아 집권당은 총선에서 참패했다. 그러나 김정일과의 평양정상회담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겨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런데, 바로 이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김대중 정부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북한에 거액의 현금을 주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지금 나오고 있는 것이다. 금창리 사찰에도 3억불을 요구했던 북한이 남북정상회담 조건으로 거금을 요구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현대상선'을 통해 북한에 현금 2235억원(약 2억불)을 몰래 흘러들어 간 것은 이미 사실로 확인되었지만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조사를 해봐야 알 것이다. 그 돈을 정상회담 대가로 준 것인지 아니면 "민족화합과 통일에의 길 다지기를"를 위한 숭고한 목적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돈을 받은 북한이 인민의 경제생활을 향상시키는 데 쓴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워싱턴 포스트(2002년 10월 18일자)에 의하면, 작년에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특수알루미늄을 대량으로 구입하려는 것을 미정보기관이 포착했다 한다. 고강도 특수 알루미늄은 우라늄을 농축시키는 원심분리기를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다.

핵무기를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발전용 원자로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플루토늄(금속)을 야구공만하게 만들어 그 위에 고성능 폭약을 붙여 폭발시키면 그게 바로 핵폭탄이 된다. 또 하나는 북한에 많이 나는 광물질 우라늄을 농축시켜서 핵폭탄을 만드는 방법인데 이것은 플루토늄탄 제조보다 더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한다.

플루토늄탄 제조를 (1994년 기본합의에 의해) 포기한 북한이 이번엔 비밀리에 (1994년 기본합의를 어기고) 우라늄탄을 만들려다가 들킨 것이다. 부시 정부의 한반도 담당 제임스 켈리 국무성 차관보가 지난 10월 평양에 갔을 때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에게 증거를 제시했고, 강부부장도 북한의 우라늄탄 제조계획을 솔직히 시인했다는 것이다.(최근엔 시인한 일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지만.)

여기서 현재의 북핵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2235억원 비밀제공과 현재 북핵 위기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북한이 그 돈을 우라늄탄 제조계획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로 썼다면 물론 직접 관련이 생긴다.

결론은 이렇다. 북한에 대한 현금 지원은 그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사용 용도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비밀리에, 비정상적인 또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대북 현금지원을 하는 것은 더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김대중정부가 이미 저지른 비정상 대북 송금의 진상은 밝혀지는 게 좋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앞으로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정치의 대전제의 하나는 통치행위의 투명성이다.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가 이란에 무기를 몰래 팔아 그 수익금을 니카라과 반공투사들에게 제공했다가 의회의 국정조사는 물론 실무자가 재판까지 받지 않았던가(Iran-Contra 사건). 아무리 좋은 통치행위라도 그것이 투명하지 않으면 정쟁의 불씨가 되고 그 결과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대통령은 국가에 대한 반역 행위를 하지 않는 한 형사 소추 대상이 되지 않으므로 진상조사를 해도 김대통령이 불이익을 당할 염려는 없다. 다만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평화와 화합의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영예가 좀 훼손될지 모르고 또 노벨상 수상자를 냈다는 우리나라의 영예에도 좀 흠이 갈지 모른다, 그러나 의혹이 있는 영예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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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후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 중 대한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흉일"당선. 미국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대학원 역사학과 연구조교로 유학, 한국과 미국 관계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사 연구 후 미국에 정착, "미국생활영어" 전10권을 출판. 중국, 일본서도 번역출간됨. 소설집 "전쟁과 사랑" 등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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